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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욥의 성품(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2/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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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6-12-16 16:13 조회7,6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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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안식일

일몰 : 오후 5시 19분

 

기억절 :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22).

 

연구 범위 : 욥 1:1, 8, 욥 29:8~17, 욥 31:1~23, 출 20:17, 마 7:22~27, 마 5:16, 엡 3:10

 

욥기에서 다루는 중요한 문제들 중에서 우리가 빠뜨려서는 안 될 또 하나의 핵심 주제는 바로 욥 자신의 생애이다. 하나님이 마귀로 하여금 그의 신실함과 진실함을 시험하게 할 정도로 그분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은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까닭은 몰랐으나, 그것들이 온당하지 못함을 알고 분노와 좌절감을 표출했던, 그럼에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던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욥기는 주로 욥이 재난을 당한 이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도 욥의 이전 생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우리는 욥의 과거 생애와 그의 됨됨이를 봄으로써 왜 그가 그 모든 고통 중에서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려는 사탄의 온갖 시도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켰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욥과 같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가 살아온 방식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그를 보고 우리는 어떻게 더 신실한 주님의 신자로서 살 수 있는가?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고통 받기 이전에 욥의 성품이 어떠했는지 살펴본다.

➋ 느끼기 :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동행하며 믿음을 실천했던 욥의 생애에 감탄한다.

➌ 행하기 : 성령의 능력으로 실천적인 믿음과 경건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A. 

❷ 하나님과 사람들은 욥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였습니까?

※ 하나님은 욥을 의인으로 평가했고 친구들은 죄인이라 하였고 31장에 사람들은 욥을 선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❸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타인의 인권을 고려했던 욥에게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처럼 배려하는 정신을 배우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욥은 배려하는 생활을 했다. 

 

B.

❷ 욥은 자신이 누리는 복을 어떻게 활용했다고 생각합니까?

※ 주위에 도움과 복이 되도록 사용했다. 

❸ 우리는 반석 위에 지은 집의 비유를 통해 믿음의 승리에 대하여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반석에 집을 세우는 것이다. 

❹ 우리는 각자 어떤 변화된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 이웃에게 빛을 비추는 것이 선한 일이 되게 해야 한다.

 

결론 : 욥기에서 산발적으로 수집된 정보를 통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믿음을 실천했던 욥의 인격을 볼 수 있습니다. 높은 윤리적 가치와 진실성 그리고 사회적으로 취약한 자들에 대한 배려가 이러한 신앙의 특징을 이룹니다.

 

 

첫째 날(일) 12월 18일 우스 사람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

 

1. 욥 1:1과 1:8을 읽어 보라. 욥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욥1:1, 8]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답: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욥은 그에게 임한 이 모든 불행은 그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그가 사탄의 특별한 표적이 된 이유는 그의 의로움과 신실함 때문이었다.

그는 얼마나 선하고 신실한 사람이었는가? 첫째, 성경은 그가 ‘온전’했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가 예수님처럼 죄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 말은 단지 상대적인 의미에서 완전하고 진실하며 정직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시선에서 ‘완전한’ 사람이란 주어진 시간 동안 하늘이 그에게 기대하는 만큼의 성숙에 도달한 사람을 말한다. ‘완전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탐’은 “헬라어 ‘텔레이오스(teleios)’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신약에서 종종 ‘온전한’으로 번역되지만 ‘장성한’이나 ‘성숙한’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다”(재림교회주석 5권, 638).

둘째, 성경은 그가 ‘정직’했다고 말한다. 그 말은 ‘곧다’, ‘고르다’, ‘의롭다’, ‘바르다’라는 뜻이다. 욥은 ‘선량한 시민’이라 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셋째, 성경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말한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신실한 이스라엘 백성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말과 같다. 신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충실하게 섬기는 이방인에게도 이 표현이 사용되었다(행 10:2, 22 참고).

마지막으로 욥은 악에서 떠났다. 하나님도 사탄과 대화하면서 욥의 이러한 특징을 확인해 주셨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욥 1:8).

결국 욥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의 믿음은 그의 삶의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는 진실로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천사와 사람에게”(고전 4:9) 증언하였다.

