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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예수님은 그들의 신뢰를 얻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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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6-08-27 06:40 조회7,1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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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안식일 

일몰 : 오후 6시 58분 

 

기억절: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눅 5:15). 

 

연구 범위 : 창 15:6,
민 14:11, 고전 3:1~9, 단 6:1~3, 느 2:1~9, 신 4:1~9, 행 2:42~47 

 

어느 재림교회는 수년 동안 지역의 공립 초등학교에서 일주일 중 5일 동안 무료로 아침식사를 제공했다. 그 나라는 매우 세속적인 곳이지만 각 공립학교가 교목을 둘 수 있는 충분한 예산을 제공하도록 허용하는 법이 있었다. 그래서 그 학교와 지역 사회는 그 교회가 교목을 파견해 주기를 바랐다. 단일 교회에 이런 일을 요청하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이다. 교목의 역할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교 주변의 지역사회의 육체적, 정서적, 영적인 필요를 보살피는 것이다. 놀라운 기회가 주어졌다. 

그 학교의 교장은 학교를 방문한 그 교회의 목사에게 "목사님의 교회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게 되어서 기쁩니다. 다른 교회들도 목사님의 교회가 봉사하는 일에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목사가 떠나려고 할 때에 그 학교의 지역 연락 책임자가 그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안식일에 교회에 참석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우리가 섬기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기 전에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봉사로부터 기쁨을 느낀다.


➌ 행하기 : 사람들과 섞이고 동정하며 필요를 위해 봉사하고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로 한다. 

 

A.

❶ 그대가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신임을 얻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언행일치

❷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신뢰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주장과 실천이 일치하는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❸ 왜 우리는 외부에 비치는 모습만큼 내부에서도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할까요?


※ 안에서 새는 쪽박 밖에서도 새기 때문이다. 

❹ 우리 교회가 지역 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가장 노력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 교회가 지역사회에 귀하고 복된 존재로 알려지게 하는 것이다. 

 

B.

❷ 화요일과 수요일 교과에서 말하는 '사회적 자본'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 지역사회가 교회 사업에 긍정적으로 도울 수 있는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이다. 

❸ 행 2장의 교회는 어떻게 사람들의 칭찬을 들어가며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뜨거운 사랑의 연합으로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❹ 우리가 행 2장의 교회처럼 되려면 무엇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 지역사회에 사랑으로 연합된 모습으로 필요에 부응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결론 : 우리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신뢰를 얻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사람들과 섞여 그들을 동정 하고 그들의 필요를 위해 봉사하면서 우리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단 우리는 이런 일을 의무감이 아니라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첫째 날(일) 8월 28일 신뢰를 얻기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사 7:9). 

 

예수님은 사람들의 유익을 바라고 동정하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봉사하신 후에 그들의 신뢰를 얻으셨다. 신뢰라는 뜻의 영어 'confidence(컨피던스)'는 '함께'라는 뜻의 라틴어 'con(콘)'과 '믿음'이라는 뜻의 'fide(피데)'의 합성어에서 유래했다. 성경에서는 믿음이라는 의미와 관련하여 몇 개의 단어가 사용된다. 

히브리어로 '믿음'을 가리키는 어근은 '아만(amn)'이다. '아멘'이란 말도 이 어근에서 유래했다. 그 말의 기본적인 개념은 꾸준함, 지속성, 신뢰성이다. 이 말은 누군가를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단단하고 견고한 어떤 특징을 암시한다.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문맥에서 그것은 자주 '믿는다'라는 의미로 번역되며 때로 '진리'를 의미하는 형태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신뢰를 얻으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보면 그 의미는 '변하지 않는', '굳은' 헌신을 볼 때 일어나는 종류의 신뢰심을 말한다. 예수님이 사람들과 어울리시고 그들을 동정하시 고 섬기셨을 때에 그런 신뢰심이 생겼다. 

