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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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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8-11 17:29 조회4,5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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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15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25분)

제7과 하나님의 자녀(子女)로 살아감

<기억절(記憶節)>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子女)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世上)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

(깨닫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분과 같이 되라는 요청(要請)을 받고 있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행하기) 죄의 유혹(誘惑)을 물리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反應)한다.

<요점(要點)>
하나님께서는 아낌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셔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죄에 대한 승리(勝利)를 보장(保障)해 주셨다.

<핵심(核心) 토의(討議)>
1.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 우리는 어떤 면에서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원해야 하는가?
3. 요한은 죄를 어떻게 정의했는가?
4. 예수께서는 초림시(初臨時)에 죄(罪)에 대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5. “하나님께 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일 3:9)라는 요한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일(日) (8월 9일)
<하나님의 자녀(子女)들(요일 3:1)>

◉ 파출부(派出婦)나 식모(食母)가 집안에서 냉장고(冷藏庫)의 문(門)을 열고 닫을 때와,
집안에서의 가재도구(家財道具)를 다루는 경우와,
철없는 주인집의 자녀(子女)들이 냉장고(冷藏庫)의 문을 열거나 닫거나,
가재도구(家財道具)를 다루는 것은 분명한 차이(差異)가 있다.
파출부(派出婦)나 식모(食母)는 냉장고의 문을 열거나 닫거나 간에 자신의 먹을 것이나,
자유스러운 마음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주인집의 자녀(子女)들은 아무렇게나 시(時)도 때도 없이 냉장고의 문을 열거나 닫거나,
또는 집안을 마구 어지러트려도 그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부자유(不自由)스러울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집이기 때문이다. 즉 주인(主人)이 나의 부모님(父母任)이기 때문이다.
똑 같이 한 집안에 머물고는 있지만 주인집의 자녀와 파출부 나,식모의 차이는 확연히 다르다.

◉ 자녀(子女)란 자신(自身)을 이 땅에 태어나게 낳아준 분이 계실 때 누구의 자녀라 한다.
또한 자녀는 직접 낳아준 분도 부모님이시지만, 양자(養子)를 삼아서도 그의 자녀가 되며 똑같은 효력이 있다.
요한은 요일 3:1절에서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영적(靈的)인 탄생(誕生)을 강조하고 있으며,
요한복음 1:12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은,
그분을 영접(迎接)하고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녀가 되는 특권(特權)은 무엇일까?
그 분들의 모든 상속권(相續權)을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특권이 있다.
철부지 일 때는 모든 책임(責任)까지도 다 그분(부모님)들이 책임을 져 주신다.
하물며 천지만물(天地萬物)을 창조하신분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실로 감당하며 말로 다 표현키 어렵다.
하나님께서는 무한(無限)한 사랑으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다.
우리는 하나님께 로서 난 사람 곧 하나님의 자녀답게 생활해야 하는 책임(責任)이 수반(隨伴)된다.

◉ <인류(人類)를 위(爲)해 독생자(獨生子)를 주신 사랑>
“사단은 하나님의 인자(仁慈)하심이 인간을 회개(悔改)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멸망(滅亡) 받을 인류를 구원(救援)하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獨生子)를 주시기까지 한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이 깨닫지 못하게 하리라고 굳게 결심(決心)하였다. 아, 우리가 어떻게 깊고도 고귀(高貴)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성공적(成功的)으로 제시(提示)할 수 있을까?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라고 외치는 것 외에 우리가 달리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길이 없다.”(가려 뽑은 기별, 1권, 384)

◉ 죄로 인해 타락한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너무나 기쁜 소식이다. 그 놀라운 약속(約束)을 굳게 붙들자.

