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제2기 6과 그리스도 안에서 쉼(수정)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광진 작성일16-05-02 20:12 조회4,211회 댓글0건첨부파일
- 2016 제2기 6과 그리스도 안에서 쉼.hwp (32.0K) 34회 다운로드 DATE : 2016-05-02 23:17:16
본문
2016 제2기 6과 그리스도 안에서 쉼 |
<교사가 명심할 핵심 사항>
질문, 핵심, 하나님모습 발견, 적용, 교과 전체흐름, 반생을 위한 기도
<핵심>
예수님은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낸 안식일 준수의 표본이셨다. 우리에게도 안식일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
*핵심어 : 표본, 하나님의 품성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어떻게 쉬는 것이 제대로 쉬는 것인가?
⇒
일. 그리스도의 가벼운 멍에(율법의 정신)
1.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절하는 이유는?
월~수. 안식일 논쟁
2. 안식일은 쉼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2-1. 교과에 기록된 바리새인들의 안식일 규범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2-2. 안식일은 나에게 어떤 날인가?
3. 최근에 즐거웠던 일이 있다면?
4.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4-1. 요즘 우리는 어떤 식으로 안식일을 왜곡할 수 있는가?
목. 안식일 준수(진정한 안식일 준수)
5.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는 것이 제대로 지키는 것일까?
<적용, 결심>
☆이번 과를 통해서 배운 교훈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겠는가?
<답을 위한 도움>
1. 예수를 믿으면 더 피곤해 질 것 같아 예수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을 따를 때만 진정한 평안=쉼을 얻을 수 있다.
그분을 따르는 것은 그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삶을 배우는 것이다. 그분의 멍에, 곧 계명은 가벼운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율법은 매우 까다로왔다. 거기엔 쉼이 없었다. 그러나 주님은 계명을 온전히 지키되 온전한 쉼을 누렸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계명을 지키면 즐거움과 쉼을 누릴 수 있다.
「예수님과 맺는 관계는 우리를 피곤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분을 알고 그분의 삶과 그분의 성품을 모방함으로써 우리는 인생의 수많은 고통과 수고로부터 안식을 찾을 수 있다.」
2. 안식일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만나는 날이다. 우리가 그분과 만나는 경험은 우리를 참된 기쁨과 안식으로 인도한다.
2-1.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마 12:5) 이런 말씀들을 근거로 안식일이 폐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말씀을 조금만 더 자세히 보면 그런 뜻이 아니다. 바리새인과 예수님이 논쟁한 것은 안식일의 존폐 여부가 아닌 어떻게 지키느냐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D. L. 무디는 “안식일을 포기하면 교회가 파괴되고, 교회를 포기하면 가정이 파괴되고, 가정이 파괴되면 국가가 파멸된다.”고 했다.
주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한다. 거룩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관계를 통해서 온다. 거룩은 차갑고 건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따뜻하고 은혜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을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왜곡했다. 그들은 자기 민족이 이방인의 포로생활을 한 것은 안식일을 함부로 해서라고 생각하여 안식일을 범하지 않을 묘안을 짜내 613개의 금지 조항을 만들었다. 그러니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겠는가? 조금만 실수해도 어느 한 조항에는 걸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 비벼먹자 안식일을 범한 것으로 비난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말하지 않는 것을 그들(사람)이 만든 율법으로 정죄한 것이다. 바리새인의 안식일은 거룩이 아닌 고역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안식일을 파괴했다.
안식일 계명을 그렇게 무겁게 한 동기가 안식일을 잘 지키기 위해서이긴 했으나, 더 깊은 동기는 안식일을 어김으로 하나님께 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으로 섬기기를 원치 않으신다.
*시 119:45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
계명의 참 목적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도 그러하다.
3. 안식일은 어느날보다 즐거운 날이 되어야 한다. 그 즐거움이란 내가 추구함으로써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얻는 것이다. 하나님은 안식일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하셔서 준비하셨고, 예수님은 안식일 전에 우리의 구원을 위해 당신을 희생하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다. 안식일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이 나타나 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안식일은 감사와 기쁨의 날이 될 수 있다.
*막 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위해 인간이 누려야 할 행복을 박탈해서는 안된다. 안식일보다 사람이 먼저다.
4. 아픈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치유, 곧 건강하게 회복되는 것이다. 주님은 안식일에 치유의 기적을 많이 베푸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날이라면 다른 날보다 더 치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아닌 다른 날에 고치면 될 것을 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고 안식일을 또 왜곡했다.
「“구주께서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범죄자로 여김을 받을 것을 잘 아셨으나 주저 없이 안식일을 가로막은 유전적 요구의 벽을 무너뜨리셨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며 생명을 구출하기를 등한히 하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다.’는 말은 유대인들 사이의 한 격언이었다.”(시대의 소망, 286).」
4-1. 새신자나 환자방문을 가면서 안식일이니 무엇을 사면 안되고, 아이들과 운동을 하면 안되고, 가스를 들여놓고 가스값은 나중에 드린다 하고, 안식일에 회의를 하면 안된다, 무엇을 보면 안되고 어디에 가면 안된다는 등 현대판 바리새주의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안식일을 아무렇게나 보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5. 안식일은 뒷짐지고 가만히 있는 날이 아니다. 안식일의 축복을 경험한 자들은 안식일을 이웃을 복되게 하는 날로 지키게 된다. 안식일은 고통과 슬픔을 당하는 자들을 위한 봉사의 날,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품성을 증거하는 날이어야 한다.
안식일의 정신을 제대로 모르고 안식일 시간만 엄수하는 것은 안식일을 짓밟는 것이다.
*복음전도 517 이사야 58장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현대 진리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의료 선교 사업과 복음 전도사업이 세상에 전할 기별로서 어떻게 병행해야 할 것을 깨닫게 된다. 여호와의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에게 자비와 자선의 사업을 할 책임이 놓여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