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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역경을 이기는 믿음(질문, 대답, 설명) 0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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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04-25 21:09 조회3,4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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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역경을 이기는 믿음 

(5월 4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24분)

 

연구 범위: 시 119:162, 요 16:13~15, 벧후 1:20, 21, 엡 2:8, 9, 롬 3:23, 24, 6:15~18.

 

기억절: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삶의 분명한 목적, 21세기의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그것을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은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필립 쿠시먼은 그의 저서에서 목적 없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공허한 자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의 신념은 얄팍하다. 그들이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거의 없으며, 목숨을 걸 만한 가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살아야 하는 이유도 빈약하다. 그러나 개신교 종교개혁자 남녀, 어린이들은 이들과 완전히 달랐다. 개혁자들에게는 살아가야 할 불굴의 목적이 있었다. 그들의 믿음은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삶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믿음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그들은 흔들림 없는 내면의 평화가 있었다.

이번 주 교과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성경의 가르침이 어떻게 삶의 진정한 목적과 참된 의미를 위한 기초를 제공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영원한 진리에 대한 이해는 우리를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마지막 위기에 대비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싸웠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는 그들이 싸우던 전쟁을 이어받아 싸우도록 부름 받았다. 그들처럼 우리도 직면하는 모든 도전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세상의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학습 목표

깨닫기: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믿고 말씀을 신뢰하며 역경을 이기었다. 

느끼기: 사탄이 여러 방면으로 앞길을 가로막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심을 기억한다. 

행하기: 기도하며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 은혜가 우리를 구속하기에 충분함을 전한다. 

 

TMI 위로

2. 개혁자들의 무기는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의 무기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계 22:2)

*답: 생명나무의 소성시키는 능력이다. 곧 생명 말씀의 능력이다. 

3. 견디기 어려운 세상의 미워함을 당하면서도 성경을 전파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고후 4:6)

*답: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빛을 사람들 마음에 비추기 때문이다. 

4. 어떻게 하면 상반된 견해들 속에서 하나님의 바른 뜻을 찾을 수 있습니까?(요 14:25,26)

*답: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일 때.

5. 종교개혁자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사랑으로 가득 채웠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엡 2:8, 9)

*답: 하나님의 선물인 은혜와 믿음이 가득찼다.

6. 고난과 핍박의 때에도 신자들은 어떤 믿음을 가졌습니까?(히 11:10)

*답: 하늘 본향,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고 지으신 나라를 바라보았다.

 

결론: 종교개혁자들은 불굴의 목적과 죽음 앞에서도 흔들릴 수 없는 내면의 평화가 있었다. 그들은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었다. 그들은 고난 가운데서도 약속을 사모하며 자유를 경험했다. 사탄은 앞길을 가로막고 진리를 곡해하며 핍박하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 대쟁투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도이며 예수의 은혜는 우리를 구속하기에 충분하다. 

 

4월 28일(일) 오직 성경

 

시편 119:103, 104, 119:147, 119:162을 읽어 보라.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했는가? 이 말씀이 종교개혁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 우리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시119:103,104]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104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시119:147,162]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162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답: 꿀보다 더 달게 여겼고 거짓을 분별하여 미워하고, 새벽에 말씀을 바랐고 많은 돈을 얻은 것보다 말씀을 즐거워했다. 개혁자들이 말씀으로 능력을 얻었다. 말씀이 신앙의 근본이었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성경은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의 근본이며 가르침의 본질이었다. 그들은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된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벧전 1:23)인 것을 이해했다. 그들은 모든 말씀을 소중히 여겼다. 그들은 성경을 읽고 그 약속을 믿으면서 믿음이 강해지고 새로운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은 그 약속을 통하여 그분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말씀하시며, 마치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와 같은 약속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신다. 그것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는 나무에 달린 잎사귀들이다(계 22:2).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흡수함으로 그것들은 품성의 힘과 생명의 원기와 영양소가 된다. 그 외의 다른 어떤 것도 이 같은 치료의 능력은 없다. 그 밖의 어떤 것도 온 존재에 생명력이 되는 용기와 믿음을 나누어 줄 수 없다"(치료봉사, 122).

