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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 빛 가운데서 행함 : 세속적인 것들을 포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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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7-28 14:22 조회4,3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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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41분)

제5과 빛 가운데 행함 : 세속적(世俗的)인 것들을 포기(抛棄)함

<기억절(記憶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깨닫기) :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느끼기) : 자신의 구원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
(행하기) : 하늘에 초점(焦點)을 둔 삶을 살아간다.

(요점(要點))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세상에 속(屬)한 일시적(一時的)인 것들을 포기(抛棄)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영생(永生)이라는 선물(膳物)에 비하면 이것들은 극(克)히 작은 것들이다.

일(日) (7월 26일)
<"그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요일 2:12) >

◉ 대한민국에서 죄수(罪囚)가 사형선고(死刑宣告)를 받은 사람에게 사형(死刑)이 집행(執行)되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한 가지가 있는데, 그 한가지의 길은 대한민국의 대통령(大統領)의 이름으로 사면(赦免)만 받으면 그 죄수(罪囚)는 사형집행에서는 물론 감옥(監獄)에서도 석방(釋放)될 수 있고 죄(罪)도 사면(赦免)이 된다.
이는 대한민국의 최고(最高)의 통치자(統治者)의 권한(權限)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온 우주(宇宙)의 창조주(創造主)이시며 권한(權限)을 가지신 분이 바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救援)하실 권한(權限)이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罪)에서 구원(救援)할 자(者)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다른 이로서는 구원(救援)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天下) 인간에 구원(救援)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 4:12)

☞ 이름에는 반듯이 뜻이 담겨져 있다.
① "예수",("여호수아", "호세아")란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원(救援)하실 것이다." "구주(救主)"또는 "구원자(救援者)"라는 뜻이다.
② "나발"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삼상 25:25)

◉ 죄(罪)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救援)은 선행(善行)이나 맹목적인 믿음이나 지식(知識)에 근거(根據)하지 않고 오직 그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야만 구원(救援)을 받는 것이다.
몸에 상처(傷處)가나서 다 나아도 흉터가 생기는 것처럼, 사처부위를 눌러도 아프지는 않지만 흉터가 남는 것처럼 죄를 지어도 예수님에 이름으로 사(赦)함을 받지만 그 죄로 인한 흉터가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지 않도록 예수님께 맡기고 매순간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質問)과 처신(處身)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현명(賢明)한 방법이요 축복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 요한은 그의 독자(讀者)들 곧 신실한 교인들이 구원(救援)의 절대적인 확신을 갖기를 원했다.
그는 요한일서 1:9, 2:1~2에 나오는 죄(罪)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용서(容恕)의 확신(確信)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强調)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죄인(罪人)임을 인정(認定)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받아들이고 용서(容恕)의 확신 가운데 살아간다.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의 근거는 오직 예수님과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만 근거(根據)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말하기를, 그들이 용서받은 것은 그들의 선행이나 그들의 믿음이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知識)에 근거(根據)하지 않고 오직 "그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음"이라 하였다. 즉 예수님과,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 우리 구원(救援)의 유일(唯一)한 근거(根據)라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은 이김에 관하여, 순종에 관하여 나눈 모든 이야기 가운데서 구원(救援)은 오직 예수님 때문에 이르러 온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교과66p)

◉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데,
구원(救援)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通)해서만 이르러 온다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完全)한 용서(容恕))
“인류는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은 그의 공의와 그의 거룩함과 그의 진리를 희생시켜 가면서 죄를 용서하실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죄를 용서하시되 완전히 용서하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시는 죄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죄인의 유일한 소망이요, 만약 죄인이 신실한 믿음으로 이 소망 가운데 있으면 그는 용서를 확신할 것이다. 용서의 통로는 단 하나뿐이지만 모든 사람이 다 접근할 수 있는 통로이다. 바로 그 통로를 통하여 부요하고 풍성한 용서가 회개하고 통회하는 영혼을 기다리고 있으며 가장 검은 죄라 할지라도 용서를 받는다.”(재림교 성경주석, 7권, 912)

▶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절대적인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그들의 죄가 용서 받았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赦)함을 얻음이요.” (요일 2:12)

