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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예수님의 지역사회 봉사(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7/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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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6-07-23 02:24 조회7,111회 댓글0건

본문

7월 30일 안식일 

일몰 : 오후 7시 42분 

 

기억절 :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연구 범위 

눅 4:16~19, 눅 10:25~37, 마 5:13, 사2:8,
요 4:35~38, 마 13:3~9 

 

<보물섬>의 저자로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보통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닐 수 없는 병약한 소년이었다. 결국 그의 부모는 그를 가르치고 돌볼 개인 교사와 유모를 고용했다. 어느 날 밤 그가 잠들기 전에 그를 확인하러 온 유모는 그가 침대에서 나와 창문에 코와 손을 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감기에 들기 전에 어서 침대로 돌아가라고 다독였다. 그때 로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이리 와서 제가 뭘 보고 있는지 보세요!" 유모는 창문 밖에서 가로등에 불을 켜고 있는 가로등지기를 보았다. 로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보세요. 저 사람이 어둠 속에 구멍을 내고 있어요!"― Margeret Davis, Fear Not! There Anything Too Hard for God? (Aspect Books, 2011), p. 332. 

지금까지 우리는 곤궁한 자들을 돕는 문제에 대한 구약 성경의 말씀을 일부 살펴보았다. 이번 주에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한 신약 성경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한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가장 유명한 예수님의 가르침 중 하나는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마 5:14). 예수님은 세상의 참 빛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을 반사하는 세상의 빛이 된다(요 8:12). 예수님이 지상생애를 통해 친히 모본으로 보여주신 그분의 가르침은 우리가 어떻게 어둠 속에 구멍을 낼 수 있는지에 관한 효과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교인의 필요를 채우는 교회와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교회를 비교한다. 

➋ 느끼기 : 복음을 알지 못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➌ 행하기 : 지역 주민과 접촉하고 그들에게 봉사할 길을 찾기로 결심한다. 

 

A.

❷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지역 교회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일까요? 

※ 지역사회와 소통을 가지고 희생과 봉사로 그들의 문을 열도록 하라는 것이다. 

❸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따르면 우리는 지역 사회의 누구에게 이웃이 되어야 합니까? 

※ 모든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야 한다. 특히 어려운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 

❹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 지역사회의 필요를 알아서 봉사해야 한다. 

 

B.

❷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는 사업을 어떻게 농사와 관련시켜서 설명하셨습니까?


※ 농사는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다. 심고 자라고 … 이런 단계가 있듯이 복음사업도 그렇다.

❸ 영혼 구원 사업의 과정은 어떻게 농사의 각 단계에 비교될 수 있습니까?


※ 심는 단계 성장하는 단계 이삭이 나는 단계 익은 단계 거두는 단계가 있다. 

❹ 우리가 지역 사회에서 수확을 바란다면 사전에 어떤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 땅을 갈아 부드럽게 하고 씨가 떨어져 자랄 수 있는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결론 : 우리는 찬미에서 하나님의 드넓은 자비를 노래합니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미칩니다. 그분은 자신의 교회가 그분의 모본을 따라 사람들이 살고 일하는 곳을 찾아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첫째 날(일) 7월 24일 예수님의 사명진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21). 

 

젊은 랍비 예수는 갈릴리 지역에서 매우 유명해졌다(눅 4:15). 그가 말하자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어느 안식일 예수님은 이사야서를 받고 61장의 처음 두 절을 읽어 내려가시다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2절)이라는 구절 앞에서 멈추셨다. 

 

1. 눅 4:16~19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말씀을 어디에서 들어 보았는가?(사 61:1~2 참고) 이 말씀을 읽으시며 주께서 선포하시려던 것은 무엇인가? 

[눅4:16~19]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사61:1,2]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답: 은혜의 해가 이르렀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여호와의 은혜의 해"란 희년을 말한다(레 25장 참고). 나사렛 회당을 방문하여 예수님은 성경에서 메시아 예언을 인용하시면서 청중들에게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고 확증하셨다. 주님은 이 설교에서 자신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며, 눈 먼 자를 보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기름부음 받은 종이라고 밝히신다. 이 말씀은 사람들 특히 가난한 자들을 가르치고 치유하며 섬기는 데 중점을 둔 그분의 지상사역을 통해 잘 묘사된다. 

