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7과 예수님은 그들의 행복을 바라셨다(8월 10일 교과묵상/일~금 매일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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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6-08-07 08:44 조회2,836회 댓글0건첨부파일
- 7과 통합-201608012.hwp (34.0K) 191회 다운로드 DATE : 2016-08-12 08: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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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금) 7과 전체 요약
이번 주 우리는 다양한 현실 속의 사례들과 성경의 기록들을 통하여, 교회가 타인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기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살펴 보았습니다.
요나는 그의 개인적인 혐오감으로 인해, 니느웨에 심판의 기별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폭풍우와 물고기 뱃속에서의 경험을 겪은 이후에야 그는 니느웨에 가서 기별을 전하긴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니느웨 거민들의 생명을 살려 주셨을 때 나타낸 그의 분노는 그가 사람들의 생명보다 자신의 체면과 고집을 더욱 앞세우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비참한 예루살렘 성의 운명과 이러한 운명을 자초할 백성들의 거절이 비춰질 때에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으시며, 마지막 눈물로 회개를 호소하셨던 것입니다. 니느웨의 멸망을 보고자 했으나 보지 못해 분노했던 요나와, 이스라엘의 멸망의 장면을 차마 보지 못하셔서 눈물을 쏟으신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닮아야 할 대상은 누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원칙으로 설명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만져 고치시고, 당신을 부인한 베드로를 용서하신 것, 사도 바울이 그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았던 고린도 교회를 위해 봉사한 것은 모두 이러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원칙이 드러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이러한 원칙은,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교회가 가져야 할 원칙이기도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상대가 나에게 행한 대로 돌려주는 것이 아닌, 내가 대접 받고자 하는 모습대로 상대를 대접하는 ‘황금률’이 성도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의 생애는 이러한 사랑을 차별 없이 모두에게 베푸는, 가르침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교회라면, 이러한 사랑을 드러내는 일에 실패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 교회는 이 사랑을 전하는 일에 실패해 왔고, 그 결과는 많은 이들에게 기독교가 외면 받는 원인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애와 초대 교회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이었던 복음의 영향력을 다시 회복하는 일은, 교회 안에 참 사랑이 회복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닌, 우리가 믿는 바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를 더 주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막 8:22~25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례적으로 두 번의 시도 끝에 맹인을 고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전에 일어난 일련의 과정들이 이 사건의 의미를 더욱 풍성히 보여주고 있는데,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단순히 육신의 양식에 대한 것으로 오해한 제자들의 시선이, 눈을 뜨긴 했으나 사람을 사물로 볼 정도로 정확하게 분간하지 못했던, 일차적인 치료를 경험한 맹인의 상황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결국, 이 맹인은 예수님의 두 번째 접촉을 통해서야 사람들을 온전히 분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을 하나의 숫자나 수치로만 바라보는 뿌리 깊은 교회의 문제도, 예수님의 고쳐주심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치유되어 사람들을 구체적인 필요를 가진 가치있는 영혼으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영혼구원사업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교회는 어떠한 사업을 통해 뚜렷한 성과나 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사업을 중단하거나 소홀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손을 가진 참 사랑을 가진 교회라면, 자신들의 계획과 목표보다도 ‘타인들의 필요’에 더 주목할 것입니다. 때로는 그들의 필요를 위해 자신들의 계획과 목표가 희생된다 하여도 개의치 않는 ‘사랑의 낭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와 혈루증으로 고통하던 여인을 위해 바쁘게 옮기시던 그의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한 개인의 요청에도 반응하셨던 예수님의 그 사랑이, 때로는 교회의 전체적인 사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작은 요청들을 무시해 왔던 우리의 모습을 부끄럽게 합니다. 항상 자신이 아닌 타인을 먼저 고려하셨던 예수님의 그 사랑이 우리 교회의 중심 가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과의 제목처럼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행복’을 위해 사역하셨습니다. 이러한 정신이 우리가 섬기는 교회 사역의 핵심 동기가 되는 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뜻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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