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과 청지기 직분의 역할(질문, 대답, 부가설명)0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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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03-06 12:22 조회9,314회 댓글0건본문
3월 10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34분
● 연구 범위 : 골 1:16~18, 히 4:14~16, 요삼 3, 창 6:13~18, 계 14:6~12, 벧전 1:15~16
● 기억절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살전 4:7).
청지기 직분을 공부하다 보면 그 주제가 워낙 깊고 넓다 보니 곁길로 빠지거나 큰 그림을 놓치기 쉽다. 청지기 직분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그래서 오해하기가 쉽다. 그럼에도 교회든 신자든 그것 없이는 존재하거나 역할을 다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선한 청지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론도 철학도 아닌 하나의 활동 계획이다. 그것은 진실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법칙이다.… 그것은 삶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필요하며, 진실하고 살아있는 신앙 경험에 필수적이다. 그것은 단순히 정신적인 동의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행위이자, 삶의 전반을 다루는 명확하고 결정적인 사무이다.”—LeRoy E. Froom, Stewardship in Its Larger Aspects (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Publishing Association, 1929), p. 5.
기독교 청지기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밝혀주는 핵심 교리는 무엇인가? 이번 주에 우리는 ‘병거 바퀴’라는 흥미로운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청지기 직분이 차지하는 역할을 좀 더 살펴보려고 한다.
학습목표
1. 깨닫기 : 청지기 직분의 목적과 역할을 이해한다.
2. 느끼기 : 성경의 위대한 진리들과 연결되어 있는 청지기 직분의 개념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느낀다.
3. 행하기 : 하나님의 은혜로 청지기 직분의 개념과 실천을 수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자신의 성품을 다듬기로 결심한다.
➋ 청지기 직분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 예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➌ 우리는 청지기의 삶에 주인의 성품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청지기는 주인의 마음을 가져야 신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➍ 그대는 예수님이 어떤 다양한 삶의 모본과 과제를 우리에게 주셨다고 생각합니까?
※ 생활 전체에 걸쳐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보여주셨다.
➎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요소가 현실과 부딪힐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을 나타내야 할까요?
※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
결론 :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도 자주 성경의 교리와 실제 신앙생활을 분리시키는 과오를 범합니다. 적어도 그 둘 사이의 관계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청지기 직분에 대해서 우리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자세를 고치고 하나님의 전체 계획을 따르는 청지기 또는 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3월 4일(일) 모든 것의 중심이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은 성경 전체에 걸쳐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시다(요 5:39). 그래서 우리는 그분과의 관계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봐야 한다. 그분은 죄의 대가를 치르시고 모든 사람의 대속물이 되셨다(막 10:45).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고(마 28:18) 만물이 그분의 수중 안에 있다(요 13:3). 그분의 이름은 다른 모든 이름보다 높아서 언젠가 모든 존재가 그분께 무릎을 꿇을 것이다(빌 2:9~11).
“예수님께서는 만물의 산 중심이 되신다”(복음전도, 186).
그리스도는 우리의 청지기 정신의 심장이시며 능력의 근원이시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심을 증명하면서 그분으로 인하여 살아갈 가치가 있는 인생을 창출한다. 바울은 많은 시련을 경험했지만 그가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에게는 삶의 한 가지 우선순위가 있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
1. 골 1:16~18, 롬 8:21, 고후 5:17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에 따르면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의 삶의 모든 면에서 중심이 되시는가?
[골1:16~18]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롬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답: 예수님은 우리의 창조주시며,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신 분이시며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의 존재와 삶의 근원이시다.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진정한 청지기가 될 수 없다(갈 2:20). 그분은 “복스러운 소망”(딛 2:13)의 중심이시며,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7). 바퀴의 중심에 축이 있어서 병거의 무게를 견디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청지기의 삶의 중심이시다. 견고한 축이 바퀴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중심이시다(히 13:8). 그분의 감화력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 청지기 정신의 모든 요소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회전한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청지기 정신의 중심에는 빈 공간이 아닌 살아 있는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그분은 우리의 성품을 다듬기 위해서 우리 안에서 지금부터 영원토록 일하신다.
<부가설명> 사람 각 개인은 존재 근거가 있다. 부모님이다. 부모님이 안계셨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생존할 수도 없다. 인간 자체의 존재 근거는 바로 창조주이시다. 그 창조주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로 사망으로 향하여 열심히 달리고 있는 현상일 뿐이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사는 것이 아니다. 죽은 사람일 뿐이다. 다만 죽음의 집행일이 각각 다를 뿐이다. 예수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않는 사람들이다.(요8:51) 호흡이 멈추어도 잠자고 있을 뿐이다. 이런 진정한 생명과 삶은 전적으로 예수님께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삶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청지기는 예수님의 지체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고 그분의 지체이기 때문에 그분과 떨어지면 삶이 끝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교훈 : 그리스도는 청지기들의 삶의 중심이 되신다. 그분은 우리가 청지기 정신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에게 안정적인 삶의 의미와 능력을 부여하신다.
