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 무엇을 더 할 수 있었겠느냐?-(핵심Q&A)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11과- 무엇을 더 할 수 있었겠느냐?-(핵심Q&A)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5-03-10 10:31 조회787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제11과 무엇을 더 할 수 있었겠느냐?

         (03월 15일 (안) / 일몰: 오후 6시 39분) 


<기억절(記憶節)>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요 18:37). 


<개요(槪要)>

(제11과)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公義)와 그분의 백성을 향(向)한 사랑의 의도(意圖)를 인정(認定)하고 선포(宣布)하도록 초대(招待)받습니다.


⑴.우리는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인정(認定)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공의(公義)로우심을 인정하도록 초대받습니다.)


⑵.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의도(意圖)를 인정(認定)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1:33~41)에서 청중은 토지 소유자가 심판을 내리기 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는 것을 인정(認定)합니다.


⑶.우리는 하나님의 정의(正義)와 사랑의 의도(意圖)를 선포(宣布)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정의(正義)와 사랑의 행동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정의롭고 의로우심을 선포(宣布)하라고 권(勸)합니다.)

 

⑷.포도원(葡萄園)의 비유(譬喩)에서 하나님의 공의(公義)는 청중(聽衆)에게 비유적(比喩的)으로 확언(確言)되고 인정(認定)됩니다


⑸.예수님은 청중(聽衆)이 포도원주인(葡萄園主人)의 행동(行動)이 포도원농부(葡萄園農夫)의 행동(行動)과 대조적(對照的)으로 정당(正當)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도록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⑹.(이사야 5:4)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분의 백성을 위(爲)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셨다고 지적(指摘)합니다. "내 포도원(葡萄園)에 내가 하지 아니한 것을 더 할 수 있었겠느냐?"라는 질문(質問)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행하신 사랑의 의도(意圖)와 행동을 인정(認定)하라는 호소(呼訴)입니다.


⑺.(요한계시록 15:3)에서 성도(聖徒)들은 "주 하나님 전능(全能)하신 이여, 주의 행사(行事)가 크고 놀랍도다! 주의 길은 공의(公義)롭고 참되도다, 만민(萬民)의 왕(王)이시여!"라고 노래하고 선포(宣布)합니다." 


⑻.성경에 따르면, 우리는 연약(軟弱)하고 한정(限定)된 피조물(被造物)로서 하나님의 길을 판단(判斷)할 위치(位置)에 있지 않습니다. (욥기 마지막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 참조, (욥기 38~42); 또한 (로마서 9:20 참조). 


⑼.우리는 하나님이 공의(公義)로우시다는 것을 인정(認定)하도록 초대(招待)받습니다. (로마서 3:26)은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의 의(義)로움을 증명(證明)하는 것(그리스어 용어는 엔데익시스)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인내심(忍耐心)을 가지고 "이전에 지은 죄들"(로마서 3:25)을 고려(考慮)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⑽.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께서 용서(容恕)하시는 것(정의(正義)하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공의(公義)로우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03월 09일) (일) <승리(勝利)하신 그리스도>


(Q)~성경에서 사탄(마귀(魔鬼))을 어떻게 묘사(描寫)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고 있으며, 예수께서 왕(王)이시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계12:9, 마 4:3, 요 8:44, 고후 11:3, 요일 3:8; 계12:10, 계13:6, 욥 1, 2, 슥 3:1, 2, 유 1:9; .요 12:31, 요 14:30, 요 16:11, 행 26:18, 고후 4:4, 엡 2:2, 요일 5:19). / (요 18:37; 롬 3:25~26; 롬 5:8; 롬 16:20; 계 11:15, 12:10~12)


(A)~<성경에서 마귀(魔鬼)는 온 세상을 기만(欺瞞)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비방(誹謗)하고 참소(讒訴)하고 괴롭게 하지만, 사탄(마귀)은 이미 패배(敗北)한 원수(怨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매순간(每瞬間)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승리(勝利)를 주장(主張)하고 십자가(十字架)의 약속(約束)인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을 주장(主張)해야 승리자(勝利者)가 된다.> 


⑴.마귀(魔鬼)는 처음부터 온 세상을 속이는 자(者)이다. (계12:9, 마 4:3, 요 8:44, 고후 11:3, 요일 3:8).


