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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빛 가운데 행함- 적 그리스도들을 거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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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8-04 15:30 조회4,4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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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8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33분)

<제6과 빛 가운데 행함 : 적(敵)그리스도들을 거절(拒絶)함>

◉ <기억절(記憶節)>
“아들을 부인(否認)하는 자(者)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是認)하는 자(者)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요일 2:23)

(깨닫기) 그리스도 안에 거(居)하는 삶과 적(敵)그리스도를 인식(認識)하는 삶이 무엇인지 이해(理解)한다.
(느끼기) 그리스도의 능력(能力)에 의지(依支)해야 할 긴박(緊迫)한 필요성(必要性)을 느낀다.
(행하기) 적(敵)그리스도의 세력(勢力)과 맞서 대항(對抗)한다.

◉ <요점(要點)>
요한의 경고가 주어진 지 어느덧 약 2천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적(敵)그리스도들에 의한 위험은 여전히 존재한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유일한 비결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 <핵심(核心) - 토의주제(討議主題)>
1. 마지막 때"(요일 2:18)란 무엇인가?
▶ '마지막 때'라는 표현(表現)은 예수님의 초림(初臨)과 재림(再臨)사이에 있는 기간(期間)을 가리키는 '마지막 날들'과 같은 의미(意味)로 사용(使用)되었다.
2. 요한은 독자(讀者)들에게 어떤 위험(危險)을 경고(警告)하고 있는가?
▶ 그는 부지런히 경계(警戒)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强調)하기 원(願)했는데,
그 까닭은 예수께서 경고(警告)하셨듯이 거짓 교사들이 세상(世上)에 많이 있기 때문이었다.
3. 적(敵)그리스도와 적(敵)그리스도들은 어떻게 다른가?
▶ 요한일서 2:18에서 요한은 적(敵)그리스도를 각각 복수(複數)와 단수(單數)로 사용하였다.
많은 적(敵)그리스도들이 이미 나타났고, 그 특정한 적(敵)그리스도는 장차 올 것으로 예상(豫想)되었다.
요한은 많은 사람들을 적(敵)그리스도들로 칭(稱)하면서 하나의 특정한 적(敵)그리스도의 개념을 포기하였는가?
그렇지 않다! 요한일서 4:3에서 그는 적(敵)그리스도의 영(靈)에 관하여 말했는데,
이 사람들은 적(敵)그리스도의 정신(情神)을 나타냈을지라도 진짜 적(敵)그리스도는 장차 올 것이었다.
1) 적(敵) 그리스도는
① 그리스도를 대적(對敵)하는 자이며,
②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 그리스도인체 하는 자이다.
2) 적(敵) 그리스도들은
①그리스도의 본성(本性)(신성(神性) 및 인성(人性))에 대한 왜곡(歪曲)을 통해 그리스도를 부인(否認)하게 하는 것이다.
※ 적(敵)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그의 속임수에 넘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적(敵) 그리스도>
☞ 성경에서 적(敵)그리스도는 여러 이름으로 나타나며 또한 기술(記述)되어 있다.
① 멸망(滅亡)의 아들, ② 불법(不法)의 사람, ③ 짐승, ④ 작은 뿔, ⑤ 666, ⑥ 기 타.
☞ 적(敵)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1. 하나님의 율법(律法)은 폐(廢)하였다.
2. 계명(誡命)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制限)한다.
3. 계명(誡命)을 다 지키기는 불가능(不可能)하다.
4. 그리고 모든 믿는 사람들은 법(法)으로부터 자유(自由)롭다.
5. 말로 지극(至極)히 높으신 자를 대적(對敵)하며, (단 7:25)
6. 하나님의 법(法)과 때(시간(時間))을 변개(變改)한다.
(십계명(법)의 두 번째 계명을 삭제(削除)하고, 안식일(安息日)(시간)을 일요일로 변개(變改)함. (단 7:25)
7. 성도(聖徒)를 괴롭게 할 것이며, (단7:25)

◉ 모든 율법(律法)은
(히브리어로 지칭(指稱), 방향(方向), 교훈(敎訓)을 의미(意味))하는 것으로, 우리의 행복(幸福)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創造)하시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행복한지를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敬畏)하여 그 모든 도(道)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性稟)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命)하는 여호와의 명령(命令)과 규례(規例)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명기 10:12-13).
율법(律法)과 사랑은 사슬처럼 연결되며 폐(廢)하거나 변경(變更)할 수 없으며, 율법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우리에게 명령(命令)하신 것입니다.

