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베드로의 사역(질문, 대답, 설명)0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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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08-04 05:42 조회9,420회 댓글0건본문
8월 11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30분
● 연구 범위 : 행 9:32~43, 행 10:9~16, 엡 2:11~19, 행 11:1~26, 행 12:1~18
● 기억절 :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바울이 다소로 떠나자 베드로가 다시 사도행전의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베드로는 유대와 인근 지역을 다니는 일종의 순회 사역자였다. 사도행전은 그와 얽힌 두 개의 기적적인 일화 곧 애니아의 치유와 다비다(도르가)의 부활을 간략하게 다룬다. 그리고 10장에서는 고넬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방인들의 회심은 사도 교회에서 가장 논쟁적인 사안이었다. 고넬료의 침례 이후에 벌어진 논의가 모든 난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베드로와 예루살렘의 형제들은 오순절에 일어났던 성령의 강림을 회상하면서 복음의 은혜가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사이에 안디옥교회에서는 이미 이방인들을 향한 활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번 주 교과는 또한 헤롯 왕 치하에 일어난 단기간의 박해와 그것이 바울의 박해를 피했던 사도들에게 미친 영향도 공부할 예정이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베드로에게 있었던 목회자와 행정가로서의 은사를 인식한다.
느끼기 : 베드로의 사역을 특징짓는 용기와 대범함에 공감한다.
행하기 : 사역을 통해 자신과 교회를 강화시켰던 베드로의 삶의 방식을 우리의 삶에도 적용한다.
➋ 베드로가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로 드렸을 때 어떤 기적을 행할 수 있었습니까?(행 9:32~43)
※ 성령의 역사로 에니아를 낫게 했고 도르가를 살렸다. 그는 예수께서 하시는 방법을 모방하였다.
➌ 고넬료의 일화에서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 어떤 목적을 이루시려고 했습니까?(행 10:9~16)
※ 이방인에 대한 유대인의 사고방식과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게 했다.
➍ 안디옥 교회의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사실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답게 생활했다. 우리도 그렇게 생활할 것을 배워야 한다.
➎ 헤롯의 박해로 야고보는 순교했지만 베드로는 위기를 모면한 일화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선한 길로 신자들을 이끄신다.
➏ 우리는 지금 어떤 일에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할까요?
※ 선교와 모든 주님의 일.
결론 : 교회의 일원이요, 기도의 전사요, 전도자요, 교회 지도자였던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훌륭한 모본을 남겼습니다.
8월 5일(일) 룻다와 욥바에서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행 9:35).
베드로는 유대의 해안지역을 다니며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방문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교리적인 가르침을 주려는 것이 방문의 목적이었던 것 같다(행 2:42 참고). 그러나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셨던 것과 같은 형태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게 하셨다.
1. 행 9:32~35을 읽어 보라. 애니아의 치유와 눅 5:17~26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적 사이에는 어떤 비슷한 점이 있는가?
[행9:32~35]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 지 팔 년이라 34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눅5:17~26]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 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의논을 아시고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답: 침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중풍병자를 고친 것이 유사하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유사하다.
이야기의 간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가버나움의 중풍병자를 고치셨던 유명한 일화를 떠올린다(눅 5:17~26). 침상에 대한 설명도 비슷하다. 애니아의 치유는 룻다뿐 아니라 사론 해안 평야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적이 사실임을 스스로 확인한 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왔다.
2. 행 9:36~43을 읽고 다비다의 부활 기사를 살펴보라. 그녀에게 어떤 특별한 점이 있었는가?
[행9:36~43]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38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39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하니라.
답: 그는 많은 구제를 하였고 특히 과부들을 돌보는 일을 잘 했다.
아람어로 ‘작은 영양’을 뜻하는 ‘다비다’(그리스어로는 ‘도르가’)는 자선 활동으로 인해 이웃에게 매우 사랑받는 신자였다. 그녀의 일화는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의 이적과 비슷하다(눅 8:41~42, 49~56). 그 기적을 목격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방에서 모두 나가라고 요구했다(막 5:40 참고).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한 다음 그 죽은 여인에게 “다비다야 일어나라”(행 9:40)고 말했다.