월(月) (7월 27일)
<흉악(凶惡)한 자(者)를 이김 (요일 2:13~14) >

◉ 이긴다(勝).는 말은 힘이 더 강(强)하다는 말이다.
조금 더 쉽게 이야기 한다면 약(弱)한 것을 흡수(吸收)한다는 뜻이다.
자석(磁石)을 두 개 놓고 자석에 붙어있는 쇠 가루(鐵粉)를 힘이 더 강력한 큰 자석을 갔다 대면 약(弱)한 자석(磁石)에 붙어있는 쇠 가루(鐵粉)가 힘이 더 쎈(강한) 자석(磁石)에게로 옮겨 간다. 악(惡)한 것이나 옳지 못한 것들을 우리는 어두움이라고 배웠다. 어두움은 빛(光)만 있으면 흔적(痕迹)도 없이 사라진다.

◉ <악(惡)한자는 곧 마귀(魔鬼)라. (요한복음 17:15 참조)>
성도(聖徒)들이 얻은 승리(勝利)는 그들 자신의 그릇된 욕망(慾望)이나 빗나간 습관(習慣)에 대해 서뿐 아니라 대적(對敵)그 자신의 악의적(惡意的)인 증오(憎惡)와 교묘(巧妙)한 유혹(誘惑)(마 4:1)에 대하여도 그런 것이었다.
증가(增加)된 지식(知識)과 기고만장(氣高萬丈)하는 무신론(無神論)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는 소수의 사람만이 악한(惡漢)존재(存在)와 그의 무수(無數)한 조력자(助力者)들의 세력(勢力)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운명(運命)의 주인이라고 느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담이 범죄(犯罪)한 이래로 늘 모든 사람이 악(惡)한 자의 노예(奴隸)였음을 잊는다. 그러한 속박(束縛)에서 탈출(脫出)하는 유일(唯一)한 길은 사람에게 남아있는 단 하나의 개인적(個人的)인 능력(能力)(다른 주인을 선택(選擇)하고, 그들의 연약(軟弱)한 의지(意志)를 그 분께 굴복(屈伏)시키는 능력)을 사용함에 있다. 그럴 때 그리스도가 그들을 마귀(魔鬼)의 속박(束縛)에서 해방(解放)시키고 그들을 영원(永遠)히 지배(支配)할 것이다. (롬 6:13-23)

◉ 협(協)자는 = 맞다, 적합(適合)하다, 화합(和合)하다, 합(合)하다, 좇다, 따르다, 라는 뜻이 있다.
화합(和合)하기를 원하거든 십자가(十字架) → †와 힘 되시는 삼위(三位) 力 +3이 합쳐야 만이 온전한 협력(協力)이 된다는 것이다. 즉 십자가(†)에서 삼위(三位)하나님(力)이 합(合)할 때에 온전(穩全)하고 힘이 있고(力)완전(完全)한 화합(和合)의 힘과 능력이 된다는 말이다.

◉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말씀이 그들 속에 살아 있음을 알기 때문에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있다고 요한은 강조한다.

◉ (악(惡)한 자(者)를 이기었다는 말씀은) 헬라어 "니카오"(nikao')의 "정복(征服)하다" 이다.
"니카오"(nikao')가 신약에서 사용된 28회 중 6회는 이 요한서신에, 18회는 요한의 다른 저서(著書)에 나타난다. 요한 사도(使徒)의 생각은 그리스도인의 승리(勝利)라는 사상(思想)에 현저(顯著)사로잡혀있음을 볼 수 있다. (본교 한글 성경주석 14권311p)

◉ <하나님은 안다고 공언(公言)하는 자(者)들>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의 참된 상태가 숨겨진 듯하다. 그들은 진리를 보지만 그 중요성과 요구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진리를 들으나 자신의 생애를 진리에 일치시키지 아니하기 때문에 진리를 완전히 깨닫지 못하며, 진리를 순종함으로 성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의 증거인 낮의 구름 기둥과 밤의 불기둥이 그들 앞에 행하는 양, 태연하고 만족스럽게 쉰다.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공언하나 행위로는 부인한다.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택하신 특별한 백성이라고 생각하나, 어떠한 죄인이라도 구원하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은 그들에게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증언보감, 1권, 157)

▶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3~14)

화(火) (7월 28일)
<세상(世上)에 속(屬)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일 2:15)>

