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과 욥의 구속주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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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6-12-12 11:14 조회3,119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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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 12 과 욥의 구속주
기억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4)
첫째 날(일) 나의 구속주가 살아계심
*도입질문: 예수님께서 구속주가 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께서 구속주가 되시는 이유는 예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는 창조주의 사랑을 주실 대상이 필요하였고, 창조주와 창조된 존재와의 사랑의 관계는 선택의 자유를 줄 때만 가능함으로 창조주는 아담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선택의 자유를 준다는 것은 어떤 선택을 한다 할지라도 그 모든 선택의 결과를 선택의 자유를 주신 분이 책임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창조주는 창조 전에 이미 구속주가 되셔야만 하였습니다. 계시록 13:8은 창세함으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조주는 창세전에 자신의 생명으로 아담과 그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시고 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엡1:4-6)
욥38장-41장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주로 증거하실 때 욥은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면 반드시 구속주가 되신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월) 인자
*도입질문: 하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인자가 되신 중요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인자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하신 단어입니다. 인자란 의미는 사람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의 원래 위치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사9:6)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신 여호와가 예수란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셨기에 예수님의 원래 위치는 아담의 아버지로서의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눅3:38)
하나님은 아담의 아버지이시고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인 아담이 사단을 선택함으로 사단의 아들이 되었고, 그때부터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도 사단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8:44)
아담의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아들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창세전에 계획한대로 자신이 아담과 같은 위치인 두 번째 아담의 위치로 오셨고 그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불려지셨습니다.(눅1:35)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첫 번째 아담과 동일한 모습과 동일한 위치로 오셔야 했으므로 하나님 자신의 속성인 신성에 인성을 덧입으셨고, 신성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삶을 사시므로 아담과 동일한 모습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아들이 되신 것입니다.
신성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사람의 아들로 사심으로 첫 번째 아담을 대신하는 두 번째 아담으로 사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실 때 인간처럼 동일한 시험과 어려움을 다 겪으신 것입니다.(히4:15)
예수님은 완벽한 인간으로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아픔과 필요와 곤궁하심을 아십니다.
셋째 날(화) 그리스도의 죽음
*도입질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오해된 하나님의 품성을 바르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마20:28- 섬기는 아버지, 죽기까지 끝까지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품성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는 하나님을 무서워하게 되었고, 조건적으로 이해하여 율법의 행위와 선함으로 구원받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상태는 하나님의 사랑은 도무지 느끼지 못하며 지속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상태이고(사1:11-13), 생명과 분리되어 있으며, 율법이 증거하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상태이므로 율법을 지키는 자가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요7:19)
하나님의 사랑이 생명인데,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로 인해 사랑을 없어지고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니까 더욱 행위에 치우칠 수밖에 없고, 그 상태는 사람에게는 매우 종교적이고 믿음 좋은 것처럼 생각되지만 하나님 보실 때는 사망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음으로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내게 위해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의 품성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품성을 증거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그 사랑에 끌려가게 합니다.
대속의 죽음을 자청하신 하나님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의 품성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랑을 경험할 때 사람들이 사랑에 반응하게 됩니다.(요12:32)
사랑의 이끌림으로 인해 하나님은 나의 가장 중심에 놓기를 선택할 때 그것이 바로 생명입니다.(요일5:11-12)
넷째 날(수) 인자의 고난
*도입질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자에 대한 무한 책임을 다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사랑의 관점에서 십자가를 바라보지 못하면 십자가는 이해할 수도 없고, 어쩌면 미련하기도 합니다.(고전1:23)
창조주의 능력을 사용하여 죄인을 살리지 않고, 능력이 전혀 없는 듯이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죄인을 살리시는 행위는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신들은 신 자신의 생명을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신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그분이야 말로 우리의 창조주시며,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시고, 그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시기에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하나님임을 온 우주 앞에 높이 드러내셨습니다. 십자가로 책임지시는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고 다 책임지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롬8:32)
다섯째 날(목) 가면이 벗겨진 사탄
*도입질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사단은 자신의 가면이 벗겨졌나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십자가에서 보여진 하나님의 모습은 책임지시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시는 분임을 증거합니다. 이것은 사단의 논리와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품성과 정부를 거짓으로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이 진상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복종과 순종을 요구함으로 당신 자신을 높이는 일에만 힘쓰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리고 그는 창조주께서 다른 모든 존재들에게 극기하라고 강요하면서 자신은 아무런 희생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주의 통치자께서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최대의 희생을 하신 것이 나타났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고후 5:19)셨기 때문이다. 또한 루스벨은 영광과 최상권을 얻기 위하여 죄가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 놓은 반면,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멸하기 위하여 스스로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이 드러났다”(각 시대의 대쟁투, 502)
십자가는 하나님의 품성과 사단의 품성이 대비되어 드러난 가장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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