사도들은 많은 이적을 행했지만 사실 그것들은 모두 그들의 손을 빌리신 하나님의 행적이었다(행 5:12). 예수님의 이적들과의 유사성을 고려한다면 그 당시의 교회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누가 그분의 도구인지보다 그가 하나님께 자신을 얼마나 굴복시켰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임을 기억해야 한다(요 14:12 참고).
하나님이 복음 사업을 위해 사용하시도록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분께 온전히 맡긴다면, 위대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다비다가 부활한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 이적을 통해 욥바에서 많은 회심자들이 생겼다(행 9:42).
<부가설명> 베드로는 학문 없는 범인이었다.(행4:13) 그러나 가장 위대한 선생인 예수께 배운 제자였다. 그는 열정적이었고 다혈질적인 경향이었지만 진실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사랑한 제자였다. 그는 허물이 드러났을 때 곧 회개하고 굴복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성령이 그에게 임하시고 배우지 못한 방언을 하고 이적을 행할 때에 예수께서 하시던 방법을 그대로 모방한 것 같다. 모방은 본을 보인 사람을 닮은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베드로가 행한 이적들은 예수께서 이적 행하시는 모습을 많이 모방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애니아에게 행한 이적이나 다비다를 살린 이적이 예수께서 지붕을 뚫고 내려준 중풍병자를 고치신 모습과, 또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하신 모습과 비슷했던 것이 베드로의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교과 저자가 지적했는데 그런 것 같다.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예수님이 생활하신 것을 모방하면 예수님을 잘 닮아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생각, 언어, 감정, 태도에서 예수님이 하신 대로 하려고 하면 우리도 우리의 인격의 모습이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드러나지 않겠는가.
교훈 : 자신을 온전히 주님의 도구로 드렸기 때문에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놀라운 기적을 행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
8월 6일(월) 고넬료의 집에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행 10:15).
욥바에서 베드로는 시몬이라는 무두장이의 집에 머물렀다(행 9:43). 그때 욥바에서 약 40km 떨어진 가이사랴에는 고넬료라는 로마 백부장이 살았다. 그와 그의 가정은 아직 정식으로 유대교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즉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었지만 경건한 하나님의 숭배자들이었다. 그는 이상을 통해서 욥바에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그의 집으로 초청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다(행 10:1~8).
1. 행 10:9~16, 28, 34~35을 읽어 보라. 베드로는 무엇을 경험했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는가?
[행10:9~16,28,34,35]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 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 대 15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답: 6시 기도할 때 베드로가 먹지 않았고 먹을 수도 없는 생물들이 담긴 보자기의 환상과 그것을 보는 베드로에게 거기 있는 것을 잡아먹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기별이었고 이방인을 가증한 자로 보지 말하는 기별이었다.
베드로가 본 이상은 음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정오 즈음이었다. 베드로는 허기를 느꼈다. 그때 잡아먹으라는 어떤 음성이 들렸다. 그 이상은 정결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의 구분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에게 복음의 포용적인 특성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비전의 목적은 이방인들에 대한 베드로의 거부감을 해소하려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자신이 만약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그와 교제를 나누면 부정하게 되어서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거나 그분의 임재 앞에 나아가기에 부적합하게 되리라고 여겼다. 1세기 유대와 그 주변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과 상대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방인들을 이스라엘의 연합에서 제외시킨 그 당시의 신학에 있었다. 그들의 견해는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세상에 전해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존재 목적에서 벗어나 있었다.
