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과 마태복음 24~25장(질문, 대답, 부가설명)05/19/18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7과 마태복음 24~25장(질문, 대답, 부가설명)05/19/18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05-12 02:01 조회8,078회 댓글0건

본문

5월 19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38분

 

● 연구 범위 : 마 24:1~25, 계 13:11~17, 마 7:24~27, 눅 21:20, 마 25:1~30

 

● 기억절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마태복음 24~25장을 보면 예수님은 마지막 시대에 관한 중요한 사실과 준비 방법에 대해 알려주신다. 어떤 의미에서 두 장은 마지막 사건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그분은 가까운 미래를 보시며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견하셨다. 그 비극은 그분의 백성이 감당해야 할 파멸의 몫이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또한 이후 세대 특별히 마지막 시대에 그분의 재림을 맞이할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장밋빛 전망을 내놓지 않으신다. 전쟁, 전쟁의 소문, 역병, 적그리스도와 박해는 세상의 몫이자 그분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될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분의 예언들은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에 대해서도 그분을 신뢰해야 한다.

예수님은 다가올 사건들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셨다. 그분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인자가 돌아오는 때를 대비하라고 비유의 말씀도 주셨다. 물론 힘든 시기가 닥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한 백성을 예비하실 것이고 다시 오실 때 그들과 만나실 것이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에 비추어 현시대를 이해하고 종말의 징조를 인식한다.

느끼기 : 긴박성을 느끼고 소망을 강화한다.

행하기 :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면서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거짓 메시아를 믿지 않는다.

 

➊ 만약 다음 주에 전쟁이 난다면 이번 주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 피난 준비하고, 피난에 필요한 것들을 챙길 것이다. 주님께 더욱 기도할 것이다. 

➌ 큰 시련과 박해를 대비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마 7:24~27)

※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➍ 열 처녀의 비유에서 지혜로운 다섯처럼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마 25:1~13)

※ 성령의 역사를 날마다 경험하고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➎ 마지막 때에 달란트를 활용하는 것이 왜 중요한 문제가 될까요?(마 25:14~30)

※ 그것은 거듭난 생명의 생명작용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 : 십자가 사건 직전에 주신 예수님의 마지막 훈시는 종말과 온 세계의 운명과 관련된 심판의 엄숙한 경고입니다.

 

 

5월 13일(일) 뚜렷한 예언의 확증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십자가 사건 며칠 전에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눴다. 성전이 파괴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후에 제자들이 던진 질문을 보면 그들은 성전의 파괴를 세상의 종말과 관련시켰던 것으로 보인다(마 24:3).

 

1. 마 24:1~25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마지막 때를 위해 자신의 제자들에게 어떤 포괄적인 기별을 주셨는가?

[마25:1~25] 세상 끝에 있을 사건들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신 내용이다. 

 

답: 이것을 간단히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사람들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하라.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2) 난리와 난리 소문이 이어질 것이다. 

3) 민족과 나라 사이에 전쟁이 빈번할 것이다. 

4) 지진과 기근이 곳곳에 있을 것이다. 

5) 그리스도인이 핍박을 받을 것이다.

6) 사람들이 시험에 빠져 서로 미워하고 잡아주는 일이 있을 것이다.

7) 불법이 성할 것이고 사랑이 식을 것이다.

8)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이다.

9) 창세 이후로 가장 큰 환난이 있을 것이다.

10)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일이 있을 것이고 이적과 기사로 택한 자라도 미혹하려고 할 것이다.

  25절까지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본 것이다. 

 

마 24:1~25을 보면 예수님은 무엇보다 여러 시대를 걸쳐 마지막 때까지 그분의 백성을 혼란에 빠뜨릴 기만들에 대해 염려하신다. 그것들 중에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도 포함된다. 어떤 자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주장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그들을 믿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뚜렷한 확증을 보아왔다. 오랜 역사를 통해 심지어 오늘날에도 기만자들이 나타나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놀라운 예언의 적중이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의 시대에 살았던 이들이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수백 년의 역사를 검토하면서 그 예언이 얼마나 정확하게 들어맞았는지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마지막 위기가 가까워지면서 이러한 기만이 증가하더라도 놀라서는 안 된다.