◉ 배(船)는 물이 있을 때 필요(必要)한 것이다. 즉 배(船)와 물은 서로가 다르지만 공존(共存)한다.
바다(海)나 강물에서는 배(船)가 필요하다. 그러나 배(船)와 강물과, 바다 물은 서로가 정반대(正反對)이지만 함께 공존(共存)한다. 즉 배(船)는 물이 있을 때에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배(船)에 물이 들어오면 배(船)가 배(船)구실을 못하고 침몰(沈沒)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속(世俗)에 살지만 세속적(世俗的)인 것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스며들면 안 된다는 원리(原理)와 같다.
세상에 살지만 그리스도인은 세속(世俗)이 스며들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는 비유(譬喩)이다.

◉ 우상(偶像)이란 하나님이 계셔야 할 곳에 있는 모든 것을 우상이라 한다.
즉 물질(物質)의 형상(形象)만을 우상이라 생각 할 수 있으나,
엄밀(嚴密)한 의미(意味)에서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모든 것을 우상(偶像)이라 할 수 있다.
영적(靈的)인 면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관심(觀心)을 두는 것을 말할 수 있다.
돈을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고 관심을 두어서 온 종일(終日) 돈에만 몰두하는 삶이라든지, 자녀(子女)문제, 가정문제(家庭問題), 명예(名譽)문제, 출세(出世)문제, 취미(趣味)활동, 향락(享樂),등등을 비롯해서 오로지 그곳에만 하나님보다도 시간과 관심(觀心)과 자신의 정력을 투자(投資)하고 있다면 이는 필경(畢竟)우상(偶像)을 숭배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과히 잘못된 표현이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十誡命)중에 두 번째로 우상숭배(偶像崇拜)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 여러 군데에서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말씀의 정의를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 <자기 신뢰(信賴)는 곧 우상숭배(偶像崇拜)임>
“ 우상 숭배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죄를 받는다. 그들의 어리석음은 구원(救援)을 위해서 자신을 믿는 데 있고 자기 손으로 만든 작품(作品)을 경배(敬拜)하는 데 있다. 자신의 지혜(智慧)와 계획(計劃)을 믿고 의지(依支)하는 사람들, 성공하기 위하여 자신의 부(富)와 권세(權勢)를 의지하고 서서 세상이 위대(偉大)하다고 부르는 사람들과 연합(聯合)함으로 스스로의 힘을 강(强)하게 해보려고 애쓰지만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우상숭배(偶像崇拜)자들로 분류(分類)하신다. (리뷰 1906. 3. 15).

◉ <하나님께 관(關)한 거짓된 관념(觀念)은 우상숭배(偶像崇拜)임>
우리는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바알 숭배자들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가 아니면 우상을 섬기는가?
눈에 보이는 신전(神殿)은 없을지라도, 눈에 보이는 우상(偶像)은 없을지라도 우리는 늘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무나 돌로 우상(偶像)을 빚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듯이, 마음 속 깊이 소중(所重)히 간직하고 있는 생각이나 물건을 우상으로 만들기도 쉬운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의 속성(屬性)에 관한 거짓된 관념을 갖고 있다. 그들은 바알의 종들처럼 거짓 신(神)을 섬기고 있다. (리뷰 1908. 12. 3).” (화잇주석, 출 20:3)

