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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최초의 교회 지도자들(질문, 대답, 설명)07/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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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07-21 07:48 조회9,0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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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44분

 

● 연구 범위 : 행 6장, 행 7:48, 히 5:11~14, 미 6:1~16, 행 7장, 행 8:4~25

● 기억절 :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오순절 회심자들의 대다수는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 즉 그들은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왔다가 회심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된 자들이었다(행 2:5, 9~11). 그들도 유대인이었지만 여러 면에서 행 6:1에서 언급하는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달랐다. 특히 유대 지역의 언어인 아람어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었다.

그밖에도 문화와 종교적인 면에서도 차이점이 있었다. 그들은 외국에서 출생하여 유대교의 전통에 뿌리를 두지 못했거나 유대 지역 유대인들보다 뿌리가 깊지 못했다. 짐작건대 그들은 성전 의식과 이스라엘 땅에서만 적용되는 모세의 의식법에 그다지 애착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일생의 대부분을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살면서 이방인들과 가까이 접촉하며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의 포용적인 특성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그분의 명령을 성취하도록 사용하신 일꾼들은 여러 헬라파 신자들이었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교 운동을 위해 절대 실패하지 않는 길을 열어 놓으셨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 지도자들을 양성하시고 선교 사업을 이끄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행하기 : 하나님의 선교 사업에 적극 동참하기로 결심한다.

 

➋ 초기 교회는 어떤 목적으로 일곱 명의 집사를 선출했습니까?(행 6:1~6)

※ 교인들을 돌보면서 공궤하는 것을 주로 담당하는 직무였다. 친교와 봉사를 위한 것이다. 

➌ 집사가 해야 하는 일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성도 간의 친교와 교회를 위한 봉사업무이며 동시에 증인의 일을 해야 한다. 

➍ 집사 스데반이 산헤드린 앞에서 증언한 내용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행 7장)

※ 언약을 거절한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기다린다는 기별이다. 

➎ 스데반의 순교는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까?(행 8:1, 4)

※ 예루살렘과 유다 밖의 지역으로 복음이 확산하게 되었다. 

➏ 교회와 복음 사업의 확장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헌신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 성령의 인도를 구하여 봉사와 친교와 말씀을 전하는데 헌신해야 할 것이다. 

 

결론 :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은 백성들에 대한 그분의 목적이 알려지고 성취되는 것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대는 그러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7월 22일(일) 일곱 집사의 임명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행 6:1).

 

1. 행 6:1을 읽어 보라. 헬라파 신자들의 불평은 무엇이었는가?

[행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답: 매일의 구제에서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빠진 사실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와 도움에서 빠졌다고 주장하며 불평하였다. 복음 정신에 어떠한 불평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었으나, 사탄은 의심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제 불만을 일으킬 모든 원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신속한 조치를 취하여 원수로 하여금 신자들 중에 분열을 일으키지 못하게 해야 하였다”(사도행적, 88).

사도들이 제안한 해결책은 “음식을 분배하는(디아코네오)”(우리말성경, 행 6:2) 일을 위해서 그들 중 일곱 명을 뽑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디아코니아)에 더 전념할 수 있었다(행 6:4). ‘디아코네오’와 ‘디아코니아’는 어근이 같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단지 ‘음식’과 ‘말씀’에 있다. 형용사 “매일의”(행 6:1)와 함께 그 말들은 초기 교회 생활의 두 가지 중요한 요소, 즉 가르침과 친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중 친교는 공동 식사, 성만찬, 기도로 구성되었다(행 2:42, 46, 5:42).

사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위탁받은 공식 관리자들로서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일에 전념한 반면 일곱 집사들은 몇 개의 가정 교회에서 이뤄지는 친교 활동을 책임졌다. 그러나 집사의 책임은 오늘날 그 말이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역할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들은 사실상 교회의 첫 번째 회중 지도자들이었다.

 

2. 행 6:2~6을 읽어 보라. 일곱 집사는 어떻게 선발되었고 임명되었는가?

[행6:2~6]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답: 형제들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추천하고 사도들이 기도하고 안수하여 선발되었다. 

