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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청지기의 습관(질문, 대답, 부가설명)03/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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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03-17 06:02 조회8,8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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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47분

 

● 연구 범위 : 엡 5:15~17, 골 3:23, 눅 12:35~48, 약 4:14, 행 3:21, 고전 9:24~27

 

● 기억절 :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9~11).

 

습관은 그대의 삶의 목적과 방향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좋은 습관을 계발하는 청지기들이 가장 신실한 청지기들이다. 다니엘은 매일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다(단 6:10). 회당에 다니는 것이 바울의 자기 관례였다(행 17:1~2). 그는 또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고전 15:33)힌다고 했다. 우리는 나쁜 습관을 대체할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생과 영원을 위한 습관을 형성한 자신의 모습이 곧 우리 각자가 될 것이다. 올바른 습관을 형성하고, 모든 임무 수행에 충실한 사람들의 생활은 다른 사람들의 행로를 비추는 빛나는 빛이요 펼쳐지는 광휘가 될 것이다”(교회증언 4권, 452).

습관이 형성한 행로는 자신이 추구하는 보상을 얻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습관이란 몸에 밴 판단이다. 다시 말해서 그대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것을 행한다. 그런 습관은 그대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아주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아주 나쁜 것일 수도 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청지기가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습관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학습목표

1. 깨닫기 : 믿음직한 청지기가 채택하는 습관의 특성들을 이해한다.

2. 느끼기 :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끄는 습관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

3. 행하기 : 영적인 습관을 일상적인 삶에 통합하는 실제적인 단계를 밟는다.

 

➋ 영적으로 중요한 요소지만 우리에게 습관과 일상이 되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말씀 읽기, 기도, 가족예배, 교회예배 출석, 증거하기 등등.

➌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습관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 오늘 예수님을 맞을 수 있도록 생활하는 것이다. 

➍ 세월을 아끼라는 엡 5:15~16의 말씀을 그대는 어떻게 이해합니까?

※ 시간을 재림을 맞을 수 있는 순간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➎ 우리가 재림 때까지 영과 혼뿐 아니라 몸도 최대한 건강하게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거듭난 사람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론 : 부정적이든지 긍정적이든지 습관은 반복에 의해 형성됩니다. 운동선수들은 특정 동작을 반복적으로 연습하여 기술을 향상시킵니다. 자꾸 연습하면 그것이 실력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가 귀로 들은 교훈과 말로 표현한 다짐들을 실천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신자들이 이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입니다.

 

 

3월 18일(일) 하나님을 먼저 찾는 습관

 

우리 모두에게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종류인지, 좋은 습관인지 나쁜 습관인지가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좋은 습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습관은 매일 하나님을 먼저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매일 아침 그대 자신의 영과 혼과 몸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라. 경건의 습관을 확립하고 더욱더 그대의 구주를 신뢰하라”(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과 인격 1권, 15). 그러한 습관이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생명으로 인도하는”(마 7:14)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고 하셨다. 예수님도 우리의 기본적인 필요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하셨다. 그리고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는 말씀도 있다.

 

1. 마 22:37~38, 행 17:28, 엡 5:15~17, 골 3:23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에 따르면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방법은 무엇인가?

[마22:37,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행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엡5:15~17]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골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답: 하나님 사랑하기를 생활의 첫째 자리에 두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하나님을 먼저 찾는 모본 중에서 예수님의 모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항상 모든 것의 첫째로 삼으셨다. 우리는 이러한 모본을 예수님의 소년 시절부터 볼 수 있다. 유월절을 맞이해서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기간에 육신의 모친이 그분을 성전에서 발견하고 나무랐을 때에 그분은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라고 대답하셨다. 생애 내내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교제를 갈망하셨는데 그분의 습관적인 기도 생활이 이를 증명한다. 이런 습관은 제자들이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중요한 요소였다. 예수님은 습관적으로 아버지와의 완전한 접촉을 유지하셨기 때문에 흑암의 세력이 총동원되어도 예수님을 아버지와 분리시킬 수 없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심할 때에 예수님의 모본을 따를 수 있다(마 22:37).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예수님의 성품을 모방하기를 구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삶에 첫째로 모시는 습관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습관이 어디 있겠는가?