4. 그리스도 안에 거(居)한다는 말의 의미(意味)는 무엇인가?
▶ 성경에는 주님 안에 거(居)하라는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말씀은 구체적(具體的)으로 그분의 사랑 안에 거(居)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그분의 계명(誡命)에 순종(順從)하는 삶을 가리킨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9-10)

5. 그리스도인들은 영(靈)들을 어떻게 시험(試驗)해야 하는가?
▶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는 일이 있을 때 우리는 더욱 깊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리(眞理)를 바르게 아는 것이 이설(異說)에 대한 최선의 방어(防禦)이다.
이설(異說)들에 대한 최선의 방어(防禦)는 진리(眞理)의 지식(知識)을 갖는 것,
특히 예수님에 관(關)한 바른 이해(理解)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 죄(罪)가 무엇입니까?
성경에 의하면, 죄(罪)는 불법행위(不法行爲)입니다.
죄는 단순히 사회의 도덕적(道德的) 기준(基準)을 어긴 것을 가리키지 않고,
그 근본적(根本的) 의미(意味)는 거룩하신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의 명령(命令)을 어긴 것을 뜻합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리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집니까?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居)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 할지니라". (요일 2:4-6)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생활과 행위의 지침(指針)으로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일(日) (8월 2일)
<”마지막 때” (요일 2:18)>

◉ 시작(始作)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달리기를 아주 잘하는 사람은 결승점(決勝點)에서 그 결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고사 성어(故事成語)에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이 있다.
즉 시작(始作)은 거창(巨創)하게 용(龍)머리처럼 시작하지만,
끝의 결과는 뱀 꼬리처럼 미미(微微)하게 끝나는 것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신앙(信仰)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말이다.
침례를 받기 전후(前後)에의 신앙과,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퇴보(退步)하는 경향(傾向)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지 깊이 생각해봅시다.
세상의 모든 징조(徵兆)가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현상(現狀)이 나타나고 있다.

◉ <적(敵)그리스도가 무엇을 의미(意味)하는지 알아야 함(단 12:13; 계 14:6-12)>
“말씀의 깨달음에 혼란이 있는 사람들, 적(敵) 그리스도의 의미(意味)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적(敵) 그리스도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 이 마지막 때에 이 예언들이 성취됨으로 말미암아 예언자체를 설명할 것이다.
세상의 죄악 때문에 주께서는 이제 곧 세상을 징벌하려고 하신다. 그는 또 각 종교 단체들이 그들에게 주신 빛과 진리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들을 곧 징벌(懲罰)하려 하고 계신다. 첫째와 둘째 그리고 셋째 천사의 기별을 연합한 큰 기별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일에서 주된 임무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드러내어 놓고 따를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표징이다(겔 20:12, 20). 우리는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따른다는 것을 가시화(可視化)시켜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과 세상을 구별(區別)짓는 표가 되어야 한다(원고 10, 1900). (화잇주석, 요일 2:18)

◉ 사단의 주목(注目)
거의 6천 년간에 걸쳐 계속되어 온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 쟁투는 미구(未久)에 끝나게 된다.
그러므로 악(惡)한 자는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업을 실패(失敗)로 돌아가게 하고 사람들을 그의 사슬에 굳게 매어 두기 위하여 노력을 배가(倍加)하고 있다. 구주(救主)의 중보 사업이 끝나고 죄를 위한 희생제물(犧牲祭物)이 더 이상 효력(效力)을 나타내지 않게 될 때까지 사람들을 암흑(暗黑)과 완고(頑固)한 상태에 붙들어두는 것이 그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目的)이다. (각 시대의 대 쟁투(영) 517)

사단은 자기의 권세를 거절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없을 때, 세상과 교회에 냉담한 상태가 팽배해 있을 때 별반 주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와 같은 상태에 있을 때에는 그들을 자기 손에서 잃어버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영원한 사물을 생각하고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救援)을 얻으리이까.”라고 부르짖을 때에는 사단이 벌써 와서 그리스도의 권세와 다투고 성령의 감화를 소멸(消滅)시키고자 노력한다.
(각 시대의 대 쟁투(영) 517)

◉ <인간의 이성(理性) 대 하나님의 지혜(智慧) (골 2:8; 딤전 6:20)>
“인간의 이성을 높이고, 인간의 지혜를 우상(偶像)화시키고 사람들의 의견을 계시된 하나님의 지혜보다 우위에 놓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사단이 일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적(敵) 그리스도의 영(靈)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처세훈들이 교회의 공론(公論)들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거짓되이. 일컫는 헛된 철학과 과학이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가치가 있다. 인간의 구원에 거룩한 중보자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널리 확산되어 가고 있다. 사람들은 소위 세상에서 현명하다는 사람들이 창조해 낸 여러 가지 이론들을 그리스도와 그의 사자들이 가르치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보다 더 믿고 의지한다.(리뷰 1892. 11. 8).”