월(月) (8월 10일)
<결과(結果)와 의무(義務)(요일 3:2~3)>

◉ 자녀가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떠하냐는 자녀들의 처신여하에 달려있다.
즉 학생인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부모님의 이름에 빛을 발(發)하며, 자녀가 인류와 국가에 크게 기여 한다면 그의 부모님에 대하여 기쁨과 부모님들의 이름이 빛나는 것처럼, 좋은 자녀가 된다는 것은 그 만큼 본연의 신성한 의무가 따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그분의 품성(稟性)을 닮는 것을 목표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은 곧 무아(無我)적인 사랑이다.
죄로 인하여 멸망(滅亡)으로부터 구원(救援) 받은 사람이라면, 희생(犧牲)제물(祭物)로 죽기까지 하신 그분의 사랑에 이제는 자신이 사랑으로 반응할 때이지 않겠는가?
즐겨 자원(自願)하는 모든 일에는 즐거움이 따르고 사랑이 따르기 마련이다.
권리(權利)를 주장(主張)하기 전에는 반듯이 의무(義務)가 따른다.
사단은 하나님과 같은 권세(權勢)를 가지고,
모든 피조물(被造物)들에게 경배(敬拜)받기를 원하는 품성을 갖고 있다.
◉ 사단은 하나님과 같은 권세(權勢)를 갖기 원(願)했으며, 그분과 같이 피조물(被造物)들의 경배(敬拜) 받기를 원했으나, 그분과 같은 품성(稟性) 갖기를 원치는 않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追求)해야 하는 것은 그분을 닮은 사랑의 품성(稟性)을 소유(所有)하는 것이다.

◉ <하나님을 닮은 품성(稟性)을 계발(啓發)함>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정신 기능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게 하시려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존재의 창조주시요, 우리의 구속주이시기도 하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품성과 아주 닮은 품성을 계발할 것이다. 하나님의 모습을 갖고 있는 사람 외에는 거룩한 하늘에 하나님과 함께 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속량함을 입을 사람들은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고상하고, 순결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재림교 성경주석, 6권, 1105)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품성(稟性)을 닮는 것을 목표(目標)로 삼아야 한다.
그분의 자녀인 우리가 그분의 품성(稟性)을 닮아가는 것은 하나의 의무(義務)이다.

화(火) (8월 11일)
<죄(罪)의 정의(定義) (요일 3:4)>

◉성경(聖經)의
▶ 구약(舊約)에서
죄(罪)를 '하타드'(표적(標的)을 맞추지 못함),
'아웰' 혹은 '아온'(지정(指定)된 길에서 이탈(離脫)),
'페사' (정당(正堂)한 권위(權威)에 도전(挑戰)),
'아삼' 혹은 '마알'(신실(信實)되지 않음, 반역(叛逆)),
'아웬'(공허(空虛)),
'아와'(곡해(曲解))를 사용(使用)하여 표기(標旗)하고,

▶ 신약(新約)은 '
하말티아'(표적(標的)에서 빗나감),
'아디키아'(부정(否定)),
'파라바시스'(곁길로 감),
'파랖토마'(실족(失足)),
'아노미아'(불법(不法)),
'파라노미아'(불법(不法))등을 사용하여 죄(罪)의 성격(性格)을 암시(暗示)하고 있다.
이 용어(用語)들을 추적(追跡)할 때 우리는 죄(罪)가 하나님께 대한 것(롬8:7)이며,
구체적(具體的)으로 하나님의 율법(律法)에서 벗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요일3:4;5:7).

▶ 죄의 성격(性格)
죄의 자리는 마음이다.
마음이란 지(知).정(情).의(意) 전 인격을 가리킨다.
따라서 전인(全人)에게 영향(影向)을 미친다. (마15:19).
죄는 외형적(外形的) 행위(行爲)만은 아니다.
외부적(外部的) 행동과 더불어 악(惡)한 생각이나 성향(性向) 역시(亦是) 죄이다(마5:22,28;갈5:24).
선(善)하신 하나님(요일3:5;벧전2:22)은 죄를 창조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하신다(고후5:21).
그러나 현상세계에 죄는 존재(存在)한다.

