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다윗의 아들(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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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6-03-26 05:56 조회9,358회 댓글0건본문
4월 2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56분
기억절 :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연구 범위 : 마 1장, 막 12:35~37, 사 9:6~7, 롬 5:8, 요 2:25, 렘 29:13, 마 2:1~14
성령의 영감을 받은 마태는 족보를 기록하며 그의 복음서를 시작한다. 그런데 그 족보는 그냥 족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이며 그것도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조상이라고 밝히기를 꺼려할 만한 인물들이 공개된 족보이다.
아마도 마태 자신이 사회로부터 버려진 자였기 때문에 그런 선조들에 대해 언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원수에게 협조하는 유대인 세리였으며 실제로 로마에게 돈을 바쳐서 그 자리를 차지할 기회를 얻고 유대 백성에게 세금을 징수하였다. 그러니 그가 자기 민족에게 사랑을 받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겉모습을 보는 사람과 달리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 주님은 마태의 마음을 보시고 멸시받는 세리였던 그를 택하여 제자의 무리에 두셨다. 마태 역시 부름을 받았을 때에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이전의 삶을 포기하고 그 부르심을 받아들였다.
마태는 주님을 따르면서 기록을 간직했다. 그가 훗날 자기 백성뿐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하여 남긴 것은 세금영수증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를 담은 소중한 기록이었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이해한다.
➋ 느끼기 :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특별한 사명을 인식한다.
➌ 행하기 :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 안에 머문다.
A.
❷ 그대는 마태가 예수님의 계보로 마태복음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언적 계통으로 오신 참 구주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❸ 그대는 그 계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고 생명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얻는다는 것을 느낀다.
❹ 우리는 예수님의 계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그분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소개할 수 있다.
B.
❷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까?
※ 예언의 성취를 확인하는 말씀이다.
❸ 계보 속 인물들의 불완전한 삶은 구세주의 필요성에 대해 어떤 기별을 전하고 있습니까?
※ 모든 사람들이 다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울러 구주는 생명의 기업을 물어줄 기업 무를 자이심을 나타낸다.
❹ 지금 우리의 어떤 실망스러운 상황, 또는 주변의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큰 희망이 될 수 있습니까?
※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셔서 구원을 이루신 사실을 믿음으로 영생의 소망으로 기뻐할 수 있다.
결론 :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의 탄생 기사는 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⑵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고 ⑶ 왕의 계보를 잇는 후손임을 보증합니다.
첫째날(일) 기원의 책
3월 27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
마태는 시작부터 자신의 기록을 ‘책’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선조들을 열거하는 ‘계보의 책’이라고 부른다. (그리스어로 ‘책’은 거룩한 기록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계보’ 또는 ‘세대’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기원’을 뜻하는 단어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를 ‘기원의 책’으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구약성경이 세계 창조에 대한 책으로 시작했던 것처럼, 마태(신약성경)도 창조주와 그분만이 성취할 수 있는 구속 사업에 대한 책으로 시작한다.
1. 다음의 성경절들은 예수님에 대해 어떤 사실을 알려주는가? 요 1:1~3, 히 1:1~3, 미 5:2, 막 12:35~37
[요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히1:1~3]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막12:35~37]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36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답: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깨닫게 해준다.
“영원한 시대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일체이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위엄하심의 모습이며 ‘그의 영광의 광채’이셨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오심으로써 하나님을 사람들과 천사들에게 나타내시려 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생각을 들을 수 있도록 한 하나님의 말씀이셨다”(시대의 소망, 19).
요한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측면을 다루기 전에 먼저 그분의 신성에 대해 기록했다(요 1:1~4, 14 참고). 그러나 마태의 마음속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핵심 주제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태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대단히 부각시키면서 그분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나사렛 예수가 구약성경이 예언했던 메시아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은 강한 열망을 가지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탄생까지 그분의 인간 조상들의 계보를 추적한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신원을 올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분은 세상에 오시기 전에 먼저 계시(先在)는 분이시다.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는”(요8:58)분이시다. 이렇게 계시는 분은 선재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그분은 여호와이시다.(사9:6)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라는 말이다. 그분은 자기가 세상에 오실 때와 경로는 미리 말씀하시고 그것을 책에 기록하게 하셨다. 때가 찼을 때 미리 말씀하신 경로대로 세상에 사람이 되어 오셨다. 그분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수행하셨다. 그분이 계획하신 사실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록을 따라 우리는 예수님의 신원조회를 할 수 있다. 예언된 대로 오지 않은 어떤 사람이 자기를 구주라고 주장하면 기록된 말씀으로 그 신원을 조회하여 확인할 수 있다.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실 때에 자기의 말씀으로 자기를 소개하지 않고 기록된 성경 말씀으로 자기의 신분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셨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후대의 우리들을 위한 것이다. 당시에 예수님을 직접 봤기 때문에 믿었다면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목하는 우리들은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오직 기록된 말씀으로 예수님의 신분을 확인하게 하셨다. 우리는 지금도 그렇게 예수님을 말씀 안에서 만나야 한다.
