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12과 예수님의 마지막 나날(6월 17일 교과묵상/일~금 매일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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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6-06-12 09:16 조회3,018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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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금) 12과 전체 요약
이번 주 우리는 십자가 직전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을 살피면서 그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였고, 또 어떠한 삶의 결과들을 얻었는지 확인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던 이들이었지만, 그들의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인식은 마리아보다도 부족했습니다.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가져와 그리스도를 존귀한 분으로 대했던 마리아와는 달리, 제자들의 눈에는 그녀의 이러한 행동이 낭비처럼 비춰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비하면 이러한 헌신은 결코 낭비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것을 드린다 하여도 예수님의 가치를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값을 계산하지 않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드린 마리아의 모습은 예수님을 통하여 얻을 것을 계산하고 있는 현대의 많은 신앙인들에게 바른 신앙의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생애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고, 값을 계산하지 않는 헌신으로 섬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유월절을 보내시며 제자들에게 유월절 의식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떡과 포도즙을 통해 고난의 의미를 가르쳐 주심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 흘리며 죽어간 수많은 동물들에게서, 십자가에 달려 인간을 구원할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이 만찬을 통하여 재림까지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우리보다 더욱 간절히 재림을 기다리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성만찬을 통하여 성도들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고, 그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을 나눠 먹고 마심으로 주님 안에서 하나됨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우리 주님과 함께 만찬을 나눌 재림의 날을 소망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찬의 의미를 더욱 깊이 묵상하며 이 예식에 참여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계획하신 풍성한 영적 의미를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셨던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아버지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이때를 기다려온 사단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짐을 지시는 이 일이 아버지와의 영원한 분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수님께 속삭여, 예수께서 십자가의 짐을 버리심으로 인류의 희망이 사라지게 되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당신의 사명을 포기한다하여도 자신의 위치에 어떠한 손상도 없었을 것이지만, 아버지와 분리되는 고통도 인류에 대한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포기하게 만들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속죄의 특권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결코 깨어질 수 없었던 당신의 연합을 희생하시며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을 위해 훌륭하게 봉사할 수 있는 여러 자질들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제자들에게서 인정을 받고 있었고, 주님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복종시키지 않았던 그의 치명적인 약점은 결국 그를 사망의 길로 인도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유다에게도 사명을 주셔서 사역하게 하셨고, 마지막까지 그를 돌이키려 하셨지만, 굳어진 유다의 마음은 이러한 마지막 호소까지도 거절하고 그의 길을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가졌던 헛된 희망은 그 실체를 드러냈고, 그는 그가 예수님을 버리고 추구했던 그것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를 너무나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예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 보다는 세상과 타협하는 길을 지혜로운 선택처럼 제시하는 사단의 유혹 앞에 가룟 유다의 비참한 운명은 그 달콤한 속삭임의 끝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가룟 유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또한 예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예수님께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더 신뢰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를 향하신 주님의 동정어린 눈빛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그가 주님과 함께 기도했어야 했던 그 곳, 겟세마네로 달려가 회개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역시 그 또한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동정어린 얼굴을 보았으나 그의 고백은 진정한 회개가 아닌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었고,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베드로처럼 회개하여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 떨어져 자아가 죽는 경험을 한 자들만이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며, 언제나 베드로의 길, 회개의 길에 서시는 주의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십자가 이전 마지막 순간들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 주님은 사랑이셨습니다. 인간은 그들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예수님을 배반하였지만, 예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이키려 하셨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를 위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깊이 깨달은 자들만이 마리아처럼, 회개한 베드로처럼, 주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제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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