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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바울의 회심(질문, 대답, 설명)08/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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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07-28 04:45 조회9,9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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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38분

 

● 연구 범위 : 행 26:9~11, 신 21:23. 행 9:1~20, 고전 9:1, 갈 1:1, 행 9:20~30

● 기억절 :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다소 사람 사울(나중에 바울이 됨)의 회심은 사도 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 중 하나였다. 그의 회심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교회의 원수였던 사람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을 위해 그가 무슨 일을 하게 됐는지가 중요한 주제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은 구제불능의 원수였다. 그가 초기 교회에 끼친 해는 헤아릴 수 없었다. 그는 공적인 지원을 받아가며 불같은 투지로 교회를 파괴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그는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되었다. “가장 잔인하고 끈질긴 그리스도 교회의 박해자들 중에서 복음의 가장 유능한 옹호자요 가장 성공적인 사자가 일어났다”(엘렌 G. 화잇, Sketches From the Life of Paul, 9).

이전에 교회를 핍박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겼을 만도 하지만 그는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울의 회심은 기독교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바울이 회심했던 과정을 살펴본다.

느끼기 : 바울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행하기 : 하나님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하는 바울의 결연한 의지를 본받는다.

 

➋ 바울이 산헤드린의 사도에서 하나님의 사도로 갑자기 바뀌게 된 사연은 무엇입니까?

※ 다메섹 가는 길에 예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그를 불러내어 회심시켰기 때문이다. 

➌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확신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마음을 정리해야 했을까요?

※ 아라비아 광야에서 성령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➍ 초기 교회 신자들은 바울의 갑작스러운 탈바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습니까?

※ 참일까 의심했다. 바나바의 중재로 비로소 받아들였다. 

➎ 바울은 처음부터 교회 안팎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어떤 편견과 싸워야 했습니까?

※ 밖에서는 유대주의와 안에서는 율법주의와 싸워야 했다. 

 

결론 : 가장 혹독한 기독교 박해자가 가장 열정적인 기독교 옹호자로 변모한 일화는 우리 모두에게도 그와 같은 총체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7월 29일(일) 교회의 박해자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행 9:2).

 

바울은 헬라파 유대인이었다. 그는 길리기아의 주도(州都) 다소에서 출생했다(행 21:39). 하지만 그는 예루살렘에 와서 당시 그 도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바리새파 스승이었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기 때문에(행 22:3) 그리스식 사고방식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나 있었다. 바리새파였던 그는 엄격한 정통주의를 고수했지만 그의 열성은 광신주의에 가까웠다(갈 1:14). 그래서 그는 스데반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이어진 박해에서 핵심 인물이 되었다.

 

1. 바울은 교회를 박해했던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묘사했는가?(행 26:9~11)

[행26:9~11]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답: 예수 이름을 대적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대제사장들에게 권세를 얻어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 가편투표하고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도록 하고 심히 격분하여 외국 도시까지 가서 핍박했다고 말했다.

 

바울은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다고 말했다(고전 1:23). 예수님은 메시아가 왕으로 오기를 바라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기대에 걸맞지 않았다. 더구나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는 생각은 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성경이 나무에 매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신 21:23).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십자가는 터무니없는 모순이자 예수에 대한 교회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는 가장 분명한 증거였다.

행 9:1~2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다소 사람 사울의 행동을 보여준다. 다메섹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217km 떨어진 큰 도시였고 그곳에는 유대인 인구가 많았다. 유대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본부(산헤드린)를 두고 일종의 관계망을 조직했으며 회당은 지역 공동체의 지원 센터 기능을 수행했다. 산헤드린과 지역 공동체들은 일반적으로 ‘샬리아’(보냄을 받은 자)가 전달하는 서신을 통하여 소통을 유지했다. ‘샬리아’는 산헤드린에서 임명한 일종의 공무대리인으로서 몇 가지 종교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바울이 산헤드린의 의장인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의 회당에 보낼 공문을 요구했을 때 그는 예수님의 추종자들을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이송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샬리아’가 되었다(행 26:12 비교). ‘샬리아’를 그리스어로 번역하면 ‘아포스톨로스’ 곧 사도이다. 즉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기 전에 산헤드린의 사도였다.