오늘날 이 땅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에덴에서 하와를 미혹(迷惑)한 거짓을 말하는 영(靈)을 받아들인다.
심지어 기독교에서까지도 회개(悔改)케 하시는 하나님의 영(靈)을 거절(拒絶)하고 흑암의 왕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는 마치 빛의 천사(天使)같이 옷 입고 그들에게 접근(接近)한다.
적(敵) 그리스도의 영(靈)은 그전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광범위하게 세상에 확산되어 가고 있다.
시험의 날, 정결케 하시는 날이 바로 우리 앞에 와 있다. 깜짝 놀랄만한 징조(徵兆)들, 큰 태풍(颱風)과 무서운 선풍(颴風)들, 폭우(暴雨)들, 육지나 바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재난(災難)들이 나타난다.
이것들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포고(布告)한다. 사람들을 일깨우사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審判)이 세상에 내리고 있다. (리뷰 1892. 11. 8).”(화잇주석, 요일 2:18)

요한일서 2장의 말미에서 요한은 교인들에게 문제를 일으켰던 '무리' 혹은 '무리들'에 관해 매우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활동을 통해 그는 '마지막 때'가 왔다고 인식하였다.

▶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신 때로부터 말세가 시작되었다고 믿었다.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의 초림으로부터 재림에 이르는 기간은 마지막 때 혹은 말세라 할 수 있다.

◉ 요한이 그의 서신에서 말한 '마지막 때'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을 가리킨다.
그 기간은 이미 2천 년이 흘렀고, 그 끝에 가까이 이르렀다.

◉ “소위 그리스도교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단순한 가르침에서 떠나서 사람의 이론과 재미있는 우화(寓話)로 신경을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그 탑이 하늘에 올라가는 길이라고 가리킨다. 범법자(犯法者)는 죽지 않을 것이요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순종(順從)하지 않고도 구원(救援)이 확보될 수 있다고 가르치며 능변(能辯)을 토(吐)하는 입술에 사람들은 경탄(敬歎)하면서 집착(執着)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표준을 받아들인다면, 그들 가운데 연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가 그분의 거룩한 말씀 위에 높임을 받는 한, 분열과 분쟁이 있을 것이다. 상이한 신조와 교파로 이루어진 작금의 혼란은 “바벨론” 이라는 말로 적절히 표현되어 있는데 예언은 그 용어를 세상을 사랑하는 마지막 때 교회들에게 적용한다(계 14:8, 18:2).”(부조, 124)

◉ “주님께서는 우리가 마지막 사업에 들어갈 때 과거의 역사가 되풀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 이 마지막 때를 위하여 주신 모든 진리가 세상에 선포되어야 한다.
그분께서 세우신 모든 기둥은 튼튼해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기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1905년, Note­book Leaflets, “The Church”, No. 1.”(2보감, 363)

◉ “주께서는 이 마지막 때 영원한 진리의 토대에 우리가 서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우리가 알기 바라신다. 우리 모두는 교회와 함께 이 토대(土臺)위에 서기로 결심(決心)해야 한다.”(1설교, 340)

◉ “우리는 그분이 권세(權勢)와 큰 영광(榮光)으로 오실 때 주 예수님을 보기를 원한다. 마지막 때까지 우리는 모든 시련(試鍊)에서 승리(勝利)하기를 원(願)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寶座)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寶座)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선언(宣言)하시기 때문이다.”(2설교, 221)

월(月) (8월 3일)
<적(敵) 그리스도들의 출현(出現) (요일 2:18~19, 22~23)>

◉ 적(敵) 그리스도라는 용어(用語)는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에서만 나오는 용어(用語)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자리를 취(取)하거나 그분을 대적(對敵)하는 존재(存在)를 지칭(指稱)하는 용어(用語)이다.
덧붙여 말한다면,
거짓 그리스도, 가짜 그리스도, 안티그리스도등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對敵)하거나,
반대(反對)하는 세력(勢力)이나 사람들을 총칭(總稱)하는 말이다.