교훈 : 교훈 마태복음은 창세기와 같이 기원을 다루는 책이다. 마태는 그리스도의 신성보다 그분의 계보를 추적하면서 그분이 예언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둘째날(월) 왕족의 혈통
3월 28일
메시아의 강림에 대한 유대인들의 견해가 아무리 다양했다 할지라도 그가 다윗의 가문에서 나오리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아직까지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조차 그가 다윗의 가문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는다.) 마태가 자신의 복음서를 그와 같이 시작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원했다. 메시아는 유대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어야 하고 다윗의 혈통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에(창 22:18, 갈 3:16), 마태는 곧바로 예수님의 혈통을 드러내면서 그분이 아브라함뿐 아니라 다윗 왕과 얼마나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많은 주석가들이 마태가 유대인 청중을 주로 의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강조점은 나사렛 예수의 메시아 자격을 확립시키는 데 있었다.
1. 아래의 성경절들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마태가 강조하려던 요지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삼하 7:16~17]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사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사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영이 강림하시리니”
[행 2:29~30]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답: 이 예언들이 예수님에게 성취가 된 사실을 구약과 신약이 증거하고 있다.
위의 모든 말씀은 마태복음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마 1:1)로 시작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묘사되었다. 신약성경이 예수님을 이렇게 묘사하면서 시작하는 것처럼 신약성경의 마지막에 이르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계 22:16). 예수님은 다른 어떤 신분보다 “다윗의 뿌리요 자손”으로 남아계신다. 창조주께서 우리가 짐작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자신과 우리를 연결시키셨다는 점은 예수님의 인성에 대하여 대단히 강력한 증거가 된다.
<부가설명> 성경에 예언이 없으면 어떤 사람도 자기가 메시아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짜 메시아가 자주 나타났다. 예수께서 세상에 탄생하시기 전에도 가말리엘이 말한 대로 드다와 유다(행5:35,36) 같은 가짜 메시아들이 일어났고 130년대에 있었던 바르 코크바도 자기를 메시아라고 주장하였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항상 읽고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외웠지만(행13:27)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보지 못했다. 엉뚱한 사람의 주장을 받아서 메시아라고 따라다녔다. 마태가 기록한 구약의 예언된 계보를 바르게 관찰했어도 드다나 유다나 바르 코크바 같은 사람을 메시아라고 추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지금은 재림주가 많이 나타난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이 지구의 땅에 발을 붙이지 않으신다. 공중에서 성도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리시고 거기서 만나신다. 그런데 땅에 걸어 다니면서 자기를 재림 주라고 하는 사기꾼들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참으로 희한한 사람들이다. 사기를 치는 사람은 사기꾼이 되었으니까 성경을 그렇게 인용한다고 해도 추종자들은 성경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그냥 그 주장을 따라가니 참 희한하지 않는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사람들에게 성경 말씀을 기록된 대로 바르게 제시하셨다. 니고데모나 아리마데 요셉은 그분의 활동과 말씀을 성경과 비교하여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우리도 성경을 자세히 올바르게 읽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교훈 : 마태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명하기 위해 그분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다윗 왕의 혈통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셋째날(화) 예수님의 가계도 초반부
3월 29일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마 1:3).
1. 다윗 이외에 우리는 예수님의 가계도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마 1:2~3)
[마1:2,3]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답: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서 예수님의 조상 중 한 사람인 베레스를 낳았다고 기록하였다.
일반적으로 여인들은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다말이라는 여인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일까? 우선 그녀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다말은 유다의 두 아들과 차례로 결혼한 가나안 여인이었다. 두 아들 모두 악함으로 인해 사망했고 다말은 자녀가 없었다. 그녀의 시아버지 유다는 셋째 아들이 성장하면 그를 남편으로 주겠다고 다말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말은 어떻게 했는가? 그녀는 매춘부로 변장하고 다름 아닌 시아버지와 잠자리를 가졌다. 유다는 그녀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몇 달이 지나서 다말의 임신 사실이 알려지자 유다는 부도덕한 다말을 사형시키려는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다말은 유다에게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를 밝힌다. 저속한 연속극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예수님의 인간 선조들의 이야기이다.