또한 믿음의 맥락에서 예수님이 세상의 상태를 어떻게 묘사하셨는지 보라.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여러 시대마다 사람들은 어떤 것들에 기대를 걸고 인간의 고통과 불행을 제거 또는 상당히 감소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인류는 시시때때로 정치 운동 또는 과학 기술, 인간의 이성이 세상에 유토피아(이상향)를 가져오리라고 잔뜩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뼈아픈 역사의 반복적인 증언처럼 그러한 기대는 항상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현재의 세상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그대로이다. 이천 년 전에 주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이러한 기대들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부가설명> 성경의 예언과 그 성취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예수께서는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믿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13:19, 14:29) 그러므로 예언과 그 성취를 확인하는 것은 신앙생활 하는데 아주 중요한 것이다. 바울은 예언의 지도를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믿음이 파선된다고 했다.(딤전1:18,19) 세상 끝에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것과 관련해서 제자들이 질문했을 때 대답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24장의 내용이다. 말씀하신 것들은 역사가 진행되면서 다 성취되었고 성취되고 있으며 또 성취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역사적으로 마지막 때이다. 우리는 이 때와 관련된 예언을 연구하고 이 때에 합당한 신앙생활의 길을 따라 신앙해야 한다. 

  예언은 예를 들자면 여행하는 사람들의 지도와 같은 것이다. 가보지 못한 길을 따라 도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가 가야할 길에 대하여 알기 위해서 지도를 찾고 지도가 지시하는 대로 여행 준비를 할 것이다. 가는 길에 산을 넘어야 하는 곳도 있고 강을 건너야 하는 곳도 있고 깊은 골짜기를 지나는 길 등등이 지도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면 그 지형에 맞는 여행 장비로 여행해야 할 것이다. 험한 산을 넘으려면 신발과 지팡이가 필요할 것이고 강을 건너려면 배편이 필요할 것이다. 

  예언은 역사의 시간을 여행하는 인생들에게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는 어떻게 신앙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신앙생활 시간 지도이다. 이것을 모르면 길을 잃게 된다. 우리는 예언 연구를 올바른 자세로 바르게 하고 깨달아 예언지도가 가르치는 대로 역사적 시점에 바를 신앙을 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이 세상에 대한 인류의 허황된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세상에 닥칠 어려움들에 대해 말씀하셨고 그분의 예언은 역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5월 14일(월) 끝까지 견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1. 마 24:9과 계 13:11~17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이 요한에게 기록하라고 주신 계시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존재하는가?

[마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계13:11~17]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답: 예수님을 올바르게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 환난과 핍박이 있다는 사실이 공통점이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를 살아갈 백성들에 대해 염려하셨다. 그 가운데는 민족들로 하여금 참 믿음을 배척하고 거짓 예배를 강요하게 하는 전 세계적인 기만이 포함된다.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혐오, 시련 심지어 죽음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2. 마 24:13을 읽어 보라. 전 세계적인 반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구원을 얻는 비결은 무엇인가?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답: 끝까지 견디는 것이다. 

 

“성경의 진리로 마음을 견고히 방어한 자들 외에는 아무도 최후의 대쟁투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593). 이 진술은 성경의 진리로 자신의 생각을 방어하는 자는 모두 마지막 때의 기만술에 휩쓸리지 않으리라는 뜻이다. 그들은 이러한 때를 위한 진리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속임수에 정복당할 것이다.

 

3. 마 7:24~27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충실하게 지키려면 또 무엇이 중요한가?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답: 기록된 성경말씀을 잘 듣고 깨닫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물론 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것으로는 우리가 직면할 시련을 견디기에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아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즉 우리는 진리에 순종해야 한다. 위의 비유에서 두 건축자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견디는 집과 견디지 못한 집의 차이점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에 있었다.

 

<부가설명> 행동은 생명작용의 상태이다. 생명력이 약하면 생각이 간절해도 행동이 되지 않는다.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중병을 앓는 사람들은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생명을 잃은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그런 사람은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는 물건이다. 모양은 사람이지만 죽은 사람이다. 