☞ 진짜가 있으면 꼭 가짜가 있기 마련이다.
기름(油)도 가짜가 있어서 참 기름→ 순 참기름 → 순 진짜 참기름
아이로니컬하게도 심지어 교회도 순 복음이라는 교회가 있다.
근간에는 자칭(自稱)예수가 참으로 많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을 혼란(混亂)하게 미혹(迷惑)하고 있다.

★ 진정한 의미에서는 참되신 하나님을 대신(代身)하는 것은 무엇이나 적(敵)그리스도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순도(純度)를 말할 때 예수님을 100으로 기준으로 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에 몇%의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과 동행(同行)을 하며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한 줄도 펼치지는 못해도 매일의 바보상자인 TV는 몇 시간씩 쳐다보며, 또한 컴퓨터 앞에서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 우리의 현주소의 삶이 아닐 런지.
자녀 교육과 재물축적에 명예선양에 동분서주 하면서 예수님을 3일 동안 잃어버리는 경험이 혹시 이 여름한철에 발생하지는 않을 런지? 우리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세상적인 사물을 모시는 일이 없어야 되겠습니다.

◉ 적(敵)그리스도라는 용어(用語)는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에만 나온다.
적(敵)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자리를 취(取)하거나 그분을 대적(對敵)하는 존재(存在)이다.
A). 적(敵)그리스도는
단수(單數)로 ① 그리스도를 대적(對敵)하는 자(者)이며
②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 그리스도인 것처럼 하는 자이다.
B). 적(敵)그리스도(들)는
복수(複數)로 ① 그리스도를 대적(對敵)하는 대표적(代表的)인 방법(方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本性)(신성(神性) 및 인성(人性))에 대하여 왜곡(歪曲)하는 자들로(복수(複數)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否認)하게 하는 자들을 적(敵)그리스도들이라고 한다.

◉ 적(敵)그리스도에 대해 알아야 함
“말씀의 깨달음에 혼란이 있는 사람들, 적(敵)그리스도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적(敵)그리스도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들이 세상과 동화될 시간이 없다. 다니엘과 같이 자기 운명의 시간과 장소에 서 있다. 다니엘과 요한의 예언들을 깨달아야 한다. 이 책들은 서로를 해석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다 깨달아야 할 진리들을 세상에 주고 있다. 이 예언들은 세상에 증거되어야 한다. 이 마지막 때에 이 예언들이 성취됨으로 말미암아 예언 자체를 설명할 것이다.”(재림교 성경주석, 7권, 949)

▶ 그리스도의 본성을 곡해하기 위해 그릇된 이설을 퍼뜨리는 자들을 사도 요한은 적(敵)그리스도들이라 하였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敵)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3)

◉ 적(敵) 그리스도가 단수로 쓰일 때는 장차 나타나 그리스도를 대적할 자를 가리키지만 복수로 사용될 때는 교회를 떠나 거짓된 교리를 퍼뜨리는 자들을 가리킨다.

화(火) (8월 4일)
<영(靈)들을 시험(試驗)함 (요일 4:1~6)>

◉ 얼마 전에 어느 집회(集會)에서 어느 목사님께서 좋은 예화(例話)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에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데 선생님께서 영국의 수세식 변소가 안방 옆에 붙어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를 못했었다고 합니다.
어찌 감히 뒷간(화장실)이 안방 옆에 붙어 있을 수가 있느냐 라는 당시의 문화와 정서가 도무지 영국의 수세식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었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그러나 지금을 그 때의 이야기가 아무 문제도 없을뿐더러 당연한 것으로 이해를 한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결론은 교회의 오랜 신앙생활을 하시는 장로님이 수석장로가 안되었다고 교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사람이나, 또는 교회를 안 나오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으시다는 예화를 들어주심에 한바탕 웃고 지나가긴 하였으나? 우리의 신앙에 혹시 거품은 없는지? 우리의 신앙이 체면과 습관적으로 하는 신앙은 혹시 아닌지?
아니면 장로(長老)나 어느 직분으로 교회에서의 어른 대접에 당연한 권위(權威)를 누리면서 내가 예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거나 소외(疏外)된다고 생각이 들 때 의기소침(意氣銷沈)하지는 않는 신앙인지?
냉정한 의미에서 성령 충만함이 얼마나 내 자신을 예수님과 수직관계가 잘되어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런지?
이 글을 쓰는 내 자신도 날마다 넘어졌다 일어나곤 한답니다.
진정으로 우리의 삶이 매사(每事)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삶이 아니라면
성령(聖靈)의 역사가 아니라 악령(惡靈)의 역사가 우리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진리(眞理)를 철저(徹底)히 탐구(探究)할 것>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도록 부르신다. 이 시대에 적절한 귀중한 빛이 주어졌다. 그것은 우리 앞에 박두한 위기를 알려 주는 성경의 진리이다. 이 빛은 우리로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게 하고 우리가 역설하는 주장들을 가장 철저히 살피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기도와 금식으로 진리의 의미와 주장들을 철저하고 꾸준하게 탐구하기를 바라신다. 신자들은 무엇이 진리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하여 추측과 분명치 않은 견해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교회증언, 5권, 707)