3월 5일(월) 성소 교리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 4:14).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성소를 청지기의 문맥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 체계에서 성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청지기 직분도 그 체계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연관성이 존재한다. “하늘 성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봉사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된다”(복음전도, 221).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인 개념에 비추어 청지기 직분의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왕상 7:33을 보면 병거 바퀴가 등장한다. 우리는 성소 교리를 병거 바퀴의 중심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바퀴의 중심에는 축이 달려 있어서 바퀴가 회전할 때에 안정성을 제공한다.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을 경험하심으로(딤후 1:10) 그리스도께서는 성소 봉사의 토대가 되셨고(히 6:19~20) 우리의 신앙의 안정성을 제공하신다. 그분이 지상에 있는 우리를 위해 봉사하시는 곳은 성소이다(히 8:1~2 참고).
“성경을 따르는 재림 신학은 오직 성경이라는 원칙 위에 서서 성소 교리라는 종합적인 관점으로부터 그 교리적인 체계를 수립했다.”—Fernando Canale, Secular Adventism? Exploring the Link Between Lifestyle and Salvation (Lima: Peru, Peruvian Union University, 2013), pp. 104, 105.
1. 우리는 다음의 성경절들에서 예수님의 성소 봉사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요일 2:1, 히 4:14~16, 계 14:7)
[요일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히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계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답: 예수께서 대제사장의 봉사를 하늘에서 하시며 구하는 자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신다. 또한 심판의 봉사도 하신다.
성소 교리는 모든 기독교 신학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구원과 속량함이라는 위대한 진리를 드러낸다. 우리는 성소를 통해서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뿐 아니라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는 그분의 사역을 볼 수 있다. 또한 지성소를 통해서 하나님의 율법의 중요성과 최후의 심판의 실체를 바라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허락된 구원의 약속이 있다.
청지기 직분의 역할은 성소 교리에서 계시되었듯이 구원의 위대한 진리에 기초를 둔 삶을 반영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으며 지금 우리 안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더 깊이 이해할수록 우리는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다가가며, 그분의 사역과 사명과 교훈 그리고 청지기 직분의 원칙을 따라 사는 자들을 위한 그분의 의도에 더 가깝게 다가간다.
<부가설명> 성소는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종합적으로 가르쳐주는 계시이다. 그것은 임마누엘 되시는 예수님의 구원봉사 사역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救贖)하기 위하여 십자가와 부활과 대제사장의 봉사를 수행하신다. 십자가가 없으면 속죄하는 피가 없고 부활이 없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생명의 능력이 없고 대제사장의 봉사가 없으면 피와 부활을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것은 구원사업을 완성시키는 봉사이다. 이 봉사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모든 봉사가 종합적으로 적용되는 봉사이다. 이 봉사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바른 관계로 엮이게 되고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가지로 붙어 있게 된다. 모든 교인들은 예수님의 봉사로 인하여 예수님을 중심축으로 한 바퀴의 살들이고 바퀴 가장자리들이다. 이 축에서 떨어지는 것은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다. 바퀴에 부분으로 붙어있어서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청지기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다.
교훈 : 성소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봉사를 통해 제공되는 용서와 속량함을 보여준다. 그분의 희생과 봉사는 청지기 정신의 핵심이다.
3월 6일(화)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는 교리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요삼 3).
성소가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서 위대한 구원의 진리가 매우 인상 깊게 표현되었으며 십자가의 의미가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교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의 약속과 구원에 연결되어야 한다. 바퀴의 살과 같이 다른 교리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위대한 진리에서 비롯된다.
“죄를 속하기 위한 속죄 제물로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은 큰 진리이며, 그 진리를 중심으로 그 둘레에 모든 다른 진리들이 모여 있다.… 구속주의 놀라운 희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은혜와 지식 가운데서 자라날 것이다”(화잇주석, 요 12:32).
1. 요 14:6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인가? 요 17:17과 비교해 보라. 우리는 그 진리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요삼 3)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답: 예수님이 신자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능력이시며 이 진리대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교리적인 신념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교리는 단순히 추상적인 신학 사상이 아니다. 모든 진실한 교리는 그리스도에 기초해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사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은 그 무엇보다 우리의 교리적인 가르침에 근거를 둔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성경으로부터 알게 된 그 가르침들이 우리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되게 한다.
청지기 직분의 역할이란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듯이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따라 살되 삶의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1~24).