 

<부가설명> 사울이라는 사람은 사상이 아주 투철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가 자기가 믿는 도리에 철저했던 신념의 사람이었다. 그의 사상과 신념에 일치하지 않고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에 가차 없이 반대와 핍박을 가하는 불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다메섹 가는 길에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극적으로 그를 굴복시키지 않았으면 결코 예수님께 돌아올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투철한 정신과  자기사상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께 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런 사람이 참으로 예수님의 사상을 깨닫고 헌신하게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헌신과 충성으로 봉사할 것을 보신 것이다. 전에 예수님의 도를 핍박한 만큼 이제는 예수님의 도를 위하여 충성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정말 그의 개심은 초대교회 시대에 대 사건이었을 것이다. 전에 바울을 알고 유대교를 위한 투사였던 그가 그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하는 제자가 된 것을 봤을 때에 엄청난 적개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어떤 사람들은 사울이 저렇게 된 데는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접촉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리스도인은 바울처럼 복음을 바르게 깨닫고 깨달은 복음에 죽도록 충성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의 참된 증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 바울은 헬라파 유대인이자 바리새인으로서 정통 유대교에 충성하며 열의를 다해 기독교 운동을 탄압하는 산헤드린의 사도였다.

 

 

7월 30일(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4).

 

1. 행 9:3~9을 읽어 보라.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중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행 9:5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행 26:14 참고)

[행9:3~9]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행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답: 예수께서 강한 빛 가운데서 사울을 만나서 그를 부르셨다. 사울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 그에게 가시채를 뒷발질 하는 것과 같은 고생이 된다고 하셨다.

 

바울과 그의 일행이 다메섹에 가까이 왔을 때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정오 즈음에 하늘에서 매우 밝은 빛이 비쳤고 한 음성이 들렸다. 이것은 선지자들에게 보이는 일종의 이상이라기보다는 바울만이 인식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현현(顯現)이었다. 그의 동료들도 그 빛을 보았지만 바울만 눈이 멀었고 그들도 그 소리를 들었지만 바울만 그것을 이해하였다. 그 빛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거룩한 영광이었다. 그 순간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바울에게 나타나셨다(행 22:14). 바울은 이 경험을 통해서 직접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자신도 열두 사도와 동등한, 부활하신 구주의 증인이며 사도의 권위가 있다고 주장했다(고전 9:1, 15:8).

이어진 예수님과의 담화는 그 빛보다도 바울에게 훨씬 충격적이었다. 바울은 나사렛 예수의 도당을 공격함으로써 위험하고 끔찍한 이단으로부터 유대교를 정화시키는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철저히 확신했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살아계실 뿐 아니라 자신이 그분의 신자들에게 고통을 가함으로 실제로는 그분을 공격하고 있다는 실망스러운 사실을 깨달았다.

예수님은 바울이 알 만한 그리스 속담을 이용하여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행 26:14). 이것은 소가 자기를 다루기 위해 사용하는 가시 달린 막대기를 차버리려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더 아프게 할 뿐이다.

이것은 스데반에게 벌어진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바울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지적하는 듯하다. 성경은 이런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부른다(요 16:8~11).

“사울은 스데반을 심문하고 판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하나님께서 그 순교자와 함께 하시는 뚜렷한 증거를 보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반대하는 데 있어서 그가 신봉했던 그 사업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의 마음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당황하여 온전한 지혜와 판단력을 갖췄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호소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울은 스데반이 신성 모독자요, 순교한 제자가 전파한 그리스도는 협잡꾼이므로 거룩한 직분을 가지고 봉사하는 자신들이 틀림없이 옳다는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주장을 수긍하였다”(사도행적, 112~113).