 

<부가설명> 인간들은 아담의 후손으로 썩어질 씨로 태어났기 때문에(벧전1:23)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 되어서(엡2:3) 태어나면서부터 거짓말쟁이로 태어난다.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시58:3) 그들의 아비가 거짓말하는 자의 아비인 사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태어나면서 습관이 형성되어 있다. 요즘 말로 하면 DNA가 하나님을 거부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과 습관적으로 가까이 할 수 없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두렵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습관적으로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면 반드시 참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이시다. 당연히 습관적으로 가까이 한다. 조그마한 일이 있어도 ‘아빠. 아빠’하면서 아버지를 어린이같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피땀 흘린 동산에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막14:36)라고 불렀다. 예수님께는 하나님이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DNA는 어떤가? 거듭난 생명인가? 아니면 아직도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하게 여겨지는 상태에 있는 외방인인가? 그렇다고 언제나 그렇게 부르라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도 평시에는 늘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에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습관이 되어 있는 호칭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스스럼없이 부를 수 있는 습관이 형성되는 것은 진짜로 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짜 아들이 되어 있는가?

 

교훈 :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습관은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기도와 말씀 생활을 통해 매일 또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먼저 찾는 것이다.

 

 

3월 19일(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습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눅 12:35~36).

 

1. 눅 12:35~48을 읽어 보라. 이 비유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재림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눅12:35~48]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41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42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답: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시지만 그 때와 기한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장 예수님의 재림을 맞을 상태로 생활해야 한다. 예수님이 내 앞에 계시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청지기 정신은 예수님의 재림에 비추어 습관적으로 훈련되어야 한다. 신실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불성실한 청지기들은 그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마침내 그 성품이 밝혀질 것이다. 왜냐하면 진실하고 신실한 청지기들은 주인이 자리에 있는 것처럼 깨어서 일하며 그들의 의무를 이행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래를 위해 살며 매일 성실하게 일한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

아브라함은 영원한 도성을 고대하였고(히 11:10),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다(히 10:25).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계획하며, 즉석에서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던 진취적인 사상가들이었다. 우리도 복음의 최고점을 꾸준히 응시하면서 멀리 내다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딛 2:13). 현재와 그때를 곁눈질하거나 어쩌다 예언을 훑어보는 대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맞이하게 될 영원을 항상 자각하며 지속적으로 바라고 깨어 일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종말의 사건에 대해서 터무니없고 비현실적인 추측을 삼가야 한다. 재림의 약속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며, 현재에 적합한 관점을 제공하고, 우리로 하여금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기억하게 한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습관은 청지기에게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구주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성경은 아버지와 천사들의 영광 중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지판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준다(막 8:3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죽음이라는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지상에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짧고 일시적인지를 깨닫게 한다. 그러나 재림의 약속은 오히려 죽음이 순간적이며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그 약속은 모든 그리스도인 청지기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항상 습관으로 삼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라는 우리의 이름은 그런 소망을 품고 있다.

 

