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1과 다윗의 아들 (4월 1일 교과묵상/일~금 매일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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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6-03-27 08:16 조회3,48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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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금) 1과 전체 요약
멸시받는 세리였던 마태는 그의 복음서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시작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강조하면서도, 자랑스럽지 못한 이력을 가진 의외의 인물들도 그 족보에 포함시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뜻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첫 책인 창세기가 이 세상의 기원을 기록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강조하는 책이라면, 신약의 첫 책인 마태복음은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을 통하여 구속사역을 강조하는 책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강조하며 그의 서신을 시작한 요한과 달리, 마태는 그의 복음서의 첫머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기술하면서, 특별히 유대인들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위대한 왕 다윗을 부각시킵니다. 그들은 모두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이러한 서술은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믿음의 자손의 계보를 이으실 자이시며, 다윗의 자손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분임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양자된 우리에게로 이어진 이 믿음의 계보에 감사하면서 이 구원의 약속을 전하여 영적인 자녀들을 탄생시킴으로 이 계보를 이어나가는 주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약속된 메시아가 반드시 다윗의 가문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다윗에게 주어진 예언도, 이사야를 통하여 반복된 약속도 메시아가 다윗의 가문, 이새의 혈통에서 나실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마태는 예수께서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음을 소개하면서, 여전히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여전히 포로 생활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을 향하여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해방자이심을 전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해방 선언은 선악의 대쟁투의 영광스러운 결론을 보여주는 요한계시록에서 또 다시 반복됩니다. “다윗의 뿌리”이신 주님께서 온 인류를 죄의 속박에서 해방시키시는 구원자이심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의 메시아이실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희망이 되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들 중에, 어머니 마리아를 제외한 4명의 여인들은 이 중요한 계보에 포함되기엔 부족함이 있는 여인들이었습니다. 다말은 시아버지인 유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여인이었고, 여리고의 라합은 몸을 파는 여인이었으며, 룻도 부끄러운 역사로 탄생한 민족인 모압의 여인이었고, 우리야의 아내로 기록된 밧세바 또한 남편이 있는 상황에서 다윗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던 여인이었습니다. 이들은 한결 같이 예수님의 족보의 순수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이 여인들을 족보에 포함시킴으로 주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의 가족이 되어 이 땅에 오셨으며,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죄인들까지도 가족으로 받아주시는 분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내 가족, 내 형제의 부족함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귀한 교훈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예외 없는 죄인으로 태어났으며, 스스로는 이 죄인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목숨을 주심으로 우리의 희망이 되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마태는 이러한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포함된 악한 자들의 이름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계보에 간통한자, 매춘부, 용사와 이방인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고, 선한 왕들 뿐만 아니라 악한 왕의 이름까지도 나타나고 있음은 우리 주님께서 소외 받고 멸시받을만한 자들을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으며, 이런 자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자신을 바치셨음을 증명하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께 소망을 두는 자들은 결코 버림받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부족을 채우시고, 우리를 들어 당신의 귀한 사역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일에 가장 앞서 있는, 말씀을 위탁받은 백성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들 중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은 이름없는 목자들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먼 땅 페르시아에서 겸손하게 성경을 연구하던 학자들에게 이 빛이 비취었고, 예수께서는 그들의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심지어 유대인의 왕 헤롯은 자신의 정치적인 야심을 위하여 예수님을 죽이려 했고, 그 결과는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억울한 아이들의 죽음이었습니다. 진리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이러한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마땅히 이 세상을 구원할 자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졌어야 할 그들이 그들의 욕심에 따라 말씀을 잘못 이해한 결과가 이러한 역전을 가져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에 소속되어 있고, 말씀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예수님과의 만남을 보장하지 않는 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온 마음으로 주님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면, 그가 아무리 ‘먼저 됨’을 자랑한다 하여도 ‘나중 된 자’가 될 수 밖에 없음을 성경의 기록이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가 기록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우리 주님께서 그들의 지식과 앞서 있음을 자랑하는 자들이 아닌, 연약한 자들과 죄인들의 구주가 되심을 보여줍니다. 이런 놀라운 사랑을 깨달은 자로서 우리는 형제의 아픔을 감싸 안으며,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 되시는 사랑의 주님을 세상에 전함으로 죄인들을 이 구원의 계보로 이끄는 일에 전심을 다하는 그리스도의 후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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