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제3기 2과 오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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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18-07-10 14:47 조회5,021회 댓글0건첨부파일
- 2018 제3기 2과 오순절.hwp (48.0K) 52회 다운로드 DATE : 2018-07-10 14: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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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교할동반 시간>
*반장은 반원들이 한주일 동안 TMI를 실천한 사항들을 나누도록 하며, 계속 실천하도록 장려한다.(안교교과 시간은 단지 말씀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삶속에서 실천하도록 장려하는 실제적인 시간이 되어야 한다. 배우기만 하는 것은 능력이 없다. 실천하는 데 능력이 있다.)
<핵심>
제자들이 기도로 하나되었을 때 성령이 임하심으로 복음을 힘있게 전할 수 있었다.
핵심어 : 성령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 느낌이 들 때는?
⇒믿는 자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셔서 위로와 용기, 양심의 가책을 통해 바른 길로 이끄신다. 이것은 개인적인 이른비 성령이다. 그런데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폭발적인 능력으로 임하셔서 복음전파에 힘을 실어주셨다. 이것은 역사적인 이른비 성령이며, 마지막 시대에 우리가 복음전파를 위해 연합할 때 다시 한번 오순절과 같은 성령의 능력이 나타날 것인데 그것이 늦은비 성령이다.
1. 성령의 강림과 복음전파
일.1. 오순절날 제자들이 한 곳에 모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2. 성령 강림의 목적은 무엇인가?
월.1. 오순절 성령강림은 동시에 어떤 기적을 동반했는가?
2. 오순절 방언과 오늘날 교회들에서 나타나는 방언은 어떻게 다른가?
2. 베드로의 설교와 그 열매
화.1. 방언의 이적을 보고 비아냥대는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어떻게 설명했는가?
수.1. 성령을 보내시기 위해 예수님께 필요했던 것은 무엇인가?
목.1. 베드로의 설교는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함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 설교에 청중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2. 성령의 쓰임받는 그릇이 되기 위해 개인적으로 어떻게 하겠는가? 늦은비 능력을 받기 위해 우리 교회가 어떻게 해야할까?
<적용, 결심>
☆이 주에 배운 교훈 중에 내가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하겠는가?
<답을 위한 도움>
일.1. 성령강림
제자들이 한 곳에 모였다는 것은 연합을 의미한다. 그들은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서로 죄를 고하고 회개하며 마음의 벽을 허물고 온전히 연합하였다. 그러자 성령이 임하였다.
2. 그리스도를 증거함(요 15:26)
주님은 복음전파의 대사명을 수행하는 자들과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주께서 자기들 곁을 떠나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장래 일을 염려하고 있을 때 주님은 성령을 약속하셨다. 성령을 통해서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다. 성령이 임하셨을 때 제자들은 주님이 지상에 계실 때보다 더욱 능력있게 복음을 전하였다.
지금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자에게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신다. 성령은 개인적 축복이나 영광을 위해서 구하는 자에겐 임할 수 없고, 오직 주의 복음을 위해 간구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시기 위해 임하신다.
월.1. 방언의 은사가 임함
방언의 은사 역시 복음전파를 위함이었다. 유대인들은 당시 아람어를 사용했으나, 외국에 사는 유대인 후손들은 그들 나라의 언어에는 익숙해도 아람어는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제자들은 함께 기도하며 사명감으로 뜨거워졌다. 그 때에 맞춰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각국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모였다. 그들에게 예수의 부활소식을 전한다면 그들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무식한 갈릴리 어부들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여러 방언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것인가? 성령은 그들의 간절한 필요에 따라 외국어를 말할 수 있는 기적을 주셔서 순식간에 복음을 각 나라의 방언으로 증거하게 하셨다.
2. 오늘날 교회의 방언이라는 것은 비성경적임
행 2:4의 ‘다른 방언’이 요즘 교회들에서 나타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언어가 아닌 외국어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
①어떤 번역본들은 ‘다른 언어들’이라고 되어 있음-이는 한가지 방언이 아닌 여러 다른 방언, 즉 여러 나라의 언어임을 보여줌(오늘날 방언은 거의 비슷함)
②어떤 번역본들은 ‘외국어’라고 되어 있음.
③언어에는 의미(고전 14:10)가 있어서 서로 소통이 되어야 함. 그러나 요즘 교회들의 방언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소통과는 거리가 멈.
④당시의 방언은 통역이 필요없이 외국인이 바로 알아들었으나, 요즘 교회들에서 말하는 방언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에게도 통역을 해주어야 함.(시간과 정력의 낭비)⑤의미없는 방언은 미개함을 증거함(고전 14:11)
⑥의미없는 방언은 어떤 열매도 없고 덕이 되지 않음(고전 14:14, 17)
요즘도 외국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외국인에게 긴급하게 꼭 전해야 기별이 있을 때는 방언의 은사가 임한다.
화.1. 구약의 예언 성취
오순절 성령의 부어주심은 과거에 나타나지 않았던 초자연적인 현상이기에 비성경적인 속임수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은 이미 구약 요엘서에 약속되어 있었다. 정직하게 예언을 살펴보는 자들은 그것이 예언의 성취요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베드로는 또한 예수님이 그 약속을 반복하셨고, 승천하심으로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셨다고 증거했다.
수.1. 승리
성령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 이상 혹은 같은 권위를 가진 자만이 성령을 보내실 수 있다. 예수님은 연약한 인성을 쓰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류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러나 십자가 고난 중에 보이신 완전한 품성은 사탄의 불의한 품성을 온우주에 드러내어 그를 영원히 패배케 하였고, 주님은 승자가 되심으로 그분의 신성을 증거하였다. 주님께서 사탄의 악한 품성에 굴복했다면 인류는 영원히 사탄의 종이 되었을 것이고, 주님 자신도 사탄의 종이 되었을 것이나, 주님은 십자가의 승리를 안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참 하나님으로 인정되셨다. 이것은 선과 악의 우주적인 최고의 전투에서 승리하심으로 얻은 지위인만큼 원래 하나님으로 계셨던 지위보다 견고하고 월등한 지위이다. 이런 자격으로 주님은 성령을 보내실 수 있었다.
목.1. 양심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했다.
이들 중에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쳐댔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주님의 모든 선한 일을 보고도 불의한 제사장들 편에 서서 주님을 모욕하고 거절했다. 그런 그들이 베드로의 설교에 양심이 움직였다. 무식했고, 그 자신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르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움직일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가 철저한 회개로 성령의 온전한 그릇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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