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세상의 길에서 벗어나라(질문, 대답, 부가설명)01/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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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01-20 06:56 조회7,821회 댓글0건본문
1월 27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50분
● 연구 범위 : 시 119:11, 엡 6:18, 롬 8:5~6, 히 11:1~6, 왕상 3:14, 겔 36:26~27
● 기억절 :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잠 11:4, 28).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사람들에게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와 능력으로 싸우지 않는 한 그는 계속 우리를 유혹하려고 할 것이다. 하나님만이 세상의 덫으로부터 우리에게 자유를 제공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공급자에게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켜야 한다. 다윗은 이생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이렇게 기록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10). 솔로몬은 지혜와 판단력이 금과 은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잠 3:13~14). 진정한 행복과 올바른 생활은 우리에게 있는 소유에서부터 눈을 돌려 우리를 소유하시며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봄에서 비롯된다.
세상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예수님과의 진지하고 성공적인 관계에 있다. 이번 주에 우리는 그러한 관계의 요소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세상의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세력과 삶의 진정한 이유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것이 영적인 성공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공부하려고 한다.
학습목표
1. 깨닫기 : 세속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방법을 발견한다.
2. 느끼기 :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생활을 통해서 세속주의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한다.
3. 행하기 : 새로운 삶의 초점을 강화시켜서 세속주의로 돌아가려는 본성을 약화시킨다.
➋ 우리의 관심과 애정을 세상에 묶어두려는 사탄의 전략은 어떻게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까?
※ 죄인 된 사람들의 욕망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➌ 골 3:2을 볼 때 사탄의 전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➍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던 솔로몬은 어떻게 물질주의의 허무함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요?
※ 욕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➎ 세상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 사이에는 어떤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까?(고전 3:19)
※ 세상 지혜는 인간을 높이는 정신이고 하늘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지혜이다.
➏ 그대는 물질주의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삶을 영적인 요소로 채우기로 결심하겠습니까?
※ 말씀과 기도와 봉사의 삶으로 덫에 걸리지 않는다.
결론 : 영적인 생활을 강화시키는 것만이 세속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성경 연구, 기도, 봉사, 교제, 천연계의 아름다움을 묵상하는 행위는 세계관을 재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며 우리를 영적인 온전함으로 인도합니다.
1월 21일(일) 그리스도와의 관계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에게도 세상의 소유물에 대한 애정은 영혼을 그리스도 대신 세상과 엮는 강력한 사슬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지상의 소유물이 많지 않을지라도 상품을 획득하려는 열망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지 않다면 그것은 한 영혼을 구원으로부터의 이탈로 이끌 끔찍한 저주가 될 수 있다. 사탄은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물질적인 소유에 대한 애착을 이용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유혹한다.
1.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유일한 방어책인가?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 어떻게 바울이 말하는 대로 할 수 있는가?(시 119:11, 엡 6:18 참고)
어떤 성경절들이 우리가 무엇에 생각을 집중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빌 4:8 참고)
[골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시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빌4: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답: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는 권고를 실천하기 위하여 말씀 연구와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빌립보서 4:8의 말씀을 실천하도록 한다.
어떤 형태이든지 세속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치유책은 삶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시 34:1).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히 11:26)다. 다른 관계 이전에 그리스도는 우리의 최우선순위가 되셔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취향이 아닌 확신에 근거한 충성심을 찾고 계신다. 즉 우리는 믿음의 즉각적인 혜택이나 예수님께 대한 헌신이 가져올 복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성품과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로 인하여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쏟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예수님 안에 감춰져야 하고 그분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충성은 뒤를 보지 않고 손에 쟁기를 쥐는 것이다(눅 9:62). 그런 종류의 충성을 바칠 때에 예수님은 우리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향상시키신다. 우리가 그분께 굴복한다면 그분은 우리의 영혼을 붙잡고 있는 세상의 결박을 깨뜨리실 것이다. 우리는 사물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삶의 공허함을 채울 것이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처하여 살지만 천국의 윤리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나 같은 사람은 미국이라는 환경에 살고 있지만 생활방식(Lifestyle)은 순 한국식이다. 오늘날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생활방식은 순 천국 식이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살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그의 가치관은 천국적이다. 곧 성경적이다. 사고방식이 그렇고 생활방식이 그렇다. 세상에서 천국의 확장을 위하여 재정을 사용하고 자신이 먹고 입고 사는 모든 것이 천국확장이라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즉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재정을 취급하는 데는 이 정신을 따라야 한다. 자기의 취미와 기호와 안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리스도인 재정운영의 본질이 아니라고 교과는 힘써 설명하고 성경도 그렇게 권고한다.
