제4과 진리를 위해 굳게 섬(질문, 대답, 설명) 04/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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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04-18 20:55 조회3,683회 댓글0건본문
제4과 진리를 위해 굳게 섬
(4월 27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18분)
연구 범위: 단 7:23~25, 계 12:6, 14, 유 3, 4, 계 2:10, 행 5:28~32, 시 19:7~11, 요일 5:11~13.
기억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4, 15).
현대 튀르키예의 해안 도시 이즈미르(Izmir)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의 도시 서머나였다. 약 1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던 이 고대 도시는 1세기 후반과 2세기에 번성했다. 서머나는 매우 번영했으며 로마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다. 일 년에 한 번씩 도시의 모든 시민은 로마의 신들에게 분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2세기 서머나에는 분명히 번성하던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고 많은 사람이 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초기 교회 지도자 폴리카르포스는 예수를 부인하고 로마 신들에게 분향하라는 요청을 거부하다 서머나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다. 그리스도를 부인하라는 마지막 압박과 요청 앞에 연로한 종은 "내가 86년간 그리스도를 섬기는 동안 그분은 나에게 한 번도 잘못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의 왕이요 구주인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많은 남녀 성도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기보다 기꺼이 순교하기를 선택했다. 이번 주 우리는 폴리카르포스를 죽인 로마 곧 지금은 교황으로 이어진 같은 세력이 후스와 제롬, 왈도파 같은 종교개혁자들을 박해한 일과 어떤 상황이나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주님께 충성하도록 그들을 굳게 붙잡아 주었던 성경 원리를
살펴볼 것이다. 그들의 희생은 우리의 용기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그들의 헌신은 우리의 헌신을 새롭게 해 줄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은 고난과 핍박 중에도 당신의 종을 인도하시며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였다.
느끼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고난과 어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특권임을 느낀다.
행하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경험과 말씀을 통해 주시는 기쁨을 세상에 전한다.
TMI 위로
2. 기독교인들이 핍박, 죽음을 당하면서도 승리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단 7:25)
*답: 영생을 잃지 않은 것이다. 핍박이 지나고 진리가 드높여졌다.
3. 예수님이 주신 생명의 면류관 약속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계 2:10)
*답: 환난을 이기는 동력이다.
4. 왈도파와 종교개혁자들은 어떻게 핍박 중에도 굳게 서는 용기를 가졌습니까?(행 5:29)
*답: 사람보다 하나님을 따르는 믿음으로.
5. 종교개혁자들이 어려운 가운데도 말씀을 나누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렘 15:16)
*답: 말씀에 생명이 있고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다.
6.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조차 기쁨으로 여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벧전 4:13)
*답: 재림의 소망이 확고했고 재림과 영생의 영광을 확신했다.
결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고난과 핍박 가운데도 예수님께 충성하였다. 하나님은 종들에게 감당할 수 있을만큼 빛을 주시며 그들의 삶과 믿음을 한 걸음씩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기쁨과 약속을 주었으며 그들의 겪는 고난조차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특권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주께서 보여주신 부활의 소망과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기억하며 사람의 권세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4월 21일(일) 박해받았지만 승리함
다니엘서 7:23~25과 요한계시록 12:6, 14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어떤 예언적 기간을 말하고 있는가?
[단7:23~25]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라서 온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서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그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계12:6,14]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답: 한 때, 두 때, 반 때, 1,260일.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께 충성하는 것은 항상 사탄을 격분하게 하며 많은 경우 핍박이 뒤따른다. 다니엘 선지자는 중세 교회가 성도들과 "더불어 싸우"고 "괴롭게"할 때를 예언했다(단 7:21, 25). 사도 요한은 이 동일한 기간을 하나님의 교회가 광야로 쫓겨나고 도망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양육을 받는"(계 12:14) 시기라고 기록했다. "여자(교회)는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광야의 한 곳으로 도망"(계 12:6, 쉬운)쳤다. 하나님의 백성은 광야에서 양육 받았다. 교황이 통치하던 길고 암울한 기간 동안 계속되는 대쟁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을 붙잡아 주고 강하게 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준비해 두신” 곳을 발견했다.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의 때에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신실한 종을 위한 처소를 예비하신다. 가장 큰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피난처를 발견했다(시 46: 참조).
