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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제2기 10과 예수님과 예루살렘(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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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16-05-30 10:28 조회4,1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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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명심할 주요 사항>

 

질문, 핵심, 적용

 

<핵심>

 

주님은 자기 백성에게 버림받았으나 그를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반석이 되신다.  

*핵심어 : 버린 돌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기회를 놓쳐버리고 후회한 적이 있는가?

⇒가장 중요한 기회는 구원의 기회이다. 구원의 기회는 여러번 다가온다. 그러나 계속 거절하는 자는 어떻게 될까? 

 

일~월. 예언된 바로 그분

 

주님은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야, 구약에 예언된 바로 그분이셨다. 

 

1. 우리 교회(성전)를 다시 짓는다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는가?

1-1.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행차를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2.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따른 분위기는 어떠했는가? 

 

2.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모습을 보셨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2-1. 주님은 더럽혀진 성전을 어떻게 회복시키고자 하셨는가?

 

화~목. 

버림받으신 메시야

 

「그대에게 살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면 그 동안 무엇을 하겠는가? 예수님은 남은 시간동안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무화과나무를 저주한 행동 역시 인상깊은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화~목요일 내용은 멸망이 임박한 이스라엘에게 눈물로 경고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경고들이 오히려 종교지도자들의 반발을 일으켜 그의 죽음을 재촉하게 되었다.

 

3. 예수님이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3-1. 성령의 열매맺는 삶을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4. 마 21:33~46의 이야기를 통해서 주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4-1. 자아가 깨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5. 유명인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면?

5-1. 하늘 혼인잔치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적용, 결심>

 

☆이번 과를 통해서 배운 교훈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겠는가?

 

<답을 위한 도움>

 

1. 솔로몬 시대의 성전은 화려함과 장엄함의 극치였다. 그런데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본 스룹바벨 성전은 너무나 초라했다. 그 모습에 그들은 대성통곡했다. 그러나 성전의 가치는 그 외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학개와 스가랴는 영감을 통해 그 성전에 만국의 보배, 왕=곧 메시야가 임할 것을 예언하였다. 

 

과연 예언대로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그곳에 임하셨다. 그는 또한 다른 곳의 예언대로 나귀새끼를 타고 성전을 향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이보다 더 큰 영광과 특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예루살렘 백성들은 더 중요한 마음 성전에 메시야를 모실 자리가 없었기에 그분을 거절하고 말았다.

 

1-1. 백마가 아닌 나귀를 타신 것은 겸손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가 있었다. 「이런 대규모 행렬은 그분의 죽음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되도록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어서 그들로 하여금 십자가를 주목함으로 메시아의 진정한 사명과 목적을 깨닫게 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시대의 소망 571 예수께서는 당신의 지상 생애에서 이전에 결코 이런 시위 행렬을 허락하신 적이 없었다. 그분은 그 결과를 훤히 내다보셨다. 이것은 그분을 십자가로 몰고 갈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자신을 구속주로서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었다...

 

승리의 입성과 관계된 사건들은 각 사람의 화제가 될 것이며 모든 사람의 마음에 예수님을 소개할 것이었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사건들을 그분의 고난과 죽으심에 관련시켜 회상하게 될 것이었다. 그들은 예언을 연구하고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확신하게 될 것이었다.

 

*눅 9:51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본교주석) 갈릴리를 떠난 이 마지막 여행을 통해 예수는 의도적으로 십자가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마 20장에서 주님은 인자가 죽임당할 것, 어떤 잔을 마실 것, 자기 백성의 대속물로 바칠 것 등에 대해 미리 다 예고하셨다. 

 

1-2.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는 자들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반면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큰 위협을 느꼈고 동시에 신속히 그분을 없애기 위해 모의했다. 주님은 그런 상황을 아셨지만 죽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셨다. 그것이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다. 

 

2. 성전에서 드려지는 희생제물의 피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피를 상징했고 그것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였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그런 의미를 망각하고 메시야의 피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이용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이곳을 방문한 가난한 예배자들은 큰 실망을 안고 돌아가야 했다. 이런 모습을 맞딱뜨렸을 때 주님은 얼마나 슬프고 분노했겠는가?

 

2-1.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심으로(요 2:15)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맹인과 장애인들을 치유하사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심으로 성전의 본래 목적을 회복하셨다. 예수님의 이런 행위가 제사장들의 분노를 더욱 촉발시켰다. 

 

3. *시대의 소망 581 잎이 나기 전에 익은 열매가 나오는 것이 무화과나무의 특성이다. 그러므로 잎이 무성한 이 나무는 잘 익은 열매가 있음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외모는 기만적이었다. 제일 낮은 가지로부터 제일 높은 가지까지 다 찾아보셨으나 예수께서는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하셨다. 582 그것은 가식적인 무성한 잎사귀에 지나지 않았다... 

 

583 구주의 저주 아래 말라죽어 시들고 이지러진, 뿌리까지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는 하나님의 은혜가 저희에게서 옮겨질 때에 유대 백성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축복을 나누어 주기를 거절함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주님은 용서하고 구원하실 수 있다. 그러나 기회를 끝까지 저버린 사람은 주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끝까지 거절함으로 스스로 심판을 자초한 것이다. 

 

4. 여러 교훈이 있지만, 교과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이다. 아들은 예수님을 비유했다. 하나님은 완고한 농부인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부지런히 그의 종들-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들을 돌로 쳐 죽였다. 하나님은 최후에 그 아들-예수님을 보내서 그들을 회개케 하고자 하셨으나 그 아들마저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말았다. 

 

여기서도 기회를 끝까지 저버린 당신의 백성들의 운명을 보여준다. 그들은 결국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버려졌던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던 것처럼 그들에게 버림받은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겐 구원의 반석이 되신다. 이 구원의 반석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질 것이다. 즉, 주님의 은혜에 자신을 맡기는 자는 자아가 깨어져 죽는 경험을 통해 변화되어 구원에 이른다. 그러나 반석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는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즉, 주님의 은혜를 거절한 자는 멸망을 당한다. 

 

5. 하나님은 혼인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청하는 왕이시다. 먼저는 잔치를 배설하기 전에 이스라엘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그들은 잔치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잔치를 열고 부르러 가자 모두가 다른 일을 핑계로 거절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들을 부르러 간 종들을 잡아 죽였다. 이에 왕은 그 살인자들을 진멸한다. 이는 선지자들을 거절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왕은 다시 종들을 보내 길거리에서 아무라도 데려다가 잔치자리를 채우도록 한다. 이들은 이방인들을 의미한다. 그들로 잔치자리가 차게 되었다. 그런데 그 중에 임금이 선사한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밖으로 내쫓김을 당했다.

그 예복은 주님의 희생의 피로 만드신 의의 옷이다.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주님의 희생을 가볍게 여기고 모독한 것을 의미한다.

 

「이 비유가 비록 과격하게 보일지라도 각 사람이 영생할 것인지 영멸을 당할 것인지에 대하여 경각에 달린 사안들을 다루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또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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