교훈 : 우리를 소유에 대한 애정으로 세상과 엮어 놓으려는 사탄의 공격은 예수님께 마음을 드리고 그분께 충성하는 신앙으로만 격퇴할 수 있다.
1월 22일(월) 말씀 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전 세계에 육십 억 부 이상의 성경이 보급되었지만 얼마나 많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되어서 진리를 알고자 하는 간절하고 열린 마음으로 읽힐까?
올바른 성경 연구는 영적인 나침반의 방향을 잡아주고 우리로 하여금 거짓과 혼돈의 세계를 헤쳐 나갈 수 있게 해 준다. 성경은 하나님에게서 기원한 살아 있는 문서이다(히 4:12). 그것은 우리가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진리를 주목하게 한다. 성경은 매일의 삶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주신 지침서로서 우리의 지성을 확장시키고 우리의 성품을 정제시키는 방식으로 우리를 훈육한다.
1. 요 5:39, 14:6, 20:31을 읽어 보라. 성경, 특히 복음서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가장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성경절들에 따르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 자신과 우리가 믿는 모든 진리에 대하여 그분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답: 길, 진리, 생명이시다. 성경이 이 진리를 증거한다.
성경이 진리의 궁극적인 원천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연구한다. 예수님은 진리이시며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며 그분에 대하여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분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구약과 신약으로 이뤄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위해 무엇을 이루셨는지에 대해 배운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을 사모하게 되고 우리의 삶과 영혼을 그분의 영원한 보호에 맡긴다.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는 죄와 세상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
2. 롬 8:5~6을 읽어 보라. 여기서 우리는 어떤 경고를 받고 있는가? 우리의 생각을 통해 일어나는 이러한 갈등 속에서 말씀 연구는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롬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답: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사망이다.
주의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대한 사랑, 특히 세상의 소유에 대한 사랑은 쉽게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한다.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영적인 실체에 주목하게 한다. 세속적인 사물에 대한 애정은 우리의 정신을 영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으로 향상시키지 못한다. 대신 그것은 성경의 원칙을 탐심, 이기심, 욕망으로 대체시킨다. 성경에 계시된 사랑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주며 관계를 맺는 것이 소중하다고 가르친다. 반면 세속주의는 예수님의 성품과는 정반대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재물을 얻으라고 가르친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사상이 그의 사상이 된 사람들이다. 성경이 없었으면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영원한 나라를 어떻게 알았으며 진정한 영생 곧 부활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 모든 것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 성령께서 이 성경을 오늘까지 거룩하게 지켜오셨고 사람들이 성경을 통하여 성령의 감동을 받고, 또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성경을 연구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 행복을 누린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사고방식이 전적으로 성경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영의 생각을 할 것이고 그것은 영생이다. 영생의 생명이 주관하는 사고방식, 생활방식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당연히 재정관리가 성경적이고 물질을 보는 시각이 성경적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 우리는 말씀 안에 존재하고 말씀 안에서 생활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고 그분의 생활전부는 말씀의 실현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기록된 말씀 성경이 육신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물질도 이런 입장에서 취급해야 한다.
교훈 : 우리는 매일 말씀에 머무는 생활을 통해서 예수님과 만나며 재물에 대한 사랑과 세속적인 탐욕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
1월 23일(화) 기도의 생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당연하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면 우리는 그분과의 관계를 통해 그 생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관계의 핵심은 소통이다. 우리는 어제 하나님이 거룩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와 소통하고 계심을 보았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 그분과 교제한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의 사물이 아닌 하늘의 사물에 생각과 마음을 고정시켜야 한다면 기도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본질적으로 세상보다 더 높은 차원을 주목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때로 우리의 기도가 단지 우리의 이기적인 본성의 표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태도로 기도할 필요가 있다.
몇 년 전 어떤 여인이 이런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오 하나님, 저에게 메르세데스 벤츠를 한 대 사주시지 않으실래요?”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믿음을 공언하는 자들의 물질주의를 이렇게 비꼬았다. 우리도 기도할 때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굴복과 세상에 대한 죽음의 행위인지 그리고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는 것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1. 히 11:1~6을 읽어 보라. 우리의 기도에 포함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믿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히11:1~6]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답: 기록된 말씀에 근거하여 간절하고 확실한 믿음으로 간구하는 것이다.
기도에 믿음이 없다면 그 자리에 추측과 사탄의 거짓 믿음이 있을 것이다.