 

1. '아만(amn)'을 어근으로 하는 단어들이 등장하는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어 보라(창 15:6, 민 14:11, 사 7:9, 합 2:4). 그 말은 각 절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 신뢰라는 개념을 전달하고 있는가?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신뢰라는 뜻으로 사용함

[민14: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 신뢰라는 뜻인데 이 구절에서는 신뢰하지 않는 것을 지적함

[사7:9]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육십오 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 신뢰하는 뜻, 이 구절에서도 신뢰하지 않을 때의 결과를 나타낸다.

[합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의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다.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어 '아만(amn)'의 개념을 담기 위해 사용된 그리스어는 '피스티스(pistis)'이다. 이 말은 믿음, 신뢰, 절대적인 확실성, 신뢰성, 확신을 의미한다. 사람의 신뢰를 얻으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보면 그 말은 사람들과 섞여서 그들을 동정하고 섬기셨던 예수님의 이타적인 헌신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는 절대적인 확실성, 확신, 신뢰와 믿음을 의미한다. 

이런 신뢰가 하나님께 기인했을 때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이러한 신뢰의 개념이 인간에게 기인할 때마다 부정적인 의미(자기 확신이나 내적 확신처럼)를 내포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미 7:5, 시 118:9 참 고). 여기서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사람들과 섞이고 그들을 동정하며 그들의 필요에 따라 봉사하셨던 그분의 모본을 실천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신뢰심을 나타낼 때에 우리는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이 그들을 위해 하신 일에 주목하게 해야 한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신뢰를 얻으신 것은 그분의 가르침과 행함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언행이 일치 하지 않으면 신뢰를 얻지 못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사회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들이 공언하는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이 공언하는 신앙고백과 교리는 가장 고상한 윤리와 도덕적 성취를 지향한다. 그러나 신자들이 생활은 사회에서 비신자들과 거의 동일한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방인이나 세리보다 더 하는 것이’(마5:46,47)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신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오죽하면 한국에서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모욕하겠는가. 재림신자들은 이런 상태에서 멀리 벗어나서 공언하는 신앙고백과 실생활이 일치가 되어서 예수께서 신뢰를 받으셨던 것처럼 신뢰받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진정한 신뢰란 변하지 않는 헌신을 볼 때 일어나는 감정을 의미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신뢰하는 감정이 일어나도록 봉사해야 한다. 

 

 

둘째 날(월) 8월 29일 주의 깊은 균형

 

한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지금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급성장하고 있다. 비결은 무엇일까? 교회 지도자들은 재림교회 신자들이 전국적으로 지역 사회에 펼치고 있는 이타적이고 무조건적인 봉사가 이러한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진술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심은 그 나라의 대통령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큰 규모의 한 재림교회 지역사회봉사 집회에 참석하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신자들의 봉사에 대하여 개인적인 감사를 표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표자로서 경계를 넘나드는 일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 대한 그들의 신뢰심이 예수님께 향하도록 안내해야 한다. 우리는 전달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우리 안에서 이타심, 사랑, 돌봄, 타인의 유익을 위한 자기부인 같은 그리스도의 속성을 본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끌린다. 물론 그들이 우리를 유심히 살펴본다면 우리도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이 좋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예수님을 주목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곧 실망을 줄 수밖에 없다. 

 

1. 고전 3:1~9, 5:1을 읽어 보라. 바울은 이 교회 내부의 어떤 문제를 다루고 있는가? 이 교회 신자들로부터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바울이 언급하는 문제를 본다면 어떤 반응이 나오겠는가? 

[고전3:1~9]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답: 분파가 생겨서 서로 분쟁하고 있었고 생각도 못할 음행이 있었다. 외부인들이 교회에 와서 이런 모습을 보면 일반인보다 못한 도덕성을 보고 교회를 멸시할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봉사를 실천하기 위해서 꼭 완벽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 예수님처럼 성실하고 열심히 사람들을 보살펴야만 그렇게 될 수 있다. 신자들이 지역 사회의 필요를 위해 봉사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일에 전력한다면 교회 내부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툼과 갈등들은 신속히 사라질 것이다. 