성경은 우리의 슬픈 마음에 기쁨을, 낙심한 마음에 소망을, 어두운 마음에 빛을 비추어 준다. 우리의 혼란한 중에 방향을 제시해 주고, 막막할 때 확신을 주며, 연약한 가운데 힘을 주고, 무지한 마음에 지혜를 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어진 약속을 믿음으로 신뢰할 때,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영적 존재 전체에 활력을 준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들의 마음을 성경으로 가득 채웠다. 그들은 말씀으로 살았고, 많은 개혁자들이 말씀을 따르다 순교했다. 그들은 안일한 태도에 머물며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겉모습만의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없이는 자신들을 공격하는 악의 세력의 연합을 대항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존 위클리프가 바라는 것은 평범한 사람도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그는 신앙 때문에 재판을 받았고, 이단으로 정죄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위클리프는 재판정에서 엄중하게 증언했다. "그대들은 누구와 더불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늙은이와 더불어 싸우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대들은 진리, 곧 그대들보다 더욱 강하며 마침내 그대들을 이기고야 말 진리와 더불어 싸우고 있는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90). 위클리프의 유언은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중세의 어둠을 몰아내면서 성취되었다.

 

<교훈> 종교개혁자들은 그들의 마음을 성경으로 가득 채우고 온 존재에 활력을 얻었다. 그들은 말씀으로 살았고 또 말씀을 위해서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부가설명> 성경에 기록된 모든 장엄한 건축물들은 다 없어졌다. 솔로몬의 성전도, 헤롯의 성전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두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아담 자손으로서의 사람들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이 남아 있으면 틀림없이 우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없어도 사람은 우상 만들기를 그치지 않는다. 성골이라고 해서 해괴한 뼈조각을 성물로 둔갑시키지 않나, 예수님의 수의라고 하며 이상한 베폭에 남은 흔적을 거룩한 것으로 선전하지 않나. 이런 것들이 인간의 속성이다. 그렇거든 성전이 건물 채로 남아 있다면 소위 참배하러 가는 인파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장사꾼들 배만 부르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든 것을 없애시고 오직 기록된 말씀만 남겨주셨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말씀을 읽고 성령님 역사로 깨달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셨다. 그러니까 사탄이 말씀을 핍박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말씀이 없으면 예수님도 구원도 하나님도 성령님도 다 사람들에게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씀을 마음대로 소유하고 읽을 수 있어도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 그래서 신앙은 시들고 영혼은 굶다가 죽는다. 재림성도는 이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

 

4월 29일(월) 성경을 전파함

 

고린도후서 4:1~6, 2:14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선포할 때 직면했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가졌던 확신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답: 말씀의 빛이 흑암에 비쳐서 예수님을 믿도록 할 것이며 바울의 삶을 통하여 생명의 향기가 전파될 것을 확신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역경에 부딪혔지만,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고후 13:8)이라며 하나님의 말씀이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종교개혁자들도 비슷한 시련에 직면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했다.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은 압도적인 역경 앞에서도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가장 큰 소망은 영국에 정확하고 읽기 쉬운 성경 번역본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성경을 원어에서 번역하면서 약 140년 전 위클리프가 번역했던 일부 오류를 바로잡기로 결심했다. 이 일로 결국 틴들도 체포되어 재판받게 되었다. 독일 보름스에서 인쇄된 그의 성경 번역본의 대부분은 압수되어 공개적으로 불태워졌다. 그의 재판은 서기 1536년 벨기에에서 있었다. 그는 이단으로 정죄 받고 화형을 선고받았다. 사형 집행관들은 그를 목 졸라 죽였고, 시신조차 화형대에 묶어서 불태웠다. 그가 죽어가면서 큰 목소리로 간절히 외친 마지막 말은 "주여, 영국 왕의 눈을 뜨게 하소서"였다. 하나님은 틴들의 기도를 기적과 같이 응답하셨다.

그가 죽은 지 4년 만에 영어로 번역된 네 권의 성경이 출간되었다. 킹 제임스 성경은 1611년에 인쇄되었는데, 이 성경의 대부분은 틴들의 작업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 작업을 진행한 54명의 학자들은 틴들의 초기 영어 번역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611년 출판한 킹 제임스 성경의 구약 번역 중 76%, 신약 번역의 83%가 틴들의 번역으로 추정된다. 2011년에 출간 400주년을 맞이한 이 성경은 인쇄본 10억 부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했다. 이 성경은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틴들의 고귀한 희생은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 보여도 틴들과 성경을 믿는 동료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을 믿었다. 틴들의 삶은 영구한 변화를 가져왔다.

 

<교훈> 앞을 가로막는 엄청난 역경에도 틴들과 개혁자들은 하나님께서 뜻에 따라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을 믿었다. 틴들의 노력과 삶은 후세에 영구한 변화를 만들었다. 