위의 말씀에서 우리는 진리를 알 뿐 아니라 그것에 따라 사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발견한다. 청지기가 된다는 것은 그 교리들이 얼마나 진실하든지에 상관없이 단순히 그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청지기가 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러한 진리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가설명> 교리는 어떤 종교의 신앙원리를 그 종교의 경전에 근거하여 신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정리 설명한 것이다. 성경의 종교는 성경에 근거하여 신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정리 설명한 것이다. 교리가 잘못되면 신앙이 잘못 된다. 성경종교의 교리는 철저히 오직 성경에 기초되어 있어야 한다. 성경에 없는 것을 교리로 가르치고 그것을 따라 신앙생활 하라고 하면 그것은 그 성경이 가르치는 순수한 신앙이 안 된다. 그것은 변질된 신앙이고 거짓 교리를 믿는 신앙이 된다. 교리가 철저히 성경적이지 않으면 그 신앙이 바로 성경적인 신앙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은 진리신데 그 진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100% 계시되어 있다. 그래서 성경은 성경말씀에 가감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것은 진리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청지기는 오직 진리의 말씀 안에서 충성해야 한다.
교훈 : 청지기 직분의 역할은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따라 살되 삶의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리를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3월 7일(수) 세 천사의 기별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 14:6).
단 두 번의 경우에만 하나님이 전 세계에 닥칠 재난을 경고하셨다. 한 번은 노아에게(창 6:13~18, 마 24:37)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세 천사의 기별을 통해서 그렇게 하셨다(계 14:6~12). 세 천사의 기별은 휘장을 열어 미래 세계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서 독특한 시각을 계시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기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깊어졌다. 그러나 그 기별과 사명의 내용은 “참된 셋째 천사의 기별”(복음전도, 190)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세상에 선포하도록 하신 기별의 중심에는 예수님과 그분이 우리를 위해 치르신 큰 희생이 자리 잡고 있다.
1. 계 14:6~12을 읽어 보라. 이 기별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에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기별에 대하여 우리에게 지워져 있는 책임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청지기 직분과 조화되는가?
[계14:6~12]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이 기별은 심판에 대한 경고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핵심으로 계시한다. 재림성도들은 이것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서 우리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면서 세 천사의 기별에 나타난 진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영원의 문제에 대해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청지기 직분의 역할은 선교의 분야에서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다(고후 5:20, 6:1~4).
“특별한 의미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파수꾼이요 빛의 전달자로 세상에 세워졌다. 그들에게는 멸망해 가는 세상에 전할 마지막 경고가 위탁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들에게 놀라운 빛이 비치고 있다. 가장 엄숙하고 중대한 사업, 첫째와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는 사업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업은 없다. 다른 어떤 것도 그들의 주의를 빼앗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교회증언 9권, 19).
바퀴의 테는 지면과 닿는 지점과 가깝기 때문에 세 천사의 기별에 나타난 사명을 상징한다. 그 사명이란 신학적인 표류를 방지하고 종말의 사건이 벌어지는 때에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별에 대한 청지기로서 세상에 그것을 전할 사명이 있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의 청지기는 재정관리만이 아니고 진리와 복음관리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이것이 청지기 직무에 해당된다는 것은 예수께서 비유 중에 말씀 하셨다. 마태복음 13장에 일곱 비유를 하신 후에 결론적으로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마13:52)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구약과 신약의 창고에서 진리를 끄집어내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직접 제자 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전하는 서기관의 직무를 잘 수행하였다. 그것이 오늘날 제자들에게는 창고가 되었다. 재림신자들은 이 옛 창고와 새 창고인 구약과 신약성경에서 진리를 깨달아서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한다. 전파만 할 것이 아니라 깨닫도록 돕는 것도 해야 한다. 재정 청지기도 진리의 복음 청지기의 직무를 활성화하도록 돕는 청지기들이다, 모든 재림신자들은 각각 자기 분야에서 신실한 청지기의 직무를 수행하면 복음이 속히 온 세상에 증거 될 것이다.
교훈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마지막 시대에 인류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도록 온 세상에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위탁 받았다.
3월 8일(목) 청지기 직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 그분의 생애는 ‘거룩함’이 무엇인지, 궁극적인 청지기 직분은 어떤 모습일지를 예증했다(히 9:14).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삶을 관리해야 한다. 거기에는 우리에게 위탁된 모든 것을 관리하는 방법도 포함된다. 청지기 직분은 그러한 거룩함의 표현 방식이다.
1. 벧전 1:15~16을 히 12:14과 비교해 보라. ‘거룩하게 됨’ 또는 ‘거룩함’은 어떤 의미인가? 이것은 우리의 청지기 직분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벧전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히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답: 거룩함은 하나님의 영역에 참여하는 것이다. 청지기 직분은 하나님의 영역을 확장하는 거룩한 직무이다.