2. 마 1:4~5을 읽어 보라. 놀랄 만한 어떤 인물이 또 언급되어 있는가?
[마1:4,5]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답: 여리고의 기생 라합의 이름과 이방 여자 룻의 이름도 예수의 조상 중에 있다.
라합은 가나안 매춘부였는가? 분명 그렇다.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준 뒤에 그는 하나님의 백성에 가담했고 예수님의 선조와 결혼했다.
3. 예수님의 계보에 또 어떤 인물이 있는가?(마 1:5~6)
[마1:5,6]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답: 우리야의 아내였던 바세바도 있다.
룻은 덕스러운 여인이었다. 그녀 자신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었지만 술에 취한 롯과 그의 딸 사이에서 근친상간의 결과로 태어난 혐오스러운 모압 민족 출신이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는 남편이 전쟁 중에 있을 때에 다윗의 부름을 받은 여인이었다. 다윗도 구주가 필요한 죄인이었다. 다윗에게는 뛰어난 장점이 많았지만, 가장으로서의 모본은 되지 못했다.
<부가설명> 학자들과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족보에 왜 이런 여자들의 이름을 적었는지 매우 기이하게 여기면서 그 이유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이 교과 저자의 설명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이런 시각은 성경의 죄 문제를 도덕론에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여자들의 이름이 족보에 기록된 것은 모친 마리아의 이름이 기록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로 이 여자들이 성경의 관점으로 이스라엘과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밧세바는 그 민족이 이스라엘 사람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 남편이 헷 사람이다. 어쩌면 밧세바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닐 수 있다. 마리아도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처녀로서 임신한 사실이 드러나면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을 당할 처지였다. 이 다섯 여자는 다 복음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족보에 이름이 올라갔다. 마리아는 직접 모친이니까 올라갈 수밖에 없지만 다른 네 여자도 생명의 복음의 도리에 의미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 네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자녀를 낳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다말은 그 시아버지 유다가 그 아들 셀라에게 계대결혼(繼代結婚)의 의무를 시행하도록 하지 않자, 스스로 편법을 써서라도 생명을 이어가는 책임을 수행한 사람이다. 그 일로 그는 불살라 죽임을 당할 뻔하였으나 생명을 이어가는 책임을 감당하였다. 계대결혼은 기업을 물어주는 일에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땅 기업을 물어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땅을 관리할 사람이 없으면 땅은 아무런 송용이 없다. 그러므로 기업을 무는 일에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 기업을 물어주는 것이다. 성경은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라고 말하였다(시 127:3). 이 여자들 중에 다말과 룻은 바로 이 생명 기업을 물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서 첫 아담의 생명 기업을 물어주는 일을 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시다. 이 생명 기업을 물어주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구원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역사적 삶을 통하여 보여준 사람들이기도 하다. 라합도 그렇다. 그가 살몬과 결혼했다는 사실은 마태복음 족보를 통하여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살몬은 바로 보아스의 아버지이다. 그러므로 부자(父子) 이대(二代)가 생명 기업을 물어주는 일에 관여된 것이다. 살몬도 바로 유다지파 사람이며 라합이 이 사람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다. 룻은 룻기의 기록으로 너무나 분명히 계대결혼으로 생명 기업을 무는 역할을 감당한 것이 확실하다. 룻이 아니면 우리는 보아스를 어떻게 알았겠는가. 밧세바의 경우는 첫 아이가 죽고 둘째 아이가 평화의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비록 죄악 중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아니 죄악 중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건을 이용하여 인간이 아담 안에서 죽었으나 예수로 인하여 평화를 얻는다는 구속사적 의미를 깨닫도록 섭리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숨은 뜻을 저변에 두고 이 이름들을 기록한 것은 인류의 구주가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아담이 잃어버린 생명 기업을 물어 주신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도 포함된 것이다. 이렇게 생명과 구속사적 의미들을 지닌 여자들이라는 사실도 이 이름들을 열거한 속뜻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룻이 보아스의 후처로 오벳을 낳은 경우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요셉에게 후처로 정혼한 상태에서 예수님을 잉태하고 탄생하게 하는 사실을 표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김명호 예수의 생애와 교훈, 중에서)
교훈 :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의 계보에는 다말, 라합, 룻, 밧세바와 같은 의외의 여인들이 등장한다. 이는 구세주가 필요한 인간 가족의 연약성을 말해준다.