◉ 죄(罪)의 정의(定義)
① 불신(不信)이다. 롬 14:23, (창2:17)
② 불선(不善)이다. 약 4:17 (창4:7)
③ 불의(不義)이다. 요일 5:17 (약2:12)
④ 불법(不法)이다. 요일 3:4
요일3:6 그 안에 거(居)하는 자(者)마다 범죄(犯罪)치 아니한다.
고후 11:14 사단도 광명(光明)의 천사(天使)로 가장(假裝)하나니

◉ 죄는 어떻게 정의(定義)해야 하는가?
죄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것 즉 불법을 지칭(指稱)하며 (요한일서 3:4)
하나님께 대한 반역(叛逆)을 말합니다. (신명기 9:7; 여호수아 1:18).
죄는 "아침의 아들 계명성”인 천사(天使)부터 시작되었는데 천사(天使)는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천사였다.
그러나 천사(天使)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가장 높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타락(墮落)하게 되었고 이로 죄가 시작되었다. (이사야 14:12-15).
사탄으로 다시 이름 지어진 천사(天使)는 에덴동산에 있는 인류에게 죄를 끌고 들어갔다.
여기서 아담과 하와는 천사(天使)가 받은 같은 유혹(誘惑) 즉 ‘너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라는 유혹(誘惑)에 빠지게 됩니다. 창세기 3장은 하나님과 그의 명령에 대한 반역(叛逆)을 묘사(描寫)합니다.
그 이후로 죄는 인류의 모든 세대를 통하여 전달되었고 우리는 아담의 자손으로서 그에게 이 죄를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12를 보면 아담을 통하여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으며 죽음이 모든 자에게 임(臨)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는 “죄의 삯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23).

◉ 요한이 그의 서신들에서 거짓 가르침에 대해 반대했던 까닭은, 그 가르침이 구원(救援)의 현재적 축복은 강조하지만 순결한 삶을 사는 것은 소홀히 했기 때문이었다. 거짓 교사들은 죄의 문제나 그 결과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요한은 우리의 미래는 지금의 삶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음을 강조했다. 이것은 행위로 말미암는 의와는 관계가 없다. 우리는 오로지 은혜로 구원 받으며,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 속에서 풍겨나야 한다. 그래서 요한은 그리스도인들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자신을 정결케 하라고 호소하고 있다.

◉ 죄(罪)는 하나님께 대한 배반(背叛)과 반역(叛逆), 불신(不信), 불의(不義) 등을 가리키며 불법(不法), 불의(不義), 사악(邪惡)함, 죄악적(罪惡的) 본성(本性) 등을 말하기도 한다. 특히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書信)에서,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不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不法)이라”(요일 3:4)고 지적(指摘)하고 있다.

◉ 성경에서 죄는 표적에서 빗나가는 것, 거짓, 하나님의 진리의 표준을 고의로 범하는 것, 반역, 사악함, 불순종, 범죄, 불법, 불의 등으로 묘사되어 있다.

◉ <죄에 대한 유일(唯一)한 정의(定義)>
“죄는 불법이다. 이것이 죄에 대한 유일한 정의이다. 율법이 없으면 범(犯)함도 있을 수 없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롬 3:20). 의의 표준은 아주 광범위(廣範圍)한 것이요,
모든 악한 것들을 금(禁)하는 것이다.” (재림교 성경주석(영), 7권, 951)

◉ 요한은 죄를 불법(不法)이라고 정의(定義)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었으므로 그 은혜를 가치 있게 여기고,
죄와 상관없는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수(水) (8월 12일)
<예수님의 나타나심 (요일 3:5, 8)>

◉ 예수님(Jesus)
갈 4:4 (때가 차 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 사 여자(女子)에게 나게 하셨다)
[1] 예수그리스도의 신분(身分)
⑴ 태초(太初)부터 존재(存在)하신 분이시다. (요 1:1. 미 5:2) 유 1:24-25) 계 3:14
⑵ 성부(聖父)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시다. (요 1:1)
⑶ 하나님 이신 분이시다. (요 1:1. 빌 2:6) 골 1:14.―17. 고후 4:4
⑷ 창조주(創造主) 이신 분이시다 (요 1:3) 골 1:14-17
[2] 예수님이 세상(世上)에 오신 목적(目的)
⑴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요 1:18. 14:8-9)
3년 반(半) 동안 하신일 = 행 10:38. 눅 4:18. 마 11:5.
⑵ 우리들의 죄(罪)의 댓가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하여
(벧전 2:24. 갈 1:4. 사 53:5-6) (요 1:29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⑶ 우리를 영원(永遠)한 사망(死亡)에서 구원(救援)해 주시기 위하여
(눅 19:10. 요 3:17. 롬 6:23) (롬 3:10 하나님 앞 에서 의인(義人)은 하나도 없다)
⑷ 우리에게 생애(生涯)의 모본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요 13:15. 벧전 2:21)
⑸ 화목(和睦)케 되기 위하여
(골 1:20-23)