 

<부가설명>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욥의 신앙관과 하나님을 인식하는 정도가 온전하지 못했지만 그런 상태에서라도 욥은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는 일에 충성하였다. 하나님은 욥이 자기가 깨달은 정도 안에서 충성하는 욥을 칭찬하신 것이다. 욥기의 끝부분을 보면 욥이 회개한다. 이것은 욥이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욥기는 욥과 그의 세 친구가 가지고 있는 신앙관과 종교관이 여호와 하나님을 올바르게 깨달은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들은 완전히 도덕론적 관점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 하나님은 도덕적 상태에 따라서 상벌을 공평하게 집행하는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것은 사단이 하나님께 대든 사상이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욥1:9~11) 사단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런 하나님으로 이해하기를 원한다. 죄인은 벌하고 의인은 상을 주기 때문에 사람이 상 받기 원해서, 또는 벌 받기를 두려워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사단이 해석한 하나님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로 이렇게 이해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까지 그렇게 말한다. 이런 사상은 죄인은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옥이 있어야 하고 의인은 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천국이나 극락이 있어야 한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사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38~41장까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는 창조와 생명의 하나님이시며 그의 모든 피조물들의 생명과 생존을 돌보고 섭리하시는 자존하시는 하나님을 깨닫도록 이끄시는 것이다. 욥은 이것을 깨닫고 그때까지 잘못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회개한다. 그가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도 욥의 회개가 필요하지 않을까?

 

교훈 : 욥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영적으로 성숙하고, 선량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악을 멀리하는 진실한 신앙인이었다.

 

 

둘째 날(월) 12월 19일 젖으로 내 발자취를 씻으며

 

“젖으로 내 발자취를 씻으며 바위가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쏟아냈으며”(욥 29:6).

 

욥은 자신에게 임한 재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고뇌하면서 과거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러한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생각했다. 욥은 과거의 삶을 언급하면서 “젖으로 내 발자취를 씻”(욥 29:6)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욥은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욥 29:2) 시절에 대해서 말했다. 여기서 ‘보호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는 구약의 여러 성경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언급하는 흔한 단어로부터 유래한다(시 91:11, 민 6:24 참고). 의심의 여지없이 욥은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자신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1. 욥 29:8~17을 읽어 보라. 다른 사람들은 욥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는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욥29:8~17] 나를 보고 젊은이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9 유지들은 말을 삼가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10 지도자들은 말소리를 낮추었으니 그들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느니라 11 귀가 들은즉 나를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증언하였나니 12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13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였느니라 14 내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15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16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 17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

 

답: 다른 사람들은 욥을 존경하였고 욥은 곤궁하고 연약한 자들의 보호자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욥이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지 볼 수 있다. 광장에서 자리를 잡아 앉았다는 구절(욥 29:7)은 일종의 지역 자치를 암시한다. 욥은 그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 같다. 그런 자리는 그 사회의 연장자나 존경받는 구성원에게 주어진다. 그들 중에서도 욥은 크게 존경을 받는 자였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회의 최하층 구성원들도 그를 사모하고 존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욥은 자신만큼 복을 받지 못한 빈민, 망한 자들, 맹인, 과부, 고아, 다리를 저는 자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위로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속에 번영을 누렸던 한 인물, 곧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적인 생애를 살며 하늘과 땅이 모두 존경하기를 기뻐하는 인간상을 제시하셨다”(교육, 142). 우리는 여러 성경절에서 어떻게 욥이 사람과 하나님의 시선에 모두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지를 볼 수 있다.

 

<부가설명> 욥은 도덕군자였다.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였다. 욥의 이런 삶은 스스로 그를 의로운 자로 여기게 했다. 그런 의로운 삶이 하나님의 축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재앙이 임했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욥이 의로웠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에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런 도덕적 의를 행한다고 주장한 것이 사단의 논리이다. 욥도 이 논리에 익숙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당하는 재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단은 자기 논리를 증명하려고 욥을 공격하였다. 하나님은 사단의 논리가 가당치 않다는 것을 욥의 고난을 통하여 증명하셨다. 욥은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예언적 인물이 된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면서 사단의 논리에 쉽게 동의하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계시면 왜 잘 믿는 사람들이 이런 환난을 당하게 그냥 두시느냐?’ ‘네가 그런 사고를 당할 때 너의 하나님은 어디 있었느냐?’ 이런 소리는 옛 시인도 들었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42:3)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시42:10) 의인에게 고통을 가하고 사단은 주위 사람들이 이렇게 조롱하게 한다. 그럴지라도 창조와 생명과 섭리의 하나님을 바르게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은 영생과 영원한 나라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욥기를 통해서 가르쳐주는 바른 신앙관 바른 종교관 바른 성경의 하나님 관을 가지고 굳게 서 있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재난 이전의 욥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또한 지역의 중요한 책임을 맡아서 불우한 이웃들을 돕고 위로하였다.

