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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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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5-21 18:32 조회4,4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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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5월 29일(안식일) 일몰: 오후 7시 45분

제 9 과 <절제(節制) = (Temperance)>

▣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시대이다. 사람은 건강을 얻기 위해서라면 시간도 재능도 돈도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건강이라면 무엇을 바쳐서라도 바꾸려 한다. 이런 시류(時流)에 편승하여 건강의 길을 제시하는 서적과 단체가 많지만 그 본래의 의미대로 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건강은 사람이 올바로 생각하고, 올바로 살아가는 데서 절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오랫동안의 잘못된 행습(行習)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릇된 길에 들어서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가는 길이 건강과 장수(長壽)로 이끌어 준다고 믿고 있다. 길을 바꾸지 않으면 미구에 몸도 마음도 다 피폐(疲斃)해 질 것을 모르고 그릇된 길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는 인생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 그것이 곧 절제 생활이다. 왕왕 절제는 금욕이나 고행의 인상을 주는 말로 이해되고 있지만 사실은 사람의 육체와 정신의 기능이 올바른 길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즉, 사로(邪路)에서 정로(正路)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 사람의 몸은 살아있는 섬세한 기계이다. 기계는 그 원리를 잘 알고 사용법칙과 안전수칙을 잘 지켜서 사용하면 100%의 성능을 활용하면서 오래 쓸 수가 있다. 살아있는 섬세한 기계인인체도 생리를 잘 알아서 절도 있게 사용하고 안전수칙을 잘 지키면 타고난 성능의 100%를 발휘하면서 천수(天壽)를 누릴 수가 있다. 기계의 원리는 기계를 만든 사람만이 설명 할 수 있고, 인체 생리와 그 사용 법칙은 인체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절제 법칙이 사람에게 꼭 들어맞는 건강 법칙이다. 살아있는 섬세한 인간 기계를 절도(節度)있게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은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즉 ⑴ 필요이상의 영양을 공급하거나,
⑵ 꼭 필요한 성분을 빼버리거나
⑶ 백해무익(百害無益)한 불필요한 성분을 섭취하거나,
⑷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상의 무리한 일을 하거나,
⑸ 꼭 해야 할 과정은 무시하고, 불필요한 과정을 집어넣거나,
⑹ 규칙과 안전수칙을 무시하거나,
⑺ 독성분을 약이라고 섭취하거나,
⑻ 너무 부족하거나 너무 과한 것,
⑼ 적당한 때가 아닌 부적당한 때에 무리하는 것. 등이 질병을 유발하게 된다.

▣ 헬라어에는 “엑크라테이아(ebkrateia)”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자제(自制)를 의미한다.
그러나 1611년에 킹제임스 성경은 이 말을 절제(節制), (Temperance)로 번역했다.
불행히도 절제란 말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원래의 의미를 상실하여 오늘날은 적당히 하는 것을 뜻하고 있다.
예(例)를 들어 보자.
대부분의 사교적인 음주가들은 정식 식사를 하기 전에 한두 잔의 칵테일(假稱:반주(飯酒))을 드는 것을 절제라고 믿는다. 다른 에를 들어봅시다.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우는 것보다 두 개나 세 개피를 피우는 것이 훨씬 안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두, 세 개피를 피우는 것이 절제는 아니다. 마리화나를 피운다거나 기분 전환으로 코카인을 이따금씩 사용하는 것이 결코 절제가 될 수 없다. 자제(自制)는 적당히 하는 것 이상의 뜻을 담고 있다.
참된 절제란 해로운 것은 무엇이든 사용하기를 피하고, 좋은 것은 적당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적당이란 낱말은 절제(節制)의 일부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도 해롭지 않는 것에 국한하는 말이다.
자제(自制)란 모든 생활면(식사, 운동, 휴식, 작업, 오락, 성생활 등)에 스며들어야만 한다.
자제력을 행사할 때 우리는 어울리게 행동 할 뿐 아니라 건강이 향상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요점(要點)>
절제는 단지 해로운 것을 삼가는 것뿐 아니라, 긍정적인 습관을 발전시키고 건강 에 유익한 모든 것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의미 한다.

일요일(5월 23일)
<성경에 나타난 첫 번째 음주>

▣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당대의 의인(義人)노아(창세기 9:20-27절)도 사단의 걸 작품인 술 앞에서는 벌거벗어 두 자식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되며, 타락으로 멸망당할 도시 소돔성에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구원(救援)해준 롯(창세기 19:30-38절)도 술로 인하여 두 딸들과의 근친상간(近親相姦)으로 인하여 모압 족속과 암몬족속을 이 땅에 태동시킨 역사가 있음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창세기 9:20-27절)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120년 동안 이웃들과, 마을 주민들로부터 온갖 비난이나 조롱이나 비웃음에서도 불구하고 자그마치 120년 동안에 방주를 만들고 가족과 함께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믿음 생활을 했던 당대(當代)의 의인 이었다. 그런 의인도 술 앞에서는 벌거벗는 수치를 드러내고 말았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노아는 당대(當代)에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았던 경건한 신앙의 소유자였지만 잠시 잠깐이라고 생각 하겠지만 사단의 미끼에 걸려들어 신선하고 깨끗하지 못한 물을 마시지 않고 썩은 물 즉 술을 먹고 벌거벗는 추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밖에 성경에는 롯(창 19:30-38)도, 아하스에로 왕(에스더 1:10-12)도, 벨 사살 왕(다니엘 5:1-6)도 지도자로써의 대표적인 예(例)이다.
이처럼 구원(救援)받은 의인도 절제하는데 실패하면 어느 순간 크게 타락할 수도 있으며, 어느 누구도 잠시 잠깐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삼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 <원수의 계략의 비밀>
어떤 종류의 부절제든지 그것은 감각기관을 마비시키며 뇌신경의 능력을 약화시키므로 영원한 사물을 인식하지 못하고 비속한 수준에 머물게 한다. 드높은 목적들을 위하여 주어진 보다 높은 능력들이 비열한 정욕의 노예가 되고 만다. 만일 우리의 생활 습관이 올바르지 못하면 우리의 정신적·도덕적인 능력도 강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신체와 도덕성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증언 3권, 50, 51.)

전신의 모든 조직과 연결되어 있는 뇌신경은 그것을 통하여 하늘이 사람과 교통하고, 속사람에게 감화를 줄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이다. 신체 조직의 전류의 순환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생명력을 감소시키고 정신의 감수성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교회증언 2권, 347.)

