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4과 하나님과 인간의 고통(10월 21일 교과묵상/일~금 매일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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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6-10-16 09:39 조회2,959회 댓글0건첨부파일
- 4과 통합-20161021.hwp (34.0K) 193회 다운로드 DATE : 2016-10-21 10: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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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금) 4과 전체 요약
쉴 새 없이 일어나는 재난과 사고 앞에서, 특별히 선한 이들이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현실 앞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묻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으시면서, 동시에 인간을 사랑하시는 자비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야만 하는가?’ 이번 주 교과는 인류의 오랜 질문이었던 이 ‘고통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바울과(롬 1:18~20), 욥은(욥 12:10)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존재가 천연계 속에서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 드러나 있다고 공언합니다. 비록 죄의 결과로 그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이 흐려지긴 하였으나, 천연계는 여전히 창조의 능력과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드러내는 계시인 것입니다. 창조의 경이로움을 더욱 분명히 보여주는 현대 과학의 발달도 생명의 기원을 우연으로 설명하려는 주장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잘 설계되어 복잡한 일들까지도 무리 없이 해 내는 문명의 이기들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신체와 정신을 가지고 완벽하게 작동하는 인간을 ‘우연의 산물’로 규정한 것은 애초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무리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창조와 인간의 존재가 ‘우연의 산물’이라는 사탄의 기만에 속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절로 창조되거나 저절로 생기는 것은 없다’는 ‘우주론적 논증’ 또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만나게 되는 제 1원인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께서 만물을 지으셨고(계 4:11),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시며(골 1:17), 지은 것이 하나도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이 없다(요 1:3)는 성경의 증언들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존재야말로 창조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라는 논리를 제공합니다. 영원한 존재의 개입 없이 이 복잡하고 정교한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것만큼 믿기 어려운 사실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의 개념을 철저히 부인하는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여전히 이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무(無)’에 의한 창조 가설이 아무리 많은 연구와 천재적인 지력을 가진 이들에 의해 주장된다 하더라도 진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분명히 인간의 지혜로는 미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고통과 악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어 왔으며, 때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그들의 신앙을 흔드는 이유가 되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가장 처음으로 기록된 2개의 책 중 하나인 ‘욥기’에서 이 문제를 다루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통 중에 홀로 버려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그 모든 것을 아신다는 기별을 전해주셨고,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결국 마지막에 모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성경은 일관성 있게 이 세상에 ‘악의 문제들’이 존재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요 16:33, 단 12:1, 마 24:7). 따라서 ‘악의 존재’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유가 될 수 없으며, 이것을 핑계 삼아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어떠한 논리로도 지지할 수 없는 일이 됩니다. 욥이 극심한 환란 중에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이러한 주장들은 근거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극심한 시련을 겪었던 욥이었지만, 그의 질문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내가 이러한 시련을 겪어야 하는가?”가 그의 질문이었습니다. 만약 욥이 무신론자였다면, 이러한 상황에 대해 ‘생명이 목적이 없는 것처럼, 이러한 고통도 의미가 없다’는 단순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창조하시고 여전히 섭리로 이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욥에게 이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질문은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삶에 닥친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중에 참담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진정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는 것일까요?
이러한 딜레마 앞에서 교과의 저자는 ‘신정론(神正論)’을 그 해답으로 제시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악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심을 정당화 하는 이론’인 ‘신정론’의 개념이 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엘렌 화잇도 결국 하나님의 선하심이 인간과 천사 그리고 온 우주 앞에 증명될 것이라는 믿음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개념이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선하다는 주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이 땅의 일을 다루고 계시며, 지금은 우리가 그 안에 감춰진 뜻을 정확히 알 수는 없을지라도, 이 죄의 세상이 끝나는 날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분명한 증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보여진 십자가의 사랑이야말로 이러한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생의 고통 중에서도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은 ‘의심’이 아닌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죄와 죄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는 그 날, 실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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