 

 

셋째 날(화) 12월 20일 마음과 눈

 

“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랐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출이 뿌리째 뽑히기를 바라노라”(욥 31:7~8).

 

이 말은 언뜻 욥이 허세를 부리며 자신의 경건함과 덕성, 선행을 남들 앞에 과시하는 것처럼 들린다. 물론 이는 성경이 아주 경멸하는 태도이다(마 23장 참고). 그러나 욥은 그러한 경우라고 볼 수 없다. 우리는 문맥을 고려해야 한다. 그는 과거에 상당히 악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지금 고난을 당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반면 욥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며 그런 일을 당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1. 욥 31:1~23을 읽어 보라. 재앙 이전에 그는 또 어떤 삶을 살았는가?

[욥31:1~23]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2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 3 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불행이 아니겠느냐 4 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5 만일 내가 허위와 함께 동행하고 내 발이 속임수에 빨랐다면 6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7 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랐거나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8 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출이 뿌리째 뽑히기를 바라노라 9 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10 내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기를 바라노라 11 그것은 참으로 음란한 일이니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요 12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니 나의 모든 소출을 뿌리째 뽑기를 바라노라 13 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14 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15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16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17 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18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19 만일 내가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어가는 것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못 본체 했다면 20 만일 나의 양털로 그의 몸을 따뜻하게 입혀서 그의 허리가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다면 21 만일 나를 도와주는 자가 성문에 있음을 보고 내가 주먹을 들어 고아를 향해 휘둘렀다면 22 내 팔이 어깨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 뼈가 그 자리에서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 23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

 

답: 욥은 하나님 앞에서 아주 도덕의 정로를 행하는 사람이었다.

 

욥이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을 다루고 있지 않음을 주목하라. 마음과 눈을 언급했다는 것은 그가 거룩함과 옳고 그름 그리고 하나님의 법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욥 31:7 참고). 그는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에도 관심을 두신다는 사실을 알았다(삼상 16:7, 출 20:17, 마 5:28 참고). 욥은 어떤 여인과 더불어 간음을 행하는 것뿐 아니라 그 여인에 대하여 음심을 품는 것조차 잘못임을 알았다(욥 31:9).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의 백성과 증인으로 부르시기 전에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이미 세상에 존재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2. 욥 31:13~15을 읽어 보라. 왜 이 기별이 매우 중요한가?

[욥31:13~15] 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14 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15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답: 욥은 인간의 인격과 생명적 존재는 평등하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미 그 당시에 욥에게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놀라운 인식이 있었다. 고대 사회에는 보편적인 권리나 법칙과 같은 개념이 통용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자신을 다른 집단보다 위대하거나 우월하게 여겼고 종종 타인의 존엄성이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무시했다. 그러나 욥에게는 인간의 권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고 그러한 권리들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 욥은 그 당시뿐 아니라 지금보다도 시대를 앞선 사람이었다.

 

<부가설명>

욥은 친구들의 비난과 공격이 더욱 격해지는데 반하여 자기가 도덕적으로 정말로 잘 살았다는 사실을 열거한다. 그는 정말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으로 살았다. 당시의 성인이라는 칭송을 들을 만큼 살았다. 그런데 이런 재앙을 당했으니 어굴하고 참담하고 마음으로 분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인데 이렇게 자기를 취급한다는 말인가! 나중에 여호와께서 친히 말씀하실 때 그 진실을 깨닫고 회개했지만 28~31장의 넋두리를 할 때에는 아직도 욥은 자기의 신앙과 종교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욥기 3:23~26을 읽으면 욥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사는 것이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25절에 그 사실이 드러나 있다. “하나님에게 둘러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나는 먹기 전에 탄식이 나며 나의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구나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3:23~26) 욥은 하나님께로부터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중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자녀들을 위하여 번제를 드린 것도 이 두려움이 원인이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도덕적으로 의로워야 하나님께 인정받는다는 믿음은 두려운 믿음이다. 욥의 의와 정직과 순전은 전적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두려운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려는 자기중심의 신앙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38장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현현과 말씀을 들은 후에 욥은 이런 자기 신앙을 회개하였다. 우리도 욥의 회개가 필요하지 않을까?

