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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물질주의의 영향(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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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7-12-30 06:02 조회8,5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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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28분

 

● 연구 범위 : 요일 2:16~17, 눅 14:26~33, 12:15~21, 신 8:10~14, 딤전 6:10, 요 15:5, 갈 2:20

 

● 기억절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신다(롬 12:2). 그러나 물질주의의 유혹, 부와 부가 주는 혜택에 대한 갈망은 지나치게 강렬하다.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물질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난 사람은 극히 드물다.

부자가 되는 것 또는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부양하기 위해서 미리 열심히 일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돈과 그것을 추구함에 함몰될 때, 우리는 마귀의 덫에 빠지고 이 세상에 동화된다.

세상은 돈이 있어야 삶이 행복하고 풍요롭다는 사상을 주입시킨다. 그러나 돈은 사탄이 우리의 충성심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 뒤에 숨겨둔 가면과 같다. 물질주의는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기 위한 사탄의 전략적인 무기 중 하나이다. 누군들 돈과 그것이 현실의 삶에 가져다 줄 수 있는 것들을 마다하겠는가? 당장의 희열을 얻는 데 돈만 한 것도 없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인간의 가장 깊은 필요들에 대해서는 응답하지 못한다.

 

학습목표

1. 깨닫기 : 물질세계와 소유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물질세계의 위험성을 분별한다.

2. 느끼기 : 우리가 누리는 선물들보다 그것을 주신 분을 경배할 수 있도록 영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3. 행하기 : 우리의 소유가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기로 결심한다.

 

➋ 눅 12:15~21에 등장하는 비유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탐심을 버리고 하나님 지상주의로 나아가라.

➌ 그대는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세상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사람을 마침내 물질의 종으로 만든다. 

➍ 그리스도인이 물질에 관심이 많아질 때 영적인 일에 소홀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물질에서 현실적인 안락과 쾌락을 추구하게 하기 때문이다. 

➎ 그대는 물질주의의 세계관과 사탄의 정신 사이에 어떤 관련성이 있다고 봅니까?

※ 사단은 이 세상 영광을 보이며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다고 하였다.(눅4:6)

➏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소유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으려면 어떤 일에 힘써야 할까요?

※ 기도와 말씀과 구제로 주님의 사업에 헌신하는 것이 첩경이다. 

 

결론 :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이 계발되고 우리가 기쁨을 누리도록 물질적인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이 창조한 이들을 돕는 데 물질을 사용할 때 우리는 그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물질주의에 빠지면 우리는 그러한 복을 잃게 될 것입니다.

 

 

12월31일(일) 세상의 신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돈이 이 세상의 신이 되었고 물질주의는 그 종교가 되었다. 물질주의는 일시적인 안정은 제공하지만 궁극적인 안전은 보장하지 않는 교묘하고 음흉한 지배 체계이다.

물질주의를 정의하자면 그것은 부와 소유에 대한 욕망이 영적인 실체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게 평가되는 것이다. 소유에는 가치가 따르지만 그것들의 가치가 우리를 소유해서는 안 된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전 5:10)한다. 그것이 이 세상의 사물을 사랑하는 것의 문제이다. 아무리 많이 소유할지라도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절대 만족을 주지 못할 것들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스스로를 더 강하게 압박한다. 제대로 걸려들었다.

 

1. 요일 2:16~17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요일2:16,17]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답: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2. 눅 14:26~33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이 최고로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가?

[눅14:26~33]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답: 예수님을 따르는 것,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돈에 대한 갈망에 온통 마음이 뺏긴 자들은 진실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6).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때는 인간성이 밑바닥에까지 다다르려는 순간이었다. 사회의 기반이 위태롭게 되었고, 생활은 허위와 허식에 빠져 있었다.… 전 세계에 걸쳐, 모든 종교 제도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이끄는 힘을 상실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설과 거짓말에 싫증이 난 나머지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 불신과 유물론으로 돌아섰다. 그들은 영생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현세만을 위하여 살고 있었다”(교육, 74~75). 불신과 물질주의와 현세만을 위한 삶에 빠진 사람들이라…어딘가 낯설지가 않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물질계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셨다. 이것은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먼저 준비하신 후에 그것을 사용할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질을 사용할 권리를 받은 것이다. 사람은 땅의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범죄하고 타락하자 사망하게 되었고 수명이 있는 동안 물질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욕심을 위하여 소유하기 시작하였다. 많이 소유한 사람이 권세를 부리게 되고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는 풍조가 생기고 죄가 들여온 썩어져가는 구습이(엡4:22) 판을 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사람은 점점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는 세상이 되었고 황금만능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는 사상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물질이 하나님께 속한 것을 가르쳤고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세상에 선포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토지를 관리하게 하시고 농사짓게 하셨으나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셨다. 다만 관리만 하게 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경제생활 원칙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이다. 세상에 아무것도 자기 소유가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다만 관리하는 기능이 있을 뿐이다. 재물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관리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관리하는 것이다. 물질은 소유가 아니라 도구라는 것을 그리스도인은 깨달아야 한다. 