사단은 인류를 자기의 통제 하에 넣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빈틈없이 경계한다. 식욕을 통하여 그는 사람들을 가장 단단히 붙잡아 매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이 식욕을 자극하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다. (식생활과 음식물에 관한 권면, 150(영문).)

▣ <술은 영성을 파괴(破壞)한다.>
“나답과 아비후는 성전의 제사장이었는데 보통 불로 사용하는 것이 불법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엄하게도 속된 불로 그들의 향을 피웠다. 이 제사장들은 음주에 계속 방종하여 그들의 도덕적 감각이 마비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성질을 인식하거나 그들의 죄의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깨닫지 못했다. 지성소에서 타오른 불길이 그들을 살라 버렸다.”(절제생활, 280)

월요일(5월 24일)
<오늘날의 술>

▣ <술의 에 대한 진리?>
술이란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고, 어느 정도 지나면 술이 술을 먹게 되면, 조금 더 지나면, 술이 사람을 먹는다. 술은 가장 위험한 사단의 덫이며, 성경은 반복적으로 그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 <적당한 음주?>
적당한 음주란 술주정뱅이가 되도록 가르치는 학교이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84. 3. 25.)

▣ <하나님의 축복을 저주로 바꿈>
우리 창조주께서는 사람에게 너그러운 손으로 당신의 풍성하심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런 모든 선물들이 현명하고도 절도 있게 사용되었다면 가난과 질병과 고통은 지상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도처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사람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저주로 변한 것을 보게 된다. 토지의 소산을 마취시키는 술을 제조하는 일에 사용하는 자들보다 더 하나님의 귀한 선물을 악용하고 남용하는 죄를 짓는 부류는 또다시 없다. 영양 있는 곡물, 위생적이고 맛있는 과일 등이 감각을 그르치고 두뇌를 교란시키는 음료로 변질된다. 이 독물을 사용한 결과로 수많은 가족들이 생애의 즐거움과 심지어 필수품까지 빼앗기고, 폭력과 범죄 행위가 증가하며, 질병과 죽음이 무수한 희생자들을 술고래의 무덤으로 재촉한다. (복음 교역자, 385, 386(영문).)

▣ <결혼 서약이 알코올 용액에 녹아 버림>
술꾼의 가정을 바라보라. 쪼들리는 가난과 불행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애로 가득하다. 한때 행복스럽던 아내가 미치광이 남편 앞에서 도망치는 모습을 보라. 그 가냘픈 몸을 사정없이 후려칠 때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소리를 들어보라. 결혼식장에서 굳게 맹세한 신성한 결혼 서약은 어디에 있는가? 달콤한 사랑은 어디로 갔으며 이제 무엇이 그녀를 보호해 줄 것인가? 슬프다. 이 모든 것들은 타오르는 알코올 용액, 저주받을 잔속에서 고귀한 진주처럼 녹아 버렸다! 벌거숭이가 된 자식들을 보라. 한때 그들은 따뜻한 사랑을 받던 아이들이다. 겨울의 삭풍이나 이 세상의 어떤 멸시나 욕설의 찬바람이 그들에게 불어 닥칠세라 돌봐주고, 아버지는 보살피고 어머니는 사랑하니 그들의 가정은 낙원이었다. 이제 모든 것은 돌변했다. 술주정꾼의 아내와 자식들의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고민의 울부짖음은 매일 매일 하늘에 사무친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81. 11. 8.)

▣ <고귀한 인격은 사라짐>
술꾼을 바라보라. 술이 그를 어떤 몰골로 만들었나 보라. 그의 눈은 초점을 잃고 충혈 되어 있다. 그의 얼굴은 부어올랐고 멍청하다. 그의 걸음걸이는 비틀거린다. 사단의 공작의 표지가 온 몸에 기록되어 있다. 천연 계는 그런 모양의 사람을 모른다고 항의한다. 그는 천부(天賦)의 능력들을 오용했으며 자신의 고귀한 인격을 술에의 탐닉으로 망쳐 버렸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94. 5. 8.)

▣ <사단의 폭행의 발로>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술을 위해 영혼을 팔도록 꾀이고서 공작을 시작한다. 그가 사람의 몸과 정신과 영혼을 소유하니, 행위자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사단이다. 술주정꾼이 그의 생명이 다하도록 사랑하고 아끼기로 약속한 아내를 후려치기 위하여 쳐들 때에 사단의 잔인성이 발로된다. 술주정꾼의 행동은 사단의 폭행의 발로이다. (MM, 114.)

취하게 하는 술에 탐닉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파멸시켜 없애 버리기 위하여 마취성 술을 고안해 낸 사단의 지배하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것이다. (원고 1, 1899.)

▣ <침착성과 인내심을 잃음>
부절제하는 사람이 침착하고 균형진 품성을 소유하기란 불가능하다. 만일 그가 잘못하는 동물을 다룰 때에 필요 없는 채찍질을 하나님의 피조물에 가하는 것은 그의 소화기관이 안정을 잃은 상태에 있음을 나타낸다. 집안에서도 똑같은 정신이 나타난다. (서신 17, 1895.)

▣ <각 나라의 수치와 저주임>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천사들이 그들의 불행을 보고 우는 그 사람들이 술에 취하여 몽롱하게 된 참상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그들은 모든 나라의 수치요 저주요 위험물이다. (치료봉사, 301.)

▣ <아내는 빼앗기고 자식들은 굶주림>
주객이 정신을 잃게 하는 술의 영향 아래 있을 때에는 자기가 하고 있는 바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를 이렇게 무책임하게 만드는 물건을 파는 사람은 그의 파멸시키는 사업을 수행하도록 법률의 보호를 받고 있다. 과부에게서 그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되는 음식을 빼앗아 가는 것도 합법적이다. 그로 인하여 희생된 자의 가족에게 굶주림을 강요하고, 불쌍한 자식들을 거리로 내보내어 한 푼의 돈과 한 조각의 빵을 구걸하게 만드는 것도 합법적이다.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이 수치스러운 장면이 재연되어 마침내 주류 판매인의 양심은 화인 맞은 것처럼 마비된다. 고통당하는 자식들의 눈물과 고민하는 어머니의 울음은 다만 술장사를 격노케 할 뿐이다. …주류 판매인은 죽은 남편이나 아버지의 술값을 받아내기 위하여 고통당하는 가족들의 생활필수품까지 빼앗아 가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죽은 자의 자식들이 굶주리는 것쯤을 그가 상관하겠는가? 그는 그들을 다만 쓸모없이 버림받고, 이지러지고 타락된 무식한 동물들처럼 생각하니 그들의 복리를 돌아볼 리가 없다. 그러나 하늘에서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술꾼과 그 가족에게 초래된 말할 수 없는 비참과 타락의 근본 원인과 그 마지막 결과를 빼놓지 않고 주시하신다. 하늘의 원장(元帳)에는 역사의 모든 사항들이 수록되어 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94. 5. 15.)