⑵.마귀(魔鬼)는 하늘에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비방(誹謗)하고 참소(讒訴)하는 자(者)이다. (계12:10, 계13:6, 욥 1장~2장, 슥 3:1, 2, 유 1:9)


⑶.마귀(魔鬼)는 이 세상 통치(統治)의 찬탈자(簒奪者)이다. (요 12:31, 요 14:30, 요 16:11, 행 26:18, 고후 4:4, 엡 2:2, 요일 5:19).


⑷.예수님은 “진리(眞理)에 대하여 증언(證言)하려”(요 18:37) 세상(世上)에 오셨다.


⑸.예수님은 십자가(十字架)를 통해 하나님의 완전(完全)한 의(義)와 사랑을 가장 탁월(卓越)하게 증명(證明)하셨고(롬 3:25, 26; 롬 5:8), 이로써 마귀(魔鬼)의 비방(誹謗)이 틀렸음을 입증(立證)하셨다. (계12:10~11)


⑹.예수님은 마침내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계12:12; 롬 16:20 비교) 아는 마귀(魔鬼)의 나라를 멸(滅)하실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세세(世世)토록 왕(王) 노릇 하”(계 11:15)실 것이다. 


⑺.사탄이 무슨 짓을 하든, 그는 이미 패배(敗北)한 원수(怨讐)이며 우리의 승리(勝利)의 비결(祕訣)은 매일(每日), 매 순간(每瞬間)마다 우리를 위하신 그리스도의 승리(勝利)를 주장(主張)하고, 십자가(十字架)가 우리에게 제공(提供)하는 약속(約束)을 누리는 것이다.


⑻.그리스도께서는 인간(人間)이 스스로를 위해서 정복(征服)할 수 없음을 보셨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 사탄을 정복(征服)하고자 인간 대신 전쟁(戰爭)터에 들어오셨다.


⑼.그리스도께서는 고통(苦痛), 자기 부인(自己否認), 자아희생(自我犧牲)의 생애(生涯)를 통해, 또한 당신의 겸비(謙卑)와 최후(最後)의 죽으심을 통해, 인간의 속량(贖良)을 위한 길을 마련하셨다. 


⑽.선악간(善惡間)의 대쟁투(大爭鬪)에서 우리는 어느 편(便)이 이길지 압니다. 우리의 매일매일의 선택(選擇)은 궁극적(窮極的)으로 어느 편에 설지에 어떤 영향(影響)을 미칠지 알지만 지금 당장도 우리가 승리(勝利)하는 편에 있는지 여부(與否)의 선택(選擇)이 매우 중요(重要)하다. 


(03월 10일) (월) <의(義)로우시며 의(義)롭게 하시는 분>


(Q)~예수님의 사역(使役)은 모든 면에서 의(義)로우시며, 의(義)롭게 하시는 분임을 어떻게 말씀해주십니까? (로마서 3:23-26, 로마서 5:8) 


(A)~<그리스도의 사역은 모든 면에서 마귀(魔鬼)의 일을 무효화(無效化)하신다. (요한일서 3:8)에 따르면 예수께서 “나타나신 것은 마귀(魔鬼)의 일을 멸(滅)하”(요일 3:8)시고 “죽음의 세력(勢力)을 잡은 자 곧 마귀(魔鬼)를 멸(滅)하시”(히 2:14)기 위(爲)함이었다.> 


⑴.마귀(魔鬼)의 거짓 행각(行脚)은 하늘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맨 처음 그는 천사(天使)들 앞에서 하나님의 품성(稟性)과 목적(目的)을 그릇 나타냈다. 에덴동산에서 그는 교묘(巧妙)한 암시(暗示)와 거짓말로 우리의 첫 조상(祖上)들을 타락(墮落) 시켰다(참조 창 3:4).


⑵.탈무드(Sanhedrin 89b, Soncino ed. 596)에는 “이삭을 제사(祭祀)로 드리기 전 사단이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관한 의심(疑心)을 주입(注入)시키려고 시도(試圖)한 것과 ‘그가 진실(眞實)을 말할지라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이 거짓말쟁이의 형벌(刑罰)이다.’라는 말로 아브라함이 그를 격퇴(擊退)시켰다”라는 전설(傳說)이 실려 있다.


⑶.(마귀(魔鬼) 사탄은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헬라어에 따르면, (요한복음 8:44)이 구절(句節)은 거짓말쟁이의 아비 혹은 거짓말의 아비를 의미(意味)할 수 있다. 둘 다 정확한 표현으로 거짓의 대(大) 창시자(創始者)를 나타내고 있다. 


