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가?(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9/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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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6-09-16 18:40 조회6,861회 댓글1건본문
9월 24일 안식일
일몰 : 오후 6시 24분
기억절 :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1~13).
연구 범위 : 마 24:35~25:46, 벧후 3장, 약 2:14~26, 요 4:35~38, 고전 3:6~8, 계 21:1~4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이후 몇 년 동안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캘리포니아에 있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신자들은 병자들과 재해민들을 방문했다. 그들은 고아들이 살 집을 마련해 주고 실업자들을 위해 봉사했다. 그들은 병자들을 간호하고 집집을 방문하여 성경을 가르쳤다. 신자들은 신앙 서적을 배포하고 건강교실을 개최했다. 교회들은 또한 라구나 거리 예배당 지하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했다. 노동자의 집과 의료 선교회도 있었다. 그들은 채식주의 식당과 함께 건강식품점도 운영했다. 신자들은 지역의 항구에서 선박선교사업을 출범시켰고, 목사들은 가끔씩 도시의 큰 공연장에서 전도회를 개최했다.
엘렌 G. 화잇은 이 교회들을 두 '벌집'이라고 부르며 그들의 사역에 뿌듯해 하였다(Advent Review and Sabbath Herald, 1900. 7. 5.). 이는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지금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훌륭한 예를 보여준다. 우리는 주님이 오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분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이에 대한 대답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 있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우리가 재림을 선포하면서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드러내야 함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새롭게 인식한다.
➌ 행하기 : 도시 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원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다.
A.
❷ 마 24~25장은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까?
※ 봉사활동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❸ 세 천사의 기별 속에 자비로운 회복의 사역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 영원한 복음이 있다. 창조와 구원의 주를 믿도록 간절히 호소하는 기별이다.
❹ 우리는 재림을 기다리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질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요?
※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의 생명을 얻도록 이끄는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B.
❷ 그대는 늦은 비 성령의 부흥이 무엇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능력이다.
❸ 완전히 회복된 새 하늘과 새 땅의 기별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어서 그곳에 오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열망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❹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릴 천국의 맛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 신자 각 사람이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보여줄 때 가능하지 않겠는가.
결론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의 몸과 현실적인 필요와 동떨어진 심오한 지적, 영적 만 족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수동적인 상태를 암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능동적인 자세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실질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첫째 날(일) 9월 18일 우리가 예수님을 기다리는 동안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24:46).
제자들은 태양광선이 성전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예수님은 장차 교회가 처하게 될 실상에 주목하기를 바라며 제자들에게 다음같이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신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 24:2). 그분의 말씀에 놀란 제자들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하며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 24:4~31에서 그분이 재림하기 전에 세상에서 전개될 일들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징조들을 말씀하시면서 "아직 끝은 아니"(마 24:6)며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마 24:8)이라고 경고하셨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은 14절에 나온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마 24장에 등장하는 이 담화의 첫 35절은 우리로 하여금 징조들을 심각하게 취급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한 우리가 어떻게 "세상 끝"(3 절)을 기다려야 하는지 말씀하신다. 즉 우리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느긋하게 앉아서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릴 수 없다. 우리에게는 주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해야 할 일이 많다.
1. 마 24:36~25:46을 읽어 보라. 이 비유들은 각각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말씀을 요약해 보라. 우리는 자신과 교회에 이렇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각 비유에서 제시된 주님의 지시 사항을 어떻게 하면 잘 따를 수 있을까?
[마24:36~25:46]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재림의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
2) 충성된 종으로 때를 따라 양식을 잘 공급해야 한다.
3) 더디 오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등과 기름을 잘 준비해야 한다.
4) 달란트를 잘 활용해야 한다.
5) 오른 편에 있는 사람들처럼 어려운 사람을 잘 돌봐야 한다.
자기를 비우고 말씀에 충실하게 굴복할 때 잘 실천할 수 있다.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깨어있으라고 간곡히 부탁하셨다. 밤에 그냥 깨어있기는 쉽지 않다. 어떤 일에 몰두하면 깨어있기 쉽다. 우리에게 그 일을 하라고 부탁하신 것이 오늘 교과의 성경구절들이다. 위에 적은 것처럼 대략 추려본 것이다. 양식을 공급하기 위하여서는 양식이 있어야 한다. 양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양식창고인 성경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또 등불을 밝히기 위해서는 기름이 있어야 한다. 성령의 지도로 성경을 바르게 깨닫는 것이 필수적인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주님을 위하여 주위의 사람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활용해야 한다. 재능과 시간과 재정이 달란트이다. 이 외에도 자기의 재능이 있을 것이다.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이 재능을 활용해야 한다. 그중에 지역사회에 복음으로 기여하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록한 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실제적인 봉사를 하는 삶을 해야 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주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생명이 작용하는 상태이다. 재림을 기다리는 기간을 이렇게 봉사로 보내야 한다.