▣ <주객은 사단의 지배 아래 있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사단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사단은 이들을 꾀이기 위하여 매력적인 뇌물을 주어 그들로 그릇된 식욕과 습관에 빠지게 함으로써 마치 기능공이 기계를 다루듯이 자기가 그들의 이성을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처하게 만든다. 그 후에 그는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을 파멸시키기 위하여 일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사단의 대리자와 도구로서 그와 협력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소행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신호를 잘못 보내므로 자동차가 서로 충돌한다. 공포와 불구(不具)와 죽음이 따른다. 이런 현상은 점점 더 현저하게 많아질 것이다. 일간 신문들은 여러 가지 무서운 사건들을 보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집은 그대로 매력적인 장소가 될 것이며, 술은, 말로는 “나는 대장부다”라고 하지만 행동으로는 “나는 자제할 줄 모른다. 나는 유혹을 저항할 수 없다”고 하는 자제력을 상실한, 불쌍한 영혼들에게 계속 팔리고 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과의 연결을 단절시키는 자들이며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간 얼간이들이다. (원고 17, 1898.)

▣ <술로 판단력이 흐려짐>
술 마시는 자들은 사단의 파괴적인 감화 아래 처해 있다. 그는 그들에게 그릇된 생각을 제시함으로 그들의 판단력을 신뢰할 수가 없다. (리뷰 앤드 헤럴드, 1900. 5. 1.)

▣ <하나님께서는 음주자(飮酒者)에게 책임을 지우심>
담배와 술에 탐닉함으로 그들은 그들의 정신을 마치 바벨론 궁전의 다니엘처럼 밝고 안정된 상태로 유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흥분적 자극제의 사용으로 인해 두뇌를 흐리게 하고 그들의 판단, 그들의 추리 기능을 일시적으로 상실한다. 대양에서 일어나는 많은 해난 사고의 원인을 캐어 보면 음주가 그 원인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는 승객들이 타고 있기 때문에 천사들이 선박들을 보호하고 있는 광경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주님께는 당신의 자녀들을 파멸시키려고 휘몰아치는 성난 파도들을 견제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원고 153, 1902.)

▣ <그들은 자기들의 의지력을 팔았다.>
이 세상에는 그들의 청춘을 담배와 술에 대한 유혹에 굴복시킴으로 그들의 인체 조직에 독물을 넣고, 그들의 의지력을 그르쳐서 마침내 사단이 원하는 그 모습으로 타락한 사람들이 허다하다. 술에 희생된 자들의 사고력은 흐려져서 술의 유혹에 완전히 굴복하여 그들의 얼마 남지 않은 이성마저 한잔 술에 팔아 버린다.
이성(理性)이 나간 사람을 보라. 어떤 꼴인가? 그는 사단의 뜻에 따르는 노예다. 반역의 괴수는 그에게 자기의 특성들을 침투시킨다. 그는 방종과 폭행의 노예다. 그는 자기 입 속에 자신을 마취시키는 것을 집어넣어, 그 영향 아래 있는 동안에는 자기를 악마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어떤 범죄라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젊은이들을 바라보라. 나는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사실을 기록한다. 그들은 그들의 의지력을 잃었다. 그들의 신경의 기능은 고갈되었기 때문에 신경은 둔화됐다. 넘쳐흐르는 건강미는 그의 모습에서 찾을 길이 없다. 건강으로 빛나는 눈동자는 없어졌고 윤택은 사라졌다. 마신 술로 인해 기억력은 감퇴되고 흡사 노인처럼 되었다. 그 두뇌는 필요할 때에 풍부한 자원을 더 이상 산출해 내지 못한다. (원고 17, 1898.)

▣ <도덕적 죄악과 신체적 질병>
부절제의 희생이 된 사람들 중에는 온갖 계급에 속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 탁월한 재능을 소유한 사람, 위대한 학식을 갖춘 사람들이 식욕의 방종에 빠져, 마침내 유혹을 전혀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른다. 한때 크게 부요하던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고통과 불행과 질병 속에서 타락 상태가 되어 집도 친구들도 없어진다. 그들은 자제력을 잃어버렸다. 그들에게 도움의 손이 뻗혀지지 않으면, 그들은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갈 것이다. 이와 같은 방종에는 도덕적 죄악뿐만 아니라 육체적 질병도 수반된다. (치료봉사, 155, 156.)

▣ <절망적인 상태>
술을 마시는 습관이 형성되어 버린 사람은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 그의 두뇌는 병들고 그의 의지력은 약화되었다. 자신 안에 있는 어떤 힘으로도 그의 식욕을 지배할 수가 없다. 극기하도록 설득시키거나 권면하여 듣게 할 수도 없다. (치료봉사, 312.)

▣ <유혹(誘惑)을 저항할 힘이 없음>
음주의 습관의 희생자들은 술의 영향으로 너무도 심히 미쳐 버렸기 때문에 한잔의 위스키를 위하여 자기의 이성을 즐겨 팔아넘긴다. 술에 도취되는 사람은 생명을 걸고 사단과 도박을 하는 것이다. 사단은 바로 악한 사람을 매개인(媒介人)으로 이용하여 술 마시기를 시작하는 이들을 술고래로 만든다. 그는 일단 술로 두뇌가 혼미해지면 술꾼을 자포자기 상태로 몰아넣어 어떤 잔악한 죄악이라도 범하게 만들 만반의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사람들이 섬기도록 사단이 세워 놓은 우상중에는 모든 타락과 범죄가 있다. 이런 우상을 섬김으로 영혼과 몸을 다 함께 망치고 그 악영향을 술꾼의 아내와 자식들에까지 끼친다. 술꾼의 부패한 성향은 자손들에게 유전되고 또 그 후세대에 전달된다.