 

<부가설명> 지도자가 잘못 가르치면 제자들이 망한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런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사울이 스데반의 순교를 보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 흔들릴 때 그가 신뢰하는 지혜와 판단력을 갖췄다고 믿은 지도자와 선배들에게 그 상태에 대한 해석과 조언을 구하였으나 그들은 바울을 아주 잘못된 데로 이끌었다. 복음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면서 예수님을 종교사기꾼으로 이해하도록 한 것이다. 사울의 지도자들과 선배들이 같은 대답을 했을 때 사울은 그것을 믿었다. 결과로 그는 더욱 열정적으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다메섹까지 가서 핍박하기 위하여 권세를 받아서 나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의 열정을 보시면서 그를 부르셨다. 그는 얼마나 놀라고 충격을 받았겠는가. 그는 참된 지도자 예수님을 만나서 바른 길에 들어섰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이시며 부활하신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의 열정은 예수님을 위하여 불타오르게 되었다. 우리는 성경에서 바울이 만난 예수님을 바울처럼 만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울처럼 헌신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자신에게 박해를 가하는 바울을 만나셨다. 그분은 그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살피시고 그가 하고 있는 일의 진상을 알려주셨다.

 

 

7월 31일(화) 아나니아의 방문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사울은 자신이 예수님과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이 자신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행 22:10). 그 말은 그때까지 자신이 행했던 일들을 뉘우칠 뿐 아니라 심지어 앞으로의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맡기겠다는 무조건적인 순종의 표현이다. 사울은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다음 지시를 기다려야 했다.

행 9:10~19을 보면 다소 사람 사울이 사도 바울이 되기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그를 준비시키셨는지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이상을 통해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셔서 사울을 만나 그의 시력이 회복되도록 안수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사울이 어떤 사람이며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형제들이 고통을 겪고 심지어 목숨을 잃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사울이 다메섹에 온 이유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사울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망설임은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아나니아는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사울의 삶이 완전히 변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사울이 더 이상 산헤드린을 위해 일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사울은 더 이상 산헤드린의 사도가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님이 선택하신 도구였다.

 

1. 갈 1:1, 11~12을 읽어 보라.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어떤 주장을 펼치는가?

[갈1:1,11,12]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답: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자신의 기별과 사도직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아나니아가 부르심을 받아 수행한 역할과 본질적으로 모순되지 않는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만나서 그가 이미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직임을 확증했다.

사실 사울의 변화는 어떤 인간적인 원인도 작용할 수 없으리만큼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하나님의 개입이 아니라면 가장 극단적인 예수의 반대자가 갑자기 그분을 구주와 주로 영접하고 자신의 모든 명예와 신념과 경력을 포기한 채 그분의 가장 헌신적이고 생산적인 사도가 될 리가 없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바울을 부르신 사건을 읽으면서 나도 그렇게 불러주시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독자들은 그렇지 않았는가?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사건으로 오직 바울 한 사람만 그렇게 부름을 받았다.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서 준비된 그릇으로 보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은 기록된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바울은 에베소 3장 5,6절에서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고 기록하여 사도들 이후 시대에는 사도들 시대와 같은 방법으로 성령께서 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이유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함께 후사가 되고 지체가 되고 약속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도하는 사람들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때에 마음에 감동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그릇들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들이다. 감사하지 않은가?

 

교훈 :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면서 사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한 그분의 일꾼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그의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었다.

 

 

8월 1일(수) 초기 바울의 사역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행 9:22).

 

행 9:19~25을 보면 바울이 회심한 후 예루살렘에 돌아가기 전 얼마 동안 다메섹에 머문 듯이 보이지만(행 9:26 참고), 갈 1:17에 따르면 그는 예루살렘에 가기 전에 아라비아에 가서 얼마 동안 은둔 생활을 했다. “이 한적한 광야에서 바울은 조용히 연구하고 명상할 기회를 가졌다”(사도행적, 125).

 

1. 행 9:20~25을 읽어 보라. 누가는 다메섹에서 시작한 바울의 사역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그것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

[행9:20~25]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답: 유대인들이 바울의 증거에 굴복했으나 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함.