 

교훈 : 부와 소유에 대한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영적인 것과 영원한 세계보다 물질적인 것과 현세에 마음을 뺏길 때에 우리는 사탄의 덫에 빠진다.

 

 

1월1일(월) 곳간을 채움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21).

 

1. 눅 12:15~21을 읽어 보라. 여기서 우리에게 전하는 기별은 무엇인가? 꼭 부자가 아니더라도 여기에서 제시된 원칙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눅12:15~21]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답: 탐심을 물리치고 소유가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세상의 물질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해야 하는 도구라고 가르친다.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사물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은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게 하는 대신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멀어지게 하고 단지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며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게 해서 결국 영생을 잃게 한다.

오늘날 우리가 진짜 금이나 은으로 만든 우상에 절하거나 경배할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형태의 금과 은을 숭배할 위험에 처해 있다.

이 비유는 철저히 소유를 얻으려는 데 몰두하고 있는 이 세상의 풍조와 여러 면에서 잘 들어맞는다. 판매업은 물건을 파는 행상에서 이제는 전 세계를 상대하는 일종의 예술 형식으로 변모하였다. 그들의 판매 전략은 우리가 그들의 상품을 사지 않는 한 행복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방식으로 수립된다. 어떤 성공적인 기업은 하나의 상품을 출시한 다음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그것이 필요한 것처럼 느끼게 했다. 그런데 그 전략은 적중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조차 이러한 기만술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2. 신 8:10~14을 읽어 보라. 신자라 할지라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 말씀이 경고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는가?

[신8:10~14]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1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13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답: 식물이 풍족하고 평안이 오면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릴 위험에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경고하셨다.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3~14).

 

<부가설명> 다니엘서 2장의 우상은 머리가 순금이었다. 이 이상(異象)은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바벨론을 시작으로 진행되는 역사적 사건인데 많은 것을 상징으로 보여주는 계시이다. 바벨론 사상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머리가 순금이다. 이것은 이간 역사를 주장하는 정신이 황금만능주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죄는 황금만능주의와 결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수명이 있는 동안 물질이 필요하다. 그런데 많이 소유할수록 생활이 편리하고 많은 것을 누리는 현실이 그들의 정신이 물질적이고 세속적이 되도록 이끌어 간다. 결과적으로 배를 하나님으로 섬기게 된다.(빌3:19) 그래서 먹고 마시는 것이 천국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롬14:17) 이런 사람은 예수님과는 멀리 있다. 이런 정신으로 교회에 다닐지라도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며 자기에게 있는 물질이 자기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은 물질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정신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 머리는 황금인가? 예수님인가?

 

교훈 : 세상은 물질이나 어떤 상품을 소유해야 행복해지는 것처럼 끝없이 우리를 기만하면서 우리가 재물을 쌓는 동안 하나님을 잊고 영생을 잃도록 유혹한다.

 

 

1월 2일(화) 물질주의의 유혹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 6:22~23).

 

광고계의 힘은 막강하다. 기업들은 그들의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그들은 상품 홍보를 위해서 항상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델들을 사용한다. 우리는 그러한 광고를 보면서 단지 그 상품을 가진 우리가 아닌 광고 속 인물처럼 보이는 우리를 상상한다.

물질주의 뒤에는 감성이 자리하고 있다. 광고 속에 얽혀 있는 교묘한(때로는 그다지 교묘하지 않은) 감성은 가장 효과적인 광고의 기법이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물질주의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광고의 감성은 물질주의의 위협과 씨름하고 있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독과 같다.

 

1. 마 6:22~24을 읽어 보라. 기독교적인 사고와 행위에 비추어 본다면 눈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우리에게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소비하도록 유혹하는 교묘한 이미지들에 대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마6:22~24]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답: 눈은 분별력과 선택력을 상징한다. 거기에는 장님이 되어야 한다.

