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1과 결말(9월 30일 교과묵상/일~금 매일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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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6-09-25 09:50 조회2,893회 댓글0건첨부파일
- 1과 통합-20160930.hwp (32.5K) 176회 다운로드 DATE : 2016-09-30 1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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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금) 1과 '결말' 전체 요약
신앙생활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 앞에 서게 될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욥’을 떠올립니다. 인생의 수렁에서 다시 정점으로 회복된 욥의 이야기는 고난을 겪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행복한 결말처럼 보이는 욥의 이야기에도 아픔은 존재합니다. 욥기 역시 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피엔딩’ 이라고 부르는 많은 동화의 결론을 들으면서도 우리는 가끔 ‘정말 그들은 끝까지 행복했을까?’라는 질문 앞에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아간 인생의 결국 또한 ‘죽음’이라는 비극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해피엔딩’으로 꼽히는 욥기의 주인공인 ‘욥’의 생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욥이 회복된 후에 이전보다 두 배 많은 재산과, 아리따운 딸들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누렸지만, 결국 140년 이후에 “늙어 나이가 차서 죽”(욥 42:17)었다고 기록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다윗의 죽음을 묘사할 때에도 사용된 이러한 표현은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불행을 맞았을 때, 비교적 행복한 처지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줄 뿐, ‘죽음’이라는 불행이 그를 비켜간 것은 아니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가 하나님 안에서 경험한 궁극적인 소망이 아니었다면, 그의 인생은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형인 가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아벨, 자신의 아내를 취하고 증거를 감추려 한 다윗에 의해 전장의 맨 앞에 서게 되어 억울하게 죽어간 우리야, 자신의 두 아들이 죽고 하나님의 궤가 적들의 손에 넘어갔다는 비보를 접하고 의자에서 넘어져 죽은 엘리, 신실한 왕이었으나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애굽을 대적하다가 전장에서 화살에 맞아 죽게 된 요시야 왕,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자였으나 헤롯에 의해 목이 잘리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 침례 요한, 최초로 순교자의 피를 뿌린 스데반까지, ‘나이가 차서’ 죽은 욥의 죽음이 차라리 행복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성경은 비극적인 모습으로 인생을 마무리한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자체가 이런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불행한 결말을 맞은 사람은 구원의 가능성 없이 그들의 인생을 마무리하게 된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곤경을 돌이키’(욥 42:10)셨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것들과 답을 얻지 못한 문제들이 남아 있었던 인생이 바로 욥의 인생이었습니다. 많은 것들이 회복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그도 ‘죽음’이라는 운명을 거스르진 못했고,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에게 임한 모든 재앙의 배후와 원인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다시 자녀들을 얻긴 하였으나 잃은 자녀들에 대한 슬픔과 비애는 새로운 자녀들로 완벽하게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그에게 남겼던 것입니다. 욥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이 땅에서 우리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고통에서 놓임 받는 회복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것은 부분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오직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 그분을 통해 주어질 온전하고 완벽한 회복만이 이러한 문제의 영원한 답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기록일 뿐만 아니라, 다가올 종말의 때에 대한 기록입니다. 비록 그 기별들이 전쟁과 심판, 재앙과 같은 파괴적인 언어로 묘사되어 있어 때로 공포와 두려움을 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별(종말론)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수립될 것이고, 그곳이 구원받은 자들이 영원히 거할 거처가 될 것이라는 소망을 성도들에게 제공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죽음이 욥의 인생의 결론이 될 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결코 그들의 영원한 결론이 될 수 없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가 ‘죽음 이후의 세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말론’의 또 다른 이름이 ‘희망의 선물’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욥은 스스로 던진 죽음에 대한 질문 앞에서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욥 14:14~15). 이러한 ‘자문자답(自問自答)’은 그가 다가올 부활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간절히 희망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 ‘부활 교리’가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확증되었기 때문에 그가 부활의 원리와 실제에 대해 완벽한 이해에 도달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는 분명히 이 ‘부활’을 깨닫고 소망한 사람이었고, 이 소망을 가지고 잠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대한 기록이 ‘죽음’으로 마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에 대해 ‘해피엔딩’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욥이 가졌던 이 소망은 모든 인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 소망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혹 그들이 이 땅에서 죽음을 맛본다 하더라도 부활의 약속을 가진 ‘행복한 결말’을 맞은 사람들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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