 

바울이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 예루살렘을 떠났을 때 그의 주요 대상은 다메섹 회당에서 은신하고 있을 유대인 신자들이었다(행 9:2). 그리고 이제 아라비아에서 돌아와 마침내 회당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가 온 이유는 신자들을 체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수를 증가시키고, 예수를 사기꾼으로 비방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박해자로 알고 있던 그가 예수님을 증언하는 말을 듣고 신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소 사람 사울이 어떤 인물이 되었고 교회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보고 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새로 회심한 이 인물이 장차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몰랐을 것이다.

바울의 반대자들 중 일부는 그의 주장에 반박하지 못하자 그를 죽이기로 모의하였다. 이 사건에 대한 바울의 회고에 따르면(고후 11:32~33), 그들은 자신들의 모의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를 지방 관원에게 고발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성벽위에 지은 집의 창문을 통해 광주리에 실려 도성 밖으로 탈출하였다.

바울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힐 것을 알았다(행 9:16). 다양한 경로에서 오는 반대와 박해와 고난이 계속될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가 마주하게 될 모든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과 사명을 흔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후 4:8~9).

 

<부가설명>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고 먼저 사도된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고 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갈1:15~17) 거기서 얼마나 있었는지 전혀 기록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 어쩌면 예수께서 40일 광야에 계셨던 것과 같이 그만큼 머물렀을는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보다 오래 머물렀을 수도 있다. 거기서 그는 성령의 지도로 진리를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또 바울이 머물렀던 아라비아가 어디인지도 모른다. 아라비아는 넓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는 다메섹도 아라비아에 속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아마도 다메섹에서 가까운 어느 사막지역, 광야지역으로 갔다고 추측할 수 있다. 아라비아에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간 것을 보아 이런 추측이 가능하다.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는 217km라고 하지 않았는가?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그당시 교통수단으로는 먼 거리였다. 여러 가지 여건으로 그는 광야로 가서 성령께 복음을 배우고 깨달았을 때 다메섹으로 와서 거기서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전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기지 못하자 죽이려고 했고 광주리에 담겨서 탈출했다. 어쩌면 바울은 자기가 그렇게 핍박하던 그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증거하면 다 잘 따르리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나님께서 그가 많은 핍박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을지라도 인간적 생각으로는 자기의 개종을 보면 유대인들이 이 진리를 알아보고 싶어 할 것이고 자기 같은 자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보고 따를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 어색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그렇지 않다. 복음의 원수 사탄이 감동하고 충동하기 때문이다. 

 

교훈 : 바울이 다메섹에서 성공적으로 사역을 시작했지만, 그는 곧 반대와 박해와 고난을 받았고, 그가 주 안에서 일하는 동안 그러한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8월 2일(목)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행 9:26).

 

다메섹에서 탈출한 바울은 박해자에서 전향한 이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방문한다. 회심한 지 3년 만이었다(갈 1:18). 그러나 그곳에서의 생활은 순조롭지 않았다. 그는 교회 안팎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1. 행 9:26~30을 읽어 보라.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행9:26~30]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답: 예루살렘 형제들이 바울의 회심을 당장 믿지 않았다. 바나바가 바울을 사도들에게 소개하여 용납하게 되었고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담대히 증거하니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다소로 보냈다.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만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지 이미 3년이 지났음에도 이전에 아나니아가 그랬던 것처럼 사도들은 그의 회심 소식이 믿기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이 치밀하게 계획된 책략일까봐 우려했다. 그러한 사도들의 거부감을 불식시키고 그들에게 바울을 소개한 사람은 바로 헬라파 유대인이자 구브로 출신 레위인이었던 바나바였다(행 4:36~37).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행하신 일들을 듣고 놀랐으며 그의 회심이 진실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러한 거부감이 단번에 사그라들지는 않았다. 그것은 단지 과거에 교회를 박해했던 그의 행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전하는 복음 때문이었다. 스데반의 때와 마찬가지로 사도들을 포함한 유대지역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의 보편성을 이해하는 데 더뎠다. 그것은 더 이상 구약의 의식 체계, 특히 제사 제도에 기초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그것의 유효성은 만료되었다. 유대 지역의 교회에서 바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부류는 주로 헬라파 신자들이었다. 거기에는 바나바뿐 아니라 일곱 집사 중 한 명인 빌립(행 21:8)과 구브로 출신 나손이 포함되었다(행 21:16). 칠 년 뒤에도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스데반이 이전에 전했던 기별과 다를 바 없는 바울의 기별을 여전히 비판할 것이었다(행 21:21).