요한계시록 12:6, 14에 기록된 1,260일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모두 같은 기간을 가리킨다. 성경의 예언은 종종 상징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에서 예언의 하루는 문자적인 1년과 같다. 이와 같은 연-일 원칙을 민수기 14:34과 에스겔 4:6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연-일 원칙은 위의 두 본문에 더하여 더 광범위한 성경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연대기학자이자 구약학자인 윌리엄 셰이(William Shea)는 이 원칙에 대해 구약성경 전반에 걸쳐 23가지의 성경의 증거를 제시한다. 성경 해석가들은 수 세기 동안 이 원리를 사용해 왔다.
서고트, 반달, 동고트는 로마의 교리와는 다른 가르침을 믿는 족속이었다. 1,260일의 예언은 이 부족 중에서 마지막으로 동고트가 로마에서 축출되는 서기 538년에 시작되었다. 이 영적 암흑기는 서기 1798년, 나폴레옹의 장군 베르티에가 교황을 로마에서 몰아낼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순교했다. 죽음을 맞으면서도 그들은 승리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은 "어린양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책과 죄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웠다. 십자가에서 사탄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가 바로 그들의 승리였다. 그들은 죽었지만, 그 죽음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의 잠시 쉬는 것일 뿐이다.
<교훈> 교황 통치의 길고 암울한 기간에 신자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 피난처를 발견했다. 큰 시련의 때에도 그분은 신실한 종을 위해 자리를 예비하신다.
<부가설명> 성경은 인류의 미래 역사를 예언한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의 예언은 미리 쓴 역사다. 그리고 실제 역사는 성취된 예언이다.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는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사46:10)라고 계시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인류를 구원하려고 섭리하신 사실을 예언으로 가르쳐주신 것이다. 연대 예언은 역사 예언 중에도 백미(白眉)다. 우리가 연대 예언을 연구할 때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연대 예언이 기록된 사건이 실제 역사적 사건일 때는 그 연대 예언도 1년이 1년으로 해석해야 한다. 노아 때 120년간 정한 사건(창6:3), 이스라엘 애굽 체류 400년(창15:13), 이스라엘 바벨론 포로 70년(렘29:10, 단9:1,2)등은 실제적인 역사적 사건에 관한 예언 연대다. 그러나 다니엘서와 계시록에 상징적으로 기록된 예언에는 그 연대도 상징적으로 기록되었다. 그것은 예언 1일이 실제 역사 1년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을 혼동하면 안 된다. 1,260일, 한 때 두 때 반 때 이런 표현은 다 상징적 역사 예언에 포함된 연대 예언이다. 이런 원리를 모를 때 왜 노아 120년, 유다 포로 70년은 1일 1년 원칙으로 해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합리적 대답을 못하고 당황할 수 있다.
4월 22일(월) 빛은 어둠을 물리치고
유다서 1:3, 4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는 어떤 경고가 있으며, 이 경고는 후대의 교회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가?
[유1:3,4]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답: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 은혜를 방탕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하는 자에 대하여 경고했는데 역사가 진행되면서 교회에 이교의 풍습이 밀려 들었고 자칭 그리스도가 나타났다.
유다서는 서기 65년 이전의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유 1:1)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록되었다. 이 신실한 신자들은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권고받았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 어떤 사람들이 몰래 그들 가운데 들어왔기 때문이었다(유 1:3, 4). 이 경고의 기별은 이교의 관습이 교회에 범람하고 인간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는 중세 시대의 신자들에게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수 세기 동안 왈도파 신자들 같은 사람들이 성경 진리의 옹호자로 서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중보자이시며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의 원천이라고 믿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증인들,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의 중보자이심을 확실히 믿고, 성경을 인생의 유일한 지침으로 삼고, 참 안식일을 거룩히 구별하여 지키는 증인들이 있었다"(각 시대의 대쟁투, 61).
요한계시록 2:10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죽음에 직면해서도 당신에게 충실한 사람들에게 어떤 약속을 주시는가?