“기도와 신앙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 속에는 거룩한 학문이 있다. 인생에서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학문을 이해하여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고 하셨다”(기도, 57).
<부가설명> 기도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과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를 간구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기록된 말씀에 약속으로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음으로 하는 기도 속에는 거룩한 학문이 있다.”고 했는데 여기 학문이라고 번역한 말은 science이다. 과학이라는 말이다. 증언의 말씀은 믿음으로 하는 기도는 과학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성경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과학은 실험으로 증명된 것이다. 기도는 그 실상이 증명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도구이다. 예수께서 기도로 생활하셨다. 그분의 존재가 말씀이었고 그분의 생활이 말씀의 형상화였으며 그분의 호흡이 기도의 실현이었다. 그리스도인은 그 존재가 기도적이어야 한다. 이 기도는 과학적 공식에 맞추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기도의 대상은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이시고 기도는 무시로 성령 안에서 해야 하면 기도는 반드시 예수 이름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께 성령 안에서 예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의 공식이다. 우리가 하는 기도를 성령께서 받으시고 하나님 뜻에 합당하도록 새로 작성해서 하나님께 올린다. 우리는 진정으로 말음을 다하여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 뜻에 합당하도록 우리의 최선이 되도록 응답하신다.
교훈 : 우리가 세속의 사물에서 눈을 돌려 하늘의 사물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기도로써 하나님과 교제해야 한다.
1월 24일(수) 지혜의 삶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세상의 그 무엇보다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솔로몬의 간구는 성경에서 가장 감동적인 일화 중 하나이다.
1. 하나님은 이후에 솔로몬이 주의했더라면 그의 소유가 가져올 파멸을 모면할 수 있었을 그런 중요한 말씀을 그에게 주셨다. 그것은 어떤 말씀인가? 그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도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왕상 3:14; 요일 5:3, 벧전 4:17 참고)
[왕상3:14]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요일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벧전4: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답: 다윗의 행함같이 내 길로 행하고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네 날이 길게 할 것이다. 우리도 같은 상태로 하나님의 길과 법도와 명령을 지키는 삶이 영생을 누리는 길이다.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왕상 3:14).
솔로몬에게 훌륭한 지혜가 있었다지만 적용되고 실천되지 않는다면 지혜 자체는 그냥 좋은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실천되지 않는 지혜는 진정한 지혜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명령에 관하여 여러 옳은 정보를 가지고서도 멸망을 당할 것이다. 순종의 결여는 솔로몬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행로에서 벗어나게 했다. 말년에 정신을 차린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이렇게 썼다.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잠 8:11).
지혜는 지식과 이해의 적용이다. 지식은 사실을 나타내고 이해력은 분별력을 나타내지만 지혜는 이해와 지식을 삶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이르러 온다. 지혜로운 청지기는 단지 지식과 이해력만이 아닌 그러한 지식과 이해력을 실천할 때 오는 경험까지 필요로 한다.
솔로몬의 사례는 자신에게 주어진 지식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현명하고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도 물질주의적인 생활방식의 허무함에 사로잡히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보여준다.
<부가설명> 솔로몬은 역사적으로 지혜가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으나 그런 지혜를 가지고도 하나님의 길과 법도와 명령을 지키는 삶을 끝까지 유지하지 않았다. 루시퍼처럼 그도 지혜가 뛰어나서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했다. 솔로몬이 루시퍼의 유혹을 받았는지 우상숭배에 빠졌다. 그것은 또 이방 여자들을 빈궁으로 맞아들이는 것과 맞물려 있었다. 솔로몬은 왕의 권세와 그 탁월한 지혜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그러나 결과는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결론으로 주님께 돌아왔다. 그러나 솔로몬이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난 삶은 후대의 모든 유대 왕들에게 우상숭배의 길을 열었다. 우리가 진리에 철저하게 서 있지 않으면 우상에 빠지게 된다. 욕망의 우상, 기분의 우상, 감정의 우상, 쾌락의 우상에 빠진다. 솔로몬이 그랬다. 물질은 이런 우상을 섬기도록 하는 앞잡이 노릇을 아주 강하게 한다. 우리는 말씀을 연구하고 잘 깨달아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지혜로 신앙생활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물질주의의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단순한 지식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순종과 실천과 경험을 포함한다.