 

 

교훈 : 욥은 외적인 행위뿐 아니라 마음의 동기와 생각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이 부여하신 보편적인 인권에 대해서 심오한 인식이 있었다.

 

 

넷째 날(수) 12월 21일 반석 위에 지은 집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1. 욥 31:24~34을 읽어 보라. 욥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더 알 수 있는가?

[욥31:24~34] 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 25 만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다면 26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27 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맞추었다면 28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 29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가 재난을 당함으로 즐거워하였던가 30 실상은 나는 그가 죽기를 구하는 말로 그의 생명을 저주하여 내 입이 범죄하게 하지 아니하였노라 31 내 장막 사람들은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는가 32 실상은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지 아니하도록 나는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노라 33 내가 언제 다른 사람처럼 내 악행을 숨긴 일이 있거나 나의 죄악을 나의 품에 감추었으며 34 내가 언제 큰 무리와 여러 종족의 수모가 두려워서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잠잠하였던가.

 

답: 욥은 세상 재물에 마음 두지 않았고, 천체나 다른 우상을 섬기지 않았고,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구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풍족히 대접했으며, 죄를 숨기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욥의 삶과 성품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당연했다. 그는 믿음대로 사는 사람이요 행동으로 하나님과 맺은 관계의 진실성을 나타내 보이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런 사실 때문에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하는 그의 불만이 더 안쓰러워지고 그의 친구들의 주장은 그들 자신만큼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욥의 충실하고 순종적인 생애에서 더 깊고 중대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가 과거에 살았던 생애와 그가 자신에게 임한 비극에 반응했던 방식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주목하라. 욥이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는 유혹을 뿌리쳤던 것은 그냥 우연이나 행운이나 순전한 의지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 충성하며 순종했던 수많은 세월이 그에게 그러한 믿음과 성품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믿음과 성품이 있었기에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치든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다.

 

2. 마 7:22~27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욥이 믿음을 지켰던 근거는 무엇인가?

[마7:22~27]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답: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섰기 때문이다. 

 

욥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먼저 ‘작은’ 승리들을 거두었기 때문이다(눅 16:10). 욥을 욥답게 만들었던 것은 스스로 타협하지 않고 옳음을 고수하는 충직함이었다. 욥의 삶은 신앙생활에서 행위의 역할에 대하여 말한 야고보서의 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22). 여기에 정말 중요한 기독교인 삶의 원칙이 나타나 있다.

욥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원칙이 훌륭한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본다. 욥은 우리와 똑같이 육신을 가진 자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서 하나님께 충실히 순종하는 생애를 살았다.

 

<부가설명> 욥이 여호와 하나님 종교와 신앙에 대하여 온전한 사상을 가지지 못했어도 자기가 깨닫고 있는 진리를 따라 충실하게 생활한 것은 하나님께서 칭찬한 사실이다. 29장부터 31장까지 욥은 자기의 삶을 진술하였다. 그것이 자기를 자랑하는 일이 아니고 자기가 당하고 있는 재앙의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도덕적 상벌로 본다면 이렇게 산 자기에게 이런 재앙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독백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의 정죄에 대하여 그 정죄가 가당찮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욥의 독백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배우게 된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영감으로 욥의 이런 독백을 기록하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이 된 사람들은 어련히 이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으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이 된 사람들은 그 생명이 활동하는 것이 생활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욥이 비론 온전한 이해를 하지 못했어도 욥이 행한 모든 삶은 생명의 하나님께서 욥을 주관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욥은 자기가 그렇게 행동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욥의 생각부터 잘못된 것을 욥이 깨달은 것이다. 욥은 창조와 섭리의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렇게 살도록 이끄신 것을 마침내 깨닫고 회개하였다.