 

후보자들은 도덕성과 영성과 품행이 뛰어나야 했다. 그들은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했다. 공동체의 승인을 걸쳐 일곱 명이 선발되었고 기도와 안수를 통해 임명되었다. 그러한 위임식은 공식적인 인정의 절차이자 그들이 집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권위를 부여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부가설명> 우리말로 집사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디아코노스’이다. ‘디아코네오’, ‘디아코니아’는 모두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들이다. 이것은 ‘섬기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일곱 사람은 특히 공궤(供饋)하는 일을 맡도록 선택된 사람이다. 공궤라는 말은 주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사도들이 기도와 복음 전하는(디아코니아, 사역) 봉사를 전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초기 교회에서 이 일로 사도들의 직무와 평신도 봉사자들의 직무의 방향이 제시되었다. 즉 평신도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의 기본적인 사역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 안의 사무 행정 등의 문제를 담당한다면 목회자들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해야 할 것을 지적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말씀전하는 사명을 특별히 부여하셨고(막16:15) 또 함께 늘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고 기도의 모형을 제시하시며 기도를 가르치셨다(마6:9). 여기 ‘기도’라는

헬라어 ‘프로슈케’는 때때로 기도하라는 의미 외에 ‘기도회’ 같은 기독교 공동체의 ‘공동 예배’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사도행전의 이 구절이 이런 의미로 사용됐는지는 모르지만, 사도들이 기도에 열심을 다하는 모습이 성도들에게 비쳤다면 당연히 성도들도 기도에 열심을 내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기도회(祈禱會)같은 모임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디아코노스’의 일이 공궤하는 일에 한정된 것이 아닌 것은 스데반과 빌립의 활동에서 잘 드러난다. 

 

교훈 : 초기 교회는 회중의 필요와 영적인 친교를 책임질 일곱 명의 집사를 선출했다. 하지만 실제 회중 지도자들로서 집사의 역할은 훨씬 광범위하다.

 

 

7월 23일(월) 스데반의 사역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행 6:8).

 

임명을 받은 후에 일곱 집사들은 교회 사역뿐 아니라 증언 활동에도 적극 가담하였다. 그 결과 복음이 지속적으로 확산되었고 신자의 수가 계속 증가했다(행 6:7). 물론 이러한 성장은 초기 교회에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이제 이야기의 초점은 영적인 수준이 남달랐던 스데반에게 맞춰진다.

 

1. 행 6:8~15을 읽어 보라. 스데반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그의 신앙과 성품은 어땠는가? 스데반의 설교가 어땠길래 그의 반대자들이 그토록 분노했는가?

[행6:8~15]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11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답: 그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고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반대 토론하는 사람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자 분노하였다.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스데반은 예루살렘에 있는 헬라파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 예루살렘에는 그런 회당이 몇 곳 있었다. 행 6:9은 아마도 그것들 중 2개를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데 하나는 남방 이주자들(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의 회당이었고 다른 하나는 북방 이주자들(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었다.

논쟁의 핵심은 당연히 예수님이었다. 하지만 스데반에 대해 제기된 비난들은 그가 이해하는 복음의 의미가 유대인 신자들의 이해를 초월했음을 가리킨다. 스데반은 모세와 하나님을 모욕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즉 그것은 율법과 성전에 대한 모독이었다. 비록 그가 어떤 점에서는 오해를 하고 있어서(아니면 의도적으로 말을 비틀어서) 그를 반대하는 거짓 증언들을 초래했을지라도 예수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막 14:58, 요 2:19) 그 고소들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스데반은 분명히 성전을 향한 산헤드린의 우상숭배적인 태도를 정죄했다(행 7:48). 그는 예수님의 죽음의 심오한 의미뿐 아니라 그 결과 성전과 그 의식들이 어떻게 될지도 이해하고 있었다.

다른 말로 유대 지역 출신의 유대인 신자들은 여전히 성전과 그 의식들에 애착을 느꼈고(행 3:1, 15:1, 5, 21:17~24), 그것들을 단념하기가 어려웠다(갈 5:2~4, 히 5:11~14). 그러나 스데반과 다른 헬라파 신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성전 질서의 종말을 상징하고 있음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부가설명> 기득권을 누리려는 사람들은 그것이 흔들리면 견디기 힘들어진다. 예수님 당시나 사도들 활동 시기나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과 성전봉사의 전통과 규율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예수님을 정죄할 때도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고소했다. 스데반에 대하여서도 모세의 율법과 성전을 더럽힌 자라고 고소했다. 유대인들의 고정관념은 무서운 것이었다.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을 깨달았기 때문에 성전과 모세의 율법의 핵심을 깨달은 것이다. 그것을 증거하였을 때 그가 구약성경의 내용을 확실하게 인용하며 설명했을 것이다. 그는 성령으로 말했다고 기록하였다. 오늘날 재림성도들도 복음을 확실히 깨닫고 성령으로 말하는 믿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순절에 사도들은 성령이 충만해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했다. 재림성도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으로 말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오늘날 카톨릭이나 개신교회들이나 다 전통과 역사에 굳게 매인 고정관념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말씀대로, 기록되었으되 라는 말로 설명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반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재림교인들도 일찍 들어온 말씀들이 사상에 굳어버리면 그것이 고정관념이 되어 그것에 근거하여 말씀을 듣게 되고 판단하게 되는 경향에 빠진다. 우리는 날마다 자기를 비우고 말씀이 뭣이라고 하는지 들으려는 겸손한 정신을 항상 가져야 할 것이다.