할례는 아브라함 언약의 증표였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차별과 괄시의 대상이 되었다.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고 유대인이 되지 않는 이상 언약의 은혜 가운데 어떤 것도 누릴 수 없었다. 초기 신자들은 시간이 지나서야 그와 같은 생각이 예수님의 죽음이 포괄하는 보편성의 범위와 맞지 않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부가설명> 사람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것과 다른 어떤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유대인들은 수백 년 형성된 선민사상으로 이방인들을 가증한 생물취급을 했다. 유대인인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도 이 사고방식에서 좀처럼 탈피하지 못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수로보니게 여자의 아들을 고쳐주신 것을 보고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고 데가볼리 지역에서 4천명을 먹이실 때 거기 있었지만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데가볼리 지역은 이방인 지역이다. 성령께서 임하시고 그들이 능력을 입어 복음을 증거해도 유대인들에게만 전하는 편협함을 보였다. 사도들의 지도자인 베드로에게 이런 고정관념을 깨어버리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특단의 조치를 하신다. 그것이 이 환상이다. 이 환상 후에 고넬료의 심부름꾼들이 찾아왔고 성령께서는 가라고 하셨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더럽다고 하지 말라고 말했을 때 그 환상이 아무것이나 먹어도 된다는 기별이 아니고 유대인 외의 민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라는 기별을 가르친 환상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내었다. 이 환상을 음식에 적용하면서 아무것이나 먹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주장은 전혀 성경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억지로 적용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이방인과의 교제를 꺼리는 당시의 유대인 신자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서 먼저 베드로로 하여금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게 하셨다.
8월 7일(화) 성령의 선물
행 10:44~48에서 초기 교회는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다. 사도 중 하나로부터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이 복음을 전해 듣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헬라파 신자들과 달리 사도들과 히브리파 신자들은 이방인들을 교회 안으로 수용할 준비가 아직 안 됐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시기 때문에 복음은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이방인들은 먼저 유대교로 개종해야 그다음에 신앙 공동체 안으로 수용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먼저 유대인이 되어야 했다. 초기 유대인 신자들의 그러한 사고방식은 바뀔 필요가 있었다.
고넬료와 그의 가족에게 부여된 방언의 은사는 유대인 신자들의 사고방식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가시적인 표징이었다. 하나님은 편애하지 않으신다.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모두 그분 앞에 평등하다.
1. 행 11:1~18을 읽어 보라.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경험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행 11:1~18]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3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5 가로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 6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7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8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 10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11 마침 세 사람이 내 우거한 집 앞에 섰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13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4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답: 유대인이 이방인 할례 없는 자의 집에 들어갔다고 힐난(詰難, 따져 묻는 것)하였다. 그러나 베드로의 설명을 듣고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시인하게 되었다. 힐난
이방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뿌리 깊은 편견 때문에 예루살렘 신자들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식사한 베드로를 비난했다. 그들은 고넬료와 그 가족의 구원보다 의식법을 준수하는 유대교적인 양심에 더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교회가 그와 같은 관습을 범하면 그것이 이스라엘의 신앙을 부정하는 표시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총을 잃고, 스데반을 죽음으로 몰아간 동료 유대인들의 고발을 당할까봐 두려웠을 것이다.
오순절에도 그들은 무아지경의 상태이거나 하늘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전에 배우지 못했던 이 세상의 말로 말하였다. 단지 목적이 달랐다. 사도들에게 부여된 방언의 은사는 세계 선교를 위한 것이지만 고넬료의 경우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인에게도 작용함을 확증하는 역할을 했다.
<부가설명> 복음 사업은 사람이 도구노릇을 하지만 실제로 사업을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사람이 자신을 성령께 드리면 성령께서 그를 도구로사용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사람이 자기가 사람을 만나고 자기 입으로 말하기 때문에 마치 전도를 자기가 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나서 복음을 증거한 전 과정을 생각해보라. 전적으로 성령께서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복음 사업은 성령께서 주도하시고 사람은 그분의 도구가 될 뿐이다. 성령께서 도구로 사용하시기에 합당하도록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이다. 성도들은 자기에게 있는 소질이 어떤 것인지 확인해서 그것을 복음사업을 위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자기를 성령께 드릴 때 그 소질을 복음을 위한 능력의 은사로 사용하신다. 사도들이 외국어를 배우지 않았지만 당시로서 가장 신속히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성령께서 외국어를 말하게 하셨고, 아직도 유대사상에 얽어 매인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보내셨다. 거기서 이방인들에게 성령께서 방언하게 하시므로 예수님이 이방인에게도 역시 메시아시라는 것을 증명해 주셨다. 성령께서 친히 그 일을 하신다는 증명으로 확실하게 표가 나는 방언을 하게 하셨다. 방언은 그들이 경험했던 것이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교훈 : 하나님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이방인을 용납하신다는 의미로 고넬료의 가족에게 성령이 내렸다.