 

<부가설명> 교회 내부의 윤리와 도덕성 문제는 교회를 대외적으로 드러내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 한다. 봉사하고 희생해도 성경적 원칙에 일치하게 봉사하고 희생해야 한다. 봉사와 희생을 내세우면서 성경의 원칙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이미 성경의 교회는 아니다. 원칙을 실천하는 것이 봉사와 희생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그러지게 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5:30)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봉사하고 희생하고 섬기셨다. 자기 뜻대로 한 것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한 것은 곧 하나님 아버지가 한 것이었다. 교회도 동일하다. 교회가 하는 것이 곧 예수께서 하신 것이 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 굳게 서서 사랑을 베풀고 봉사하고 희생하며 지역사회에 예수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어야 한다. 

 

교훈 : 우리는 대외적으로 지역 사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봉사해야 하지만 대내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셋째 날(화) 8월 30일 사회적 자본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잠 22:1). 

 

1. 위의 말씀은 우리의 지역 사회 봉사와 선교활동에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답: 교회의 품위를 예수님의 품위답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교인들이 활동할 때 예수님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이란 무엇인가? 그대가 은행계좌에 돈을 넣어두면 그 가치가 커지는 것처럼 사회적 자본이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관계를 키워가는 것이다. 지역 지도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역의 필요를 묻고 이런 필요를 충족시키는 사역에 무엇이 필요한지 조언을 구하면서 사역을 실행할 때 그대는 그들과 관계를 쌓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적 자본이다. 매번 그들과 함께하며 쌓아가는 긍정적인 경험들은 관계라는 분야에 대한 투자와 같다. 그대의 사회적 자본이 계속 성장하면 그들의 눈에 그대의 가치는 높아진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는 데 있어서 훌륭한 시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우리는 가능한 한 사회 질서와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우리의 봉사와 재정으로 필요한 노력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공정하고 올바른 일을 위하여 타협하지 않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교회요람 (한국연합회, 2012), 189. 

성경은 예수님의 지상 봉사와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회적 자본'을 획득했을 때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여러 예들을 소개한다. 

 

2.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고 이 성경 인물들이 이방인들과 나눈 긍정적인 관계와 그 결과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묘사해 보라. 

[행7:9~10] "...바로가 그(요셉)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창41:38~45]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단2:46~49]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단6:1~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답: 여기 나온 인물들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고결하고 믿을만하고 지혜가 있고 정직한 성품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신임을 얻었고 하나님을 위하여 큰 일들을 이루었다. 

 

물론 우리에게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처럼 극적인 구원의 경험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성품의 힘을 보여주었다. 엘렌 G. 화잇은 <부조와 선지자>, 217, 218, 221 쪽 그리고 <선지자와 왕>, 628쪽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방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덕목으로 관대함, 충직함, 지혜로움, 건전한 판단력, 재능들, 고결한 품위, 변함없는 진실성을 꼽았다. 

 

<부가설명> 교회는 교과저자가 말한 대로 사회적 자본이 많으면 좋다. 그런데 특히 한국 재림교회는 사회적 자본이 아주 꽉 막힌 상태이다. 일반 개신교에서 이단이라고 워낙 강하게 방어를 해 놓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사회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주 5일 노동제를 실시한 세월이 오래지 않고 그렇게 해도 모든 제도는 모든 분야에서 안식일을 자유롭게 지킬 수 있는 상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교회는 사회적 자본을 늘릴 방법을 잘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럴지라도 언제나 원칙을 양보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한국 재림교회는 사회적 자산이 너무 빈약한 것 같다. 교단차원에서 이 문제를 많이 생각하고 이단이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사회적 자산이 당장 풍부해지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예수님 정신을 잘 발휘하면 그 지역에서 사회적 자산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교과 저자가 지적한 대로 교회가 “관대함, 충직함, 지혜로움, 건전한 판단력, 재능들, 고결한 품위, 변함없는 진실성”을 일상에서 잘 나타내면 사회적 상황으로서가 아닐지라도 개인적으로 진리를 접촉할 기회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교훈 :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성품의 힘이 필요하다. 그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쌓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은 긍정적인 결실을 가져올 것이다. 

 

 

넷째 날(수) 8월 31일 사회적 자본의 가치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느 2:4). 