 

교훈 : 스데반은 교회 행정뿐 아니라 전도 사역에도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복음에 대한 그의 이해는 성전에 집착했던 유대인들에게 심한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7월 24일(화) 산헤드린 앞에서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행 7:2).

 

1. 행 7:1~53을 읽어 보라. 스데반은 자기를 고소하는 자들에게 뭐라고 말했는가?

[행7:1~53] 각자가 성경을 펴고 읽어보시기 바란다. 스데반의 설교 내용이다. 

 

답: 한마디로 유대인들이 조상들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언약의 메시아를 죽였다는 것이다. 

 

스데반에 대한 고소는 결국 그의 체포와 공회의 재판으로 이어졌다. 유대교 전승에 따르면 세계를 떠받치는 3개의 기둥 중 둘은 율법과 성전 예배이며 나머지 하나는 선행이다. 모세의 의식법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라는 식의 단순한 풍자만으로도 유대교에서 가장 성스럽게 취급되는 율법에 대한 공격 곧 신성모독의 죄로 간주되었다(행 6:11).

스데반의 답변은 사도행전에서 가장 긴 연설이며 그 자체로 그것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언뜻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를 지루하게 늘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이지만 우리는 그의 연설을 구약과 연관시켜서 이해해야 한다. 그의 연설 방법은 선지자들이 종교개혁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소할 때에 사용했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선지자들은 종종 그런 상황에서 히브리어로 ‘리브’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언약 소송’이라고 번역하면 가장 적절한 이 말은 언약을 이행하는 데 실패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법적인 조치를 표현한다.

예를 들어 미 6:1~2을 보면 ‘리브’가 3번 등장한다. 그 후에 미가는 시내산 언약(출 20~23장)의 양식을 따라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능하신 행적(미 6:3~5), 언약의 조항들과 위반 사항(미 6:6~12), 마지막으로 위반 행위에 대한 저주를 상기시킨다(미 6:13~16).

이것이 스데반 연설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았을 때 그는 고소를 부인하거나 자신의 믿음을 방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 소송(리브)을 제기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장시간에 걸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검토는 그들의 배은망덕과 불순종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다.

행 7:51~53에서 스데반은 더 이상 피고가 아니라 이 지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 소송을 제기하는 그분의 선지자요 대리인이었다. 그들의 선조들이 선지자들을 살해한 죄가 있다면, 그들에게는 더 큰 죄가 있다. “우리 조상”(행 7:11, 19, 38, 44, 45)이 “너희 조상”(행 7:51)으로 바뀐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는 자신과 유대인들 사이의 결속을 끊고 예수님의 편에 확고하게 섰다. 그 대가는 엄청날 것이었지만 그의 말에는 어떤 두려움이나 후회도 없었다.

 

<부가설명> 스데반의 설교는 이스라엘 역사를 열거하였다. 그것은 구약성경 천체를 요약해서 그들 앞에 펼쳐 보이는 내용이었다. 스데반의 설교는 자기변명 하는 내용이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의 역사적 실상을 펼쳐 보이면서 그들이 가진 편견이 나라를 이방에 사로잡히게 했다는 것을 들어 보이면서 하나님께 반역한 실상을 설명하고 지금도 그와 같은 상태에 있다고 지적하여 그들의 실상을 보도록 이끌어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진리를 설명하고 있었다. 성경의 진리, 성경의 복음, 곧 메시아의 기별을 선포하였다. 예수님이 바로 그 언약의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거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셨으나 백성들이 완고하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성경을 자기들 좋을 대로 해석하여 성경말씀의 참뜻을 헤아리지 못하여 언약의 메시아를 죽인 것을 지적하였다. 스데반 시대의 이스라엘도 선조들처럼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런 지적은 오늘 기독교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재림교회에도 적용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 순수하게 성경자체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교훈 : 스데반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피고가 아닌 하나님의 언약 소송 대리자로서그들의 잘못을 드러내고 두려움 없이 예수님의 편에 굳건하게 섰다.