▣ <악마(惡魔)의 힘이 활동하고 있음>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계속적으로 사단의 죽음의 덫은 사람의 도덕적 능력을 파괴시키고,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시켜서 짐승 이하의 수준으로 저락시키기 위하여 우리의 동리에, 우리 집 문 앞에, 길거리에, 그리고 영혼을 노획할 수 있는 곳곳마다에 설치되어 있다. 영혼들이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는 이때에 경고의 신호를 올리고, 친구들을 각성시켜서 멸망해 가는 형제들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결의와 적극적인 활동은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는가? 우리는 이미 죽어 잃어버린 자를 구원할 방안을 고안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직 동정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 회복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자는 것이다. …
주류 판매를 합법화시킴으로써 법률은 영혼의 타락을 허가해 주었으며 세상에 죄악의 홍수를 초래하는 주류 판매를 중지시키기를 거절하고 있다. 입법자들은 인간의 생명과 체력과 도덕적 판단을 위태롭게 하는 이 모든 것이 불가피한 것인지 심사숙고하여 보라. 인간의 생명을 파멸시키는 이 모든 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 (리뷰 앤드 헤럴드, 1894. 5. 29.)

▣ <그는 하나님께 답변해야 한다.>
그의 세상적인 부와 권력과 지위에 관계없이, 그리고 국가의 법률로써 이웃에게 독주를 파는 것이 허가된 여부에 상관없이 그가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영혼을 타락시킨 데 대하여 하나님 앞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마땅히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했어야 할 품성을 타락시켜 짐승 이하의 형상을 드러내게 한 소행 때문에 심판대 앞에 소환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음주의 습관을 길러 줌으로 술장수는 사람들에게서 의로운 요소를 효과적으로 제거하여 사단의 비천한 노예가 되도록 유도한다. 생명의 왕이신 주 예수님은 암혹의 왕 사단과 투쟁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을 향상시키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고 선언하신다. …
예수께서는 인간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교훈과 모본으로써 인간성을 향상시키고 고상하게 하며,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 속에 회복시키기 위하여 하늘 궁전을 떠나 그분의 영광을 비켜 놓으시고 신성을 인성으로 옷입히셨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업이다. 그러나 주류 판매를 합법화시키는 자들의 감화는 어떠한가? 이웃의 입에 술병을 공급하는 자들의 감화는 어떤가? 술장사의 사업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업은 정반대다. 그대는 주류 판매인과 그 지지자들은 사단과 동업자라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영업을 통하여 그들은 이 세상에서 어떤 다른 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더 인간의 비애를 영구화시키는 일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
술장수는 가인과 같은 입장을 취하면서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나이까? 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였느니라. 고 하신다. 술장수들은 도덕적 힘이 약하여 음주의 유혹에 빠진 자들의 가정에 초래된 불행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은 주류 판매로 이 세상에 발생된 비참과 고통과 절망에 대한 추궁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희망과 기쁨을 땅에 묻어 버리고 배고프고 헐벗고 방황하는 어머니와 자식들의 비애에 대하여 답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참새를 돌보셔서 그것이 땅에 떨어지는 것까지 아시고,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되고 당신의 피로 사신 자들을 간과하시거나 그들의 고통의 부르짖음에 무관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고통과 범죄를 영구화시키는 이 죄악을 주목하신다. 그분은 이 모든 책임을 사람들에게 유혹의 문을 열도록 영향을 끼친 모든 자들에게 지우신다.

각자가 자기의 일한 대로 보응을 받게 될 때에 주류 판매업자들은 핑계할 수 없을 것이다. 생명을 파괴한 자들은 자신의 생명으로 죗값을 치르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
(서신 90. 1908.)

▣ <술에 대한 욕구를 조장하지 말라 >
모든 사람들은 동료 인간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할 신성한 의무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라. 모든 사람들은 술에 대한 욕구를 조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친구와 이웃들에게 그들의 건강을 위하여 브랜디를 마시라고 권함으로써 그들은 친구들을 파멸시키는 도구가 될 위험성이 있다. 어떤 단순한 충고로 말미암아 급기야는 주벽의 노예가 된 사람들의 예를 나는 많이 알고 있다. 의사들은 수많은 술고래를 만들어낸 책임이 있다. 음주가, 애주가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그들의 환자에게 술을 마시도록 처방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 만일 의사들이 인과관계를 깊이 생각했다면 술이 전신에 끼치는 똑같은 영향을 신체의 각 기관에도 끼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의사들은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술고래가 되도록 영향을 끼친 데 대하여 무엇이라고 변명할 것인가? (리뷰 앤드 헤럴드, 1894. 5. 2.)

▣ <불행한 결과를 피하도록 경고했음>
취하게 하는 술에 탐닉할 때에 생기는 무서운 결과를 보면서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감히 포도주나 독주를 만지거나 맛보거나 취급할 수 있는가? 그런 행위는 분명히 그들의 신조에 배치되는 것이다. … 주님께서는 포도주와 독주의 사용에 관한 특별한 지시를 성경 말씀 중에 주셨다. 그분은 그것들의 사용을 금지하셨으며 엄중한 경고와 위협으로 사용 금지를 강조하셨다. 그러나 취하게 하는 음료에 대한 당신의 경고는 독단적인 권위 행사의 결과가 아니다. 주께서는 포도주와 독주에 탐닉할 때에 야기되는 재해를 피하도록 사람들에게 경고하셨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94. 5. 1.)