 

교회는 대부분 제한된 예산으로 운영되는 자원봉사 단체이다. 사회적 자본은 그대의 교회가 중요한 목표에 도달할 기회를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일부 나라에서 농부들이 다른 농부들의 추수를 돕는 오랜 풍습은 사회적 자본의 한 예이다. 즉 우리는 각 상황을 그 자체로 봐야 하지만 가능하다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수도 있다. 

 

1. 느 2:1~9을 읽어 보라.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에 대하여 갖게 된 신뢰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느2:1~9]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 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5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6 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9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답: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는 허락을 받았고 거기 필요한 목재를 얻고 군대를 동원하는 도움을 받았다. 

 

"그는 그에게 부속되는 재물을 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간청하였다. 주께서는 진리의 사업을 위하여 당신의 재물을 소유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를 기뻐하신다. 주를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은 주께서 사람들을 격려해서 주게 하시는 도움을 이용하여야 한다.... 선물을 보낸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도 없고 당신의 말씀도 잘 알지 못할지 모르나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선물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선지자와 왕, 634). 

놀랍게도 이 경우에 하나님은 이교도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그분의 사업의 진척을 돕도록 하셨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나라에 유익하다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도 기꺼이 함께 일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맺는 동맹에 항상 주의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가 지역사회의 유익을 위해 하려는 일에 크게 보탬이나 조언을 주는 이들과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협력해야 한다. 때로 인도주의적인 사업에 감동을 받은 정부, 자영업자, 개인들이 우리를 후원한다. 그런데 이런 후원은 그냥 수용해서도 그냥 거절해서도 안 된다. 대신 결정을 내리기 전에 조언과 권면을 듣고 각각의 경우를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부가설명> 명분이 뚜렷하고 성경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은 도움은 누구에게서도 받을 수 있다. 교회가 하는 수확운동이 그런 종류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확은 씨를 뿌리고 가꾸어서 자란 다음에 있는 결과들이다. 이렇게 사회자본을 교회로 들어오게 하는 데는 교회가 씨를 뿌리고 가꾸고 자라는 과정에서 봉사와 희생을 나타내어야 한다. 이런 것 없이 수확을 할 수 없다. 느헤미야는 왕의 신임을 얻으므로 왕을 사회적 자봄으로 삼을 수 있었다. 신자들이 사회에 섞일 때에 느헤미야나 다니엘과 같은 신임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와 소속된 신도들이 서로 협력해서 이 일을 이루는데 중지(衆智)를 모아야 할 것이다. 쉽지 않다. 재림교회가 대체적으로 고립적이고 오래된 재림신자들도 대체적으로 고립적이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대체적으로 고립적이다. 개인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과 팀을 이루어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사귀고 신임을 얻고 진리를 전하는 사회적 자본을 확보할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교훈 : 사회적 자본의 결실은 종종 비신자들의 후원으로 이어진다. 신중한 결정을 전제로 우리는 인도주의적 사업을 위해 모든 사람과 협력할 수 있다.

 

 

다섯째 날(목) 9월 1일 온 백성의 칭송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신 4:6).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많은 빛을 받은 복된 자들이다. 이 빛이란 십자가, 성소, 죽은 자들의 상태, 안식일, 대쟁투와 같은 신학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들도 그 자체로 큰 복이지만, 특별히 건강과 치유에 관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빛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분명히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야 할 것이 많다. 

사실 건강 기별은 우리로 하여금 지역 사회에 다가서게 하는 효과적인 접촉점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신조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건강에는 관심을 갖는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미 보았듯이 예수님은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고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고 하신다(눅 12:48). 우리에게 많은 것들이 주어졌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1. 신 4:1~9을 읽어 보라. 당시에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그분이 명령하신 것들을 모두 순종해야 한다는 여호와의 말씀을 포함하여 여기에서 설명하고 있는 원칙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신4:1~9]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3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을 인하여 행하신 바를 너희가 목도하였거니와 바알브올을 좇은 모든 사람을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에서 진멸하셨으되 4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5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로 들어가서 기업으로 얻을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6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답: 하나님의 명령을 모두 순종하여 실행하라는 명령과 아울러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것을 알게 하라는 것이고 그들이 이것을 확실히 보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칭찬하고 부러워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몇 해 전에 어느 재림교회가 이런 질문에 빠졌다. 만약 우리 교회가 어느 날 밤에 사라진다면 우리 지역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워할까? 대답은 간단했다. 그들은 찾지 않을 것이었다. 그 지역사회는 그들에 대한 신뢰심이 없었다. 