교훈 : 예수님은 마지막 시대의 징조에 주의하면서 재림의 날까지 복음을 전하고 사랑과 섬김의 삶으로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내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둘째 날(월) 9월 19일 기다리는 동안의 부흥과 개혁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1~12).
1. 벧후 3장을 읽어 보라. 부흥과 개혁을 가르치는 이 장의 교훈을 요약해 보라. 이 말씀들은 우리가 이번 기에 연구하는 주제와 어떻게 조화되는가?
[벧후3:1~18]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답: 주께서 오래 참으시며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데 성도들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면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권한다. 이것은 이번 기 주제를 성취하는 방법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에 이르기를 바라신다(벧후 3:9). 우리는 사람이 회개에 이르도록 할 수 없다. 그것은 성령의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회개로 이끄는 복음의 기별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가도록 부름을 받았다.
신자인 우리도 회개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회개는 부흥과 개혁을 이루는 과정의 일부이다. 부흥이란 다시 살아나고, 새롭게 되며,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개혁이란 구조를 개선하거나 제도를 바꾸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것이다(고후 5:17).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할 참된 경건의 부흥은 우리의 모든 필요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긴급한 것이다. 이러한 신앙 부흥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첫째 사업이 되어야 한다"(가려 뽑은 기별 1권, 121).
우리가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에 대해서 공부한 어제 교과 내용은 부흥과 개혁의 조건들과 결과물들을 예증한다. 예를 들어 열 처녀 모두가 잠에서 깰 필요가 있었다(마 25:1~13).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들의 삶에 성령을 모실 자리를 늘려야 했다. 우리가 겸손하게 자아를 죽이고 남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친절한 말과 행동으로 그것을 타인에게 전할 때 우리는 늦은 비의 능력으로 임하는 성령 충만을 위한 마음의 자리를 넓히는 것이다. 우리는 부흥과 늦은 비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이기적인 입장에서 우리 자신을 위해 그것을 원하고 있다. 부흥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 대한 이타적인 관심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는 열정적으로 선교와 봉사에 투철한 제자로 개혁될 것이다.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며 늦은 비 성령의 충만을 구하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부흥과 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교회로서 우리의 태도와 방법에도 부흥과 개혁이 필요하다. '지극히 작은 자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행위에 부흥과 개혁이 필요하다. 이것들이 이번 기 교과의 초점이다.
<부가설명> “부흥이란 다시 살아나고, 새롭게 되며,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개혁이란 구조를 개선하거나 제도를 바꾸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것이다(고후 5:17).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할 참된 경건의 부흥은 우리의 모든 필요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긴급한 것이다. 이러한 신앙 부흥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첫째 사업이 되어야 한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121). 교과 저자는 부흥의 정의를 아주 잘했다. 화잇 자매는 증언에서 오늘날 우리교회에 가장 시급한 개혁이 참된 경건의 부흥이라고 했다. 영어로 경건은 godliness인데 하나님과 같은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전을 찾으면 경건은 ‘공경하며 삼가고 엄숙하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공경하고 그분의 뜻을 전적으로 따르는 정신이며 그런 정신이 드러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다.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다. 전도가 이것을 성취하는 것이다. 교회가 지역사회에 하나님의 일을 이루도록 되는 것이 경건의 부흥을 이루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하려면 분열과 다툼이 있을 수 없다. 한 마음 한 뜻으로 그 일을 하게 된다. 이 사업에 부지런하면 교회 내에서 다툼이 일어날 틈이 없게 된다. 교회가 내부적으로 시끄럽고 어렵게 되는 것은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보다는 같이 죽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훈 : 부흥과 개혁은 우리의 가장 절실한 필요이다.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는 신앙뿐 아니라 세상의 필요를 돌보는 섬기는 삶에도 부흥과 개혁이 필요하다.
셋째 날(화) 9월 20일 기다리는 동안의 교회 사명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 2:14).
1. 약 2:14~26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어떻게 간추리고 있는가?
[약2:14~26]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 이에 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답: 죽은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생명이 있는 믿음은 실제적인 봉사를 하는 믿음이다. 헐벗고 굶주리는 형제들에게 실제적으로 입히고 먹여주는 것이 산 믿음의 모습이다.
일요일 교과에서 제자들은 성전 건물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관심을 교회의 내부 상태와 종말로 치닫는 세상을 향한 교회의 사명으로 이끌기 원하셨다.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사명이 있기 때문이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다.
