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12과 욥의 구속주 (12월 16일 교과묵상/일~금 매일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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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6-12-11 09:16 조회2,85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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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금) 12과 “욥의 구속주” 전체 요약
모든 이야기의 결말이 공개된 이후에도 조금은 석연치 못한 여지를 남겼던 욥기의 엔딩은 더 이상 독자들에게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대답이 주어지지 않았던 질문들의 답은 수 백 년 뒤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계시됩니다. 인류를 위해 세워진 십자가는 욥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자신을 창조주로 계시하셨지만, 하나님은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구속주가 되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창조주이시면서, 동시에 인류의 죄 값을 치르셔서 죄의 결과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따라서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위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죽을 지라도 무덤 너머에서 소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도록 욥을 이끌었던 ‘대속자’(욥 19:25) 또한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욥이 살았던 과거에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도, 다가올 미래에도 예수님은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 되십니다.
욥은 우주의 주인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어찌 인생의 고통을 아시겠느냐고 항변했지만(욥 10:4~5) 성경은 성육신하셔서 인간과 섞여 살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이 겪는 고통과 고뇌를 몸소 겪어 아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의 머리카락을 셀 정도로(마 10:30) 인간에게 관심을 갖고 계셔서 인간의 작은 수준의 기쁨과 고통까지도 헤아리신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기에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롬 8:26) 우리를 위해 간구하실 수 있으신 것이며, 주님께서 ‘시험을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히 2:18)으신 것입니다. 때로 인간은 욥의 친구들처럼 고통당하는 자들을 오히려 더욱 아프게 만들어 버리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더 좋은 친구가 계십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돕는 자가 되신다니 이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완벽한 인간의 모본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이 ‘그가 행하시는 대로’ 따라 행하는 자들(요일 2:6)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사도 바울은 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성도들의 마음속에 만들어내기 위해 ‘해산하는 수고’(갈 4:19)를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지 인간의 ‘모본’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구속자’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흠 없는 완전한 생애를 사셨던 예수께서 죄 없는 대속물로 십자가에 자신을 바치셨기 때문에(히 10:12) 인류에게는 구원이 선물로 주어질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온전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해도 구원의 희망을 가질 수는 없지만, 자신을 영원한 대속물로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비로소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갈 3:21).
‘욥이 고통당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은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신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그 답을 찾게 됩니다. 욥을 포함하여 어떤 인간도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우리 주님께서는 자원하여 받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인류의 질고와 슬픔을 지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사 53:1~6)는 성경의 기록은 십자가에서 우리 주님께서 지셨던 인류의 짐 속에 욥이 겪어야 했던 비애와 슬픔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욥의 고통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으셨음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신 일은 인간의 지혜로는 미치지 못할 놀라운 일이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을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루셨습니다. 주께서 이루신 이 놀라운 일 앞에 인간은 욥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폈던 모든 어리석은 주장을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6)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사탄의 거짓 주장은 설 곳을 잃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으로 ‘이 세상의 임금’을 쫓아내셨고(요 12:31),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고후 5:19)신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하늘과 땅 사이에 파괴할 수 없는 연대를 구축하셨고, 예수님의 희생은 죄와 사탄의 최종적인 멸망을 보증하셨습니다. 주님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와 배도에 빠졌던 타락한 세상은 다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사탄은 최종적으로 패배했고 멸망이 확정되었으며, 하늘과 땅은 화목하였고, 사망의 운명에 처했던 죄인들에게는 영생의 소망이 주어졌습니다. 이 복음이 바로 욥의 마음속에 있었던, 욥이 믿었던 구속의 실체였으며, 이 복음이 아니었다면 욥기는 진정한 해피엔딩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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