 

 

7월 25일(수) 하늘 성전에 계시는 예수님

 

선지자(히브리어로 ‘나비’)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데반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의 소송(‘리브’)을 제기하는 선지자였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너무도 짧았다.

 

1. 행 7:55~56을 읽어 보라. 스데반이 본 이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행7:55,56]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답: 예수께서 하늘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하늘 성소봉사를 시작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스데반이 여기까지 말하자 백성들 중에 소동이 일어났다. 그가 그리스도를 예언들과 연결시키고 성전에 대하여 말하자 그 제사장은 공포에 질린 체하며 그의 예복을 찢었다. 그 행위는 스데반에게 곧 그의 음성이 영원히 침묵하게 되리라는 신호였다. 그는 그의 말이 저항을 받고 있음을 보았고, 그가 최후의 증언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한창 설교를 하는 도중이었는데 돌연히 그는 설교를 결론지었다”(사도행적, 100).

스데반이 유대교 지도자들 앞에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소송을 제기하는 동안 예수님은 하늘 성전에 서 계셨다. 그분이 하늘 성전의 아버지 옆에 계신다는 것은 지상에 임할 심판은 하늘에서 내린 참 심판의 표현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짓 교사들과 지도자들을 심판하실 것이었다.

이는 앞의 연설들이 모두 회개를 촉구했던 것과 반대로(행 2:38, 3:19, 5:31) 여기서는 그것이 빠진 이유이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신정(神政)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그것은 이제 세상의 구원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대로(창 12:3, 18:18, 22:18) 더 이상 민족적인 이스라엘을 매개로 이뤄지지 않고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이뤄진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이루어지리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이제 예루살렘을 벗어나 세상을 향해 증언해야 했다(행 1:8).

 

2. 행 7:57~8:2을 읽어 보라. 누가는 스데반의 죽음을 어떻게 묘사했는가?

[행7:57~8:2]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답: 군중이 돌을 들어 쳐 죽였고, 그들의 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

 

투석형(投石刑)은 신성모독에 대한 형벌이었다(레 24:14). 하지만 스데반이 사형선고를 받았던 것인지 또는 흥분한 군중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떤 경우든지, 그는 신앙 때문에 순교를 당한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증인들이 그들의 옷을 사울의 발아래 두었다는 것은 그가 스데반을 반대하는 자들의 우두머리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스데반은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사울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차원 높은 성품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만이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이는 그의 신앙과 그의 삶 속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강력한 증거였다.

 

<부가설명>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 대하여, 선지자들은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였다.(벧전1:10~12) 구약의 예언 중에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많지만 고난 받으실 때에 대한 예언은 한 번뿐이다. 70이레 예언이다. 그 끝이 기원 34년이다. 즉 490년의 시작이 기원전 457년인데 그때부터 기름 부은 자 왕이 끊어질 때는 70이레의 마지막 한 주간의 절반 때이다. 그때가 기원 31년이다. 왕이 끊어진다는 것은 예수께서 죽으시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30세에 침례를 받으시므로 기름 부으심을 받고(행10:38) 그리고 3년 반이 되었을 때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셨다. 금지라고 번역된 말은 ‘샤바트’인데 ‘안식하게 했다.’는 뜻이다. 죄인들이 속죄를 위하여 제사와 예물을 드렸는데 이제 그것을 드리는 일에서 쉼을 얻게 되었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친히 제물이 되셔서 표상을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3년 반은 제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기간이었다. 그때까지 아직도 그들은 선민으로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스데반을 죽이는 일로 복음은 유대인을 떠나서 이방으로 퍼졌다. 70이레는 유대인을 위하여 권고하시는 날이었다.(눅19:44) 그들은 이 권고 받는 날을 알지 못하였다. 스데반이 회개의 권고를 하지 않고 그들의 민족적 선민의 때가 다 지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렀다는 사실의 선포가 되었다. 이제 그들도 이방인과 같이 개인적으로 예수를 믿어서 영적 선민의 자리에 들어올 수는 있어도 민족적 선민의 기간은 끝난 것이고 예수께서는 온 인류를 위한 성소봉사에 임하시게 되었다. 

 

교훈 : 스데반은 최후 진술을 마치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며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다.