▶ 종종 우리는 한때 신실한 재림교인이었으나 지금은 재림교회를 맹렬히 공격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다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 2:19)
▶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는 일이 있을 때 우리는 더욱 깊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리를 바르게 아는 것이 이설에 대한 최선의 방어이다.

◉ 요한은 영들을 시험하라고 하면서, 이설들에 대한 최선의 방어는 진리의 지식을 갖는 것, 특히 예수님에 관한 바른 이해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수(水) (8월 5일)
<기름 부음 (요일 2:20~21, 27)>

◉ "메시아"(Messiah)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에서 유래(由來)되어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 구약(舊約)에서는 유대인들이 대망(大望)했던 메시야를 가리키며, 신약(新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意味)한다.
기본적으로 "메시야"라는 용어는 기름부음을 받는 의식을 통해 높은 직위에 임명된 사람을 가리킨다.
고대 사회에서는 제사장들과 왕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왕상 19:16; 시 133:2), 그런데 어떤 직분자(職分者)에 대해 기름을 붓는 것은 그에게 높고 신성(神性)한 지위(地位)를 부여(附與)하고 권위(權威)와 위엄(威嚴)과 존경(尊敬)을 보장(保障)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약속(約束)된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임을 분명하게 선포(宣布)하셨다. (요 4:26).
예수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자신의 오심에 대한 완전한 의미를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설명하셨다. (막 10:32-45).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약속된 구원(救援)을 완성하셨다.

◉ 참된 신자들은 기름 부음을 받았는데, 이 기름 부음은 그들 가운데 머물면서 그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참된 기름 부음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고별 담화(요 13~16장)에 나오는 성령에 관한 말씀을 떠올리게 해 준다.
이미 이사야 61:1에는 기름 부음과 성령의 사역이 연결(連結)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름 부음은 곧 성령(聖靈)을 가리킨다.
그러나 또 다른 차원(次元)이 있다. 요한일서 2:24와 27절은 유사(類似)하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居)하게 하라”(요일 2:24)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居)하나니”(요일 2:27)
참된 신자들이 처음부터 들은 것은 예수님의 복음(福音)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요일 2:14)과 진리(요이 1:2)가 그리스도인 속에 거한다.
고린도후서 1:21~22에서 거룩한 기름 부음이 성령의 인(印)치심과 연결되어 있고,
에베소서 1:13에 따르면 진리의 말씀을 들음과 믿음은 성령의 인(印)치심으로 이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기름 부음은 또한 성경을 가리키기도 한다. (교과 책 86p)

적(敵)그리스도의 그릇된 가르침에 대한 해독제는 성령에 의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교리를 검증할 수 있는 객관적 표준이다. 참된 신자들은 성경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 성령님께 의지한다. 성경은 우리의 모든 가르침의 최종적인 권위가 되어야 한다. 신자들이 성경의 권위와 신빙성과 영감성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온갖 종류의 미혹과 오류에 대하여 문을 여는 것이다. 한때 충실한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성경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구절을 발견하고 성경의 신빙성과 영감성에 의심을 품기 시작함으로 믿음을 저버린 이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비록 성경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나 의문을 일으킬 만한 부분을 발견한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성경의 권위를 의심한다면 실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과 책 86p)

◉ <성경(聖經)의 신빙성(信憑性)을 의심(疑心)하는 자들>
“회의론자와 불신자들은 성경의 모든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한다. 그리고 성경을 믿노라고 하는 사람이라 하여도 다 이 점에 있어서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 저들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저희에게 계시하여 주실 때까지 인내하여 기다리기를 원치 않는다. 저들은 성신의 도움을 받지 못한 저희의 인간적 지혜로써 성경을 이해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못되는 때에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게 된다. …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책임을 돌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곡해한 데 책임을 돌릴 것이다.”(정로의 계단, 108)

▶ 성경에서 기름 부음과 성령의 감동을 연결시킨 구절들이 많이 있다.
다음은 그 대표적인 구절들 중 하나이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 되니라.”(삼상 16:13)

◉ 요한이 언급한 기름 부음이란 성령에 의해 이끌림을 받는 것을 가리키며, 성령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믿고 따르는 것을 뜻한다.