◉ 세상(世上)이란 말은 헬라어 “코스모스(kosmos)이다.
세상이란 사물(事物)이나 사람의 정돈(整頓)된 배치(配置)로 생각된다.(참조 : 마 4:8; 요 1:9)
신약(新約)에서 코스모스는 종종 하나님께 이질적(異質的)이고 적대적(敵對的)인 신앙심(信仰心)이 없는 군중(群衆)이나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세속적(世俗的)인 일을 나타낸다.
요한은 “코스모스(kosmos)를 그의 글에서 100회 이상이나 다른 어떤 신약(新約)의 기록자들보다 더 많이 사용한다. 대부분의 경우 요한은 하나님에게 이질적(異質的)이고 적대적(敵對的)이며 그분의 왕국(王國)에 반대하는 세상을 묘사(描寫)한다. 이 어법(語法)은 어두움과 빛, 물질(物質)과 영(靈), (헬라 철학의)조물주(造物主)와 참 하나님 사이의 투쟁(鬪爭)에 대한 신봉(信奉), 곧 이원론과 함께 후에 영지주의(靈知主義)로 발전(發展)한 거짓 가르침에 대한 관심(觀心)을 반영할 수 있다. 따라서 요한이 그의 독자(讀者)들에게 “세상을 사랑치 말라”고 명(命)할 때 , 그는 창조주의 손에서 비롯된 세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생명체이든 비 생명체(非 生命體)이든 사단이 하나님에 대한 반역에 동원시킨 세속적 요소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이것들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알며,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들을 경계하고 그것들의 유혹하는 힘에 대항(對抗)하라고 명한다. 죄 된 세상을 증오(憎惡)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죄인을 도우려는 것을 막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가 죄에 희생당한 자를 더 효과적(效果的)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점에서 우리의 모본(模本)이다. (요 3:16)

◉ '세상'으로 번역된 코스모스(kosmos)는 우주, 땅, 인간, 존재의 범위, 하나님과 반대되는 삶의 방식 등을 가리킨다. 그 용어는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에 20회 이상 나온다. 세상은 구원을 필요로 하지만(요일 4:14), 그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 대해 적대적이다(요일 3:13). 세상은 악한 자의 세력 안에 놓여 있고(요일 5:19), 거기에는 거짓 선지자들, 적그리스도들, 기만 자들이 존재한다(요일 4:1, 3, 요이 1:7). 세상의 사물들을 소유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그것을 궁핍한 자들과 나누어야 한다(요일 3:17). 그리고 우리는 세상을 이겨야 한다(요일 5:4~5). 요한의 서신들에서 세상이라는 용어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쓰였는데 그 까닭은 세상이 하나님께 반역했기 때문이다. 성경에 따르면, 우리와 세상 사이에는 흥미로운 긴장이 존재한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지만 한편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묘사되어 있다(요 3:16). 우리는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사랑해야 한다. (교과 70p)

◉ <두 주인(主人)을 섬기지 못함 >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면서 동시에 세상 사물에 애정을 둘 수는 없다.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앞에 두 주인 곧 하나님과 세상을 제시하시며, 우리가 양자를 동시에 섬기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제시하셨다.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주도권을 쥔다면,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의 주의를 끌 가치가 있는 사물을 옳게 식별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추방시켜 버릴 것이며, 우리의 최고의 관심은 세상에 대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애정과 헌신에 있어서 세상의 사물과 같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증언보감, 1권, 404)

◉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는 세상에 속한 것들을 미워해야 하지만,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해야 한다.

◉ 성경에는 세상이 사람들, 우주(宇宙), 창조된 세계, 세속적(世俗的)인 것, 지구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너희가 세상에 속(屬)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屬)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擇)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 성경에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구체적(具體的)으로 세상에 속한 속(俗)된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속(俗)된 것들을 경계(警戒)해야겠지만,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랑해야 한다.

수(水) (7월 29일)
<세상(世上)과의 문제(問題)들 (요일 2:16) >

◉ 다윗은 소년기(사무엘 上 16-31, 사무엘 下, 열왕기 上 1장, 그리고 역대 上 11-29장)에서 다윗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인도하시고 축복의 역사를 하셨다. 그러나
그러나 사무엘 下의 기자(記者)는 영웅적(英雄的)이고 의(義)로운 다윗 상(像)을 지금까지는 그리고 있었지만 다윗의 약점(弱點)인 육신(肉身)의 정욕(情慾)에 대하여 교훈하도록 기록하고 있다.

