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제2기 7과 유대인과 이방인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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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16-05-09 21:58 조회4,373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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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명심할 중요 사항 : 핵심, 질문, 적용
※핵심 : 주님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로 세상에 오셨다.
*핵심어 : 모든 백성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가슴이 참 넓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사람은 아무리 넓은 가슴을 가졌을지라도 모든 사람을 품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슴은 모든 사람을 품고 계신다.
일~화. 유대인들 가운데서
당신은 배고픔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는가?
1-1. 예수님에 대한 백성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2.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2-1. 바다에서 제자들을 구원하신 주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3. 당신은 손씻기를 얼마나 자주 하는가?
3-1.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일은 어떤 잘못을 범할 수 있는가?
수~목. 이방인들 중에서
4. 누군가가 당신을 개라고 한다면?
4-1. 예수님이 도움을 간청한 여인에게 ‘개’에 빗대어 대답하신 이유는?
5.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는?
<적용, 결심>
☆이번 과를 통해서 배운 교훈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겠는가?
<답을 위한 도움>
1. 인간의 욕구 중의 가장 강한 것이 식욕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어서 생활이 궁핍했고 배가 고팠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남자어른만 5천명을 배부르게 하고 열두 광주리나 남았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확신을 가졌고 이제 더 이상 배고픔이나 민족적인 설움을 겪지 않아도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서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주님은 얼른 그 자리를 피하셨다.
주님이 유대인들에게 이적을 행하심으로 하늘의 축복을 그들만 누리지 않고 이방인들에게도 나누기를 바라셨으며, 왕삼으려는 것을 뿌리치고 도망하신 것은 그분이 그들만의 메시야가 아닌 온세상의 메시야로 오셨음을 알기를 바라신 것이다.
1-1. 「군중들은 그때 예수님을 왕으로 옹립하려고 했으나 그 분은 왕이 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편협하고 세속적인 기대 이상의 일을 행하기 위해 오셨건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서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영생의 양식을 주려는 것임을 깨닫고 그것을 얻게 되기를 바라셨다.
*요 6:24 무리가...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돈 몇 푼에 목숨 걸지 말고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축복으로 인생역전을 기대하라.
2. 제자들은 밤중에 배에서 역풍을 만나 위험에 빠졌다. 그들은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그 때 주님이 나타나셔서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하셨다.
그런데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자기더러 물위로 걸어오라 해달라고 했다. 주님이 허락하자 베드로도 물위를 거닐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에게서 시선을 돌려 자기 자신을 보고 자만에 빠졌고 그 순간 베드로는 바다에 빠지게 되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구원해달라고 하니 주님은 즉시 그를 건져 주셨다.
*본교 주석(마 14:25) 예수는 밤새도록 제자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으며...
2-1. 밤중에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 나타나자 제자들은 유령인줄로 알고 무서워했다. 그 때 주님은 “내니 두려워말라”하셨다. 여기서 “내니”는 출 3:14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와 같은 단어다. 즉, 절대자, 만유의 주인으로서 만유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물결 위로 걸어가신 것도 제자들에게 바다를 다스리시는 능력을 보여주어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베드로는 물결 위를 걸으며 만유를 다스리는 그분을 잠시 잊고 자신이 대단한 능력이 있는 양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물에 빠져가며 무력하게 외칠 때 주님은 그를 건져주셔서 다시 한번 만유를 다스리시는 주님이심을 증거하셨다.
이러한 위대하신 분을 의지할 때 생애의 어떤 문제 앞에서도 염려하는 대신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할 수 있다.
3. 중요한 것은 손을 왜 씻는가이다. 손을 씻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의 손씻는 일을 죄짓는 것으로 여겨 씻지 않고 떡을 먹는 제자들을 비난하며 정죄했다.
3-1. ①사람은 사물이나 문제의 전체를 다 보기 어렵기 때문에 불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②사람은 드러난 행위는 볼 수 있으나 동기는 알 수 없으므로 진실을 오해할 수 있다. ③비난의 진정한 동기는 자기를 의롭게 보이려는 교만에 있다. ④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사탄의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스스로를 사탄의 편이라고 정죄하는 것이다.
「남을 비판하지 말라 - “그대는 동기를 식별할 수 없으므로 남을 능히 판단할 수 없다. 남을 비판함으로 그대는... 형제를 참소하는 자인 사탄과 한 통속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시대의 소망, 313).」
이런 정신은 하나님의 자비와 반대되어, 하나님의 품성을 왜곡하는 것이다.
4. 가나안 여인은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했으나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는 매몰찬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개로 취급하는 듯한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표면상의 거절 그 이면에 숨길 수 없는 긍휼하심이 있음을 그 여인은 보았다... 집안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상에서 먹을 때 개에게 먹을 것을 안 주지 않는다. 개는 풍성히 차려진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을 권리가 있다. 그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많은 축복이 주어졌다면 그 여인이 받을 축복 또한 있지 않겠는가?’(시대의 소망 401)
4-1. 주님의 냉정한 모습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그렇게 멸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그 이방 여인은 유대인들이 갖지 못한 참된 믿음을 나타내었고, 그것은 그 여인이 유대인들보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주님은 그런 믿음에 반응하셔서 그녀의 딸을 고쳐주심으로 그분이 이방인의 주님도 되신다는 진리를 증거하셨다.
*시대의 소망 400 그분께서는 유대인들이 으레 그렇게 하였으리라고 생각되는 태도로 이 경멸받는 민족의 대표자를 응대하셨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제자들이 당신께서 그 여인을 대할 때 보이신 바와 같이 그런 경우에 유대인들이 대접하였으리라고 생각되는 냉정하고 무정한 태도를 명심하게 하고 또 뒤이어 그 여인의 간원을 들어주심으로써 보이신 대로, 제자들이 슬퍼하는 자들을 취급하기를 원하시는 인정 있는 태도도 명심하게 하실 작정이셨다.
5.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는 그 혼자 잘먹고 잘살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를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창 12:3)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들만 하나님의 복을 독점하고자 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왜곡했다.
예수님이 갈릴리 지역의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칠병이어의 기적으로 수천명을 먹이신 것은 그분이 이방인들에게도 복을 주기 위해 세상에 오셨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주님은 기독교인이나 재림교인들만 아니라 고집스럽게 믿지 않는 자들도 여전히 사랑하시고 그들이 회심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이 일을 위해 우리가 남은무리로 부르심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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