[계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답: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되었다.
이 말씀은 서머나 교회를 위해 기록된 것이다. 이 도시의 수호신은 축제와 다산의 신 디오니소스였다. 디오니소스의 사제들이 죽으면 장례식에서 그들의 머리에 관을 씌웠다. 요한은 이 세상의 면류관과 악의 세력을 이기고 승리한 사람들의 머리에 씌워지는 생명의 면류관을 대조한다. 생명의 면류관은 그리스도를 위해 시련과 고난, 고통과 죽음까지도 견뎌낸 사람에게 주어진다.
생명의 면류관은 신실한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까지도 견딜 수 있도록 영감을 준다. 생명의 면류관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신자들에게 언제나 용기를 준다. 이 면류관은 고통과 핍박 가운데 있는 왈도파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그들은 언젠가 예수님을 만나 그분과 영원히 함께 있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생명의 면류관 약속은 우리에게도 말한다. 우리가 지금 시련을 겪을 수 있지만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할 때 우리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
<교훈> 하나님의 말씀은 어둠을 걷어내고 시련 가운데 있는 종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들은 고난 중에도 언젠가 예수님을 만나 그와 영원히 함께할 것을 신뢰했다.
<부가설명> 성경에는 생명이라는 말이 수식어로 붙은 명사가 여러 개 있다. 생명 나무, 생명 면류관, 생명의 말씀, 생명 강, 생명 샘, 생명책, 생명의 떡, 이런 표현들은 성경이 생명을 주는 책인 것을 깊이 알게 한다. 성경은 선악 간의 대쟁투를 계시하였다. 그 선악이 도덕적 율법적 선악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것은 지엽적인 것이다. 근본적인 것은 생명과 사망의 대쟁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선은 생명이고 악은 사망이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막3:4). 이 말씀은 선을 행하는 것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고 악을 행하는 것은 죽이는 것임을 확실히 대조한 구절이다. 사탄은 도덕적으로 악한 일만 하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율법적으로 올바르게 사는 것으로 예수님을 배반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을 사용한다. 도덕적으로 율법적으로 악한 일을 하게 하면 예수님을 잘 배반할 사람에게는 악한 일을 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도덕성으로 선악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삼으면 사탄의 계략에 완전히 속는 것이다(고후11:3~15). 도덕적으로 선할수록 예수님이 필요없게 만드는 것이 세상 종교들이다. 성경적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어서 영생을 얻는 것이 성경 계시의 핵심인 것을 올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4월 23일(화) 굳게 서는 용기
사도행전 5:28~32, 에베소서 6:10~12, 요한계시록 3:11을 비교해 보라. 이 구절에서 찾을 수 있는 기본 원리는 무엇인가?
[행5:28~32]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엡6:10~12]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계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답: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오직 기록된 말씀에 의지하여 악한 자를 대적해서 우리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왈도파와 종교개혁자들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 성경의 권위에 대한 순종, 교황이 아닌 그리스도의 최상권만을 인정하는 헌신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신약성경의 믿음과 용기의 이야기로 충만해 있었다.
그들은 베드로와 사도들처럼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행 5:29)다고 말할 수 있었고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엡 6:10)라는 바울의 권면을 이해했다. 그들은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는 예수님의 권면을 항상 기억했다. 이 충직한 믿음의 사람들은 로마 교회의 전통을 따르기보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의 편에 굳게 서는 용기가 있었다.
왈도파들은 자국어로 된 성경을 가지고 있는 최초의 무리 가운데 하나였다. 장 레지(Jean Leger)가 기록한 손으로 성경을 필사하는 왈도파 성경 필사자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리는 것을 포함한 그들의 작업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왈도파는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 남부에 있는 산골 거처에서 비밀리에 성경을 필사했다. 청소년들은 그들의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성경의 많은 구절을 암기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성경 필사자들은 팀을 이루어 전력을 다해 성경을 필사했다. 왈도파 청년 중 다수는 상인이 되어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조용히 성경의 진리를 전했다. 일부는 대학에 입학하여 기회가 되면 동료 학생에게 성경의 일부를 나누어 주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전한 마음의 구도자가 성경을 받아들이는 것을 감지하는 적절한 순간이 오면 그들은 소중한 성경의 선별된 부분을 전해 주었다. 많은 이들은 충실함과 헌신에 대한 대가로 생명을 희생해야 했다. 왈도파가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분명하게 이해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성경을 나눔으로써 수 세기 동안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보존했다.