◉ <육신(肉身)의 정욕(情慾)과 안목(眼目)의 정욕(情慾)>
☞ <다윗의 이야기>
이스라엘 군대(軍隊)가 암몬과 전쟁(戰爭)중인 어느 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다윗은 우리아의 아름다운 아내 "밧세바"로 인해 시험에 빠지게 되었다. (삼하 11:1-3). 다윗은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오게 하여 동침(同寢)하였다. 그 결과그녀가 임신하였음을 통보받고 당황한 다윗은 먼저 우리아를 전장(戰場)에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여 그녀와 함께 있게 함으로써 사건을 은폐(隱蔽)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우리아가 전쟁(戰爭)터에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여 집에서 안락하게 지내는 것을 거부(拒否)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다윗은 우리아를 최전방으로 보내어 전투(戰鬪)중에 우리아를 죽게 하였다.(삼하 11:6-21). 결국 다윗은 과부가 된 밧세바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간을 채운 후에 그녀를 아내로 삼았다. (삼하 11:26-27).
그러나 우리아에 대한 음모(陰謀)가 은폐(隱蔽)되리라고 확신(確信)했던 다윗은 선지자 나단이 바로 자신을 책망하기위하여 왔음을 알아채지 못하였다. 하지만 나단이 그가(다윗)가 범죄자임을 준엄(峻嚴)하게 책망(責望)하고 우리아를 죽였던 동일한 "칼"을 하나님께서 다윗 자신의 집에 사용하실 것임을 설명하자 그는 회개(悔改)하였다. (삼하 12:1-13) 이 때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부끄러운 행동은 용서(容恕)하셨으나(13절) 밧세바가 낳은 아들은 죽게 될 것임을 다윗에게 알려주었다. (15절-23)
이후 다윗의 생애의 대부분은 그의 간음(姦淫)에 의해 촉진(促進)된 불행한 사건들로 이어지게 되었다.
먼저 누이 다말의 강간(强姦)당함에 대한 압살롬의 복수(復讐)와 부친 다윗에 대한 반역(叛逆)이 상세하게 기록되었다.(13-15장)

☞ <보디발의 아내 이야기>
창세기 39:6-18절에 나오는 보디발의 아내의 육신의 정욕으로 인한 사건이 기록되어있다.
요셉의 확실한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원칙을 굽히지 않으므로 (창 39:6-8)에 "어찌 이 큰 악(惡)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得罪)하리이 까"라는 결심에 누명(陋名)을 쓰고 감옥(監獄)까지 갔지만 결국(結局)하나님의 의로우신 섭리(攝理)로 요셉에게 회복(回復)과 보상(報償)이 성경에 기록되어있다

◉ 이생이란 (This Life) →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눅 8:14; 요일 2:16)에서는 "생계의 수단", "생활"을 의미한다.
◉ 요한은 이제 요일2장16절에서 단정적인 진술(陳述)에 대한 이유를 진술(陳述)한다.
육신(肉身)이란. 그 안에 '선(善)한 것이 거(居)하지 아니하"고 악(惡)을 갈망하는(롬 7:18; 롬 8:1)사람의 감각적인 본성을 말한다. 육신(肉身)의 정욕(情慾)은 악(惡)에 탐닉(耽溺)하고자 하는 육신의 갈망(渴望)이다.
사도(使徒)요한은 영지주의(靈知主義)가 후에 본질적(本質的)인 악(惡)이라고 주장한 육체를 말하지 않는다.
신약(新約)의 저자(著者)들은 인간의 육체를 선(善)과 악(惡) 모두에게 대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看做)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산(매입(買入)한) 구속(救贖)에 종속(從屬)시킨다.
(롬 12:1; 고전 6:15; 빌 1:20; 3:21 참조)

◉ "육신(肉身)의 정욕(情慾)"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방종(放縱)에 대한 모든 강열한 욕구(欲求)를 포함한다.
사도 요한은 그의 독자(讀者)들의 흉악한 죄에 대해 책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모든 형태의 죄 사이에 존재하는 고유(固有)의 대립에 대해 그들에게 경고(警告)하고 있었다.
그는 이 경고가 그들의 죄의 덫에서 구원(救援)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믿었다.

▶ 정욕(情慾)이란 헬라어 "에피쒸미아(epithumia)"로 "욕망(慾望)" "열망(熱望)" "갈망(渴望)"등을 말한다. (참조 ; 마 5:28; 요 8:44; 롬 7:7)