  성경에 사람에게 행해야 한다고 말씀할 때에는 예수님을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거듭난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말씀하신다고 믿는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지 않았으면 생명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라고 권고할 수 없다.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고 분명히 가르쳤다. 육신에 있는 자는 영의 생명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가 없다.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 다니는 것과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전혀 별개의 상태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은 교인이지만 예수님의 참 생명을 받지 않은 사람이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생명의 성령으로부터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동을 논하기 전에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인지 스스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고 깨닫고 그것이 생활이 되는 경험에 이른다. 왜냐하면 생활은 생명작용이기 때문이다. 

 

교훈 : 하나님의 백성이 마지막 때에 불어닥칠 큰 시련과 박해를 견딜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고 그것에 순종하며 실천하는 믿음에 있다.

 

 

5월 15일(화) 멸망의 가증한 것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마 24:15).

 

마지막 때에 관한 대화에서 예수님은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멸망의 가증한 것”(단 9:27, 11:31, 12:11)에 주목하셨다(마 24:15).

하나님은 우상숭배나 부도덕한 성행위같이 그분의 율법에 대한 심각한 위반에 대해 “가증한 일”이라고 선언하셨다(신 27:15, 레 18:22). 따라서 멸망의 가증한 것은 종교적인 타락을 포함한다.

 

1. 마 24:15과 눅 21:20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을 통해서 우리는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얼마나 더 잘 이해할 수 있는가?

[마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눅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답: 멸망의 가증한 것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성경절을 보면 예수님의 예언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을 덮친 끔찍한 파멸을 포함한다. 그때 로마의 군대는 도성뿐 아니라 성전까지 파괴했다.

그러나 이 예언에는 두 번째 성취가 남아 있다. 이 예언에서 예루살렘 멸망과 같이 먼저 발생한 사건들은 미래에 있을 마지막 때의 사건들을 위한 예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불신과 반역으로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하나님의 보응의 형벌을 재촉하고 있는 이 세상을 예루살렘이 상징하고 있음을 보셨다”(각 시대의 대쟁투, 22).

단 12:11과 11:31에 등장하는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은 로마 제국의 후기 국면 즉 중보와 구원에 대한 유사 체계를 갖추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 그리고 지금도 그분이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사역들을 가로채려는 교황권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다니엘서 8장, 특별히 9~12절은 이런 일들을 두 국면으로 나눠지는 로마의 세력과 관련시킨다. 첫째 국면에서 수평적으로 신속히 팽창하는 작은 뿔(단 8:9)은 광활한 제국 로마를 나타낸다.

둘째 국면(단 8:10~12)에서 작은 뿔은 수직적으로 성장하여 하늘의 별 몇을 떨어뜨리고(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고)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이신 예수님을 대적한다(단 8:11). 이 국면은 제국 로마가 붕괴할 당시에 출현하여 여전히 로마로 남아 있는 교황권을 상징한다. (작은 뿔이라는 하나의 상징이 동일한 세력의 두 국면을 나타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 7:9~10에 나타나는 심판, 단 8:14에서 묘사하는 성소 정결, 마 24:29에서 설명하는 하늘의 징조들은 모두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나타날 그분의 개입을 시사한다.

 

<부가설명>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살후2:3,4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이 말씀에는 ‘멸망의 아들’이라고 했고, ‘불법의 사람’이라고 했다. 멸망의 아들이라는 말은 ‘멸망의 가증한 것’을 뜻하는 것이고 ‘불법의 사람’이라는 말은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하는 세력을 뜻한다.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고 하는 존재가 바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고 불법의 사람인 것이다. 이것은 제국 로마의 권세를 가지고 와서 거기에 기독교의 옷을 입힌 것이다. 마태복음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고 하고 누가복음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루살렘을 에워싼 군대는 로마제국 군대였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 자리에 로마 군기를 세웠다. 거룩한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세워진 것이다. 로마 군기는 로마의 권위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로마의 권위가 하나님의 교회를 차지한 것이 바로 종말 시대의 거룩한 곳에 선 멸망의 가증한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진리의 말씀을 확실히 분별하여 예언을 따라 올바른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가야 할 것이다. 주께서 선한 길로 이끌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교훈 :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미칠 사건들을 예언하시면서 역사적으로 로마의 두 번째 국면이 멸망의 가증한 세력이 될 것임을 예언하셨다.