대총회 <근무규정>이 설명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사명은 "모든 백성을 제자로 삼아, 세 천사의 기별(계 14:6~12)의 맥락 속에서 영원한 (천국) 복음(마 24:14)을 전하고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도록 백성들을 인도하며, 그분을 주로 섬기도록 훈련시키고, 곧 오실 그분의 재림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런 사명을 이루기 위해 제시된 방법은 복음을 설교하고 가르치며 치유하는 것이다. '치유'에 대한 근무규정의 설명은 이렇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전인적인 건강의 원칙을 확신함으로 우리는 병자들의 건강과 치료를 우선순위로 삼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사역을 통해서 자비로운 회복의 사역을 펼치시는 창조주와 협력한다."
이번 기 교과는 예수님이 인류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지역 사회의 전인적인 회복의 도구가 되도록 능력을 부여하기 원하신다는 개념으로 시작했다. "오늘날 세상은 1900년 전에 필요했던 그리스도의 계시가 요구된다. 위대한 개혁사업이 요구된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만 육체적, 정신적, 영적 회복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치료봉사, 143).
예수님의 사역을 마지막 시대의 교회의 모델로 제시한 세미나를 참석한 뒤에 한 신자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사업 방법에 그다지 개방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방법을 따르라는 이번 주 세미나의 내용은 실제로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래된 개념입니다. 단지 우리가 잊었을 뿐이죠."
<부가설명> 신학계나 목회자들에게나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인의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강조하는 편지서로 설명한다. 믿음보다는 행함을 강조하는 경향이라고 보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나 자세히 읽는 중에 이 편지서가 행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강조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행함은 생명이 있을 때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제가 죽은 것이라고 한 말씀이다. 여기서 야고보는 죽었느냐 살았느냐를 묻고 있는 것이다. 살았다는 표가 무엇인가? 바로 행동이다. 죽은 것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게 하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참으로 예수 안에서 거듭난 생명을 얻었으면 그 생명이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의식작용과 감성작용과 의지의 작용은 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생명현상이다. 이번 교과가 핵심적으로 묻고 있는 것은 교인들이 살아 있느냐? 교회가 살아 있느냐는 것이다. 생명이 있으면, 살아있으면 활동하는 교인 활동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믿음의 활동이 없는 교인 믿음의 활동이 없는 교회는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 이 문제를 정직하게 물어보자.
교훈 : 우리는 재림교회의 일원으로서 마지막 시대의 백성들에게 재림을 준비시켜야 하는 사명이 있고 그중에는 자비로운 회복의 사역이 포함되어 있다.
넷째 날(수) 9월 21일 기다리는 동안 최종 수확을 준비함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5과에서 지적했듯이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 가르치면서 농업 용어를 사용하셨다. 알다시피 농업은 일회적인 행사가 아니라 인내의 과정이다. 그것은 시기마다 여러 사람들에 의해 여러 단계의 작업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순환 과정이다. 우리는 토양을 준비하고, 씨를 심으며, 수확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우리가 주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을지에 관하여 성령의 지도와 하나님의 섭리에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
1. 요 4:35~38을 읽어 보라. 우리가 타인을 위해 일하는 방법에 대하여 어떤 종류의 비유가 사용되었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기별은 무엇인가?
[요4:35~38]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답: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각각 일하는 사실을 비유하셨다.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은 거둔다고 하셨다. 복음사업은 단독사업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성령께서 그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모른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추수되려면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 순간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님께 마음을 바치라고 설득해 주는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투쟁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분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우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2. 고전 3:6~8을 읽어 보라. 전도 활동과 관련해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기별은 무엇인가?
[고전3:6~8]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답: 복음사업에는 반드시 협력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만 결과는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바울은 자신의 방법으로 예수님이 이전 비유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도 사업은 농부의 일과 같다. 우리가 각자 같은 일을 하지 않더라도 그 일은 영혼을 찾고 얻는 과정에서 여전히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다양한 입장에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지만 결국 영혼의 회심을 일으키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고 하셨다. 심는 이는 첫째로 예수님이시다. 가라지 비유에서 좋은 씨를 심은 이는 인자라고 하셨다. 또 구약의 선지자들도 심은 자들에 해당될 것이다. 거두는 자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오늘날의 교회이다. 교회는 예수께서 심은 좋은 씨를 거둘 수 있도록 예수님의 하신 일에 동참하고 협력해야 한다. 바울은 자기도 심는 자라고 했다.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했다. 지역사회에 교회는 씨를 심기도 하고 물을 주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자라지 않으면 거둘 수 없다. 자라게 하기 위하여 심는 것보다 더 부지런히 물주고 김매고 비료주고 가꾸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이 이 일을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 야고보가 말한 살아 있는 믿음은 이 일을 열심히 한다. 뿌리고 거두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고 눈을 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 하늘에서 삯을 받을 것이다. 결과는 그날 보람으로 보면서 자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각각 받은 은사를 따라 봉사하면 넉넉한 보상을 해 주실 것이다. 바울은 자기가 뿌린 씨가 아름답게 결실할 때 그것이 자기의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했다.(살전2:19) 우리도 이 면류관을 우리 스스로 준비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교훈 : 영혼을 수확하는 과정에는 여러 단계와 다양한 봉사가 필요하다. 우리는 각자의 역할에 따라서 영혼 구원 사업에 참여하고 협력할 수 있다.