8월 8일(수) 안디옥 교회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6).
고넬료의 회심이 동기가 되어 누가는 잠시 베드로의 일화를 중단하고 이방인들 사이에 일어난 복음 사업의 진전을 보여준다.
1. 행 11:19~26을 읽어 보라. 일부 신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도피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행11:19~26]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답: 안디옥으로 도피한 제자들이 그곳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성령께서 그들이 받아들이도록 일하셔서 그곳에 교회가 형성되고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로 불렸다.
사도행전의 이 부분은 8장에서 바울이 교회를 박해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에는 복음의 진전이 유대와 주변 지역에서 이루어졌지만,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던 헬라파 신자들은 유대 국경을 넘어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다.
누가는 시리아의 대도시 안디옥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예루살렘 난민들은 그곳에서 동료 유대인들과 그리스 문화권의 시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받아들였다. 이들 헬라파 유대인 신자들의 노력을 통해서 행 1:8의 사명이 실현되어 갔다. 그들은 이방인 선교의 진정한 선구자들이었다.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은 안디옥 교회의 성공을 보고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바나바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바나바는 이것이 복음을 진척시키기에 매우 좋은 기회임을 알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동역자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소 사람 바울을 찾아갔다. 바나바의 선택은 옳았다. 그해 바울은 그와 함께 일했고 큰 무리의 이방인들이 복음을 들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하려는 열정 때문에 그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알려졌다(행 11:26). 그것은 교회 외부인들이 그들을 조롱하려는 의미로 만든 신조어였다. 신자들은 자신들을 ‘형제’, ‘제자’ 또는 ‘성도’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했다(행 1:16, 6:1, 9:13). 사도행전이 기록될 당시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상용되었기 때문에(행 26:28) 누가도 그것의 사용을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제자 또는 지지자라는 뜻이다.
<부가설명> 헬라파 유대인들이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들에게 그것은 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족은 첫째로 혈연으로 형성된다. 그리고 언어로 확고해지는데 바벨탑에서 민족은 혈연이 아니라 언어로 형성되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의사소통이 되기 때문에 그들끼리 모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민족은 혈연이 기반이 되긴 하지만 결국 언어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상과 언어가 통하면 민족이 되는 것 같다. 헬라파 유대인이지만 레위지파인 바나바가 헬라파 유대인인 바울을 찾아 함께 일하자고 하여 레위지파적인 사고방식과 헬라적인 사고방식이 연합되었고 헬라파 유대인들이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히브리혈통과 헬라혈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었고 그들의 사상과 신앙이 같아지게 되었다. 결과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한 새로운 민족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형성된 한 새로운 민족이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한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민족에게는 이방이다. 이방 세계에서 나그네와 행인으로 그리스도인의 본향인 하늘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복되고 은혜로운 이름이 아닌가?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형성된 거듭난 새로운 인종이다. 아멘.
교훈 : 안디옥 교회는 조직적으로 이방인 선교의 문을 연 최초의 교회였으며 그들의 열정에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8월 9일(목) 헤롯의 박해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행 12:5).
다시 유대로 돌아와 우리는 야고보를 처형한 헤롯 왕의 일화를 접한다.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제였다(막 1:19). 헤롯은 베드로도 그와 같이 처형하기를 원했다.
1. 행 12:1~4을 읽어 보라. 초기 교회는 여기서 어떤 난관에 봉착했는가?
[행12:1~4]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답: 헤롯이 교회를 핍박해서 12사도 중에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도 잡아서 옥에 가두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헤롯 왕은 헤롯 대왕(마 2:1)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이다. 그는 기원후 40년에서 44년까지 유대를 통치했다. 그는 경건을 가장한 처신으로 유대 백성들 특히 바리새인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일부 사도를 공격함으로써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던 그의 노력은 우리가 다른 자료들을 통해 알고 있는 그의 인간성과 딱 들어맞는다.