▣ <나답과 아비후의 경험에서 배울 교훈>
아론의 아들들로서 제사장의 신성한 직무를 수행하는 나답과 아비후는 그들의 일상 습관대로 포도주를 마음껏 마시고서 여호와 앞에 봉사하러 들어갔다. 주님 앞에 분향하는 제사장들은 항상 타고 있어서 꺼지지 않는 불 즉 하나님께서 친히 붙이신 불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모든 행사를 어떻게 집행할 것이며. 또한 당신의 신성한 예배에 관계되는 모든 일은 당신의 거룩한 품성에 일치해야 한다는 분명한 지시를 주셨다. 그분을 거룩히 섬기는 일에 관하여 주신 분명한 지시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은 죽음의 벌을 받아야 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실현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교통을 예표하는, 거룩한 불로 점화되지 않고 소금 쳐지지 않은 희생 제물은 하나님께 가납되지 못한다. 향로에 붙일 거룩한 불은 영원히 타도록 유지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밖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동안 거룩한 불로 점화된 향연(香煙)은 그들의 기도와 섞여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 이 향연은 그리스도의 중보를 상징한다. 아론의 아들들은 하나님께서 가납하시지 않는 보통 불을 취하였다. 하나님 앞에 다른 불을 드림으로써 무한하신 하나님을 모욕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분명한 지시를 전적으로 도외시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불로 소멸시키셨다. 그들의 행위는 가인의 제사와 같았다. 만일 아론의 아들들이 그들의 판단력을 바로 행사하였더라면 보통 불과 거룩한 불의 차이점을 분간하였을 것이다. 식욕의 충족이 그들의 모든 기능을 저하시켰고 그들의 지성을 너무도 둔화시켰기 때문에 그들의 분별력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들은 상징적인 제사의 거룩한 본질과, 거룩한 예배를 집전하기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바치는 일의 엄숙성과 책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 <그들에게 책임이 있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아론의 아들들은 술로 그들의 지각이 심히 마비되어 거룩한 불과 보통 불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었을 때에 한 일에 대하여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그들이 술잔을 입술에 갖다 대는 순간에, 취중에 행한 모든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이 제사장들은 식욕에 대한 방종의 대가로 그들의 생명을 지불했다. 하나님께서는 지각을 흐리게 하는 술의 사용을 분명히 금지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레 10:8-11). …
여기에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지시가 있으며 술을 금하는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즉 그들의 분별력과 식별력이 맑아서 절대로 혼란되지 않고, 또한 그들의 판단력이 올바라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항상 분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들이 어떤 취하게 하는 것이라도 삼가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주어졌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기 위하여는 맑은 이성을 완전히 활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영적(靈的) 지도자의 자질(資質)>
정신력의 건강한 활동을 저해하도록 먹고 마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무거운 죄로 보신다. 거룩한 사물을 취급하고 항상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서 그들을 합당하게 가르쳐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특별히 그러하다. …입과 입술이 더럽혀진 목사들이 거룩한 강단에서 그들의 오염된 입술을 가지고 감히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논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 된 방종을 주목하지 않으실 줄로 생각한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 하나님께서는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하는 아론의 아들들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처럼, 자신들을 더럽혀서 술과 담배의 향연을 섞어서 예배드리는 자들의 제물을 가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모세 당시에 그러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당신의 요구 조항에 대해 정확하고 세밀하시다. 그러나 오늘날 예배드리는 성전에서 찬미하고 기도하고 강단에서 가르치는 중에 다른 불 뿐 아니라 공공연한 모독을 자행한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진리를 전파하는 대신에 때때로 담배와 술의 감화 아래 설교한다. 참으로 다른 불이다. 담배의 악취를 섞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성경의 진리와 성경상 성결에 대하여 백성들에게 설교한다. 그런 향연은 사단이 가납할만한 것이다! 이것이 무서운 기만이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증스러운 행위인가! 거룩하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분께 대한 얼마나 심한 모독인가!
만일 정신 기능이 건전한 상태에 있다면 그리스도인임을 자처하는 자들은 그와 같은 예배의 모순성을 분별할 것이다. 마치 나답과 아비후처럼 그들의 감각은 너무도 무감각해져서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지 못한다. 거룩하고 신성한 사물을, 그들의 담배에 인박힌 호흡과 마비된 두뇌와, 식욕과 정욕의 방종으로 더럽혀진 영혼의 수준으로 저하시킨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들이 먹고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씹으면서도, 식욕의 방종으로 폭식 가와 술고래가 되고서도,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 RTC, 82-86.

▣ <벨 사살의 잔치에서 이성이 떠남>
안전하다고 하는 무모한 느낌으로 교만하고 오만해진 벨 사살은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그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셨다. 부와 권세로 할 수 있는 모든 매혹적인 일들이 그 장면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요염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왕의 잔치에 참석한 빈객들 중에 있었다. 천재들과 학문 있는 사람들도 거기 있었다. 방백들과 정치가들은 물을 마시듯 술을 마셨고 그 미치게 하는 분위기 속에서 흥청거렸다. 파렴치하게 술에 만취되어 이성을 잃어버리고 이제 저급한 충동과 정욕에 사로잡힌 왕은 자신이 떠들썩한 난음난무(亂飮亂舞)를 선도하였다. (선지자와 왕, 523(영문).) 잔치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바로 그 순간에 창백한 한 손이 나타나서 연회장의 벽 위에다 그 왕과 왕국의 운명을 기록하였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기록되었고 다니엘에 의하여 그 뜻이 이렇게 해석되었다.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바 되었다”(단 5:27, 28). 성경에 계속하여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 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다(단 5:30, 31)고 기록되었다. 벨 사살 보이지 않은 파수꾼이 그의 우상 숭배적 주연(酒宴)을 감시하고 계신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늘의 기록 책에 기록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은 없다. 창백한 손으로 기록된 신비한 글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행위를 보고 계심과 술잔치로 인해 당신께서 모욕을 당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나님께 숨길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책임이 있다. (원고 50, 1893.)