“의로운 자의 길은 점점 밝아져서 완전히 빛나는 아침 햇빛 같”다(잠 4:18, 현대인).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인도하시는 길을 점점 더 크게 빛나는 태양에 비유한다. 하나님이 우주의 스위치를 켜서 태양이 한순간에 그 모든 빛을 발한다면 우리는 눈이 멀게 될 것이다. 수 세기 동안 어둠이 세상을 뒤덮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충성하고 계속해서 진리를 찾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셨다.
<교훈> 어둠이 세상을 덮었지만 하나님은 말씀에 충성하고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세우셨다. 그들은 로마교회의 전통이 아닌 말씀의 진리 위에 담대하고 굳게 섰다.
<부가설명> 솔로몬의 성전은 화려했다. 당시 어떤 신전보다 아름답고 장엄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성전을 남겨두지 않았다. 훗날 헤롯이 보수한 성전도 아름답고 화려했다.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눅21:5). 각시대의 대쟁투에 기록된 것을 보면 이 성전 정면은 순금으로 입혔고 쌓은 돌들은 눈처럼 하얀 대리석이었다고 한다. 요세푸스의 책에 있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의 자랑이었다. 솔로몬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니 이 헤롯의 성정이라도 남겨두면 어땠을까?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도 돌하나도 돌 위에 놓이지 않게 무너진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우상화할만한 것은 다 없애버리셨다. 오직 기록한 생명의 말씀 성경만 우리에게 주셨다. 성령께서는 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신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면 생명의 말씀을 먹는 것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말씀으로 난 사람들이므로(벧전1:23) 말씀을 먹지 않으면 생명 공급이 없어지게 되고 사망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생명의 말씀(행5:20)이다. 성도들이 말씀의 사람이 되면 곧 생명을 가진 사람이다. 그들은 성경말씀만이 생명인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사탄은 그래서 이 말씀에 독약을 탄다. 인간의 지식과 학문과 사상으로 독을 탄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고 경고하신 것이다(딤후2:15).
4월 24일(수) 종교개혁의 샛별
시편 19:7~11, 119:140, 162, 렘 15:16을 읽어 보라. 종교개혁의 초석이 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다윗과 예레미야는 어떤 비슷한 태도를 보였는가?
[시19:7~11]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119:140,162]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162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렘15: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답: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달고 기쁨과 즐거움이 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기뻐"했고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했다.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는 진실은 성경 연구가 주는 기쁨이었다. 성경 공부는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무적인 요식행위나 지겨운 요구사항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그들은 성경을 공부하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었다.
“위클리프의 인격은 성경이 사람을 교육시키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을 증명해 주는 좋은 예증이 된다. 성경이 그로 하여금 그러한 인물이 되게 하였다. 계시에 나타난 위대한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노력은 사람의 모든 기능에 새로움과 활기를 준다. 그것은 마음을 넓혀 주고, 이해력을 높여주고, 판단력을 성숙하게 해준다. 성경 연구는 어떤 연구보다도 사상과 감정과 욕망을 더욱 정화(淨化)시켜 줄 것이다. 그것은 견인 불발의 정신과 인내와 용기와 굳센 마음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품성을 정련하고, 심령을 거룩하게 만들어준다. 성경을 존중하고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의 마음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직접 접촉하게 되므로, 어떠한 인간적인 철학이 가져다 주는 가장 훌륭한 결과보다 더욱 고상한 원칙은 물론이요, 더욱 강하고 적극적인 지성을 갖춘 인물이 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94).
디모데후서 2:1~3을 읽어 보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관련하여 디모데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있는가?
[딤후2:1~3]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답: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강하고 바울에게 배운 것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예수님의 좋은 군사가 되어 고난에 참여하라.