 

소비 상품에 감성을 덧붙이는 광고는 하나의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판매업자들은 소비자들의 생각 속에 흥분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상품을 판매한다. 그러한 경험은 순전히 공상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로 먹혀든다. 아무리 순간적이라 할지라도 광고는 거의 신비에 가까우리만큼 사람들을 존재의 다른 영역처럼 보이는 곳으로 끌고 간다. 그것은 지식도 영적인 진리도 없는 거짓 종교처럼 되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꽤 설득력이 있고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그것이 내게 필요하고 내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면 사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광고가 우리에게 구매하도록 설득한 물건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썼고 또 앞으로 쓸 것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부가설명> 현란한 광고는 인간의 분별력을 마비시킨다. 광고에 현혹되면 분별력이 없어지고 유혹되어 광고한 그 물건을 사려는 경향으로 마음이 달려간다. 우리는 마음의 눈을 하늘로 향하고 세상의 물질적 감각적 감성적 유혹에서 돌아서야 할 것이다.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사42:19,20) 하나님의 종은 세상적인 것을 많이 볼지라도 본채 하지 않으며 많이 들을지라도 들리지 않은 것 같이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마음을 눈을 떠서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8,19) 우리 눈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할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을 믿는 백성일지라도 물질주의 뒤에 자리 잡고 있는 감성에 매혹되기 쉽기 때문에 우리에게 뚜렷한 분별력과 영적인 시야가 필요하다.

 

 

1월 3일(수) 자기 사랑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하나님은 루스벨에게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겔 28:17)라고 말씀하셨다. 루스벨은 자신을 속이고 실제보다 자신을 더 위대하게 생각했다. 그는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사 14:14)고 마음먹고 자신에게 없는 권리를 주장하며 야심을 드러냈다. 자기기만과 자기야망은 타락한 루스벨의 마음에 자리 잡은 두 가지 특성이었다.

루스벨의 타락을 다루는 이 두 성경 본문은 여러 방면으로 최초의 죄가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죄라는 사실을 말한다. 사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나르시시즘’이란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 곧 자기 사랑과 허영심이다. 타락한 인간의 특성 중에 이보다 더 중대한 자기기만의 지표가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생각보다 이러한 특성은 훨씬 보편적이다. 느부갓네살은 교만하게도 자신을 스스로 위대하게 여겼다(단 4:30). 바리새인들도 이러한 매력적인 망상을 믿게 되었다(눅 18:11~12 참고). 우리도 조심하지 않으면 재물에 대하여 이와 동일한 기만으로 이끌린다.

 

1. 딤전 6:10을 읽어 보라. 여기서 바울은 어떤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가?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답: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경고하였다.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자들을 포함하여 여러 나쁜 부류의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디모데에게 당부한다.(딤후 3:1~5). 돈에 대한 사랑은 과신과 자기도취나 자부심 같은 허세를 조장한다. 왜냐하면 물질주의는 돈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중요하다는 과장된 느낌에 젖게 하기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보통의 사람들보다 자신을 높게 평가하기 쉽다. 그래서 너도나도 부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극소수만이 뜻을 이룬다. 아무튼 부자들은 자기도취와 자만과 자부심에 빠지기 쉽다.

 

<부가설명>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물질이 필요하다. 물질이 나쁜 것이 아니다. 이미 말했지만 물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창조해 주신 것이다. 사람도 흙으로 만들었으니 극단적으로 말하면 물질이다. 그러나 처음 창조하셨을 때 물질은 거룩한 것이었고 창조주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창1:31) 사람도 심히 좋았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주셨을 때 사람은 영이 되었고 물질로 만들었으니 차원이 다른 상태에 이르게 한 것이다.(창2:7, 고전15:45)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을 때 사람은 죄가 되었고 땅은 저주를 받았다. 땅이 저주를 받으므로 땅에 있는 모든 물질에 저주 아래 있게 되었고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는 이 저주 아래 있는 물질로 죄가 된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옥죄는 사슬로 삼아 사람을 홀리고 있다. 예수께서는 사람에게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하셨다.(마6:32) 그래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권고하신다.(딤전6:8)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고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면서 하루 양만 거두라고 하셨다.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유익이 되고(딤전6:6) 영원한 생명이 풍성하도록 이끌며 주님 오실 때 온 땅을 기업으로 받을 약속을 감사하면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살아갈 것이다. 