▣ <헤롯의 방탕에 따른 무서운 결과>
헤롯은 그의 방탕한 생활을 많이 개혁했다. 그러나 사치스런 음식과 자극성 음료는 계속적으로 그의 도덕적 능력과 신체적 힘을 쇠약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하였다. 헤롯은 그의 양심을 일깨워 죄를 버리게 하고 그의 마음에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성령의 호소에 거스려 싸웠다. 헤로디아는 헤롯의 성품 중에서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보통 상황하에서 지성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동안에는 요한의 죽음을 얻어내지 못할 줄을 그 여자는 잘 알고 있었다. …헤로디아는 폭식과 만취의 연회가 벌어질 헤롯의 생일을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대로 자기의 증오심을 은폐하였다. 사치스런 음식과 술에 대한 헤롯의 기호 때문에 그를 무력하게 넘어뜨릴 수 있는 기회가 그 여자에게 제공될 것이었다. 여인은 그를 유혹하여 식욕에 방종시킴으로 정욕을 일으키고, 그의 정신적·도덕적 특성을 타락시키고 감각을 둔화시켜 사실과 증거를 직시하여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만들고자 하였다. 헤로디아는 연회를 위하여 가장 값비싼 준비와 색욕적인 방탕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여자는 이와 같은 부절제한 잔치가 사람의 지성과 도덕성에 끼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여자는 식욕과 쾌락과 환락에 대한 헤롯의 방종이 저열한 욕정을 자극하고 또한 보다 고상한 행위와 의무감에 대하여 무기력하게 만들 줄을 알았다. 부절제가 마음과 정신에 일으키는 불건전한 쾌락은 도덕적인 향상에 대한 감수성을 저하시키며, 여론과 유행이 그들을 붙들고 있는 한 신성한 충동이 마음에 작용하여 정욕을 지배할 수 없게 만든다. 축제 기분과 환락과 춤과 술을 마음대로 마시는 것 등은 감각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각을 없애 버린다. …헤롯과 귀족들이 쾌락의 주연장(酒宴場)에서 잔치하며 술을 마실 때에 범죄와 정욕으로 타락한 헤로디아는 그의 딸에게 가장 매혹적인 옷차림을 시켜 헤롯과 왕의 귀빈들 앞으로 보냈다. 살로메는 가장 값비싼 꽃과 화관으로 단장하였고 빛나는 보석과 찬란한 팔찌로 치장하였다. 왕의 귀빈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반나체로 요염하게 춤을 추었다. 그들의 타락한 감각이 이 황홀한 모습을 보자 그 미모와 교태에 완전히 도취되어 버렸다. 그들은 밝은 이성과 세련된 기풍이나 예민한 양심에 의해 지배되는 대신에 생각의 저열한 요소들이 주장하는 고삐를 잡았다. 덕성과 원칙은 지배력을 상실했다. 이 속이는 황홀경이 술에 만취된 헤롯과 귀빈들로부터 이성과 위엄을 빼앗아 간 듯했다. 노래와 술과 춤이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제거했다. 헤롯의 타락한 감각에는 아무것도 거룩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의 왕국의 대인들 앞에서 자신을 더욱 높이 추켜올리는 시위를 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그는 헤로디아의 딸에게 무엇이든지 요구하는 것을 주겠다고 성급히 약속하고 맹세로써 확약했다. …
엄청난 약속을 받은 살로메는 무엇을 요청해야 할지 알기 위하여 그의 어미에게로 달려갔다. 어미의 대답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침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달라는 것이다. 살로메는 처음엔 충격적이었다. 그는 어미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복수심을 깨닫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와 같은 비인간적인 요구 사항을 제시하길 거절했지만 그 악한 어미의 결심이 이기고 말았다. 오히려 헤로디아는 헤롯이 반성할 시각을 가져서 그의 생각을 바꾸기 전에 자기 요구를 지체 말고 제시하라고 딸을 재촉했다. 그리하여 살로메는 그 무시무시한 요청을 가지고 헤롯에게 돌아갔다. “침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한대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을 인하여 저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막 6:25, 26). 헤롯은 놀라서 당황했다. 그의 방탕한 웃음은 멎었다. 귀빈들은 이 비인간적인 요구에 무서워 떨었다. 하나님의 기별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가장 뛰어난 선지자 중의 한 분의 생명이 그날 밤의 부질없는 행위와 방탕의 대가로 지불되었다. 취하게 하는 술잔이 이런 무서운 죄악의 길을 준비하였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73. 3. 11.)

▣ <요한을 구출하자는 음성이 없었음>
왜 좌중에는 헤롯의 광적인 서약을 실천하는 것을 제지하는 음성이 들리지 않았는가? 그들은 술에 만취되어 있어서 그들의 감각에는 존중하여 두려워해야 할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비록 귀빈들이 헤롯의 서약을 해약시키고자 하는 생각이 사실로 있었더라도 그들의 혀가 마비된 듯하였다. 헤롯은 자기의 위신을 세우기 위하여 취중에 발한 맹세를 지켜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혔다. 영혼의 유일한 안전장치인 도덕적 원칙이 마비되었다. 헤롯과 그의 귀빈들은 야수적인 식욕의 비천한 속박에 묶여있는 노예들이었다. …정신적인 능력은 그들의 자비와 정의감을 타락시킨 관능적 쾌락에 의하여 무력해졌다. 사단은 헤로디아를 통하여 이 기회를 포착하여 하나님의 선지자 중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는 조급한 결정으로 그들을 이끌어 갔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73. 4. 8.)

▣ <하나님의 경고>
주님께서는 부절제하고 타락한 세대를 더 이상 참으실 수 없다. 성경에는 취하게 하는 술의 사용을 금하시는 엄숙한 경고가 많이 있다. 옛날 모세가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을 진술할 때에 음주를 금지하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했다. “그가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그가 심중에 스스로 위로하여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의 생각대로 향하여 거듭 만취할지라도 평안하리라 할까 염려함이라. 여호와는 그를 용서치 않으실 것이요, 오히려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가 그를 대적하여 피어올라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그에게 내릴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시리라”(신 29:19, 20, 영문 흠정역).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다.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잠 20:1, 23:29-32).

이스라엘 사람들의 음주는 그들이 마침내 포로가 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선지자 아모스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서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암 6:1, 3-7).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에 연락하는 이 나라여 화가 있도다. 왕은 귀족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려 함이 아니라 기력을 보하려고 마땅한 때에 먹는 이 나라여 복이 있도다.”(전 10:16, 17).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잠 31:4, 5).
이와 같은 경고와 명령은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다. 대중에게 봉사하는 요직에 있는 자들은 포도주와 독주로 인하여 율법을 잊어버리거나 재판을 왜곡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통치자와 재판관들은 다음과 같은 주님의 지시를 이행할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출 22:22-24).

하늘의 주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그분만이 모든 왕과 통치자 위에 최고의 권위자이시다. 주께서는 포도주와 독주의 사용에 관한 특별한 지시를 성경 말씀 중에 주셨다. 그분은 그것들의 사용을 금하도록 엄중한 경고와 위엄으로 강조하셨다. 그러나 취하게 하는 음료에 대한 당신의 경고는 독단적인 권위 행사의 결과가 아니다. 주께서는 포도주와 독주에 탐닉할 때에 야기되는 재해를 피하도록 사람들에게 경고하셨다. 타락과 잔인성과 불행과 싸움이 부절제의 자연적인 결과로 발생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악한 거래에 뒤따르는 결과들을 지적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이 왜곡되지 않고 또 수입만을 위하여 미치게 하는 술을 파는 나쁜 사람들의 행위 때문에 발생하는 광범위한 불행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 (대 쟁투, 4-6. (절제, 40-54))

▣ <술이 주는 엄청난 피해>
“술의 영향으로 매일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사고들을 생각해 보라. 어떤 기차의 승무원은 신호에 유의하는 일을 무시하거나 명령을 오해한다. 기차가 가는 도중에 충돌 사고가 생겨 많은 생명을 잃어버린다. 혹은 기선이 좌초하여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수장된다. 그 사건의 원인을 조사하여 보면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음주의 영향을 받고 있었음이 판명된다. 술을 마시는 습관이 어느 정도이면 사람의 생명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전혀 술을 마시지 않을 때에만 맡길 수 있다.”(치료봉사, 331)