 

교훈 : 욥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얻은 성품과 영적인 승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섯째 날(목) 12월 22일 하나님의 각종 지혜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엡 3:10).

 

욥기 전반부에서 등장인물들의 토론 중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욥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욥 22:3).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매우 모순되는 인식이다. 욥이 의로우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그의 행위가 온전하다면 하나님에게 이익이 된다. 그것이 현실의 배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것은 단지 욥뿐 아니라 주를 따르는 자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1. 마 5:16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엘리바스가 욥에게 던진 질문에 답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답: 성도의 바른 삶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된다.

 

욥기의 일차적인 사안은 ‘욥이 과연 계속 신실할 것인가?’이다. 사탄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고 하나님은 그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적어도 사탄과의 이 특정한 쟁투에서 욥의 신실함은 틀림없이 하나님께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더 거대한 담화의 축소판에 불과했다. 첫째 천사의 기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부분이 있다(계 14:7). 그리고 예수님은 마 5:16에서 우리가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설명하셨다. 욥이 그렇게 했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2. 엡 3:10을 읽어 보라. 욥기에서 작은 규모로 드러난 진실이 여기서는 어떻게 설명되어 있는가?

[엡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답: 하나님은 세상에 두신 참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하늘 존재들에게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되도록 그들의 삶 속에서 일하신다. “하나님의 그러한 형상이 인간에게 재현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의 영광은 당신의 백성의 품성을 온전케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시대의 소망, 671).

욥은 비록 수천 년 전에 살았지만 그의 생애는 인류가 어떻게 이러한 원칙을 증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생애를 살아갈 특권이 있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되도록 그들의 삶 속에서 일하신다.”는 저자의 표현은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할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인 속에 생명이 되시기 때문이다. 바울의 고백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은 곧 예수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인간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사는 삶을 사는 것이다. 당연히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하고 예수님이 하시지 않는 일은 하지 않게 된다. 이런 삶이 되지 않으면 아직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상이 성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천천히 드러날지라도 사상만은 분명하고 단호해야 한다. 욥이 그랬다. 우리도 예수 안에서 그래야 마땅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2) 아멘.

 

교훈 : 우리의 신실한 믿음은 대쟁투의 중요한 요소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를 위해 일하시며 우리는 변화된 삶으로 그분께 영광을 드릴 수 있다.

 

 

여섯째 날(금) 12월 2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종교개혁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라는 위대한 진리를 복원시켰다. 이 진리는 에덴동산에서 선포된 말씀 속에 최초로 암시되었다가(창 3:15 참고)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온전하게 표현되었으며(창 15:6, 롬 4:3 참고) 바울에 이르기까지 성경 안에서 지속적으로 계시되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은 언제나 신자의 삶 속에 임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포함했다. 그것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그것의 표현이다. 우리는 욥의 생애와 성품을 통해서 이러한 사역의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훌륭한 예를 본다. 신학자들은 이러한 사역을 종종 거룩해진다는 의미에서 ‘성화’라고 부른다. 성경에서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함을 추구하라는 권면을 듣는다. 왜냐하면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히 12:14)기 때문이다. 성화의 기본적인 의미는 ‘거룩한 목적을 위해 구별됨’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그분과 언약을 맺은 백성에게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이러한 개념이 나타난다. 이러한 개념과 말씀은 신구약 전체에서 여러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모두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일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의로움 안의, 의로움을 향한 도덕적인 성장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와 협력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도덕적 변화의 점진적인 과정이다.”—Handbook of SDA Theology, p. 296. 물론 이 일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강제로 의롭게 되지 않는 것처럼 강제로 성화되지도 않는다. 우리가 자신을 주님께 맡기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게 여기신 동일한 주께서 우리를 거룩하게도 하시며 욥에게 그렇게 하신 것처럼 적어도 이생에서 가능한 수준까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빚으신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갈 4:19)라고 했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우리는 어떻게 성령과 협력해야 합니까? 그것은 어떤 식으로 표현됩니까?

※ 진정으로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경험으로 표현된다. 날마다 말씀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고 굴복하는 기쁨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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