예루살렘에 머문 15일 동안(갈 1:18), 바울은 이전에 스데반을 모해하는 데 동참했던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스데반처럼 그의 노력은 그의 목숨을 위협할 만큼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예수님은 이상 중에 나타나 안전을 위해서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그에게 지시하셨다(행 22:17~21).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그는 가이사랴 항으로 내려가 거기에서 길리기아에 있는 그의 고향으로 떠났다. 그는 선교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몇 년을 그곳에서 보낸다.

 

<부가설명> 강하게 형성된 관념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사도들까지라도 아지 구약적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베드로도 10장의 이상을 보았지만 유대인적 사고방식의 틀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한 것을 우리는 본다. 그래서 안디옥에서 바울에게 책망을 받게 되었다. 깊게 물들여진 고정관념은 쉽게 벗어지지 않는다. 바울이 이 문제로 유대인의 핍박보다 더 힘들었을는지 모른다. 사상적 압박이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가! 정치적으로도 그렇지만 신앙적으로도 그렇다. 우리는 진리를 깨닫는데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기록된 말씀으로 지도를 받아야 할 것이다. 모든 인간적인 것을 내려놓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굴복시키고 성경을 전체적으로 살펴서 깨달아야 한다. 성경의 진리는 퍼즐과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 퍼즐의 모든 조각이 제자리에 들어가야 온전하게 되는 것처럼 성경의 다양한 진리가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올바르게 있는 진리를 깨달아야 바르게 진리를 아는 것이 된다. 어떤 부분은 퍼즐이 맞춰지는데 전체의 그림 속에 그 맞춰진 것을 넣어보아서 딱 맞지 않으면 그 부분적으로 맞은 것 같은 것이 틀린 것이다. 성경의 진리는 그렇다. 그러므로 그것을 온전히 맞추실 분이 성령이시다. 우리는 기도로 말씀 앞에 굴복하는 은혜를 구하고 바르게 깨달아서 바울처럼 담대히 그 진리를 증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 다메섹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바울은 교회 밖에서뿐 아니라 안에서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사역의 길을 걸었다.

 

 

8월 3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싸움에서 전사한 장군은 아군에게는 손실이지만 그가 죽었다고 해서 적이 힘을 더 얻지는 않는다. 그러나 탁월한 사람이 반대 세력에 가담하면 그의 봉사를 잃을 뿐 아니라 그가 가담한 상대편에는 결정적인 이익을 가져다준다. 주께서는 다소 사람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쉽게 죽이실 수 있었다. 그리하였다면 박해의 세력은 크게 그 힘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 사울의 생명을 아끼셨을 뿐 아니라 회개하세 하심으로 그 용사를 적진으로부터 그리스도의 편으로 옮기셨다”(사도행적, 124).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을 가르치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전에 유대인들로부터 배운 교훈들 때문에 주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그래서 그 말씀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더뎠다. 그들은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부르며 거룩한 약속의 상속자로 간주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곧 그들의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말씀의 의도를 분명하게 파악할 만큼 충분히 확장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의 회심을 위해서도 일해야 했다”(엘렌 G. 화잇, Sketches From the Life of Paul, 3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이 바울에게 던지신 질문을 묵상해 보십시오.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4). 이 질문은 나사렛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분과 그의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영적인 관계를 가리킵니다(마 25:34~45). 즉 교회를 해롭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의 실질적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올바른 진리를 깨닫지 않고 신앙하면서 바른 진리를 대항하는 것도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 된다. 

 

➋ 예수님을 위한 증거에는 그분을 위한 고난도 포함합니다. 그리스어로 증인(martys: 마르튀스)이라는 말이 영어의 순교(martyrdom: 마터덤)라는 말과 관계가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 복음 진리를 증거 할 때 닥치는 비난과 반대와 난관을 겪는 것, 또 복음을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곤난을 경험하는 것 모두가 포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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