 

<부가설명>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자들에게는 지혜가 없다.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경황 중에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렘8:9). 오늘날 재림 성도들은 신앙과 진리의 지혜를 버리고 있지 않은가? 신앙 부흥은 행정 체제를 고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말씀 부흥이 일어나야 신앙 부흥이 온다. 현금의 재리교회는 말씀에서 많이 멀어져 있는 것 같다. 설교는 문화강론으로 변질하고 사경회는 길어야 나흘 밤만 한다. 생명의 말씀이 어떻게 제대로 공급되겠는가? 돌아가야 한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설교단은 오직 성경 말씀이 울려 나오는 단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부흥과 개혁을 요구하신다. 성경 말씀, 오직 성경만을 설교단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선지자와 왕, 626)”라고 선지자는 강하게 증거했다. 재림교회 강단이 말씀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면 별빛처럼 빛날 것이고 또 하늘의 응답을 경험할 것이다. 문화 강론이나 시사 설명이나 종교적 훈화를 멀리 버려야 할 것이다. 

 

4월 30일(화) 성령의 깨우치심으로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마틴 루터의 인생을 뒤바꿀 일이 시작되었다. 그는 라틴어 성경을 발견했지만 그런 책이 있는 것조차 몰랐었다. 그는 순전한 기쁨으로 한 장, 한 장 또 한 구절, 한 구절 읽어 내려갔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과 명료함에 감탄했다. 성경을 넘기는 동안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비추어 주셨다. 전통으로 가려져 있던 진리가 성경의 장마다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일 때에 그는 성령께서 자신을 인도하심을 느꼈다. 그는 성경을 처음 본 경험을 이렇게 기록했다. 

“오, 하나님 나에게 이런 책을 주셨으면!”

 

다음 구절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어떤 원칙을 발견할 수 있는가?

 

[요한복음 14:25, 26]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요한복음 16:13~15]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베드로후서 1:20, 21]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답: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해석하고 깨달아야 한다.

 

이 구절들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성경 기자들에게 영감을 주셨던 바로 그 성령께서 성경을 읽을 때도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확신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진리의 거룩한 해석자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신성한 기원을 경시하고 인간적 이해에 집중한다. 사탄은 더이상 성경을 숨길 수 없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성경의 신성한 특성을 배제하고 단순히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제시하거나 심지어는 종교가 대중을 통제하는 억압하는 도구인 것처럼 전락시킨다. 

종교개혁자들은 사제나 고위 성직자, 교황이 아닌 성령이 성경의 무오한 해석자임을 분명히 알았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녹스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는 이에 대해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었다. 

“‘너는 성경을 이런 의미로 해석하고, 그들(로마 천주교 학자들)은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면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하며, 누가 판단을 해줄 것인가?’

‘여왕 전하께서는 성경이 밝히 말한 하나님을 믿으시면 그만입니다. 거룩한 말씀이 여왕을 가르치는 것 이외에는 이편 말이나 저편 말이나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분명합니다. 만일 애매한 점이 있는 것처럼 생각될 경우라도 하나님과 결코 상반되지 않으시는 성령께서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그 점을 분명히 알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짐짓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무지한 데 묻히지 않는 한 의구심을 가질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각 시대의 대쟁투, 251).

 

<교훈> 말씀을 기록할 때 인도하셨던 바로 그 성령이 성경을 읽을 때 우리를 인도하시고 역사하신다. 그러나 사탄은 이러한 성경의 신적인 기원을 가리고 왜곡한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창40:8). 성경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그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위에 기록한 성경 구절들이 그것을 분명히 계시하였다. 그래서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사28:13). 이 말씀은 교만한 자들이 선지자를 비난하는 말로 이렇게 빈정거렸을 때 하나님께서 바로 그렇게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셔서 그들을 넘어지게 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이다. 성경은 성경이 해석한다. 성령께서 서로 해석하는 성구들을 찾도록 감동하신다. 재림교회는 이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깨달았다. 그런데 요즘 성경이 성경 해석하는 방법을 버리지 않았는지 염려된다. 주석 찾고 참고서 찾고 인터넷 찾으면서 성경이 성경 해석하는 길을 벗어나 인간의 학문고 신학적 시각으로 성경을 풀이하려고 한다. 재림 교회 설교단이 개신교 설교단과 다른 것을 찾기 어려운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염려가 된다.  

 

5월 1일(수)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에베소서 2:8, 9, 로마서 3:23, 24, 6:23, 5:8~10을 읽어 보라. 이 구절들은 구원의 계획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롬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5:8~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답: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얻는 선물이다.