※ 예수님은 왜 어떻게 이 세상에 오셨는가? (요일 4:14-15)
[3] 예수님의 지상봉사(地上奉仕)
⑴ 가르치는 일이 엇다 (마 4:23)
⑵ 전파(傳播)하는 일이 엇다. (마 4:23)
(롬 10:14 전파 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오)
⑶ 치료(治療)하는 일이 엇다 (마 4:23-24)
(모든 병(病)과 모든 약(弱)한 것을 고치시니.)

[4] 예수그리스도의 죽음
⑴ 그리스도의 죽음은 대리적인 죽음이다.
(갈 1:4. 고전 15:3. 고후 5:14-15)
(그는 죄 없는 분이 시다 벧전 2:22. 히 4:15)
(우리 죄(罪)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고전 15:3)
( 그 에게 담당 시키셨다. 사 53:5-6)

⑵ 그리스도의 죽음은 속죄(贖罪)의 죽음이다.
(마 20:28. 벧전 1:18-19)
(국가적(國家的)인 속죄(贖罪)제(祭)를 하나님께 바쳤다 (레 6:2-7) 레 4:13-20)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마 20:28)

⑶ 그리스도의 죽음은 화목제물(和睦祭物)로써의 죽음이다.
(롬 5:10. 3:25. 요일 2:2.) (고후 5:18-19)
※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 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救援)을 얻으리라 (행 16:31).

◉ 예수님의 탄생(誕生)에 관한 예언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스스로 성육신(成肉身) 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만이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씨로 이 땅에 오실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잉태(孕胎)하셨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750년 전에, 오실 메시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徵兆)로 너희에게 주신 것이라.
보라 처녀(處女)가 잉태(孕胎)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virgin'(헬라어로 '파르테노스')으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 알마(almah)는 일반적으로 '결혼(結婚)하지 않은 젊은 여인(unmarried young woman)'을 의미(意味)합니다.
처녀(處女)가 잉태(孕胎)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아이의 이름을 임마누엘(God with us,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메시아 예언(Messianic prophecy)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한편, 성령으로 잉태되어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에 관한 최초의 예언은 이미 창세기 3:15에 있습니다.
그것은 이사야 7:14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예언(豫言)임을 보여줍니다.

내가 너(사단)로 여자의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 3:15)

사단이 예수 (her seed)를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을 것이지만, 그 때문에 결국에는 치명타를 당할 것임을 암시한 내용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나 히브리 어느 문학서에서도 여자의 씨 ('her seed')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잉태케 하는 씨는 남자의 정자('his seed', 'the sperm of a man')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씨로부터 초자연적으로 탄생할 메시야에 대한 선포는 그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 전례가 없는 아주 특별한 표현 방식 이었습니다.

◉ 다음 구절들은 예수님의 초림(初臨)과 성육신(成肉身)의 의미(意味)에 대해 (요일 1:2, 3:5, 8)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요일 1:2) 예수께서는 우리 죄를 제하시고(요일 3:5)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요일 3:8) 이 땅에 초림(初臨)하셨다.

◉ 예수께서 초림하신 목적 중 하나는 우리 죄를 제하기 위함이었는데,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세상 죄를 친히 짊어지심으로 그 일을 이루셨다.

요한일서의 적(敵)그리스도들은, 어리석게도 십자가와 우리를 대신하신 그분의 대속적(代贖的) 죽음의 진정한 가치를 충분히 깨닫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치르시고 구원의 계획의 기초를 완성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류가 구원 받아 영생의 약속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 사실을 망각한다면 전체 복음의 핵심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 <십자가(十字架)를 통(通)한 매일(每日)의 승리(勝利)>
“이생에서 형성된 품성은 미래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은 어떤 한 사람의 품성도 변화시키지 않으실 것이다. 귀한 유예의 시간이 우리 품성의 옷을 씻고 그것을 어린양의 피로 희게 하여 향상시키도록 주어졌다. 이 죄의 녹을 제거하는 데는 일생의 노력이 요구된다. 매일 자아를 억제하고 부인하는 데는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매일 싸워야 할 전쟁과 얻어야 할 승리가 있다. 매일 영혼은 십자가의 힘 있는 승리를 위해 하나님께 열렬히 간구하도록 강권함을 받아야 한다.”(교회증언, 4권, 429)

◉ 예수께서 초림하신 것은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모든 죄의 값을 치르시고 그들에게 구원과 영생의 소망을 안겨 주시기 위함이었다.