 

2. 예수님은 왜 사 61:2의 문장 중간에서 멈추셨는가? 

[사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눅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답: 위의 두 구절을 대조하면 예수님은 이사야서에 있는 신원의 날을 말씀하지 않았다. ‘신원’이라고 번역된 말은 ‘나캄’인데 ‘복수, 보복’이라는 뜻이 있다. ‘신원’은 억울한 것을 풀어주는 것이니까 억울함을 당한 사람에게 그를 억울하게 한 사람을 복수하는 것이 된다. 이 두 사이에 한쪽은 신원이 되고 한쪽은 보복이 되기 때문에 이 단어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이 단어를 말하지 않고 은혜를 선언하셨다. 그분은 이스라엘이 기대하는 정치적 정복의 메시아로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오해를 일으킬 말은 일단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메시아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무찌르고 그 권세 아래 둘 것이라는 기대가 편만했다. 예수님은 그분의 사역이 이런 잘못된 기대와 엮이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라는 구절 앞에서 낭독을 중단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러한 거짓 개념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분이 벌이는 사역의 진정한 면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의 정치적인 정황과 상관없이 그분이 제공하실 것들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할지에 집중하셨다. 

 

<부가설명> 오늘 제목이 ‘예수님의 사명 진술’이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 구원은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고 신원도 죄에서 해방시키는 것인데 그것은 곧 사단에게 보복하는 것이 된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셨지만 실제적으로는 사단이 죽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2:14,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렸다는 말은 사단의 정체를 드러내어 그 영향을 제거했다는 뜻이다. 사단이 정죄되고 죄가 처리되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신원이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은혜의 해를 전하신 것은 구원사업에 초점을 맞추신 것이다. 구원이 이루어지면 사단은 패배하게 된다. 뒤집어 말하면 사단이 패배하면 구원은 성취되는 것이다. 신원과 보복은 이렇게 엉겨있다. 예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는 모든 행로가 바로 은혜의 해가 되었고 그분의 희생으로 이 세상은 죄에서 해방되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되었다. 

 

교훈 : 예수님은 사 61장을 인용하여 그분의 사명 진술을 선포하셨다. 대신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고 오직 그분이 실천할 사역에 집중하셨다. 

 

 

둘째 날(월) 7월 25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눅 10:27).

 

1. 눅 10:25~37을 읽어 보라. 곤궁한 자들을 돕는 문제와 관련하여 여기서 우리가 들어야 할 기별은 무엇인가? 

[눅10:25~37]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답: 내용은 잘 알려진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건이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은 누가 나의 이웃인가가 아니다. 너는 누구의 이웃인가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사는 모든 계명은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몸처럼 사랑하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이해했다. 그렇다면 '누가 나의 이웃인 가?'를 정의하는 문제가 남는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는 동족은 이웃으로 여기고 호의를 베풀되 이방인들은 배척해야 한다는 생각이 편만했다. 그래서 이 율법사는 예수님이 이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해 주시기를 바랐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우리가 만나는 곤경 중에 있는 자들이 모두 우리의 이웃이다. 이웃이 된다는 것은 이웃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다. 그 제사장과 레위 인은 자신들이 더럽혀질 것을 염려하여 그들의 신성한 의무를 부정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은혜를 갚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자아를 희생시킬 마음이 없을 때에 신앙을 핑계 삼는 것만큼 편리한 방법도 없다. 

반면 사마리아인은 상처를 입은 이 '외국인'과 '원수'를 자신의 이웃으로 여기고 긍휼의 마음으로 자기보다 그의 필요를 돌보았다. 요점은 이것이다. 우리는 '누가 나의 이웃인가?'를 묻기보다 '누가 짓밟히고 억압 받는 자들의 이웃이 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곤경 중에 있는 자가 곧 내가 도와야 할 이웃인 것이다. 