⑷.사단은 거짓말쟁이로서 하늘에서 추방(追放)되었으며, 그곳에 거(居)할 권리(權利)를 결코 다시 얻지 못할 것이다. 그의 자녀들도 그렇게 될 것은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行淫者)들과 살인자(殺人者)들과 우상숭배자(偶像崇拜者)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者)마다 성(城) 밖에 있”(계 2:15)을 것이기 때문이다.


⑸.(그리스도 예수 안에) 예수는 “우리에게 지혜(智慧)와 의(義)로움과 거룩함과 구속(救贖)함이 되셨”(고전 1:30)다. 그분 자신이 구속자(救贖者)(딛 2:14) 요 속전(贖錢)이다. (딤전 2:6). 


⑹.바울이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萬有)시요 만유(萬有) 안에 계시니라”(골 3:11)고 선언(宣言)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⑺.“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신 것 외(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고전 2:2) 작정(作定)했다고 선언(宣言)했을 때 사도(使徒)가 편협(偏狹)한 한계(限界)를 만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분을 잘 안다면 사람의 회복(恢復)을 위한 하나님의 전반적(全般的)인 계획(計劃)과 과정(過程)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지혜(智慧)는 없다.


⑻.구속(救贖)을 상징(象徵)한 구약(舊約)의 위대(偉大)한 예표적행위는豫表的行爲) 는 애굽으로부터의 구원(救援)이었다. 구속자(救贖者) 즉 구원자(救援者)이신 여호와가 “내가…. 편 팔로 너희를 구속(救贖)하”(참조 출 6:6; 15:13)겠다고 약속(約束)했다. 구속(救贖)의 목적(目的)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이스라엘을 성별(聖別) 하는 일이었다(출 6:7). 구속(救贖)에 참여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踰越節) 양(羊)을 먹고 그 피를 뿌림으로써 믿음의 행위(行爲)를 취(取)할 것을 요구(要求) 받았다(출 12장)


⑼.십자가(十字架)와 구속(救贖)의 계획(計劃) 가운데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을 묵상(默想)할 때, 시련(試鍊)과 고난(苦難)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하나님이 하신 일은 확신(確信)하게 된다. 


⑽.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를 통해 하나님의 의(義)와 사랑을 궁극적(窮極的)으로 보여주셨다. 그분은 의(義)로우시고, 우리를 위해 선(善)한 일을 행하시며 의(義)롭게 하신다. 


(03월 11일) (화) <나의 사랑하는 자(者)의 노래> 


(Q)~선악간(善惡間)의 대쟁투(大爭鬪)는 누구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이며, (이사야 5:1~4)의 이 구절(句節)에서 말하는 자(者)는 누구이며, 이사야는 누구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포도원(葡萄園)과 포도원 주인(葡萄園主人)은 누구를 상징(象徵)하며, 포도원을 대신하여 포도원 주인이 한 행동(行動)의 의미(意味)는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사야 5:1~4)


(A)~<이사야는 사랑하는 포도원(葡萄園)에 대해 노래한다. 포도원의 주인(主人)은 하나님이며, 포도원(葡萄園)은 하나님의 백성(百姓)을 상징(象徵)한다(사 1:8, 렘 2:21 참조). 그러나 여기 함축(含蓄)된 의미(意味)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더 광범위(廣範圍)한 일로 확장(擴張)될 수도 있다.>


⑴.이 구절에 따르면, 포도원 주인인 하나님은 포도원이 번성하게 만들기 위해 가능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셨다. 좋은 포도를 맺어야 했지만, 포도원은 “들포도,” 어떤 번역본은 “쓸모없는” 포도라고까지 한 볼품없는 열매를 맺었다. 히브리 원어는 문자적으로 악취 나는 열매라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하나님의 포도원에 썩은 포도가 달리다니!


⑵. 이사야 5:3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으로 전환하며 사람들에게 그분과 포도원 사이에서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한다.


⑶.하나님께서 직접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신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사 5:4). 그분께서 무엇을 더 하실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당신이 하신 일을 판단해 달라고까지 하시다니,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⑷.땅을 파서 “울타리를 두른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자크(‘azaq)는 성경 히브리어에서는 “파다”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였다. “울타리를 두르다”라는 번역은 성경 이후 시대의 히브리어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문맥으로 볼 때 그 포도원에 울타리 혹은 “담”이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사 5:5; 참조 마 21:33). 