1월 25일(목) 성령
대쟁투는 실제 상황이다. 양쪽에서 영혼들을 사이에 두고 전투를 벌이고 있다. 한쪽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끌고(요 6:44), 한쪽은 세상으로 이끈다(요일 2:16). 우리가 성령께 순종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 계시는 그분의 능력은 우리를 옳은 방향으로 이끄실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3; 요 14:16 참고).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기분이나 감정이 아닌 원칙과 믿음에 따라 살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다. 하늘의 삶을 성공적으로 준비하는 사람은 성령의 지도를 따라 이 땅에서부터 신실하게 살아간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5). 종종 물질적인 소유로부터 이르러 오는 세상의 유혹은 우리를 하나님에게서부터 멀어지게 한다. 반대로 우리가 저항하지만 않는다면 성령의 능력은 우리를 예수님께로 잡아당기실 것이다.
우리는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만 세속적인 유혹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것이다.
1. 겔 36:26~27, 요 14:26, 엡 3:16~17을 읽어 보라. 우리가 성령으로 하여금 우리를 소유하시도록 맡긴다면 하나님은 영적인 승리를 담보하는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겔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엡3:16,17]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답: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법을 능히 수행하게 하신다.
“거짓 교리와 전통을 통하여 사탄은 마음을 지배하는 힘을 얻는다. 그는 사람들을 거짓 표준으로 인도함으로 품성을 일그러지게 한다. 성령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마음에 말씀하시며 진리를 심령에 깊이 새기신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잘못을 드러내고 심령에서 그것을 내쫓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다”(시대의 소망, 671).
성령은 진리의 보고자이시며 예수님이 자신의 승천 이후에 지상에서 신성을 나타내시기 위해 보내신 궁극의 선물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세상의 강력한 유혹과 그 ‘매혹’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주려고 애쓰신다.
<부가설명>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인류를 위하여 함께 구원 사업을 완성하는 봉사를 하신다. 사람이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역할이다. 성령께서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기로 한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신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성령을 보내셨지만 또한 성령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셨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신 것처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거듭나게 하셔서 생명의 성령께서 우리를 날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신다. 그럴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지 않는다. 그는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새 마음을 주셔서 생각이 영적 생각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교훈 : 우리가 말씀과 기도로 그리스도와 교제할 때에 우리가 세상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의지하며 순종해야 할 분은 우리 마음에 임하시는 성령이시다.
1월 26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청지기 직분은 의무와 사랑이라는 쌍둥이 원리로 작동한다. “의무는 사랑이라는 쌍둥이 자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들의 연합은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으나, 분열되면 어느 쪽에도 유익이 될 수 없다”(교회증언 4권, 62). 의무란 행동으로 나타난 사랑이다. 사랑이 우리의 의무를 일깨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희생을 묵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원리는 정반대로 증오와 배반이 쌍둥이 형제이다. 배반은 행동으로 나타난 증오이다. 루스벨은 하나님을 배반했다(겔 28:16~17). 그리고 파멸에 이르기까지 반역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사랑의 권위를 권위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었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에게 있었던 권위와 능력을 증오했다(마 22:29). 그들은 예수님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해 성전에서 도망치듯이 물러났을 때에도 그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사랑과 의무라는 개념에 대해 더 묵상해 보십시오. 엘렌 G. 화잇이 그 둘을 쌍둥이라고 부르면서 하나가 없이는 다른 하나는 유익이 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의무가 없는 사랑은 어떠하며, 사랑이 없는 의무는 또 어떨까요? 왜 둘은 함께 있어야 합니까?
※ 의무는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일을 뜻한다. 사랑 없이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고된 작업이고 사랑으로 수행하면 즐거움이 된다.
➋ 이번 주 기억절은 어떤 의미입니까?(잠 11:4, 28) 그것이 재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무엇이며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재물의 무익함을 말했고 재물의 바른 사용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았다.
➌ 솔로몬의 삶에 대해 토의해 봅시다. 그는 얼마나 정로에서 벗어날 뻔했습니까? 전도서에 따르면 아무리 많은 소유가 있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은 다 헛됩니다. 그렇다면 기도, 성경 연구,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우리가 영적으로 바른 길 위에 머무는 데 어떤 도움이 됩니까?
※ 그것은 예수께서 그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생활자체이다.
➍ 어떻게 물질적인 소유가 많지 않은 사람들도 사탄이 놓은 덫에 걸릴 수 있을까요?
※ 세상에 대하여 가난하지 않으면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다 세속적이 된다.
➎ 고전 3:19과 잠 24:13~14에서 말하는 지혜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고전3: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잠24:13,14]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 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14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고전3:19은 하나님이 없는 세상의 지혜이고, 잠언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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