넷째날(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3월 30일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9~10).
1. 다음의 성경절들은 인간 본성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이러한 사실에 관하여 우리에게 어떤 강력한 증거가 있는가?(롬 3:9~10, 5:8, 요 2:25, 렘 17:9)
[롬3:9,10]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2:25]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답: 사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하며 예외 없이 모두 죄인이다.
자주 언급되지만 성경은 인간 또는 인간 본성을 장밋빛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에덴에서의 타락으로부터 시작해서(창 3장) 마지막 시대에 있을 바벨론의 멸망에 이르기까지(계 18장) 인류는 암담한 처지에 놓여있다. 심지어 우리는 큰 배도(살후 2:3)가 있기 전의 초기 기독교를 이상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착오이다(고전 5:1). 우리는 모두 타락하고 망가진 백성이다. 예수님이 출현하셨던 혈통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이클 윌킨즈는 이렇게 말한다. “이 계보의 진실성과 의외성은 마태의 독자들을 놀라게 했을 것이다. 예수의 조상들은 잠재력은 있으나 온갖 약점을 지닌 평범한 인간들이었다. 하나님은 구속 사업을 이루기 위하여 그들을 통해 일하셨다.
예수님의 계보에 의의 표본은 없다. 거기에는 간통한 자, 매춘부, 용사와 이방인들이 있다. 악한 왕 르호보암이 악한 왕 아비야를 낳았고 아비야는 선한 왕 아사를 낳았다. 아사는 선한 왕 여호사밧을 낳았고…여호사밧은 다시 악한 왕 요람을 낳았다.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선하든 악하든 모든 세대를 통해 일하셨다. 마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소외받고 멸시받는 자들까지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수가 와서 구원하려고 했던 대상이 바로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다.”―Zondervan Illustrated Bible Backgrounds Commentary: Matthew (Grand Rapids: Zondervan, 2002), p. 9.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에도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어느 인생의 고비에서 낙망을 경험하고, 신앙에 의심이 가고, 자신이 정말 회심했는지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절망을 가져다주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죄악과 부족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을 아시며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도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비록 절망 중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서 희망을 얻을 수 있고 또한 얻어야 한다.
<부가설명> 예수님의 족보에 몇 몇 부정한 여자들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학자들은 이런 이론을 전개한다. 이런 이론은 틀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를 도덕성으로 보고 하는 설명이다. 성경의 죄는 도덕성 이전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존재와 생명에 관련된 것이다. 사단은 신학을 도덕론으로 보게 만들어서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는 눈을 흐렸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 의인이 하나도 없는 것은 그 생명을 아담 안에서 다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담의 모든 후손은 다 죽은 자들이고 썩어져가는 구습을 나타내는 자들이다. 그래서 죄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자들에 대하여 도덕성의 문제로 해석하고 설명하려고만 하는 것은 복음을 올바르게 깨닫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화요일 부가설명에서 말한 것처럼 이 여자들은 계대결혼의 의미대로 생명기업을 물어주는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마리아도 생명기업을 물어줄 메시아를 확실하게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여자이다. 아담이 잃어버린 그 생명의 기업을 물어줄 수 있는 ‘기업 무를 자’(히브리어 고엘)는 오직 여자의 씨로 오신, 즉 아담의 씨로 오시지 않은 여자에게서만 탄생하신 예수님 외에 없다. 마태는 이것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의 인간 선조들 가운데 완전한 의인은 없었다. 그들은 모두 결점이 많은 자들이었으며 예수님이 구원하려는 모든 인류와 동일한 처지에 있었다.
다섯째날(목) 다윗의 후손이 태어남
3월 31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마 2:2).
마태복음 1장과 2장 사이의 어느 밤에 예수님이 탄생하셨다. 그날은 12월 25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학자들은 제사장 사가랴의 성전 봉사의 시기를 바탕으로 예수님이 가을에 태어나셨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양들이 아직 들판에 있을 때니 아마도 늦은 9월이나 10월이었을 것이다.