다섯째 날(목) 9월 22일 기다림이 끝남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계21:1).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라는 책을 썼다. 여기서 두 도시는 런던과 파리이다. 어떤 의미에서 성경도 '두 도시 이야기'이다. 이 경우에 두 도시는 바벨론과 예루살렘이다.
계 14:8과 18장에서 사도 요한은 바벨론을 묘사한다. 그 성은 마귀의 처소이고 악한 영들의 소굴이다. 그것은 무너질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고 선언되었다. 죄악과 배도,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상징인 이 도시는 언젠가 패하고 멸망할 것이다.
1. 계 21:1~4을 읽어 보라. 새 예루살렘은 어떻게 바벨론과 대조되는가?
[계21: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답: 아주 간단히 비교하면 새 예루살렘은 생명의 도시이고 바벨론은 사망의 도시이다.
두 번째 도시는 계시록 21~22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다. 이 도시는 어린 양을 신랑으로 선택하고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의 이기심과 영적 간음을 거부한 자들이 사는 곳이다. 속량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반사한다(계 14:12). 그들의 인내심과 예수님의 사역을 수용하려는 열의는 지상에서 천국의 맛을 제공한다. '지극히 작은 자들'(마 25:40)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구원하는 믿음의 외적인 표현이다.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계 5장) 교회가 맡은 역할은 동정어린 회복의 사역에서 기쁨의 찬가로 변한다(계 5:13~14). 거룩한 성에서 누리는 행복 속에서 하나님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진정한 평화가 회복되었다.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이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육적으로 회복됐다. 대쟁투는 끝났고 "가장 작은 원자(原子)로부터 가장 큰 세계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기쁨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다"(각 시대의 대쟁 투, 678).
교훈 : 주께 받은 사명대로 봉사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한다면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완전한 세상과 영원한 구원과 행복을 볼 것이다.
여섯째 날(금) 9월 2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마 5:16, 골 3:17, 히 13:15~16을 읽어 보라. <시대의 소망>, 627~636 "감람산 위에서", 637~641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를 읽어 보라.
예수님은 자신이 재림하기 전에 세상에 어떤 징조가 있을지 말씀하셨다. 전쟁과 전쟁의 소문, 전염병 등 심상치가 않다. 만약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절할 만한 이유를 댄다면 지금처럼 핑계거리가 많은 때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끝으로 갈수록 핑계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공언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하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더 좋은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해졌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낮추고 친절하고 예모 있고 부드럽고 동정적으로 행동한다면 오늘날 단 한 사람밖에 없는 곳에 일백 명의 사람이 진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9 권, 189).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그분은 교회 신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그것을 실천하며, 그들의 삶과 물질을 그분의 사업에 투자하고,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중과 관심을 나타내고, 마음의 문을 열어 성령의 충만을 받기 바라신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논증으로도 파기할 수 없는 증거이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교과반에서 ‘바벨론’에서 사는 것과 ‘예루살렘’에서 사는 것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십시오. 두 도시의 주된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어디에서 차이점이 발견됩니까? 그 도시의 형태입니까? 아니면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 따라 다른 것입니까?
※ 이미 앞에서 대답한 대로 생명의 도시와 사망의 도시이다. 차이점을 낱낱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➋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기독교 신앙에서 행위가 차지하는 부분이 있는지’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행위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면, 기독교 신앙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찾아 돕는 사역의 관점에서 그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 사람들에게 생명이신 분을 소개하여 그분께로 이끄는 것이다.
➌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립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우리는 무엇을 행하고 있어야 합니까? 그것을 통해 어떻게 진실한 믿음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왜 재림을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까?
※ 예수 안에서 얻은 생명의 작용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람들을 생명으로 이끌기 위해 생명활동을 해야 한다.
댓글목록
김형석님의 댓글
김형석 작성일9/22(목) 부가 설명이 없습니다. 부가설명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