화요일(5월 25일)
<하지만 술이 심장 건강에 좋지 않습니까?>

▣ <알코올은 신경계통에 영향을 미친다.>
알코올은 신경계통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서 정신 활동에도 지장을 준다. 만성 알콜 중독자의 뇌는 정상인의 뇌보다 많이 쪼그라들어 있고, 훨씬 가벼우며 뇌 곁의 흠이 넓게 푹 패어져 있다. 기억력, 집중력, 판단력이 떨어지고 상황 판단이 둔화된다. 0.5%의 혈중농도로는 술을 마셨다는 생각이 없고 0.1%가 되면 세상이 즐겁고 이 그 상이 되면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술은 뇌기능을 억제시키는 일종의 마취약이므로 술이 조금 들어가면 신경이 흥분되어 일시적으로 작업능률이 향상되는 것 같으나, 술이 많이 들어가면 생명의 기본을 맡은 뇌 간 등이 영향을 받고 신경의 반사와 운동력이 떨어지고 호흡중추가 마비되어 생명까지 위협을 받는다.
술은 정신 질환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알콜 중독자의 50%이상이 우울증 환자이며, 본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도 우울증 환자이다. 또한 지독한 자기혐오의 감정 때문에 겉으로는 공격적인 행동을 하며 심한 자기 불신과 비하로 말미암아 자살에까지 이르게 되며 자살률이 정상인의 30배나 된다.
술은 마시면 즉각 뇌에 양향을 미치므로 과음이 오래 계속되면 여러 가지 정신병이 나타나며 기억력, 학습능력, 판단력, 집중력이 떨어져 그 최후는 알콜성 치매(바보)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사사기 13:4)

▣ <몸과 영혼이 노예(奴隸)가 됨>
술집은 도시와 읍, 면 어디에나 널려 있다. 맑은 정신과 바른 걸음걸이로 술집에 들어간 행인이 거기에서 나을 때의 모습을 보라. 눈의 정기는 사라졌고 똑바로 걸을 수 있는 힘은 없어져서 마치 바다 위의 일엽편주처럼 이리저리 비틀거린다. 그의 이지력은 없어졌고 하나님의 형상은 이지러져 버렸다. 광기(狂氣)의 독잔이 그에게 치명적인 낙인을 남겼다. 그의 몸과 영혼은 노예가 되었으며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술장사는 이웃의 입에 술병을 공급하여 술기운으로 잔인하고 살기등등하게 되어 제 정신을 잃고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다. 그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는데, 바로 주류 판매를 합법화시켜 준 사람들이 자기네들의 처사의 결과를 다룰 수밖에 없게 된다. 그들은 정신이 멀쩡한 이 사람에게 술을 주어 미치광이로 만드는 일을 법률로 승인하고서도 이제는 그 저지른 범죄 때문에 이 사람을 감옥에 보내고 교수형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아남아 그들이 사는 지역 사회에 짐이 된다. 그의 몸과 영혼은 하늘나라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이 땅에서 끊어져 버린다. …

▣ <마시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적당한 음주란 술주정뱅이가 되도록 가르치는 학교이다.”(절제 생활, 30)
“이 무서운 취하는 약을 어느 정도 마셔야 인간의 생명이 안전할까? 술을 엄금할 때에만 안전할 수 있다. 술로 정신을 혼란케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취하게 하는 것도 입술을 통해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상동, 35) “적당하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거기서 사람이 술 마시는 이력을 위하여 교육을 받는 학교가 된다. 그럴지라도 이 연한 자극물들의 작용이 너무나도 교활하여서 그 희생물이 된 자가 자기의 위험을 알아채기도 전에 주객(酒客)의 대로(大路)에 들어서게 된다.”(치료봉사, 332)

▣ 약간의 술이 건강에 이롭다는 속설은 진실이 아니며, 오히려 한 잔의 술로 시작한 음주가 이후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다.

수요일(5월 26일)
<모든 것에 절제함>

▣ 사단은 그가 그리스도께 했던 것처럼, 식욕이라는 저항하기 힘든 유혹을 가지고 사람에게 접근 한다. 사단은 식욕만으로 인간을 정복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식욕에 방종(放縱)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 품성을 이루기 불가능 하다. (절제생활 15-21)

▣ <구속의 계획을 저지시키려는 사단의 술책>
사단은 그가 맨 처음 반역을 시작한 이래 계속 하나님의 정부와 싸워 왔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죄를 이 세상에 도입하는 데 성공하였으므로 교활한 원수는 담대해졌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나타나실 때에는 자기보다 더 약할 것이므로 자기의 능력으로 그를 이길 것이라고 하늘 천사들에게 거만하게 자랑했다. 그는 아담과 하와를 식욕으로 유혹할 때 자기의 속임수에 저항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쭐해졌다. 그는 고대 세계의 주민들을 같은 방법으로, 즉 저열한 식욕과 비열한 정욕으로 정복했다. 식욕의 만족이라는 수단을 써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렸다. 그는 모세와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아들 자신도 자기의 능력을 저항할 수가 없고 그의 사랑하는 택한 백성들을 가나안에 인도할 수 없어서, 애굽에서 떠나온 거의 모든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또한 온유한 사람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스스로 취하도록 유혹하였다고 자랑했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다윗과 솔로몬을 식욕과 정욕으로 유혹하여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초래시켰다. 그리고 그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속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떠벌렸다. (RTC, 32.)

<오늘날 가장 효과적인 유혹>
사단은 그가 그리스도께 했던 것처럼, 식욕의 만족이라는 저항하기 힘든 유혹을 가지고 사람에게 접근한다. 그는 이 점에서 능히 인간을 정복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에덴동산에서 식욕으로 아담과 하와를 정복했고 그래서 그들은 기쁨에 넘치는 본향을 잃었다. 아담의 타락의 결과로 그 얼마나 엄청난 불행과 죄악이 온 세상을 가득 채웠는가! 많은 도시들이 비열한 범죄와 포악한 죄악으로 인해 우주의 오점이 되어 지면에서 완전히 말살되기도 했다. 식욕의 방종은 그들의 모든 죄악의 기초였다.
식욕을 통하여 사단은 사람의 정신과 생애를 지배했다. 더 살았을 수많은 사람들이 요절(夭折)하여 무덤으로 들어갔고 신체적·정신적·영적 파멸 상태에 이르렀다. 그들은 좋은 능력을 소유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식욕의 만족을 위해 희생시켰고 식욕은 정욕의 목에 고삐를 매어 그들을 끌고 가게 하였다. (교회증언 3권, 561, 562.)

