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6과 예수님은 사람들과 섞이셨다(8월 5일 교과묵상/일~금 매일업데이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6-07-31 08:49 조회2,905회 댓글0건첨부파일
- 6과 통합-20160805.hwp (33.5K) 192회 다운로드 DATE : 2016-08-05 09:59:02
본문
음성 다운로드: http://file.ssenhosting.com/data1/ask2life/20160805.mp3
※ 지난 방송은 http://www.podbbang.com/ch/10813 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 앱(팟빵 등)에서 '만나그릇'을 검색하여 구독하시면 더 편하게 들으실 수 있습니다.
※ 방송 내용은 매 과별로 당일 방송분 까지 포함하여 첨부 파일 형태로 제공합니다.
8월 5일(금) 6과 전체 요약
교과의 저자는 이번 과를 시작하면서, 기독교 신앙은 ‘누군가에게 예수가 되어 주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셨던 방법대로 누군가와 접촉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취해야 할 바른 자세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특히 비신자들과 섞이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세상 속으로 파고 들어가 그들과 섞여야 할 우리의 사명을 재확인하는 것이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우리가 얻게 된 유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을 거쳐간 어떠한 인물보다 위대한 리더십을 발휘하신 분이셨고, 그분의 리더십을 요약하면 ‘섬김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치료봉사 143페이지의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그들의 유익을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과 섞이셨고, 그들을 동정하셨으며, 그들의 필요에 따라 봉사하심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으신 후에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통해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셨던 ‘섬김의 리더’였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전도법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심으로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으시고, 그 관계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신 ‘관계전도’였고, 이러한 성공이 보장된 예수님의 방법대로 전도하는 것이 교회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이 가망 없는 죄인이라고 불렀던 이들과 거리낌 없이 교제하셨습니다. 눅 15장에 등장하는 3가지의 이야기 모두가 잃어버림과 회복, 그리고 기쁨의 잔치라는 흐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시는 것이 주님의 소원이며, 죄인의 회복은 온 영적 존재들의 기쁨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양처럼 부주의하여 잃어버림을 당한 자도, 드라크마처럼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잃어버린 자로 규정된 자도, 탕자처럼 스스로 하나님의 품을 떠난 자도, 모두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무가치한’ 존재도,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제외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별없는’ 사랑으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차별없는’ 전도로 영혼을 구원해야 할 우리의 귀한 모본이 되길 소망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죄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을 향해, 이러한 행위가 주님께서 죄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죄’라는 치명적인 병을 고치시기위해 이 땅에 오신 ‘위대한 의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모습이 타인의 문제를 고쳐 회복시키기 보다는 종교의 형식에 더 집중했던 그들 조상의 잘못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을 의롭게 여겨 죄인들과 단절되어 있으면서도, 화려한 종교적 행위로 자신을 포장하여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께 가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타인을 업신여기는 교만한 신앙인이 아니라,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겸손히 자신의 삶을 고쳐주실 분을 구하는 이들을 찾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소돔이라는 환경에 무분별하게 섞임으로 영적 힘을 잃어버린 롯의 경우처럼, 그리스도인들 또한 세상과 무분별하게 섞일 때에, 그들의 신앙에 큰 손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비재림교인 친구들이 한 명도 없는, ‘세상과 완벽하게 단절되는 것’이 최고의 신앙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과 단절되었을 때, 어떠한 영향력도 미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러한 태도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별됨’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세상과 섞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균형은 ‘다른 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는 목적’을 가질 때에 이뤄집니다. 그들의 죄에 참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기 위해 그들과 활발하게 교제하는 것은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로버트 리디컴이 말한 것처럼, 이상적인 교회는 지역사회와 접촉하지 않는 교회도, 일방적으로 지역사회로 가는 교회도 아닌, 지역 사회와 함께 가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지역주민들과 활발하게 교제하면서 그들의 필요를 조사한 후에, 그 결과를 바탕으로 그들의 사역을 하는 교회입니다. 그럴 때에, 그들의 사역은 지역 주민들의 호응을 받게 되고, 교회가 지역사회의 필요를 채우는 진정한 동반자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풍성한 복을 자신들의 문제를 위해서만 사용하고 나누지 않을 때 교회는 점점 고립되어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만이 세상의 빛이 되고,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과 섞이셨던 것처럼, 교회도 세상과 섞여야 합니다.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는 목적으로 세상과 지혜롭게 섞일 때에, 교회 또한 예수님처럼 거룩한 영향력을 세상에 미치는 선교기관으로서의 사명을 다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