 

 

7월 26일(목) 복음의 확산

 

스데반의 죽음은 예루살렘 신자들에 대한 대규모 박해에 불을 붙였다. 물론 그를 반대했던 무리가 선동에 앞장섰다. 그 무리의 우두머리였던 사울은 교회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다(행 8:3, 26:10). 그러나 그 박해는 좋은 결과를 낳았다.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진 신자들은 나아가 복음을 전했다. 그 땅에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 성취되었다(행 1:8).

 

1. 행 8:4~25을 읽어 보라. 이 일화에서 드러난 교훈은 무엇인가?

[행8:4~25]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답: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된 경위를 가르쳐준다. 

 

사마리아인들도 부분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모세오경을 보는 일신론자(一神論者)들이었고 할례를 행하며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보기에 사마리아인들의 신앙은 타락하였다. 이스라엘이 누리는 언약의 은총이 무엇이든지 사마리아인들의 몫은 없었다.

예기치 않은 사마리아인들의 회심에 예루살렘 교회는 당황했다. 사도들은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서 베드로와 요한을 파견하였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기까지 하나님께서 성령을 내리지 않으셨던 이유는(행 8:14~17) 그들이 보는 앞에서 사마리아인들도 신앙 공동체의 완전한 일원으로 수용되었음을 확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행 11:1~18 참고).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행 8:26~29을 보면 전도자 빌립은 에디오피아 환관을 만난다. 그는 성경을 공부한 뒤에 침례를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베풀고”(행 8:38).

처음에는 사마리아인들, 그다음에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귀국하는 길에 만난 에디오피아인까지 복음은 예언대로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들은 당시에 알려진 전 세계를 누비며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구원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의 위대한 복음을 전할 것이었다.

 

<부가설명> 핍박으로 사울은 바울로 회심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사도들 외의 성도들이 핍박을 피하여 흩어지면서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였고 그들은 받아들였으며 그 성에 기쁨이 있었다. 예수님은 복음이 전파되는 차례를 말씀하셨다.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다. 예루살렘과 온 유다에는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복음을 전하였고 제자들도 예수님 승천하신 후에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오순절에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유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유대인을 위한 권고하시는 때가 끝나면서 바로 다음 순서인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졌고 구스 내시가 복음을 받아서 에디오피아로 복음이 확산 되었으며 마침내 사울이 바울 사도가 되면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심을 입고 유럽으로 복음을 확산시켰다. 복음은 그렇게 퍼져서 우리들에게까지 왔다. 우리는 외국에 선교사로 나가지 못해도 기도로 후원하고 헌금으로 후원하여 후원선교사로서의 직무를 감당하면서 우리 근방에 전도자로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은혜의 때이기 때문이다.

 

교훈 : 스데반의 죽음은 교회에 대한 대규모 핍박으로 이어졌지만 오히려 그 일은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7월 2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밀어 닥친 핍박은 복음 사업을 크게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곳에서의 말씀 사역에는 성공이 따랐으므로 제자들은 온 세상에 나가라는 구주의 사명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무를 위험이 있었다. 그들은 악을 저항하는 능력을 얻는 최고의 비결은 적극적인 봉사 활동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예루살렘 교회를 지키는 일만큼 중요한 사업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하여 새로 개심한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대신, 이미 성취한 일에 만족하도록 모든 사람들을 이끄는 위험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대표자들이 국외로 흩어져 거기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핍박을 허락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신자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다”(사도행적, 10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위의 인용문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일반적인 견해와 달리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초기 교회에 어떤 위험이 닥쳤습니까? 그때 그들을 통해 성취된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상황에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우리가 ‘우리 교회’를 지키는 일에 사로잡혀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하는 본연의 임무를 상실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불어나자 지도자들은 그들을 지키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전도를 게을리 하게 되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실수에 빠질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➋ 사도의 시대에 유대와 사마리아의 관계는 수백 년 묵은 적대감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유대인인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신자인 우리도 문화나 인종에 대한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우리 모두는 십자가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합니까? 그리스도의 죽음은 구원의 보편성과 모든 인류의 무한한 가치에 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 인종에 대한 편견만이 아니다. 같은 인종이라고 그들의 상태에 대하여 편견이 있다.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그 모두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셨다. 생명과 존재는 창조주와 구속 주 앞에서 동등하다. 

 

➌ 빌립은 에디오피아인에게 어떻게 접근했습니까?(행 8:27~30) 우리는 어떻게 더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만들어야 할까요?

※ 성령의 인도로 접근하였다. 우리도 성령의 인도를 기도하며 구도자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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