<사단은 그의 파멸시키는 사업에 성공함>
사단은 인류가 고통과 불행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보고 기뻐 날뛴다. 나쁜 습관과 불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은 건전한 사람처럼 열심히, 꾸준히, 그리고 순결하게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병든 몸은 두뇌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정신으로 주님을 섬긴다. 머리는 몸의 수도(首都)이다. 사단은 인류로 하여금 자신을 멸망시키며 또한 서로 상대방을 멸망시키는 습관에 방종하도록 유도함으로 멸망시키는 사업에 성공하고 있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봉사를 약탈하고 있다. (4SG, 146. (절제, 11-14)

노아는 최초의 술 취한 사람으로 성경에 기록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주님을 위한 선한 일에 열심이었고, 많은 책임을 짊어지고, 크게 존경을 받았던 그가 어떻게 그와 같이 실패했는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신은 모든 의사소통의 통로이다. 따라서 독성 물질이나 논쟁과 비난의 여지가 있는 물질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노아의 경험은 우리에게 경고와 교훈이 된다. 우리 가운데 건강하고, 신실한 자일지라도 유혹과 죄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음주가 나쁘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아는 술주정 상태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 노아 같은 사람도 그렇게 타락할 수 있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겠는가?

▣ 절제란 흡연, 불법 약물 복용, 음주, 차, 커피, 청량음료를 마시지 않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절제는 좋은 것일지라도 과도하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대의 근무 습관은 어떤가?
그대는 적절한 근무시간을 지키는가? 하나님, 가족, 휴양, 체력단련, 봉사를 위한 시간이 있는가?
수면시간은 어떤가?

▣ 우리는 햇빛이 좋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과도하면 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운동도 그렇다. 대부분은 부족해서 문제지만, 지나친 운동 역시 몸을 해친다.
성생활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지만, 과도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 “참된 절제는 해로운 것은 모두 완전히 버리고 건강에 이로운 것을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친다.”(부조와 선지자, 562)

▣ <술과 마찬가지로 해로운 것>
“절제의 원칙들은 다만 주정음료의 사용금지 그 이상으로 훨씬 더 전진해야 한다. 자극성 식물과 소화하기 어려운 음식을 사용하는 것은 흔히 주정음료와 똑같이 건강에 해롭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술 취함의 씨앗을 심는다.”(절제생활, 138)

▣ 절제란 나쁜 것은 금하고, 좋은 것은 적당하게 하는 것이다.

목요일(5월 27일)
<값을 주고 삼>

▣ 사람의 몸은 자기의 것이 아니기에 회심하지 않은 몸의 바람과 자극에 따라 그 힘을 사용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사람은 창ㄴ조와 구속(救贖)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 사람에게는 육체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도하시는 대로 정신적, 신체적, 영적으로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 회심한 사람은 진정 자청한 예수 그리스도 의 노예로써(참조 롬 1:1; 6:18)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만 산다.

▣ 하나님은 인류를 높게 평가 하시는데 이는 그분이 인간의 구속(救贖)을위해 무한한 값을 치르셨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이 사실을 통해 인간 각자의 중요성이 밝혀진다. 예수님은 죄인 한명을 위해서라도 지상에 와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을 것이다. (교회증언 8권73)
이렇게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구속(救贖) 받은 죄인은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고 그분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며 모든 형태의 음란은 피하여야 할 도덕상의 의무를 진다. (교회증언 Ⅸ 104. 대쟁투 475)

◈ 사람은 영멸(永滅)에서 구원 받았기 때문에 몸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이 그의 의무이다. 그리하여 기꺼운 마음으로 그 분을 섬김으로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CH 40-41, 73-74)
몸을 식별력 있게 돌보려면 생리학과 해부학과 건강 법칙을 반듯이 이해해야 한다. (실물교훈 348).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면 식욕과 욕망이 자신을 통제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몸을 거룩한 지혜로 다스림 받는 거듭난 마음의 종이 되도록 할 것이다. (참조 롬 6:13; 12:1; 고전 9:25, 27. 사도행적 311. 치료 봉사 130)

▣ 인간 역사의 대부분은(비록 그것이 책으로 만들어지고 더러는 교훈이 될 만한 것이 있다 할지라도) 잔인함과 포학함과 비인간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심지어 구약성경에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 이야기가 나온 바로 후 바로 가인이 그의 동생 아벨을 죽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모든 시대를 통하여 자기의 생활을 사랑이 깃든 생활로 바꿈으로서 많은 자제력을 얻게 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여러 번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고, 선과 악의 싸움에서 결국은 선(善)이 승리한다는 보상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 중 초창기의 한 인물로 유대교와 회교의 조상인 아브라함이다. 그는 자제력을 배우기 위하여 100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해냈으며 거대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모세 역시 놀라운 자제력을 겸비한 또 하나의 본보기가 될 만한 인물이다. 그 자제력을 기르는 데는 8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단 한 번의 예외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모세는 가나안을 향한 그의 삶을 더 연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제력으로 인해 하늘에 자기의 위치를 정한 유명한 사람들이 있다. 두 제국의 통치 기간 중 국무총리를 지냈던 다니엘도 그의 청년 시절에 자제력을 배운 사람이었다. 그의 모범적인 생활과 공헌을 통해, 그와는 상반되는 후견인인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 왕에게서까지 자제력의 벌전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으며, 또한 진실함과 사랑의 길을 보여주셨다. 그분은 돌아가시기 전 그의 사명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으며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생애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에 가까워지도록 힘쓰시면서 진실 된 삶을 살았던 한 표본이었다.

우리 몸은 우리 것이고,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사고방식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살더라도 자신 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어떤 대가가 치러졌는가?
십자가를 마음속에 그리며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묵상해 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우리의 가치와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해로부터 우리의 영과 더불어 육체도 관리해야 한다는 거룩한 책임감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의 피를 흘리도록 허락하신 것은 하늘을 허비하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으며 우리의 모든 것이 그분의 소유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실한 청지기처럼 우리 몸을 사용해야 한다.

▣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聖殿)임>
“인생의 모든 일에 절제를 가르치고 실천하여야 한다. 먹고, 마시고, 자고, 입는 일에 절제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이다. 영혼의 성전으로 들어온 진리가 몸을 다루는 방법을 지도해 줄 것이다. 인간의 건강에 관련이 있는 것이면 어떤 것도 무심하게 여기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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