목(木) (8월 13일)
<죄(罪)를 짓지 아니함!(요일 3:6, 9)>

◉ 빛과 어두움 중에 어느 것이 이길까?
아무리 어두움과 흑암(黑暗)이 그 농도(濃度)가 짙다 해도 그 어두움은 아주 작은 불씨에게도 견뎌내지 못한다.
즉 아무리 어두워도 빛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는 못이길 어두움이 없다.
죄는 어두움의 대명사이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어두움에 거(居)하다는 반증(反證)이다.
그러므로 빛에 속해있기만 하면 어두움은 사라질 것이다.
요한은 요일 3:6절에서 빛 되시는 분에게 거(居)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다.
요한은 (요일 2:23, 요일 3:4, 9, 15: 요일 4:15; 요일 5:1)에서 또 다른 포괄적 진술을 하고 있다.
거(居)하는 이라는 단어(單語)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기꺼이 머무르고자 하는 적극적(積極的)의향(意向)을 제시(提示)할 것이다. 헬라어의 동사(動詞)형태는 계속(繼續)성(거하기를 계속하는 자)을 암시(暗示)한다.
헬라어 동사 형태가 암시하는 바로는 "범죄(犯罪)하기를 계속하지 아니하나니"또는 "상습적(常習的)으로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이다.
요한은 이곳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범하기 쉬운 이따 금씩의 실수(참조 요일2:1)가 아니라.
상습적인 범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요한은 그리스도인들도 죄의 꾐을 받음을 알고 있으나 (요일 1:8, 10절)
그는 또한 그러한 실패에 대한 구제책(救濟策)도 안다. (요일 1:9; 2:1) 이곳에서 요한은 죄 없는 구주(救主)의 보호(保護)하시는 임재(臨在)안에 끊임없이 거(居)하는 자가 도달(到達)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상태에 대해 말하고 있다.

◉ “그(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라고 한 요한일서 3:6의 말씀은
요한일서 1:6~2:2의 말씀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가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첫째 “죄를 범(犯)치 안”은 것이요(요일 2:1),
둘째는 “죄 사(赦)함” 받는 것이다.(요일 1:9, 2:2)

◉ <죄(罪)를 이기는 삶>
“'하나님께 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일 3:9).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되고, 하나님의 소유인 몸과 정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가장 엄숙한 서약에 매여 있음을 느낀다. 죄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아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의 속에서 정복된다. 그는 날마다 이렇게 물어 본다. '여호와여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 '주여, 나로 무엇을 하게 하시려나이까?'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멍에가 목을 괴롭히고 있다고 결코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 가장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한다.”(교회증언, 5권, 220)

◉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과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은 계속해서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죄를 떠나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하나님의 요구(要求) 중 하나쯤은 고의적(故意的)으로 범해도 거룩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속지 말라. 죄인 줄 알면서 범하게 되면 깨우쳐 주는 성령의 음성을 침묵케 하고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가게 한다. … 요한은 그의 편지서(便紙書)들을 통해 사랑을 충분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생애를 살면서도 거룩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부류의 사람들의 참 모습을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성결에서 참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증거가 된다.”(각 시대의 대쟁투, 472-473)



<초점(焦點)>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기쁜 소식(消息)이며 특권(特權)이다.
거룩하시며 사랑의 실체(實體)가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에 걸 맞는 의무(義務)에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품성(稟性)을 닮는 것은 목표(目標)이며 의무(義務)로 삼아야 하며,
빛으로 오신 예수님안에 거(居)할 때만이 죄를 이기는 삶이되며,
빛 되시는 분 안에 거(居)할 때에 죄를 극복(克復)할 수 가 있다.

<더위에 예수님안에서 평안을 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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