 

하나님은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값없이 주시는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자신의 완전한 생명을 주셨다.

하나님의 공의는 완전한 순종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생애는 우리의 불완전한 생애를 대신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것을 범한 우리에게 영원한 죽음을 선고한다. 죄된 선택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에 "이르지 못하"였다. 우리는 죄를 지었고 우리 자신으로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롭고 의로운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 결과 우리는 영원한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좋은 소식이 있다. 사도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롬 6:23)라고 확신을 준다. 구원은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며, 행위로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복음의 분명한 한 가지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근원이심을 발견했다. 루터가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은혜에 대한 기별을 전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삶을 변화시키는 마음에서 우러난 기별을 듣기 위해 군중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의 말씀은 메마른 광야 같은 삶에 주어진 한 모금의 시원한 냉수 같았다. 사람들은 중세 교회의 전통에 얽매여 있었고 영적인 생명력이 없는 수백 년 된 예식에 속박되어 있었다. 루터가 전하는 성경에 기초한 기별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삶을 변화시켰다. 루터는 신약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선하심에 압도되었다.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망은 그를 감동하게 했다.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구원은 사람의 노력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협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가르쳤고 이것이 일반적 견해였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이 모든 인류를 구속하기에 충분한 것을 발견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당신의 받으실 만한 대접을 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대우를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신 우리의 죄를 인하여 정죄함을 받으신 것은 우리로 우리가 아무런 공헌도 한 바 없는 당신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다"(시대의 소망, 25).

이 얼마나 강력하고 놀랍게 쓰여진 복음의 요약인가, ‘자신의 공로가 없는’ 의로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

 

<교훈> 마틴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근원이심을 발견했다. 인간의 노력이 아닌 예수의 은혜가 우리를 구속하기에 충분하다는 기별이 전해졌다. 

 

<부가설명> 우리는 구원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야 할 것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죄에서 구원하신다고 계시하였다. 그러면 죄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죄는 불법이라’(요일3:4)라고 정의했다. 그러면 법이 없으면 죄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성경은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5:13)라고 계시했다. 율법이 있기 전에 죄가 있었다. 다만 율법이 없어서 사람들이 그것이 죄인줄 몰랐을 뿐이지 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면 요일3:4을 어떻께 깨달아야 하는가? 이것은 아담으로 올라가면 답이 나온다. 고후5:21은 죄의 실상을 깨닫는데 도움을 준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았다. 이 구절은 우리가 죄이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신 예수님이 죄가 되신 것이라고 가르친다. “죄를 짊어지신 그분은 거룩한 공의의 진노를 견디시고 그대를 위하여 죄 그 자체가 되셨다”(DA 755).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신 것 이상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 그 자체가 되셨으니 우리는 죄 그 자체들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사람은 사망의 존재라고 분명히 계시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으로 옮긴다. 예수님은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한다. 그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임을 이 구절은 분명히 가르친다. 그래서 죄의 본질은 사망이다. 아담의 모든 후손은 아담 안에서 죽었다(고전15:22). 아담의 후손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다. 구주 예수님은 여자의 씨로 오셨다. 아담의 씨와 상관 없이 세상에 오신 마지막 아담이시다. 그분이 아담의 죽음을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사망을 정복하시고 생명의 승리를 드러내셨다. 이것은 오직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은혜와 사랑이다. 우리는 이것을 믿을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 이것이 구원이다.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선행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맺는 열매일 뿐이다. 

 

5월 2일(목) 순종: 믿음의 열매

 

로마서 3:27~31, 6:15~18, 8:1, 2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롬3:27~31]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6:15~18]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답: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는 자이며 순종의 자녀가 된다.

 

루터 시대에 교회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수만 명의 사람이 죄 많은 자신을 바라보는 대신에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낙담할 일들만 보았다. 오늘날 이 같은 경험을 하지 않은 신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변화시킨다. 존 웨슬리가 런던에서 열린 모라비아 교도의 모임에 참석한 어느 날 그는 루터의 로마서 서론을 읽는 것을 들으며 전율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복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내면에서 꿈틀거렸고 웨슬리는 자신을 위해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에게 기이하게 끌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구원으로 신뢰한다고 느꼈으며 그분이 나의 죄를 사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존 화이트헤드, John Whitehead, 존 웨슬리의 생애, 런던, 331).

 

베드로전서 2:2, 베드로후서 3:18, 골로새서 1:10, 에베소서 4:18~24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 어떤 중요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가?