<부가설명> 재림교회는 역사적 재림에 대하여 탁월한 교리와 사상을 가지고 있고 열심히 가르친다. 아주 잘 하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이 역사만큼 오래 살지 못한다. 아담의 후손은 제한된 수명을 가지고 있다. 그의 수명 이상으로 세월을 누리지 못한다. 므두셀라가 비록 969세를 살았지만 죽었다. 죽는 존재는 언제나 수명의 제한을 극복할 수 없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예수께서 재림하실 그 시기에 호흡하고 있지 않으면 역사적 그 시간에 죽지 않은 상태로 재림을 맞을 수 없다. 다 부활하여 맞을 것이다. 수명이 다하여 호흡이 끊어지면 그에게는 세월이 없다. 죽는 그날 다음에 눈을 뜨면 그것은 죽은 그 이튿날이다. 모든 신실한 성도들은 자기가 죽음의 잠을 자는 그 다음날 예수님의 재림을 맞게 된다. 그들이 부활하여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때 “벌써 오십니까? 정말 속히 오시는군요.”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셨을 때 이 사실을 염두에 두신 것이다. 모든 성도들은 역사적 종말을 기대해야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개인 종말론이다. 시인은 이 개인 종말에 대하여 간절하였다.(시3(:4~8)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히3:13) 

 

교훈 : 청지기는 현실의 삶에서도 주인의 뜻에 충실하지만 더욱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며 언제든지 그분을 만날 준비를 하면서 살아간다.

 

 

3월 20일(화)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습관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우리는 아는 것이 없으며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욥 8:9).

 

그대가 시계는 멈추게 할 수는 있지만 시간의 흐름을 멈추지는 못한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멈춰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앞으로 계속 흘러간다.

 

1. 다음의 성경절에 따르면 우리는 이 땅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약 4:14, 시 90:10, 12, 시 39:4~5, 전 3:6~8) 지금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서 우리가 이 성경절로부터 알아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시90:10,12]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39:4,5]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전3:6~8]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답: 시간이 신속히 지나가는 것은 우리 인생이 덧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을 주님과 바른 관계 속에 살아야 하며 시간 관리를 바르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처럼 한정적이고 재생 불가능하며 중요한 요소도 잘 관리하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현세와 내세에서 중요한 사안에 초점을 맞추고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시간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알려주는 것들을 바탕으로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 돈은 잃어도 언젠가 만회할 수 있고 처음보다 더 많이 벌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은 그럴 수 없다. 잃어버린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의 순간을 되찾기보다 깨진 달걀을 다시 껍질 속에 담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물자 중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시간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매 분 초의 시간을 귀히 여기셨으므로 우리도 시간을 그와 같이 귀하게 여겨야 한다. 인생은 헛되이 보내기에는 너무도 짧다. 우리가 영생을 위하여 준비할 은혜의 기간은 불과 며칠밖에 없다. 우리는 낭비할 시간도, 이기적 오락을 위하여 쓸 시간도, 죄에 방종할 여가도 없다”(실물교훈, 342).

 

<부가설명>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행1:7) 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재림의 기한에 대한 말씀만이 아니다. 시간과 기한은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영역이다. 작은 뿔이 때와 율법을 변경하려고 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그가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시간과 기한에 대하여 성경의 계시를 무시한다면 창조주의 영역을 넘보는 루시퍼의 기를 따라가는 것이 된다. 앞에 제시한 성경구절들은 사람들에게는 오늘이라는 하루만 허락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특히 야고보 4장 14절은 아주 강력하게 그것을 보여준다.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여전히 어제와 같겠지 하는 의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술 취한 파수꾼들처럼 “그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사56:10~12) 그렇지만 시간은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유행가 가사처럼 인생은 재방송이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

 

교훈 : 시간은 만회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자원 중에 하나이다. 하나님의 청지기는 매 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3월 21일(수) 영과 혼과 육을 건강하게 지키는 습관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계 21:5).

 

우리는 본래 완전한 영, 혼, 육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죄가 그것을 훼손시켰다. 무엇보다 기쁜 소식은 하나님이 우리를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고 계신다는 것이다.