 

<부가설명>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건을 이야기할 때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가 나의 이웃인가?’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는 예수께서 하신 이야기의 내용과 다른 이해이다.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이런 엉뚱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율법사는 ‘누가 내 이웃인가?’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네가 누구의 이웃인가?’라고 되물으셨다. 예수님은 누가 나의 이웃인가를 묻지 않으신다. 네가 누구의 이웃인가를 물으신다. 이 사건을 설명하는 사람들은 고난 받는 사람이 나의 이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누구의 이웃이 되는가라고 물으시는 것이다. 교과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하여 왔다 갔다 한다. 누가 내 이웃이가라고 하다가 내가 누구의 이웃인가라고도 한다. 이 문제는 둘 모두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성경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누가 내 이웃인가?’라는 질문에 ‘네가 누구의 이웃인가?’라고 물으시면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이웃이 되라고 대답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에 동참하는 것이며 사회정의와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큰 계명을 주셨다. 우리는 누가 내 이웃인지를 묻기보다 우리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셋째 날(화) 7월 26일  온전한 조리법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마 5:13).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제자들에게 변화의 촉매제인 소금이 되라고 요구하신다. 교회는 '세상의 소금'을 담고 있는 소금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금이 되어서 무엇에 또는 누구에게 섞여야 할까? 오직 우리끼리 섞여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와 다른 성분과 섞여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면 쉽다. 한쪽 빵틀에는 소금만 담는다. 그리고 다른 빵틀에는 여러 재료들과 함께 소금을 넣는다. 첫째 빵틀에는 소금만 넣어서 맛있기는커녕 먹을 수조차 없다. 둘째 빵틀에서 소금은 재료의 일부로서 다른 재료들과 섞인다. 그것은 무미(無味)한 빵을 맛있게 변화시킨다. 소금은 다른 성분과 섞일 때 최상의 효과를 낸다. 기독교 신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라는 '소금통'에 머무는 이상 이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술, 담배, 도박, 범죄를 멀리하는 우리의 생활방식은 모든 면에서 도덕적이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의 문제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지역과 곤경에 처한 자들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1. 뒷부분에 초점을 맞춰 마 5:13을 다시 읽어 보라. 소금이 어떻게 맛을 잃을 수 있는가?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답: 뒷부분은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는 말씀이다. 소금이 맛을 잃을 수 있는 것은 소금으로만 있을 때이다. 그럴 때에는 맛을 낼 기회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맛을 알 수 없고 결국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그러나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즉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이 경건의 모양만 있다면 선을 위한 능력은 조금도 없게 된다. 그런 생애는 세상에 구원하는 감화를 끼칠 수 없다"(시대의 소망, 439). 

조리법의 비유로 돌아가보자. 앞서 보았듯이 우리에게 소금밖에 없다면 별 소용이 없다. 오히려 너무 많은 소금은 해롭다. 소금은 다른 성분과 섞여야 한다. 우리가 그저 세상과 같다면 그 안에서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줄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좋게 만든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맛에 젖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외부인(outsider)'과 함께 하는 '내부인(insider)'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우리는 변화의 촉매제가 되어서 타인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요소가 되고 더 나아가 삶의 가장 중요한 해답인 예수 안에 있는 구원으로 그들을 인도할 것이다.

 

<부가설명> 오늘 교과 내용은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성도는 소금노릇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소금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금노릇을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상태가 아닌가? 교회 내부에서 맛을 잃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진리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작용 활동하도록 자아를 굴복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예수님 안에서 정의롭지 못하면 정의를 실천할 수 없다. 자신이 예수님 안에서 자비롭게 되지 못하면 자비를 실천할 수 없다. 나는 진정으로 소금이 되어 있는지 정직하게 자문해보자. 만일 소금이 되지 못했으면 이유를 찾아보자. 발견하도록 찾아보고 예수님께 굴복하자. 진정으로 거듭나는 경험에 이르도록 하자. 우리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히5:13)의 자리에 있지 말고 의의 말씀을 경험해서 진정으로 세상의 소금이 되도록 예수님의 은혜를 간구하자. 

 

교훈 : 예수님은 음식을 맛있게 하는 소금처럼 우리가 사람들과 섞여서 그들에게 감화를 끼침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촉매가 되기를 바라신다. 

 

 

넷째 날(수) 7월 27일 농부가 된다는 것은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요 4:37). 

 

1. 요 4:35~38을 읽어 보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예수님은 여기서 어떤 말씀을 주시는가? 