⑸.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들 주변(周邊)에 보호(保護)막을 치셨다. 그들이 주변(周邊) 나라들과 직접적(直接的)으로 맞닿지 않은 팔레스타인 중앙부의 고지(高地)에 위치한 것이 보호(保護)막이 되었다. 하나님의 율법(律法)과 선지자(先知者)들을 통해서 주신 그분의 기별(奇別)들 또한 그들을 악(惡)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중요한 안전장치(安全裝置)였다. 


⑹.①.(돌):이것은 우상숭배(偶像崇拜)와 폐습(弊習)들을 행하던 그 땅의 원주민(原住民)들을 일컫는 것 ②.(극상품(極上品) 포도나무): 이는 하나님 자신이 주의 깊게 고르신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象徵)한다. (참조 7절). ③.(망대(望臺): 망대는 성전(聖殿)을 상징(象徵)하였다. (소망, 596).


⑺.④.(술틀): 이는 선지자 학교와 같은 기관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기관들은 의, 공의, 정직, 순결 등과 같은 덕목들을 가르치도록 하나님이 지정하여 세우신 기관들이었다.

⑤.(포도(葡萄): (눅 13:6~9)의 비유(譬喩)에서의 무화과(無花果)나무처럼 포도원(葡萄園) 또한 열매를 얻기 위한 목적(目的)으로 경작(耕作)되었다. (참조 마 21:19, 34). 포도(葡萄)는 품성(稟性)의 열매, 곧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 앞에 드러나게 되어 있던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稟性)을 상징(象徵)한다. (참조 39~43쪽). 


⑻.⑥.(들포도):이스라엘은 성령(聖靈)의 열매를 생산(生産)하는 대신에 육신(肉身)의 열매를 맺었다. (참조 갈 5:19~23). 무자비(無慈悲)하고 부정(不淨)한 행위(行爲)들, 부정직(不正直)과 기만(欺瞞), 방종(放縱)과 부도덕(不道德), 가난한 자들과 고통(苦痛)당하는 자들의 권리(權利)를 무시하는 일, 과부(寡婦)와 고아(孤兒)들을 이용하여 이득(利得)을 챙기는 일, 이 같은 일들은 선지자(先知者)들이 지속적(持續的)으로 책망(責望)을 가(加)했던 죄악(罪惡)이었다. 바로 이러한 죄악(罪惡)들이 여기에 언급된 “들포도”이다.


⑼.이사야(5:3)는 계속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自處)하는 유다와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한 그의 말을 이어 나간다. (참조 이사야 1:1; 2:1; 3:1; 4:3~4). 포도원(葡萄園)에 관한 노래는 끝이 났고 이제는 그 노래에서 “사랑하는 자”로 칭(稱)함을 받은 여호와께서 선지자(先知者)를 통(通)하여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신다.


⑽.하나님은 시온에게 그 자신에 대한 판결(判決)을 스스로 내리라고 요구(要求)하신다. (참조 마 21:40, 41). 하나님이 다시 한번 그의 백성에게 자신과 변론(辯論)하기를 요구하신다. (참조 사 1:18). 여호와의 주장(主張)은 매우 타당(妥當)한 것이다. 만일 사실을 직시(直視)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그분의 공의(公義)로우심과 자신들의 죄(罪) 됨을 인정(認定)하게 될 것이다


◎. 선악(善惡)의 대쟁투(大爭鬪)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심으로서만 해결(解決)될 수 있다. 포도원(葡萄園)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더할 수 없는 사랑으로 백성들을 사랑하심을 보여주신다.


(03월 12일) (수) <예수님의 포도원(葡萄園) 비유(譬喩)>  


(Q)~예수님의 포도원(葡萄園)의 비유(譬喩)는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며, 어떤 교훈(敎訓)이 담겨 있습니까? (이사야 5:4, 마태복음 21:33~39)


(A)~<포도원(葡萄園)의 비유(譬喩)는 주인(主人)의 성품(性稟)과 행동을 말해준다. 그리스도의 사역(使役)을 통해 자신을 주시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은 공의(公義)와 완전한 사랑을 공개적(公開的)으로 입증(立證)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爲)해 행(行)하신 모든 일과 구원(救援)의 대가(代價)를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사랑에 어떻게 반응(反應)해야 할 숙제(宿題)를 주신 것입니다.>


⑴.비유(譬喩)의 첫 부분은 포도원(葡萄園) 주인과 그의 포도원에 관한 (이사야 5장)의 포도원의 노래를 직접(直接) 인용(引用)한 것이다. 그다음 예수님은 포도원주인(葡萄園主人)이 자신의 포도원(葡萄園)을 “농부(農夫)들에게 세(貰)로 주고 타국(他國)에 갔”(마 21:33)다고 덧붙이신다. 