 

교훈 : 사탄처럼 자신을 높이고 사랑하는 정신에 오염된 물질주의 세계에서 우리는 돈이 많으면 중요한 사람이라는 망상을 경계해야 한다.

 

 

1월 4일(목) 물질주의의 허망함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들의 정체성은 물질적인 소유가 제공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분의 정체성과 얽혀 있다.

 

1. 신 7:6, 벧전 2:9, 요 15:5, 갈 2:20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가?

[신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답: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 붙어 있어서 떨어져나가지 않는 상태로 있는 것이다. 나를 살아주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신다. 그러한 결합은 직접적이며 단단하다. “모든 참된 순종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것은 마음이다. 만일 우리가 동의하면 그분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시고 우리의 사상과 목적을 당신의 뜻과 일치하도록 융합하실 것이다”(시대의 소망, 668).

반면 물질주의는 우리의 소유 자체와 비슷한 정체성을 우리에게 부여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것과 이 세상의 상품들로부터 우리가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우리 자신을 정의한다. 야고보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경고한다.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약 5:3). 축적이란 많은 재물을 모으고 쌓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소유가 적든지 많든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그러한 재물에서 찾는다는 데에 있다(눅 12:19~21).

물질주의는 일종의 정체성의 혼돈이다. 우리 대다수의 정체성은 우리의 소유에 용해되어 있다. 우리의 소유가 우리의 신이 되었다(마 6:19~21). 누구의 말대로 우리는 가진 것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단지 이 땅의 소유물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니 매우 안타깝다. 얼마나 얄팍하고, 순간적이며, 허무한 삶의 방식인가? 특히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소유 중 어느 쪽에 동질감을 느끼는가? 최종적으로 이쪽 아니면 저쪽이 될 것이다.

 

<부가설명> 성경은 묻는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고전4:7) 아무것도 받지 않은 것이 없다. 몸과 생명도 다 받은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식과 사상도 다 받아들인 것이지 자기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산속 짐승들 무리 중에서 자란다면 짐승의 것과 산속의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짐승처럼 산속에서 살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이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마치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한다.(고전4:7) 물질도 다 받은 것이다. 천연계도 창조주로부터 받은 것이다. 물질을 소유해도 그것이 원 주인이 창조주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이 이런 것을 잊어버리고 마치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인 줄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십일조 제도를 가르치시고 헌금제도를 가르치신 것이다.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이 창조주의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표이다. 우리가 가진 것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베드로처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정체이다. 

 

교훈 : 물질주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그들의 소유와 동일시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1월 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원수는 오늘날 매우 헐값으로 영혼들을 사고 있다. 성경은 ‘너희가 값없이 팔렸’(사 52:3)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칭찬을 얻기 위하여, 어떤 사람은 돈을 위하여, 어떤 사람은 저속한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또 어떤 사람은 세속적 오락을 위하여 자기의 영혼을 팔고 있다. 그런 매매는 매일 이루어진다. 사탄은 그리스도의 피로 산 바된 자들을 사기 위하여 입찰하고 있으며, 사람들을 위하여 지불한 무한한 값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헐값에 사고 있다”(교회증언 5권, 133).

물질주의로부터 영혼을 사는 것이 사탄의 목표이고 그러한 피상적인 함정들이 모든 마음에 흥미를 일으킨다. 물질주의는 입이 없지만 말할 줄 안다. 그것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쾌락과 만족을 제공하고 그들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게 한다. “나는 여기서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다. 달리 걱정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즉 물질주의는 생각을 부패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자신이 소유한 것을 신뢰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 대한 해결책이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물질주의가 우리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결심할 때에 물질주의는 성령의 지배를 이길 수 없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비록 우리가 가난하고 재물이 많지 않을지라도 어떻게 이번 주에 살펴본 그러한 위험에 휩싸일 수 있을까요?

※ 세상에 대하여 가난한 자가 되지 않으면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세속적이 된다. 

 

➋ 어떤 이들은 “나는 돈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돈은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보통 돈이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왜 그런 이들의 말이 진실이 아닐까요? 재정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돈 또는 돈에 대한 필요를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관점에서 관리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이미 돈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은근히 과시하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드러내는 태도이다. 우리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해야 할 것이다. 다윗이 그런 정신으로 살았다.(대상29장 참고) 

 

➌ 마 6:19~21을 주의 깊게 읽어 보십시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물질주의의 위협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권고하셨다. 우리 눈을 주님께 고정하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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