아그립바는 야고보의 처형이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자 베드로도 죽이기로 계획했다. 체포된 베드로는 4개 분대에게 맡겨졌다. 각 분대는 4명의 군사로 이뤄졌고 밤새 돌아가며 베드로를 감시했다. 두 군사는 좌우편에서 쇠사슬로 묶인 베드로를 지켰을 테고 나머지 두 군사는 감옥문을 지켰을 것이다. 그와 같은 극도의 경계는 이전에 베드로와 요한에게 있었던 일의 재발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행 5:17~20 참고).
2. 행 12:5~18을 읽어 보라. 형제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행12:5~18]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6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애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 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답: 헤롯이 베드로를 옥에 가두고 엄중히 경계를 했지만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이끌어내고 숨겼다.
아그립바가 베드로를 재판에 넘겨서 처형하려고 작정한 전날 밤에 베드로는 다시 한 번 천사의 도움을 받아 기적적으로 감옥을 탈출했다.
그 후에 아그립바는 가이사랴에서 죽는다(행 12:20~23). 복막염, 궤양, 음독 등 그의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누가는 단호하게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 중에 아직도 그를 통하여 이루어야 할 사업이 있을 때에는 그를 보존하시고 그를 생명 싸개 안에 보호하시는 것을 이런 사건에서 보게 된다. 성도 각 사람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일에 충성하는 것을 참으로 할 만한 일이다. 베드로는 두 번 감옥에 갇혔으나 두 번 천사가 이끌어내었다. 처음에는 베드로가 그것이 현실이 아니고 환상인 줄 생각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에게 환상 같은 현실이 이르러 온다. 그런 현실을 깨닫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초대 교회에 이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교회와 지도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굳게 하셨다. 박해의 바람이 거세어도 그들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느끼고 실감하면서 충성하였다. 야고보가 순교하고 베드로가 갇혔지만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였다.
교훈 : 예루살렘 교회에 다시 한번 박해의 폭풍이 불어닥쳤다. 그 과정에서 야고보는 순교를 당했지만 베드로는 하나님의 개입으로 박해자의 손에서 벗어났다.
8월 10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도행전 10장에서 우리는 하늘 천사들의 봉사에 관한 또 다른 한 사례를 볼 수 있다. 그들의 봉사의 결과로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이 회심하게 되었다. 8장에서 10장을 읽고 특별히 관심을 가져 보라. 그 성경 이야기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영혼 구원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늘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같이 멀기만 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또 그 성경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 각 사람은 서로를 대할 때, 지상에 있는 주의 사업을 성취하는 주의 쓰시는 그릇들 중 하나로 대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화잇주석, 행 10장).
“교회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사업은 전진할 것이며 그분의 원수들은 좌절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교회가 고난과 순교로부터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복음이 승리하리라는 누가의 믿음은 철저하게 현실적이다. 그는 복음의 일꾼들이 고난과 결박을 당할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에는 재갈을 물리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I. Howard Marshall, The Acts of the Apostles (Grand Rapids: Eerdmans, 1980), pp. 206, 20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행 10:2)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성령께서 그의 안에서 일하셨던 것이 확실합니다. 아니면 그의 경건한 생애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겼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의 일화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게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나타나시고 그를 자기 백성으로 부르시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다. 성령께서는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받을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그러나 사람이 그런 역사의 기회를 붙잡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➋ 바울의 박해는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안디옥으로 피신한 신자들은 유대인과 헬라 문화권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의 고통과 고난을 축복으로 바꾸셨던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해 보십시오.
※ 서로 이야기해 보자.
➌ 야고보는 열두 제자 중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신실한 백성들이 부당한 고난을 당하는 예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고난의 문제에 관하여 그들의 이야기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 신약성경에서는 스데반이 대표적이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도가 배척을 당한다는 현실을 바르게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필요하실 때에는 지키고 이루신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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