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기 제 1 과 결 말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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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6-09-26 13:42 조회3,747회 댓글1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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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 1 과 결 말
기억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
첫째 날(일) 그 후로 행복했다?
*도입질문: 욥기의 결말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욥기의 결말은 결국은 죽음으로 끝마칩니다. 모든 것이 다 회복되었지만 욥은 결국은 죽었습니다. 욥이 죽었다는 사실만 보면 좀 불행한 듯 보이지만, 욥도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들의 운명대로 욥도 같은 모습으로 끝을 맺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욥의 죽음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불행하지 않은 이유는 욥이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새롭게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된 믿음 속에서 죽었다는 사실입니다.(욥42:5-6)
사랑의 동의어는 생명입니다.(요일4:8, 요14:6)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었던 욥이 하나님께서 자신이 누군가를 보여줌으로(욥38:-41:)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회개를 통해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확고히 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알게 된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의 운명인 죽음을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후 일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문제를 바꾸어 부활, 생명을 주시겠다는 믿음을 갖게 하였습니다.
이런 욥의 믿음은 요셉이 가졌었던 믿음과 동일한 믿음이었습니다.(창50:25-26) 요셉의 믿음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출12:5-6)으로 출 애굽할 때 요셉의 해골은 함께 나가게 되었습니다.(출13:18-19)
믿음은 사랑에 대한 확신과 감동에서 나옵니다. 사랑에 대한 감동이 생명과 연결되게 합니다.
둘째 날(월) 불행한 결말
*도입질문: 수명이 다하여 죽었던 욥처럼 모든 사람들의 결말도 같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을 떠난 지구의 삶은 사람들이 볼 때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사람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죽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운명은 아담이 하나님을 떠날 때 이미 결정되어졌습니다.(고전15:22 전반부)
그래서 죽음이 운명이 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언제 그 운명이 닥칠 것인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특히 시간과 공간의 구별이 없으신 하나님께는 시간의 문제는 전혀 고려 사항이 되지 않습니다.(마22:32)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은 사람들이 유예의 삶을 살아갈 때, 생명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그 사랑에 감동하여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와 구원자로 선택하여 생명과 연결되는 것입니다.(요17:3)
사람의 본질과 운명이 무엇이고, 생명의 길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생명에 초점을 맞춘 삶을 사는 것은 가장 지혜로운 일입니다.
셋째 날(화) (부분적인) 회복
*도입질문: 욥은 결국 이전의 삶처럼 회복되었기에 행복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욥은 이전의 삶처럼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과 아픔이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욥의 마음의 아픔이 온전히 회복될 때는 예수님의 재림 시일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회복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내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회복은 예수님의 재림으로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인류의 소망입니다.
넷째 날(수) 마지막 나라
*도입질문: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소망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이 땅에서는 참된 소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의 운명은 죽음이 결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생명의 주인이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는 이 땅에서의 운명들이 다 새롭게 바뀝니다.(계21:3-4)
이 소망은 우리가 이 땅에 살 때에 평안을 주는 소망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중심에 계신다면 이 땅에서 이미 천국의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은혜의 천국)
예수님과 더불어 이 땅에서 소망 속에서 행복의 삶을 살면서, 행복을 나눌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예수님께서 영원한 행복을 주시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삶이 예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천국의 삶을 누리며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다섯째 날(목) 부활과 생명
*도입질문: 죽음이 운명이 현실 속에서 우리가 부활과 생명의 소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죽음이 우리의 운명인 것처럼 부활도 우리의 운명임을 깨닫는 것을 복된 일입니다.(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 아담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첫 번째 아담의 선택의 결과인 영원한 죽음을 십자가에서 해결하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사람들도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부활을 하지만 순서가 중요하고,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 지가 부활의 질을 결정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살다가 죽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때에 부활할 것이고, 그 부활에 참여한 사람들은 생명의 관계가 이어진 대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 생명이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산 사람들을 부활이 되도 생명과 연결되지 않는 삶을 선택하였으므로 그들의 선택대로 하나님과 분리된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이 영원한 운명을 결정합니다. 행위나 선함으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신 분과의 사랑의 교제로 인해 사랑으로 연결될 때만 생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호와 하나님을 힘써 알고, 그 사랑에 감동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성도들의 큰 행복이며 동시에 가장 확고한 소망입니다.
댓글목록
박용범님의 댓글
박용범 작성일
2016년이 삼 개월 정도 남아 있습니다.
역시 세월은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ㅠ
욥기의 연구를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확고히 깨닫는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