 

1. 행 3:21과 계 21:1~5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최종적인 회복을 기다리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행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계21:1~5]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답: 창조주께서 만유를 완전히 회복시키실 것을 기쁨으로 바라본다. 주께서 회복하시는 일에 즐겨 순복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계시는 동안 마지막 때에 있을 최종적인 회복의 전조로서 인간을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일하셨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하나님이 마지막 때가 이르기까지 우리가 최대한 건강하기를 원하신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청지기들은 그들의 몸과 혼과 영을 위하여 건강한 생활방식을 증진시키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첫째, 우리의 정신은 더 많이 사용할수록 강해진다. 습관적으로 그대의 생각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빌 4:8)한 것으로 채우라. 그런 생각들은 평화를 가져오며(사 26:3),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잠 14:30)다. 건강한 사고 습관은 우리의 정신이 최상의 상태에서 작동하는 능력의 거점을 허용한다.

둘째, 운동이나 바른 식사와 같은 건강 습관은 스스로를 돌보는 길이다. 예를 들어 운동은 스트레스와 혈압을 낮추고 기분을 좋게 하며, 선반에 즐비한 노화방지 제품들보다 훌륭한 명약이다.

셋째, 청지기는 영혼에 활력을 불어넣는 좋은 습관을 기른다. 그대의 영혼을 들어 하나님께 향하고 그분을 바라라(시 86:4~5, 62:5). “네가 진리 안에서 행”(요삼 3)할 때 그대의 영혼은 건강해지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살전 5:23)될 것이다.

 

<부가설명> 거듭난다는 것은 회복의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 썩어질 씨로 태어난 존재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은 썩지 않을 씨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거듭나는 것이다.(벧전1:23) 원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썩지 않을 씨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뱀의 유혹을 받아들임으로 아담이 그 후손에게 끼칠 생명의 씨는 썩어질 씨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담 후손인 모든 인류는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자들이 되었고(롬8:21) 삶 자체가 썩어져가는 구습이 나타나게 되었다.(엡4:22) 예수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는 것인데 그것이 썩지 않을 씨로 나는 것이다. 회복이 되는 것이다. 이 썩지 않을 씨로 난 생명을 잘 유지해야 한다. 에덴동산의 시조를 공격한 사탄은 지금도 거듭난 사람들을 강력하게 공격하여 다시 사망으로 떨어지게 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거듭난 생명을 잘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온 영과 혼과 몸을 그리스도 예수님 강림하실 때까지 흠 없이 보존하라고 권고하셨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로 된다. 

 

교훈 : 우리는 재림과 부활의 날, 완전하게 회복될 때까지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을 최대한 온전하게 보존하며 더욱 건강한 생활방식을 선택하고 따라야 한다.

 

 

3월 22일(목) 절제하는 습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절제는 청지기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절제를 뜻하는 그리스어 ‘소프로니스모스’는 신약 성경에서 오직 여기에만 등장하는데 그 의미는 하나님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균형 잡히고 건전한 사고를 가지고 의무를 행하는 능력을 내포한다. 절제는 우리가 “선악을 분별하”(히 5:14)고 현 상황을 파악하며 결과와 상관없이 잠잠하고 온유한 방식으로 압력과 훼방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된다. 삼손이 극기나 건전한 판단력이 거의 없는 방종의 인생을 살았던 반면 다니엘은 사자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옳은 것을 추구했다. 솔로몬이 우상들을 섬겼던 반면(왕상 11:4~5) 요셉은 바로의 집에서도 옳은 일을 추구했다.

 

1. 고전 9:24~27을 읽어 보라. 여기서 바울은 절제에 대하여 뭐라고 말하는가? 그의 말에 따르면 절제의 모든 문제는 결국 무엇에 달려 있는가?

[고전9:24~27]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답: 상 주심을 바라보며 세상을 이기려는 정신이다. 

 

“세상은 방종에 빠져 있다. 오류와 우화(寓話)가 많으며 영혼을 멸망시키기 위한 사탄의 올무는 증가되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절제와 자제의 공과를 배워야 한다. 식욕과 정욕은 고상한 정신력에 복종되어야 한다. 이 자아 훈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해 줄 정신력과 영적 통찰력을 얻는 데 필수적이다”(시대의 소망, 101).

절제하는 능력은 습관과 실천을 통해 향상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벧전 1:15)며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 4:7)고 권유하신다.