말씀의 진리와 구원의 기쁨이 종교개혁자들의 마음에 충만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위클리프가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이유는 오직 두 가지, 즉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켰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도록 강권하였기 때문이다.
위클리프의 번역 이전에는 영어로 된 성경은 거의 없었다. 위클리프는 로마 당국에 붙잡히기 전에 죽었지만, 교황청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유해를 파내어 불태우고 재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샛별" 위클리프의 유해가 강을 따라 널리 퍼진 것처럼 생명수인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널리 퍼져 나갔다.
<교훈> 하나님의 말씀이 기쁨을 주고, 변화시키며, 다른 이에게 사랑의 복음을 나누도록 강권하였기에 위클리프는 말씀을 번역하고 전하는데 그의 평생을 바쳤다.
<부가설명> 교회 역사가들은 위클립을 개혁의 새벽별이라고 말한다. 그가 성경을 번역하여 영어 세계에 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개혁의 물결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보헤미아의 훗스와 제롬에게 연결되고 마침내 마틴 루터에게 이르러 개혁의 물결은 홍수가 되었다. 그것은 말씀을 자기 글과 말로 읽고 깨닫는데서 시작했다. 사탄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혼신을 다해 성경을 없애려고 했다. 그것이 1,260년간 대환난이다. “사탄의 모든 도전을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의 지혜와 능력으로 대항하셨다. 그러므로 사탄이 사람들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찬탈하는 법왕권을 세우려면 반드시 사람들을 성경에 대하여 무지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었다. 성경은 하나님을 높이는 동시에 유한한 사람의 위치를 나타내 주는 것이므로, 성경의 신성한 진리를 가리워 버리거나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쟁투 51, 3과 일요일 설명에서) 성도는 지금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이 썩을 것이 썩지 않을 생명의 씨를 간직하게 된다(고전15:52,53).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생명의 부활로 아침을 맞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부지런히 생명 양식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썩을 몸 안에 심긴 영생의 생명 씨앗이 살아 일어날 그날을 위하여 강하게 될 것이다.
4월 25일(목) 소망으로 용기를 얻음
히브리서 2:14, 15을 읽어 보라. 중세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한 대쟁투의 실체는 어떤 것이었는가?
[히2:14,15]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답: 그들은 죽기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이기신 것을 확실이 알았고 믿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끔찍한 박해 가운데서 신실한 왈도파들을 격려하였는가? 후스와 제롬, 틴들, 라티머 그리고 중세의 순교자들이 화염과 칼에 맞서는 용기를 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들은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리라"(요 14:19, 흠정역)는 예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들은 인생의 가장 큰 시련도 이겨내기에 넉넉한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했다. 그들은 심지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 그들의 신실함은 세상에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그들은 현실을 넘어 장차 올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죽음의 두려움은 깨어졌고 이 용감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앞에 있는 사망의 권세를 이겨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약속을 붙잡았으며 말씀으로 승리했다.
요한복음 5:24, 11:25, 26, 요한일서 5:11~13을 읽어 보라. 이 약속들은 그대에게 어떤 개인적인 확신을 주는가? 이 약속은 어떻게 인생의 시련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가?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답: 부활을 확약하셨고 그것을 믿는 자는 영생한다는 약속과 나사로를 살리신 증명으로 그분이 부활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얀 후스(John Huss)는 교황권의 불의와 투옥,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몇 달 동안 시름시름 앓았고, 춥고 습한 환경 때문에 생긴 고열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붙들었다. 그가 최후의 선고를 받기 전, 고난의 몇 주일 동안에 그에게는 하늘의 평화가 마음에 충만하였다. 그는 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나는 옥중에서 내일 사형 선고가 내릴 것을 기다리면서 쇠사슬에 매인 손으로 이 편지를 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내세의 귀한 화평 중에서 다시 만나게 될 때, 그대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이토록 큰 자비를 베푸신 것과 내가 당한 시험과 시련 중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나를 도우셨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음산한 옥중에서 그는 참된 신앙의 승리를 미리 보았다"(각 시대의 대쟁투, 107).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히 10:23)으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요긴하다. 과거에 그분의 백성을 지탱해 주었던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 우리의 삶도 붙잡아 준다.