[벧전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골1: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엡4:18~24]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답: 구원받은 사람들은 신령한 젖을 먹고 자라는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종교개혁자들은 더 많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말씀을 연구했다. 그들은 현상 유지상태를 답보하거나, 성장이 거의 없거나 멈춰 버린 경직된 종교 경험에 만족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를 더 잘 알고자 끊임없이 갈망했다. 중세 시대에 성경을 믿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헌신에 따르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들은 고문, 투옥과 추방 그리고 처형을 당했다. 재산을 몰수당하고, 집이 불탔으며, 경작지가 짓밟히고 가족들이 핍박을 받았다. 고향에서 쫓겨난 그들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히 11:10) 도성을 바랐다. 그들은 고문을 당할 때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을 축복했고, 어둡고 습한 지하 감옥에서 괴로울 때 더 밝은 내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사모했다. 몸은 비록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웠다. 그들은 말씀의 진리와 곧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소망 가운데 자유를 경험했다. 

 

<교훈> 성경을 믿었던 그리스도인들은 헌신에 따르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들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사모하며 소망 가운데 자유를 경험했다. 

 

<부가설명>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면 그는 생명이 있는 사람이 된다. 그전에는 그는 생명이 없었다. 죽은 사람이다. 그래서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나 구원받을 때 그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받아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하나님 나라에 출생한 살아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들은 말씀의 젖을 사모하고 갓난이가 엄마 젖을 찾듯이 말씀을 찾고 먹는다. 우리는 이런 경험으로 하루하루를 사는지 스스로 물어보라. 이런 말씀 사모하는 배고픔이 없으면 그는 생명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생명이 없다는 것은 죽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당연히 활동이 없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생명이 있으면 행함, 곧 활동하게 되어있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의 선행은 구원받은 생명의 활동으로 맺히는 열매일 뿐이다. 그 열매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생명의 작용으로 열리는 열매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갈5:22,23), 빛의 열매(엡5:9)라고 했다. 이 열매가 맺지 않으면 생명이 없거나 있어도 겨우 숨만 쉬는 상태다. 말씀의 사람이 되었으니 말씀을 먹어야 그 생명이 튼실해지고 성숙한다. 

 

5월 3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은 홀로 수고하지 않았다. ‘정사(政事)와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연합하여 그들을 대항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버려두지 않으셨다. 만일 그들의 눈이 열릴 수 있었더라면 그들은 옛날의 한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그분의 도우심의 분명한 증거를 보았을 것이다. 엘리사의 종이 그의 주인에게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적군들과 도망할 모든 기회가 끊어진 것을 지적했을 때 그 선지자는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왕하 6:17)라고 기도하였다. 그 때에 그 산은 불말과 불병거로 가득 차 있었고 하늘의 군사가 하나님의 사람을 둘러 진쳐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천사들은 개혁 사업에 종사하는 역군들을 지키셨다"(각 시대의 대쟁투, 208).

"원수들이 온 힘을 합하여 개혁파의 신앙을 뒤집어 엎으려 하고, 무수한 칼이 칼집에서 뽑히려 할 때에 루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탄은 분노하고 있다. 경건치 않은 사제들은 공모하고 있으며, 전쟁의 위협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믿음과 기도로써 담대히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라고 사람들을 권할 것이다. 그리하면 원수들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정복되어 잠잠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급한 것은 기도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지금 사탄의 칼날 아래 있다는 것과 사탄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기도하게 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209).

루터가 새롭게 발견한 위대한 진리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복음의 기초이며, 우리 구원의 소망의 터전이다. 루터의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이 복음을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 

"내 힘만 의지할 때에 패할 수 밖에 없으나, 힘 많은 대장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대장 누구뇨? 예수 그리스도, 곧 만유 주로다. 이 싸움 이길 자, 주 예수 밖에 없도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찬미가, 548).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은혜와 율법, 믿음과 선행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수 있는가?

*답: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 생명의 활동으로 열매맺는다.

2. 우리 마음이 율법주의에 빠지기 쉬운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율법주의를 어떻게 정의하겠는가? 기독교 신앙에서 율법주의가 그렇게 해로운 이유는 무엇인가?

*답: 율법주의는 자기 선행으로 구원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사상이다. 

3. "은혜로 받는 구원"의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때 어떤 위험이 있는가? 이러한 오해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가?

*답: 믿기만 하면 된다고 방종에 빠질 가능성에 사로잡힌다.

4. "값싼 은혜"라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은혜를 값싼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답: 생명의 활동 없이 구원받았다고 과신하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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