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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제4기 10과 엘리후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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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16-11-28 18:36 조회3,8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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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10과 엘리후의 분노

 

<교사가 명심할 주요 사항>

 

질문, 핵심, 적용

 

<핵심>

 

우리는 자신이 보고 경험하고 아는 것으로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은 인간의 이해력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핵심어 : 겸손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대화 중에 답답하거나 화가 나는 경우는?

엘리후는 욥과 세 친구들의 대화에서, 욥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며 친구들도 지혜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화를 냈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하지 못했다. 우리가 화를 내는 것도 대부분 그렇다.

 

1. 15:14~16의 엘리바스의 말은 어떤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가?

1-1. 그러나 욥이 그의 말에 공감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2. 욥의 후반부에는 또다른 친구 엘리후가 등장한다. 그는 욥과 세 친구에게 화를 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3. 엘리후는 어떻게 하나님을 옹호했는가?

3-1. 넘겨짚기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면?

 

4. 하나님 앞에 천사장으로 봉사하던 사단이 타락한 사실을 겔 28:15에서는 어떻게 말하는가?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4-1. 불의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5. 1:의 내용을 볼 때, 욥의 친구들이 알지 못한 중요한 사실들은 무엇인가?

5-1.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적용, 결심>

 

이번 과를 통해서 배운 교훈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겠는가?

 

<답을 위한 도움>

 

1. 엘리바스의 말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3:23)다는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정직하고 선하고 거룩하게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순결한 품성에 비추어 보면 수치스러울 수 밖에 없다.

 

1-1. 엘리바스는 욥도 죄를 지은 댓가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모든 일의 원인과 이치를 다 알 수 있는 전지한 존재가 아님에도 욥의 심령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들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관점에서 말할 뿐이었다. 우리가 욥기에서 배워야 하는 교훈 중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행위에 대해 말할 때에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림교인들은 누구보다 성경을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상대방을 가르치고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분명히 깨달았을지라도 그것을 누군가에게 적용할 때는 그의 사정을 다 모르기 때문에 겸손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2. 그가 화를 낸 표면적인 이유는 욥이 자신을 하나님보다 의롭다 하고, 세 친구들이 불의한 욥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의 기준에서 그 네 사람이 자신보다 지혜가 없다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잣대가 아닌 자신의 잣대로 네 사람을 판단했다. 즉 교만이 진짜 분노의 이유였다.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3. 그는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34:12)고 했다. 그것은 욥도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보응받는다는 주장이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품성을 옹호한다고 생각하면서, 넘겨짚기로 욥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것은 자신을 심판장이신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죄와 같다.

 

주님이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은 결혼생활의 처참한 실패로 사회에서 낙인찍힌 인생이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더 이상 인생을 회복할 수 없다고 넘겨짚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그녀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더 이상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넘겨짚기를 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녀도 죄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선언하셨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주님은 누구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다 들여보시는 분이지만 넘겨짚기 하지 않으셨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12:47)

 

그런데 우리는 마치 최면술사처럼 사람들의 속마음을 잘도 알아내고, 심리학자들처럼 사람들의 심리를 논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우리 자신의 앞길도 예측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진리를 옹호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넘겨짚기로 정죄하여 그를 더 나락에 빠뜨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넘겨짚기하기 전에 그 사람과 같은 입장에 설 때 그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

 

4. 하나님이 완전하게 지으신 루스벨이 타락했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욥과 친구들이 불의를 납득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불의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거나 납득이 되거나 논리적이고 합

리적인 계획에 적합하다면 그것은 불의일 수도 비극일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합리

적인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완전한 하나님께서 완전한 환경 가운데서 창조하신 완전한 피조물이 있다. 그는 존귀하고 지혜가 충족하였으며, 완전한 아름다움과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하고 하나님의 성산에 머물렀던 기름부음 받은 그룹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특권을 부여받았음에도 그는 스스로 타락하여 불의가 자라도록 허용했다. 마귀를 오염시킨 불의만큼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것이 어디 있겠는가?

 

4-1. 논쟁에서 이기기보다 위로하는 자가 필요하다. 참된 위로자는 가르치고 판단하기 보다 겸손하게 배우려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이다. 말을 잘하기보다 듣기를 잘하는 자이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1:19)

 

5. 욥은 하나님이 인정한 의인이었다. 욥이 고난을 받은 것은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의로왔기 때문이다. 욥의 의로움에 질투를 느낀 사단이 하나님으로부터 욥을 분리시키려고 괴롭게 한 것이고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해주신 것이다.

욥의 고난은 성경에 밝혀놓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우리가 알지만, 오늘날 여전히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행, 특히 자신에게 닥치는 고난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

 

5-1. 보이는 세상, 경험하는 삶이 다가 아니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더 무한한 세계가 존재하고 그 모든 세계를 하나님은 배후에서 다스리고 계신다. 그러나 마침내 보이지 않던 모든 일의 비밀과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욥처럼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때에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신실하게 그분 곁에 머물러야 한다. 만약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욥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순종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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