하나님의 청지기들은 대부분의 뛰어난 운동선수나 연주자들만큼 연습과 훈련을 통하여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근면한 노력으로 정말 중요한 영역들 속에서 자신을 단련시켜야 한다.

 

<부가설명> 절제는 자동차의 제동장치와 같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차라도 브레이크가 망가지면 못 쓰게 된다. 영원을 향하여 생명의 길을 달리는 성도들도 제동장치가 확실해야 한다. 그것이 절제이다. 먹고 마시고 놀이하고 돈 쓰고 시간 보내고 사람을 만나고 TV를 보고, 이 모든 일은 절제가 필요하다. 하루에 수 시간을, 일주일에 여러 날을 운동과 오락으로 보내는 그리스도인은 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 테니스로 세월을 보내고 골프로 세월을 보내며 낚시로 날들을 보내는데 열중한다면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언제 가질 것인가? 그런 운동과 오락들이 좋은 것이겠지만 절제해야 한다. 규칙을 정하고 말씀과 기도에 결코 방해되지 않도록 즐겨야 한다. 말씀과 기도 자체가 즐거움이 되게 하고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기쁨이 되도록 습관을 길러야 한다. 우리는 사탄과 싸우는 전장(戰場)에 있다. 방심할 틈이 없다. 모든 일에 절제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승리를 지켜야 할 것이다. 성령의 열매를 계시하며 절제를 마지막에 말했다. 바로 제동장치라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절제하는 삶이 즐거우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 하나님의 청지기는 승리를 위해 모든 일에 절제하는 운동선수와 연주자들처럼 매일의 단련을 통해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유혹을 이길 힘을 길러야 한다.

 

 

3월 23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에녹과 노아는 부절제, 물질주의,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신실한 자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던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다(창 5:24, 6:9).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며 그들에게 위탁된 소유와 임무에 대하여 성실한 청지기들이었다.

시대를 걸쳐 에녹과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이교의 거짓 신앙 중에서 참 신앙의 대표자들로 서기 위하여 명료한 지력을 가져야 하며 그리스도인 성품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의 교사가 되셨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성실히 연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분과 접촉함으로 그들은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였다”(선지자와 왕, 486).

“하나님과 동행함” 즉 지상에서 매일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은 청지기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정의한다. 지혜로운 청지기는 타락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자신의 습관으로 삼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이런 연결만이 편만한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충실한 청지기의 삶은 따르는 일부터 시작하여 삶의 모든 문제를 포괄한다(암 3:3).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골 2:6), 새 생명 안에서(롬 6:4), 사랑으로(엡 5:2), 지혜롭게(골 4:5), 진리 안에서(시 86:11), 빛 가운데(요일 1:7), 성실하게(잠 19:1), 율법 안에서(출 16:4), 선한 일을 위하여(엡 2:10), 곧은길을 따라(잠 4:26) 행해야 한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겸손의 정의를 내리고 청지기의 삶에서 그것의 역할에 대해 설명해 보십시오(마 11:29, 엡 4:2, 빌 2:3, 약 4:10 참고).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겸손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미 6:8)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엡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약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미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겸손은 마음에 쉼을 주고, 서로 용납하게 하며, 남을 더 낫게 여기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정신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지 않으면 그분과 동행할 수 있겠는가?

  스바냐 선지자를 통하여 겸손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계시하셨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습2:3)

 

➋ 교회는 나쁜 습관에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 그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으로 권고하고 더 좋은 것을 보여서 그것을 습관이 되도록 도울 수 있지 않을까?

 

➌ 그리스도인 청지기에게 있어야 할 좋은 습관은 무엇일까요?(딛 2:7, 시 119:172, 마 5:8 참고)

[딛2:7]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시119:172]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할지니이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선한 일에 본이 되는 습관, 주님의 말씀을 노래하는 습관, 청결한 마음을 유지하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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