최초로 유대인 메시아를 찾아 경배했던 무리 중의 일부가 이방인이었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예수님의 친백성들은 대부분 어떤 종류의 메시아가 올 것인지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반면 동방에서 온 이 여행자들은 마음과 생각이 열려 있었다. 페르시아에서 온 그 박사들은 진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것을 찾기 위해 생애를 바친 존경받는 철학자들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분 자체가 진리이신 분을 경배하게 되었다. 비록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는 그보다 수백 년 전에 선포되었던 진리의 예증을 다음의 말씀에서 볼 수 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1. 마 2:1~14을 읽어 보라. 이 박사들의 태도와 헤롯 왕의 태도는 어떻게 서로 대조되는가?
[마2:1~14]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10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13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답: 이방인 박사들은 예수를 찾아 경배하고자 간절했고 유대의 왕은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아기 예수를 죽이고자 했던 그 나라의 왕과는 대조적으로 이 이교도들은 엎드려 그분께 경배했다. 이 이야기는 교회에 소속되었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상기시켜준다. 그것은 또한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헤롯이 제사장들과 함께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더욱 잘 이해했다면 예수님이 그가 두려워할 만한 위협이 되시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는 이 “유대인의 왕”이 적어도 자신이 지키려고 하는 정치적인 권력에 관심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했을 것이다.
<부가설명> 동방의 박사들은 페르시아 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별을 보고 연구하는 사람들인데 헬라어로 ‘마고스’인데 직역하면 마술사라는 말이다. 이 말은 당시에는 동양의 과학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 사람들은 별을 관찰하는 과학자들, 철학자들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연구하는 중에 이스라엘에서 한 별이 뜨고 한 홀이 일어날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민24:17) 이 사람들은 언젠가 이스라엘에 왕의 별이 뜰 것을 알았고 그때를 기대하고 있었다. 베들레헴 들녘 목자들에게 나타났던 천사들이 이 박사들에게 간 것이다. 천사들은 왕이 탄생한 것을 알리는 찬란한 별 모양으로 빛을 발하여 그들이 왕의 별이 뜬 것을 알게 하였고 꿈에 천사의 현몽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떠난 것이다.
이들이 찾아와서 예루살렘 거리를 누비며 왕이 탄생한 사실을 물었는데 온 성이 소동했지만 이 사람들을 따라 베들레함을 간 유대인은 한 사람도 없었던 같다. 참 기이한 일이다. 우리는 지금 말씀으로 달려가야 한다. 오직 성경말씀으로 달려가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교훈 :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진리를 찾다가 메시아를 경배하게 됐지만 그 나라의 왕은 메시아가 정치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그를 죽이고자 했다.
여섯째날(금)
4월 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모든 죄인이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도 이와 같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하셨’(딛 3:5)다. 사탄이 그대는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바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대는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고 사탄에게 말하라. 우리는 하나님께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예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철저하게 무력한 우리의 상태에 대해 언제든지 탄원할 수 있다”(시대의 소망, 317). 매우 강력한 논지이다. “철저하게 무력한 우리의 상태”가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 이 진리는 우리가 처음 예수님께 나아갔을 때나 그분과 동행하는 생애의 여정 도중에서나 차이가 없다. 예수님의 인간 계보에 올라간 인물들처럼 우리도 은혜를 필요로 하는 죄인들이다. 율법에 대한 순종, 죄와 유혹에 대한 승리,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장, 이 모든 것들이 신앙생활에 아무리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구원의 결과일 뿐이지 원인은 결코 아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든지 재림의 날 하늘로 승천하는 성도든지 우리 모두는 “예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철저하게 무력한 상태”에 있는 자들이다. 이 근본적인 진리를 잊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이번 주에 보았듯이 헤롯은 예언을 오해하여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언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면, 신실한 기독교인들은 어느 날 비밀리에 조용히 승천하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은 세상에 남아 왜 그들이 갑자기 사라졌는지 몰라 어리둥절해 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같은 잘못된 예언 해석을 주장하는 데에는 어떤 잠재적인 위협이 따릅니까? 그밖에 바른 예언의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각인시켜주는 예언적인 오해는 무엇입니까?
※ 휴거에 대한 오해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바르게 준비하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는 예언을 바르게 깨달아서 재림 맞을 삶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➋ 아직도 여러 지역과 사회에서는 부모와 출신 계급이 매우 중요하게 간주됩니다. 이런 세속적인 가치관이 복음이 대변하는 가치관과 대조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듭남의 개념은 이런 계급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 복음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동등하고 예수 안에서 다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동등하다. 아무런 차등도 계급도 없고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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