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9과 마음의 우상들 (5월 27일 교과묵상/일~금 매일업데이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6-05-22 08:59 조회2,839회 댓글0건첨부파일
- 9과통합-20160527.hwp (31.5K) 152회 다운로드 DATE : 2016-05-27 02:30:44
본문
음성 다운로드: http://file.ssenhosting.com/data1/ask2life/20160527.mp3
※ 지난 방송은 http://www.podbbang.com/ch/10813 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 앱(팟빵 등)에서 '만나그릇'을 검색하여 구독하시면 더 편하게 들으실 수 있습니다.
※ 방송 내용은 매 과별로 당일 방송분 까지 포함하여 첨부 파일 형태로 제공합니다.
5월 27일(금) 9과 전체 요약
이번 주 동안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이라는 환경에 젖어서 때로는 오해하고, 놓치기도 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법칙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가장 곁에서 모시고 있는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갈 것에 대해서 확신하면서 당연히 주어질 천국에서 그들의 자리가 어떠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한 어린아이를 세워놓고 그들에게 하셨던 주님의 말씀은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항상 어른들을 본받으며 자라야 하는 존재로 취급했던 어린 아이를 주님께서 본보기로 세우신 사실과, 그들을 향해 아이와 같은 겸손함을 가지지 못한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조차 없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조건으로 말씀하신 이 겸손은 우리의 태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생각과 계획, 그리고 판단을 내려놓고, 그것들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고, 주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에게 천국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겸손의 진정한 의미와 그 위대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함에 있어 7번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 베드로의 예상을 깨뜨리시고, 무한히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큰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작은 빚을 진 형제를 가혹하게 대함으로 다시 옥에 갇힌 비유를 예로 들어 하나님께서 우리의 큰 죄를 용서하셨으므로, 우리도 이웃의 작은 죄를 용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개인과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우리의 형제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데, 먼저 개인이, 다음엔 한 두사람이, 그 다음엔 교회가 나서서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용서함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며, 우리 주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는, 이러한 용서와 회복의 과정에 성령께서 함께 하실 것을 보증하시는 귀한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되기를 청하며 주님께 찾아왔던 부자 관원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결점 하나로 인해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우상, 재물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우상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가 당신을 진정으로 따를 수 없음을 알고 그에게 이 우상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며, 영원한 하늘의 보화로 이 땅의 유한한 재물을 대신하라고 호소하셨지만, 세상의 영예와 제자의 길을 놓고 저울질하던 그는 결국 주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선택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제자들과 삭개오의 이야기와 대비되어 제자됨과 세상 사이에서 한 그들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정적인 차이를 증거하고 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제자들에게 영원한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늘 보좌에 주님과 함께 앉아 누리는 왕노릇의 특권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제자들에게도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 척박한 세상에서 바라보며 살 수 있는 소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하여 이러한 상급이 우리의 노력과 공로의 대가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에 따라 주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어떠한 것도 영생과 바꿀만한 가치를 지닌 것은 없기 때문에 그것들을 포기함이 결코 내 영생을 가져다 줄 수는 없습니다. 천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을 것이라는 상급에 대한 약속은 제자들에게 세속적인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특별히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까지 동원하여 그들이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자리가 욕심이나 권력으로 얻는 것이 아닌 고난과 희생으로 얻는 길임을 가르쳐 주시면서,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영광 받으신 것처럼, 예수님을 따라 고난 받는 것이 제자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순교자의 길을 걸었던 베드로부터 현대의 많은 신앙인들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역사가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 “내 잔을 마실 수 있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 사람들로 채워져 왔음은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신앙해야 할 것인지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타락한 세상의 영향으로 천국에 대해서도 잘못된 오해에 물들게 되었지만, 주님께서는 천국이 어린아이처럼 겸손한 자, 자신이 받은 용서에 감사하여 형제를 용서하는 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라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자에게 값없이 은혜로 주어지는 영광의 상급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영원한 천국에 대한 가르침이 우리의 삶에 아름다운 열매로 맺혀지기를 소망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