⑵.포도원주인(葡萄園主人)이 두 번이나 종들(선지자(先知者))을 보내 소출(所出)을 거두게 했을 때, 포도원을 빌린 농부(農夫)들은 그의 종들을 때리고 죽였다. (마 21:34~36). 마침내 주인은 아들(예수님)을 보내시며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尊待)하리라”(마 21:37)라고 말했다. 


⑶.그러나 악(惡)한 그들은 주인(主人)의 아들도 죽였다. “농부(農夫)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相續者)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遺産)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葡萄園)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마 21:38~39).


⑷.(그 실과): “자기 실과(實果).” 주인은 자기 몫의 농작물을 받기 위하여 종을 보냈다(참조 33절 주석). 이스라엘은 품성의 열매를 맺어야 했으며, 그리하여 세상에 하늘나라의 원칙을 드러내야 했다. 품성의 열매는 먼저 자신들의 생애 속에서 드러나야 했고 그런 다음 주변의 여러 나라 사람들의 생애 속에서 드러나야 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오늘날의 교회에게 큰 축복을 주셨고, 따라서 그분은 교회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보답이 있기를 기대하신다. (실물교훈, 296).


⑸.(자기 종들을): (마태복음 23:34에서 예수는 “선지자(先知者)들과 지혜(智慧) 있는 자(者)들과 서기관(書記官)들”을 보냈다고 말한다. (참조 마태복음 23:37 절). 제사장(祭司長)들은 특별한 의미(意味)에서 주의 포도원(葡萄園)의 지명(指名)된 관리인(管理人)들이었고 선지자(先知者)들은 하나님이 택(擇)하신 대표자(代表者)들 즉 그의 종들이었다


⑹.(종들을 잡아): 마태복음에서는 여러 무리의 종들을 말하는데 첫 번째로 보냄 받은 무리 가운데 몇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참조:마태 21:35~36절). 마가복음은 각 경우(境遇)마다 한 명의 종을 보냈는데 몇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막 12:3~5)고 말한다. 누가복음 역시 경우마다 종 한 명씩을 보냈는데 종이 죽었다는 말은 없다. (참조 눅 20:10~12). 종들의 수(數)와 그들이 제각기 당한 운명(運命)은 분명히 비유(譬喩)의 근본적(根本的)인 요소(要素)는 아니다. 바로 그날 조금 뒤에 예수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보낸 기별자(奇別者) 들을 취급(取扱)한 일을 사실적(事實的)으로 표현(表現)했다. (마태복음 23:29~37).


⑺.여러 선지자(先知者)가 당한 운명(運命)에 대한 구체적(具體的)인 예증(例證)을 위해서는 (왕상 18:13; 22:24~27; 왕하 6:31; 대하 24:19~22; 36:15, 16; 느 9:26; 렘 37:15; 행 7:52)를 참조하라. 포도원(葡萄園)의 소작농(小作農)들은 세(貰)를 지불(支拂)할 것을 거절(拒絶)했을 뿐 아니라 포도원 소유주(所有主)를 대리(代理)하는 자(者)들을 학대(虐待)하고 또 자신들이 마치 정당(正當)한 주인(主人)인 양 행세함으로 포도원 소유주(所有主)를 모욕(侮辱)하였다.


⑻.무엇을 더 하실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사랑하는 아들마저 주셨다(요 3:16). 만약 우주적(宇宙的) 대쟁투(大爭鬪)가 여기 제시(提示)된 것과 같다면, 그것은 전말(顚末)이 다 드러나기 전에 하나님의 권능(權能)을 행사함으로 종결(終結)되지 않으며, 먼저 하나님의 성품(性稟)을 공개적(公開的)으로 입증(立證)하는 것이 필요하다. 