 

5월 16일(수) 열 처녀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마 25:1).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재림의 징조에 관한 대화를 마치고 25장에 이르러 재림을 준비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신다.

 

1. 마 25:1~13에서 열 처녀의 비유를 읽어 보라.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의 재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가?

[마25:1~13]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답: 등불이 계속 불을 밝힐 수 있도록 기름이 충분히 준비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의 대화를 열 처녀의 비유로 시작하신다. 그들을 “처녀”로 부른다는 사실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자들임을 암시한다. 그들은 사탄 편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천국”으로 비유된다(마 25:1). 그러나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비하여 깨어 있으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마 24:42) 그들은 모두 잠에 빠진다(마 25:5).

열 처녀는 각자 등을 가지고 신랑을 만나러 나갔다. 이는 모두가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신랑이 더디 오는 것 같자 주님의 재림을 믿는 모든 신자가 잠에 빠진다. 그러다가 한밤중에 갑자기 신랑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가 잠에서 깬다(마 25:1~6).

어리석은 처녀들은 준비가 안 되어 있어 놀란다. 왜일까? 어떤 성경은 등이 꺼졌다고 번역했지만 다른 성경들은 그리스 원어의 의미에 가깝게 등이 ‘꺼져 간다’고 번역했다(마 25:8). 아직 불이 깜박이고 있다. 아직도 약간의 기름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날 때까지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처녀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지만 그분과는 얕은 경험만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한다. 그들의 삶에도 약간의 기름 곧 성령의 사역이 있지만 꺼지기 직전이다. 그들은 더 많은 기름이 필요하지만 기름이 거의 없는 상태에 만족한다.

“성령이 사람의 마음속에 역사하게 되고 이 역사를 당사자가 갈망하고 동의하게 될 때 그의 안에는 새로운 품성이 심기게 된다. 그러나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계급은 단지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행위만으로 만족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품성을 연구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지도 아니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쳐다보고 살줄도 모른다. 하나님께 대한 저희의 봉사는 점차 저하되어 형식화 되고 만다”(실물교훈, 411).

 

<부가설명> 교회가 성령의 충만한 경험을 해야 한다. 우리가 자주 말하는 늦은 비 성령, 곧 성령의 늦은 비적인 역사는 교회에 임한다. “그러나 세상의 추수의 끝이 가까울 때에, 인자의 오심을 맞기 위해 교회를 준비시키고자 하시는 영적인 은혜의 특별한 부어 주심이 약속되어 있다. 이러한 성령의 부어 주심은 늦은비가 내리는 것으로 비유되었다.”(사도행적 55) 교회에 이런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교회 구성원인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다 성령의 늦은 비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령의 역사로 이슬비와 같은 성령의 은혜 중에 성장한 사람들을 통하여 늦은 비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성령이 충만한 은총을 입은 사람들은 말씀의 등불이 항상 밝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등불이 꺼지게 되고 특히 예언의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하여 믿음이 파선하게 될 것이다. 

 

교훈 :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더라도 그분과의 피상적인 관계에 만족한다면 주의 재림을 기쁨으로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5월 17일(목) 달란트를 활용함

 

1. 마 25:13~30을 읽어 보라. 달란트를 활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삶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마25:13~30]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답: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달란트)를 주님의 일을 위하여 활용해야 한다. 그것을 활용하지 않으면 책임을 물을 때 결과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비록 예수님이 앞의 비유와 사뭇 다른 비유를 말씀하고 계시지만 두 비유가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비하라는 이야기이다. 두 비유가 모두 준비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을 다룬다. 두 비유 모두 영적인 태만으로 인해 영원한 멸망을 맞이한 자들의 최후를 보여준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 기름이 성령을 상징했던 것처럼 그리스어 ‘탈란타’는 재능들을 상징한다. “달란트는 본래 부여받은 모든 재능과 함께 성령의 특별한 은사들을 나타낸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마 25:15).