로마 사람들은 병거 바퀴틀에 쇠로 만든 띠를 두르면 바퀴가 오래 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술자들은 철을 달궈서 늘린 다음 그것을 바퀴에 씌웠다. 그리고 단단히 고정되도록 차가운 물로 수축시켰다. 그래서 바퀴가 돌 때에 그 철 띠가 땅에 닿게 했다.
바퀴틀의 그 철 띠는 청지기 직분의 개념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진리가 밝혀지는 지점이며 거기서 우리의 영적인 삶과 우리의 실제적인 삶이 마찰을 일으킨다. 거기서 우리의 믿음이 성공과 실패로 굴곡진 우리의 삶과 만난다. 청지기 직분은 우리의 정체와 행위를 감싸는 외부 포장재이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와 잘 관리된 인생의 증인이다.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매일의 행위들은 길에 닿는 바퀴의 쇠와 같다.
행위는 강력한 힘이 있으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헌신에 따라 조절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확신과 약속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심령의 성화는 그리스도의 본성을 사람 속에 심는 것이다. 복음에 대한 신앙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활 속에 거하시는 것이며 곧 살아 움직이는 원칙을 말한다”(실물교훈, 384).
<부가설명> 왕상 7:33은 솔로몬의 성전 기구 중에 물을 닮는 물통 큰 것을 놋 바다라고 했는데 그것을 올려놓는 받침대를 바퀴모양으로 만든 것을 기록한 것이다. 바퀴는 축이 없으면 만들 수 없다. 축이 있고 가장자리까지 이어주는 살이 있고 가장자리에 바퀴살에 대고 구를 수 있도록 만들고 거기 쇠를 입혀서 굴러가게 한다. 이것을 지탱하는 것이 바퀴축이다. 이 축을 중심으로 바퀴는 땅에 닿아서 굴러간다. 청지기는 이 땅에 당하서 구르는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축은 예수님이고 바퀴살들은 진리의 말씀으로 구성된 교리이고 성도들은 땅에 닿는 바퀴의 가장자리이다. 바퀴살이 부러지면 바퀴가 굴러갈 수 없다. 바퀴살이 굽으면 바퀴가 제대로 구르지 못한다. 교리가 바르지 못하면 신자의 생활이 바르게 될 수 없다. 성전 물두멍을 받치는 받침을 바퀴모양으로 만든 것은 의미가 있는 것 가다. 정결은 곧 성결을 뜻한다. 성결은 거룩함이다. 거룩한 삶은 예수님을 중심해서 바르고 거룩한 말씀의 교리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이렇게 될 때에 세 천사의 기별이 바르게 전파된다. 청지기들로서 예수님께 단단히 붙어있고 바른 진리의 교리에 붙어서 바른 기별을 전파하는 신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하겠다.
교훈 : 청지기 직분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믿음의 요소가 현실과 부딪힐 때 거룩한 행실로 나타나는 우리의 외적인 모습이다.
3월 9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종종 노면에 부딪히는 쇠가 늘어나면 병거 바퀴의 철 띠를 다시 장착해야 했다. 철 띠의 재장착에는 수많은 망치질이 필요했다. 이러한 철 띠의 재장착은 실질적인 성화로서의 청지기 직분을 상징한다. 그것은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모든 크고 작은 삶의 측면들에 반응할 때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두세 가지만 예로 든다면 그 과정에 우리의 돈과 가족 관계, 직업이 포함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뜻 안에서 반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고난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쇠를 재장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성품을 제자리로 옮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베드로의 경험을 생각해 보라. 그는 예수님과 어디든지 함께 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입술에서 이런 말씀이 나올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 오래지 않아 예수님을 부인한 뒤에 베드로의 삶은 변화되었다. 단지 그 변화는 매우 고통스럽고 괴로운 경험 뒤에 이르러 왔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청지기 직분이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베드로는 회심하였고 그의 삶은 새로운 방향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단지 심각한 타격을 입은 뒤에 그럴 수 있었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실제적인 성화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눅 9:23)라는 예수님의 명령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무엇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갈 6:14) 이것을 통해 우리는 성화의 과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실제적인 성화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요?(고전 2:16)
※ 육에 속한 자아가 죽지 않으면 거룩하게 될 수 없다.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어야 하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새 사람이 부활해야 한다. 그것이 거룩함이다. 거듭나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예수님처럼 생각하게 된다.(빌2:5, 고전2:16)
➋ 그대는 어떤 고난을 통해서 주님을 따르는 삶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배웠습니까? 편하게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다면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 각각 이야기해보자. 타인의 경험에서 예수님이 그에게 행한 일을 듣고 나도 예수님을 경험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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