⑼.그것은 그리스도의 사역(使役)을 통해 궁극적(窮極的)으로 드러났다(롬 3:25, 26; 롬 5:8).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주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당신의 공의(公義)와 완전한 사랑을 조금도 타협(妥協)하지 않으면서 우리를 의(義)롭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⑽.십자가(十字架) 사건(事件)은 하나님께서 악(惡)을 줄이고 제거(除去)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시면서도 진정(眞正)한 사랑이 번성(繁盛)할 수 있는 틀을 깨지 않으셨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선택(選擇)할 수 있는 더 나은 길이 있었다면 그분이 그것을 선택(選擇)하지 않았겠는가?


(03월 13일) (목) <하나님의 이름을 입증(立證)함> 


(Q)~우주적(宇宙的) 대쟁투(大爭鬪)에서 하나님 자신이 입증(立證)되시는 것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시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보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었겠는가? (이사야 5:3~4, 로마서 3:1~4)


(A)~<하나님의 완전(完全)한 의(義)와 사랑은 구속(救贖)의 계획(計劃) 가운데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의 역사(役事)를 통해 더는 의심(疑心)할 수 없을 만큼 분명(分明)하게 드러난다. (롬 3:25, 26; 롬 5:8 참조). 궁극적(窮極的)으로 하나님의 이름은 모든 면에서 입증(立證)된다.>


⑴.(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질문(質問)이 진리(眞理)를 일깨워 주는 가장 효과적(效果的)인 수단(手段)이 되는 경우(境遇)들이 종종 있다. 이사야는 이 엄중한 질문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실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셨음을 명백(明白)히 밝히고 있다. 


⑵.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품성(稟性)을 닮은 품성을 계발(啓發)하는 데 필요한 모든 편의(便宜)를 그들에게 제공(提供)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실패(失敗)한 것에 대하여 자신들 외(外)에는 누구도 원망(怨望)해서는 안 되었다.


⑶.이사야는 계속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自處)하는 유다와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向)한 그의 말을 이어 나간다(참조 이사야 1:1; 2:1; 3:1; 4:3, 4). 포도원(葡萄園)에 관한 노래는 끝이 났고 이제는 그 노래에서 “사랑하는 자(者)”로 칭(稱)함을 받은 여호와께서 선지자(先知者)를 통하여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신다..


⑷.하나님은 시온에게 그 자신에 대한 판결(判決)을 스스로 내리라고 요구하신다. (참조 마 21:40, 41). 하나님이 다시 한번 그의 백성에게 자신과 변론(辯論)하기를 요구하신다. (참조 사 1:18). 여호와의 주장(主張)은 매우 타당(妥當)한 것이다. 만일 사실을 직시(直視)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그분의 공의(公義)로우심과 자신들의 죄(罪) 됨을 인정(認定)하게 될 것이다.


⑸.질문(質問)이 진리(眞理)를 일깨워 주는 가장 효과적(效果的)인 수단(手段)이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이사야는 이 엄중(嚴重)한 질문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실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셨음을 명백(明白)히 밝히고 있다. 


⑹.하나님은 그 자신의 품성(稟性)을 닮은 품성(稟性)을 계발(啓發)하는 데 필요한 모든 편의(便宜)를 그들에게 제공(提供)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실패(失敗)한 것에 대하여 자신들 외에는 누구도 원망(怨望)해서는 안 되었다.


⑺.(로마서 3장)과 (이사야 5장)에서 우리가 그렇게 할 권리(權利)나 자격(資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한낱 피조물(被造物)에 불과(不過)한 우리에게 어떤 제한(制限)된 의미(意味)에서라도 그분의 성품(性稟)을 판단(判斷)하도록 허락(許諾)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⑻.결국, 모든 “책(冊)들”이 열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완전(完全)하게 공의(公義)롭고 의(義)로우시다는 증거(證據)를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지적(知的)인 피조물(被造物) 앞에서 자신을 증명(證明)하실 것이다.


⑼.사람의 구원(救援)을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행위(行爲)는 사람들이 하늘에 접근(接近)하는 일을 가능(可能)하게 할 뿐 아니라, 사탄의 반역(叛逆)을 처리하심에 있어서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이 정당(正當)하심을 온 우주(宇宙) 앞에 옹호(擁護)할 것이었다.


⑽.심판(審判) 때에 구속(救贖)받은 자(者)들은 하나님의 행사(行事)와 심판(審判)이 언제나 완전히 의(義)롭고 사랑으로 행(行)하셨음을 확인(確認)할 것이며 그분에 대한 모든 질문(質問)의 답(答)을 얻을 것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