목(木) (8월 6일)
<그분 안에 거(居)함(요 5:38)>

◉ 우리는 보호를 뜻하는 의미에서 울타리를 연상(聯想)하게 된다.
그래서 부모님의 슬하(膝下)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에는 의식주(衣食住)를 비롯해서 그 모든 것을 부모님들이 책임(責任)져주시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이나 근심(謹審)을 하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므로 부모님 안에 거(居)한다는 것은 엄밀(嚴密)한 의미에서는 보장(保障)받는 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몰랐다가 자신이 어른이 되어보면 그 모든 깊은 뜻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에 배고프거나 못 마땅한 일이 있으면 칭얼거리거나 울기만 하면 부모님께서 알아서 다 챙겨주셨듯이 부모님 안에 거(居)함이란 참으로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친정집 이라는 말은 생각만 해도 "엔돌핀"이 팍팍 샘솟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천지만물(天地萬物)을 창조(創造)하시고 주관 하시는 분 안에 거(居)한다는 것은 더 바랄 것이 없는 평안(平安)과 행복의 거처(居處)가 아니겠는가?

◉ “거(居)하다”라는 단어는 “머무르다,” “살다,” “거주하다” 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에서 그것은 중요한 개념이다. 이 단어는 요한일서에 25회, 요한이서에 2회 나타난다.
이 개념은 성자(聖子)와 성부(聖父)와 성령(聖靈)안에 거(居)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바른 교리와 말씀 안에 머무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것 또한 중요하다. 요한은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거짓된 견해가 신자들의 믿음에 영향을 미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의 서신에서 이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었다. (교과 책 88p)

그분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들 중 하나는 영생의 약속입니다. 영생의 약속은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만약 우리가 영생의 약속을 받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은 무엇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참조 고전 15:1~19)

의심할 바 없이 요한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 신앙에 중요한 측면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빛 가운데 행하기" 또는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 맺기"를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말씀과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 나타났듯이 우리의 의지를 매일 그분의 뜻에 굴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님께 불순종하자마자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성경의 부분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예수님과의 구원하는 관계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다.
(교과 책 88p)

◉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居)함 >
“가지를 무성하게 해주는 생명의 수액을 얻기 위하여 그것이 줄기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모든 말씀을 지키는 자들도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한다. 그리스도 없이 우리는 하나의 죄도 제어하지 못하며, 가장 미약한 유혹도 이기지 못한다.”(증언보감, 1권, 514)

▶ 성경에는 주님 안에 거하라는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말씀은 구체적으로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가리킨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9-10)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허무하고 불쌍한 존재가 되었겠는가? 영생의 소망을 인하여 감사드리자.
◉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 신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인데, 이것은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요, 주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 요한일서 2:29이 거짓 교사들에 관한 이 논의에 있어서 왜 그렇게도 중요한가 하는 의문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에 관한 그릇된 가르침은 반드시 잘못된 생활 방식으로 이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의 교리 중 하나를 공격하면 다른 것에도 의문을 품게 되고, 조만간 그 영향은 이론적인 차원을 넘어 실생활의 문제로 확대된다. 그 사람은 더 이상 의로운 삶을 살지 않게 되며, 비참한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러한 하락의 악순환은 주님과 그분의 가르침과 그분의 모본적인 삶으로 되돌아갈 때만 멈출 수 있다.
“성령은 성경을 대신하기 위하여 주어지지 않았으며, 또 주어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교훈과 경험을 시험하기 위한 표준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 때문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7)

<초점(焦點)>
◉ 마지막 때란 예수님의 초림(初臨)에서부터 재림(再臨)의 때 까지를 마지막 때라고 한다.
우리는 적(敵)그리스도의 최후의 발악적인 활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唯一)한 비결은
삼위 하나님과 더불어 매일 매순간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이다.
적(敵) 그리스도를 거절(拒絶)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빛 되시는 예수님 안에 머물 때에만 가능(可能)하다

# 더위에 예수님안에서 평안하십시요.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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