비유 속의 모든 종들은 주인으로부터 소유를 받았다. 그것들이 “각각 그 재능대로”(마 25:15) 그들에게 위탁된 주인의 소유임을 주목하라(마 25:14). 종들에게 주어진 것은 위탁된 것이다. 그들은 실상 자신이 소유하지 않았으나 그것들에 대하여 책임을 맡은 청지기였다. 그래서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마 25:19)하였다.

영적인 은사들은 성령으로부터 비롯된다(고전 12:1~11, 28~31, 엡 4:11 참고). 이는 자신에게 아무런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좋은 소식이다. 우리는 최고의 은사인 성령을 받음으로 각자의 은사를 받는다. 부여하는 존재가 없으면 은사도 없다.

그 은사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소유는 성령을 영접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바로 이 점에서 불충실한 종이 실수를 범했다. 그는 하나의 은사를 받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은사를 향상시키지 않은 채 방치했다. 그는 고마운 마음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은사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각한 정죄의 의미로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마 25:26)이라고 부르셨다.

 

<부가설명>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사업을 위하여 성도 개개인에게 합당하게 주신 은사를 뜻한다. 신자 된 사람들이 이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첫째는 영원한 생명의 은사를 주셨다. 사람들이 생명을 받아서 출생하지만 각 사람마다 개성이 있고 소질이 있다. 거듭난 생명도 그렇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12장부터 14장에서 여러 은사들을 말했다. 은사는 거기뿐만 아니고 로마서 12장에도 있고 에베소서에도 있다. 이런 것들을 다 종합하면 30가지가 넘는 은사가 있다. 

  은사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지만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질을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성령께서 극대화시켜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소질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헌신할 때에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그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며 그날에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그때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대답하면 게으른 종으로 판결되고 얻은 생명을 반환해야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소질을 주님을 위해 바쳐서 충성하여 재림의 날에 주님 앞에 어엿이 서도록 하자.

 

교훈 :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는 누구든지 성령과 함께 영적인 은사를 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받아들이고 은사를 활용하여 발전시키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5월 18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었다.

자기의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은 사람은 가장 적은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었다. 자기가 받은 천부적 재질이 적다는 이유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봉사할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가 여기에 있다. 만일 그들이 어떤 큰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들은 큰 기쁨을 가지고 그 일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작은 일에서 봉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 점에 있어서 오해한다. 주님께서는 선물을 나누어 주심으로써 사람의 품성을 시험하신다. 자기의 달란트를 활용하는 데 등한히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불성실한 종임을 증명했다. 이것으로 보아 그가 비록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 한 달란트를 감추었던 것처럼 역시 땅에 감추었을 것이다. 그가 한 달란트를 잘 활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가 하늘의 선물을 멸시했다는 증거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눅 16:10)된다. 그것이 작기 때문에 작은 일의 중요성이 경시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이 작은 일이 인생의 실제적인 훈련에 있어서 많은 것을 제공해 준다.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는 사실상 요긴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작은 일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우리의 품성 건설에 여러 가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실물교훈, 355~35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사람들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가져오리라고 기대했던 이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그것들이 예외 없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 사람들은 교육이 보편화 되고 도덕성이 고취되면 선한 세상이 될 줄로 여겼다. 그러나 교육이 발달할수록 과학적 연구가 발전할수록 죽이는 도구들만 양산되고 불안만 커진다. 실패의 이유는 인간이 사망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썩어져가는 구습이 날로 더욱 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기심이다. 

 

➋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에 대하여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까? 행위가 따르지 않은 믿음은 왜 죽은 것입니까?(약 2:26)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어떤 종류의 시련이 닥칠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왜 그런 상황이 오지 않은 지금부터 그때를 위해 준비해야 할까요?

※ 하나님의 말씀, 계명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순종할 수 있는 것은 거듭났을 때 가능하다. 거듭났다는 것은 예수의 생명을 받았다는 뜻이다. 순종의 행위가 없는 것은 그가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 받은 생명이 풍성하여지도록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을 전적으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요10: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