[요4:35~38]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답: 심는 단계, 자라는 단계 익는 단계 거두는 단계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농부의 일은 다양하다. 풍성한 수확을 하려면 여러 종류의 일을 해야 한다(마 9:35~38). 주의 농원에는 추수 꾼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수확철 일꾼들에게 "추수 때가 됐으니 씨를 뿌려야 한다."고 말하는 농부는 없다. 모든 경작의 단계를 거친 뒤에야 추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땅이 처음부터 좋은 땅은 아니기 때문에 농사에 토양을 준비하는 단계가 포함된다(마 13:3~9 참고). 

 

2. 지역 사회의 '굳은 땅'을 부드럽게 하고 '돌'과 '가시덤불'을 제거하기 위해 그대의 교회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답: 지역사회 봉사를 계획해서 잘 수행해야 할 것이다. 건강강의, 요리강습, 기타 여러 동호회를 만들고 지역 주민들과 섞이고 희로애락에 함께 하면 굳은 땅을 기경할 수 있을 것이다. 

 

추수 전에 일꾼들은 고된 일을 한다. 그러면 다른 일꾼들이 그 노고의 결실을 거둔다. 때로 우리의 전도 계획은 토양을 준비하는 일보다 추수를 더욱 강조 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도회 강사가 추수를 기대하며 설교하기 오래 전부터 우리는 토양을 준비해야 한다. 농사는 토질 검사, 밭 갈기, 파종, 관개, 거름주기, 병충해 퇴치, 여물기, 수확, 저장의 과정이다. 

추수는 그 과정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교회의 경작 과정에도 지역 사회의 필요를 조사하는 설문, 인구통계조사, 지역사회 지도자들과의 면담 조사와 같은 토질 검사 활동이 포함되어야 한다. 설문 조사에서 드러난 필요를 채우는 행사는 밭을 가는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세미나, 성경 연구, 소그룹, 늦은 비 성령 기도회 등은 파종 활동이다. 일회적인 노출로 그리스도께 인도되는 영혼은 거의 없다. 추수를 위해 그들을 준비시키려면 그만큼 호응도를 높이고 다각적인 노출의 과정을 통해 그들을 길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산발적인 행사에 의존한다면 새싹이 추수 때까지 생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부가설명> 지역사회 봉사를 잘 수행하려면 면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교과저자의 제안대로 교회가 처한 지역 사정을 잘 파악해야 할 것이다. 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은 옆집이 한인이 아니기 때문에 한인대상 전도를 하려면 본방인들 교회보다 더 확실한 계획이 필요하다. 교회가 이 일을 위하여 의논하고 실천방법을 강구해서 잘 짜인 계획을 따라 실천해봐야 한다. 건강 전도회를 해도 후속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일회성 집회로 끝나버린다. 건강 전도회 뿐만 아니다. 어떤 대중 집회를 해도 집회할 때 계획하고 실천한 것 못지않게 집회 후에 조치를 잘해야 한다. 모든 것을 세밀하게 살피고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기도하고 연합하여 일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기대하는 이상의 수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사회는 너무 재미에 젖어 있어서 더욱 어렵다. 그들과 섞이기 위해서 같은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 교회가 아니다. 자칫 세속화해서 소금이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교회를 세속화하는 역할을 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교회는 원칙에 굳게 서서 원칙을 범하지 않도록 아주 조심하면서 이 일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영혼 구원 사업을 여러 단계를 통해 완성되는 농사에 비유하셨다. 우리는 지역 사회 선교를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준비해야 한다. 

 

 

다섯째 날(목) 7월 28일 교회개척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마 10:9). 

 

1. 마 10:5~10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왜 별다른 대책 없이 제자들을 주변의 성읍과 마을로 파송하셨는가? 

[마10:5~10]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답: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기쁘게 봉사하는 훈련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울러 그들이 즐겨 섬길 수 있도록 먼저 기쁘게 섬기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암시한다.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입고 먹을 준비를 거의 하지 말고 배정된 지역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셨다.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자들이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과 지역 주민들을 섬김으로 친구를 사귀는 과정의 중요성을 배우게 하셨다. 지역 주민들도 제자들의 사역을 지원할 만큼 그들의 봉사를 소중하게 여겼다. 