그 대답에 실망한 그들은 담을 쌓는 대신 다리를 놓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아는 진리를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조직들과 협력하여 일했다. 그들은 일회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역 사회에 큰 유익을 주는 지속적인 사업을 운영하면서 꾸준하게 이런 조직들과 관계를 맺었다. 당연히 교회에 대한 지역 사회의 태도는 금세 바뀌었다. 

 

<부가설명> 한국의 재림교회는 생리가 폐쇄적인 것 같다. 지역사회에 드러나는 봉사를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회당을 짓는 것을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고 기관이 들어서려고 하니 못 들어오게 힘을 다해 막으려고 하니 교회가 사회와 국가에 그만큼 부정적인 인상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군대에서 안식일 성수하는 문제, 집총 문제 국가 제도가 신앙생활고 부딪히니 그것을 해결하려고 할 때 당국자들이 귀찮게 여기는 것, 학교도 학군과 관계없이 학생들을 모집하려고 하나 교육청과 충돌 되는 문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의 세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환하게 비치는 빛으로 드러나 모든 사람들이 빛으로 오기를 원하도록 드러나야 하는데 사회적 여건과 충돌되는 사항이 많다보니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 그럴지라도 각 교회가 있는 지역에서 지역사회에 좋은 인상을 주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각 교회가 위치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것은 교육청 문제도 아니고 군대 문제도 아니고 안식일 성수 문제도 아니다. 봉사의 영역을 찾아서 봉사하는 교회가 되도록 운영하면서 이 백성들은 참으로 지혜가 있는 무언가 배울 것이 있고 유익이 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라는 인상을 심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말하기는 쉽다.

 

교훈 : 우리는 받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진실한 신앙과 선한 행실로 감화를 주는 교회는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면서 성장한다. 

 

 

여섯째 날(금) 9월 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막 5:18~20, 눅 8:38~39, 행 5:12~16을 읽어 보라. <치료봉사>, 17~18 "우리의 모본", <가려 뽑은 기별>, 3권, 236~240(특히 238~239) "예모의 은혜", <시대의 소망>, 511~517 "아이들을 축복하심"을 읽어 보라. 

 

그대의 교회가 지역 사회의 유익을 위해 다른 교회나 조직과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단 그대의 교회는 지역 사회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느 수준까지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어 일할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지역 사회, 심지어 다른 교회들에게 신뢰심을 쌓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교회와 지역사회 사이에 상호 신뢰감이 형성되면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발판이 놓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업은 결실이 없지 않을 것이며, 또한 없을 수도 없"(치료봉사, 144)기 때문이다.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접촉하여 그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려는 단순한 행위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고 앞으로 받게 될 것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우리가 지역사회와 좋은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는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요? 우리는 매우 대조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입장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 우리의 진리를 세상이 좋아하지 않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세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속에 두고 봉사를 겉에 두어서 봉사로 접촉해서 진리를 만나도록 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셔서 사람을 만나시고 사람이 사람 예수를 만나서 친교하다보니까 하나님 예수를 만나게 하셨다. 교회도 이와 같은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➋ 교과반에서 진정한 믿음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토의해 보십시오. 즉 우리가 진실로 구원하는 믿음을 가졌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 생각과 말과 감정과 태도가 예수님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➌ 우리 신자가 아닌 이들의 후원 문제는 우리가 신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수요일 교과에서 보았듯이 엘렌 G. 화잇은 심지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후원을 받는 것에도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치료봉사> 340쪽에서 주류사업자로부터 돈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아무리 명분이 좋을지라도 우리가 다른 이들의 후원과 협력에 관하여 어떻게 옳고 그름을 분별해야 할까요? 

※ 성경적 원칙에 합당한 범위에서 후원을 받아야 한다.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신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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