<교훈> 그들은 부활이 사망의 권세를 깨트렸기에 죽음의 두려움도 이기고 심지어 그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음을 기쁘게 여겼다. 이는 세상에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부가설명>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성경의 종교는 헛것이다. 그리 도덕적이지도 않은 내용이 너무 많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다 죽도록 했다. 사람의 안목으로는 잔인한 장면이 많이 기록되었다. 그런데도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가리킨다. 바울은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17~20). 성경이 생명의 종교인 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증명해주셨다(행17:31).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눈에는 아담 자손은 살아있는 자가 아니다. 죽은 자들이다(고전15:22). 하나님께서 생명을 얻으라고 간절히 호소해도 결국 배반했을 때 이미 죽은 그들을 살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사망의 영향을 없애도록 하는 것이 그들에게서 육신의 생명을 도로 찾으시는 것이다. 이것을 구약은 하나님의 진멸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실은 그들은 죽어서 썩고 있는 존재들이었다(엡4:22, 롬8:21).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사망을 없앴다(히2:14, 딤후1:10). 그리스도인은 둘째 사망이 접근 못하는 사람이다(계20:6). 예수님을 믿어서 거듭나면 이 생명, 죽지 않는 생명을 얻는다. 이것이 복음이다(딤후1:10, 눅20:35,36). 아멘.
4월 26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택함을 입은 그 사람들의 마음에 큰 빛을 주셨으므로 그들은 로마의 여러 가지 오류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에 전해 주어야 할 빛을 남김없이 다 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로마교의 흑암에서 나오도록 인도하고 계셨다. 그러나 그들은 온갖 큰 장애를 만나야 할 것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그들을 한 걸음, 한 걸음씩 인도하셨다. 그들은 모든 빛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정오의 햇빛과 같이 눈부시게 밝은 빛이 주어졌었더라면 암흑 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사람들처럼 그들은 빛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들에게 사람들이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조금씩 빛을 나타내 주셨다.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충성된 일꾼들이 차례로 일어나서 사람들을 차츰 깊은 개혁의 길로 인도하였던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103).
"후스는 복음의 사도가 된 어떤 신부에게 보낸 어떤 편지에서, 과거에 화려한 의복을 입기를 좋아하고 천박한 일로 시간을 낭비한다고 그를 비난하였던 자기의 과오를 충심으로 사과하였다. 그리고 그는 아래와 같이 감동적인 권고를 덧붙였다. “직록(職祿)이나 재산에 마음을 팔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의 구원으로 그대의 마음을 채우라. 그대의 마음보다 집을 더 꾸미지 말고, 영적 집을 세우는 데 관심을 쏟으라. 가난한 사람들을 친절하고 겸손하게 대하며, 그대의 물질을 열락하는 일로 낭비하지 말라. 그대가 만일 그대의 생애를 고치고 사치스러운 생애를 끊어 버리지 아니하면, 내가 지금 심하게 징계를 받고 있는 바로 그 징계가 그대에게 미칠까 염려된다"(각 시대의 대쟁투, 105).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점진적 빛"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빛을 점진적으로 비춰 주시는가?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답: 캄캄한 곳에 있다가 갑자기 밝은 빛에 나오면 보이는 것이 없다. 이런 현상이 생기지 않게 하신 것이다.
2. 새로운 진리의 발견은 이전에 가지고 있는 진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왜 새로운 진리는 결코 기존의 진리와 모순되지 않아야 하는가?
*답: 이전 진리가 바른 진리이면 새로 깨달은 것과 조화가 될 수밖에 없다.
3. 당신이 어디에서 살든지, 당신의 문화는 어떤 식으로든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되는 가치, 사상, 도덕과 규범을 조장할 것이다. 당신과 교회는 이러한 도전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하면 문화가 주장하는 왜곡된 가치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좋은 시민으로 남을 수 있겠는가?
*답: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지혜와 둘이 충돌해서 불가불 하나를 따라야 한다면 단호히 하나님께 굴복해야 할 것이다.
4. 얀 후스의 편지는 오늘 당신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편지의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었는가?
*답: 편지 전체가 좋은 교훈과 격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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