프랭크 목사는 합회로부터 재림교인들이 전혀 없는 어느 대도시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아무 예산이 없이 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는 지도를 찾아 자신이 개척해야 할 지역의 경계를 정하고 그 지역의 인구 통계를 조사했다. 그는 가장 번화한 곳에 차를 주차해 놓고 상점을 돌면서 그곳의 생활에 대해 물었다. 그는 그 지역의 정치, 기업, 사회 지도자들을 방문하여 가장 큰 필요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그는 지역 주민 중 몇 사람들과 사귀었다. 그들은 그에게 지역의 시민 단체에 가입하도록 초대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또 다른 지도자를 만났다. 그는 프랭크 목사에게 한 장로교회 부속 건물을 임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시민 단체 회원들은 지역 사회 봉사를 위해 쓸 그 건물을 단장하도록 페인트와 청소 도구를 구입할 돈을 마련해 주었다. 그는 지역 사회의 지도자들과 대화하면서 그 지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건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프랭크 목사는 자원봉사팀을 동원하여 그 건물에서 지역 주민을 위해 다양한 건강 검진 프로그램과 후속 집회를 운영했다.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지불한 소정의 회비는 경비에 보탰다. 곧 안식일학교 분교가 출범했고 그 시간에 몇 명의 주민들이 참석하기 시작했다. 

프랭크 목사는 먼저 지역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사역을 정착시키고 그런 사역을 통해 교회를 세우는 것이 교회 개척을 위한 최선의 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지역 기반의 사역은 140명 이상의 신자를 가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탄생시켰다. 프랭크 목사의 일화는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지역 사회와 접촉할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잘 예증한다. 우리는 다음 주에 "사람들을 접촉할 때 참 성공을 거둘"(치료봉사, 143) 그리스도의 사역 방법을 탐구할 것이다.

 

<부가설명> 프랭크 목사는 참 잘했다. 문제는 오늘날 지역사회의 간절한 필요를 교회 이전에 사회단체들이 다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도 그리 쉬운 것이 아니고 그런 경우는 주로 많은 도움을 줘야하는 예산 문제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예산을 쓰고 노력을 기울여도 투자한 만큼 수확이 잘 안 된다는 것도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가능한 지역사회를 위한 계획을 해야 한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정신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예산을 짜고 연간 사업계획을 세울 때에 미리 잘 조사한 자료에 따라 지역사회에 어떻게 봉사할 것인지 계획을 해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부터 실시하면서 점점 확대할 수 있는 데까지 진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언제 의논하고 기도하고 연합해서 성경의 지도와 증언의 지도를 잘 따라서 계획하고 추진해볼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각 지역에서 사람들과 사귀고 그들에게 봉사하며 사역을 시작하도록 훈련시키셨다. 교회를 개척하는 최선의 방법도 그와 같다.

 

 

여섯째 날(금) 7월 2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지역 사회에서 그대와 교회의 역할에 대해 교훈을 주는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을 읽어 보라. 마 7:12, 23:23, 25:31~46, 막 4:1~34, 6:1~13, 눅 6:36, 11:42, 12:13~21, 14:16~24, 16:13, 18:18~27, 19:1~10, 요 10:10, 12:8, 17:13~18. <시대의 소망>, 637~641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를 읽어 보라.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면 어둠이 된다"(영문시조, 1893년 9월 11일). 정말 소름끼치는 말이다. 이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마 12:30)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명백하다. 대쟁투에 중간지대는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 아니면 사탄의 편에 선다. 큰 빛을 받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해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우리가 빛이 되지 않는다면 어둠이 되는 것이다. 문맥에 차이는 있지만 원칙은 똑같다.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 6:23).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다음의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세상과 섞여야 할지에 대해 토의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들에게 유익을 주는 방법으로 세상과 섞이되 세상에 너무 휩쓸려서 해결책이 아닌 문제의 일부분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균형을 유지해야 할까요?

※ 고전 9장에 바울이 제시한 원칙을 잘 따르도록 해야 한다. 자기의 신앙원칙에 굳게 서서 지역 사람들에게 확실한 도움이 되는 이유가 이 원칙을 실천하기 때문임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렘15:19)

 

➋ 우리가 지역 사회 활동에 참여하면 종종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다루려는 빈곤, 교육, 건강 등 상당수의 문제가 정치적인 논쟁거리입니다. 정치적으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대립이 우리가 하려는 일의 의도를 훼손시키지 못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주의해야 할까요? 

※ 봉사가 순순하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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