▶ “세상 것들”이란
“코스모스(kosmos)를 구성(構成)하는 개별적(個別的)인 부분들을 말한다.
쓸모없는 것들은 완전히 없어질 것이며, 그 자체로는 좋은 많은 것들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을 것이다.
가옥(家屋)과 토지(土地), 의복(衣服)과 가구(家具), 친척(親戚)과 친구(親舊)는 가치(價値)있는 재산(財産)이다.
하지만 이것들 중 어느 것이라도 영적(靈的)인 생애에 해(害)가될 정도까지 관심의 중심에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자라를 차지하고 우상(偶像)이 된다. (참조 : 마 10:37 ; 눅 14:26)
확실한 것은 , 자아(自我)는 항상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실제로 이간(離間)시킨다는 것이다.
▶ 이러한 것들을 “사랑치 말라”
요한이 그들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理由)와 그들이 그의 권고(勸告)에 명심(銘心)할 것을 기대(期待)하는 이유를 제시(提示)함으로, 요한은 청년들에게 그들이 피(避)해야 할 것들에 대해 계속 경고(警告)한다.

◉ 안목(眼目)의 정욕(情慾)
“육신(肉身)의 정욕”이 육체에서 일어나는 죄에 특별히 적용된다면,
“안목의 정욕”은 시야(視野)를 통해 자극(刺戟)되는 정신적(精神的) 쾌락(快樂)을 언급(言及)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죄 된 쾌락(快樂)의 대부분은 눈을 통해 경험(經驗)된다. (참조 : 마 5:27-28)
드러내 놓고 죄에 탐닉(耽溺)하고자 하는 모든 의도(意圖)를 숨기기에 급급한 많은 사람들 스스로가 죄에 관한 것들을 간절히 읽고 싶어 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눈여겨보고 싶어 하거나 영상으로 묘사(描寫)된 그것을 보고 싶어 한다.
여기에 고린도전서 10:12의 말씀에 “선 줄로 생각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가 작요된다. (참조 창세기 3:6)
요한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또는 짐승들과 죽기까지 싸웠던 로마의 투기장(鬪技場)에서 사람을 잔인하게 만드는 경기의 광경(光景)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광경은 오늘날 가학적(加虐的)인 운동경기가 그러한 것과 동일한 병적(病的) 호기심(好奇心)을 일으켰다.

◉ (이생의 자랑)
헬라어 비오스(bios)는 이곳에서는 “삶의 방식” (롬 6:4절 참조). “이생의 자랑”이란 표현은 세상적인 재물(財物)에 대한 물질주의적(物質主義的)만족(滿足), 영적(靈的)인 것을 물리적(物理的)인 것으로 대신하는 마음의 상태(常態)를 암시(暗示)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자는 이러한 자랑에 대한 경향(傾向)이 있으며 그것에 대해 경계(警戒)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일에 대해 과도한 자부심(自負心)을 느끼며, 다른 이들은 그들의 소유에, 그들 자신의 아름다움에 혹은 그들의 자녀들에 대해 그러하다. (본교 성경 주석 한글14권 312-314 참조)

◉ 요일 2장15절에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개략적인 경고가 주어진 반면에,
요일 2장16절에는 상당히 세부적인 경고(警告)가 주어져 있다.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한은 세 가지를 언급(言及)한다.
(1) 육신(肉身)의 정욕(情慾),
(2) 안목(眼目)의 정욕(情慾),
(3) 이생의 자랑이 그것이다.
요한은 이 세 가지가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과 눈과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요한은 무엇을 경계하고 있는가?
육신(肉身)의 정욕(情慾)을 단지 정욕(情慾)으로만 한정(限定)할 필요는 없지만(참조 갈 5:19~21),
어쨌든 정욕(情慾)이 포함(包含)되어 있다.
안목의 정욕은 물론 육신의 정욕과 연관되어 있지만 좀 더 깊은 차원에서, 우리의 생각, 우리의 열망, 우리가 봄으로써 갖기 원하는 모든 것들을 가리킨다.(참조 출 20:17) (교과 72p)

◉ '이생의 자랑' 속에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獨立)이라는 개념(槪念)이 내포(內包)되어 있다.
마치 우리 자신이 우리의 생명을 창조한 것처럼 생각하고 우리가 성취한 것들에 대한 영광과 명예를 스스로 취하려고 하는 생각이 여기에 포함된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라(시 100:3). 이와 반대로 우리의 매 호흡, 매 심장박동,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식하고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할 때, 우리 마음에는 교만이 자리 잡을 수 없다. 우리는 존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타락한 존재이다. 우리는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로서, 생명에 대하여 자만하는 대신 겸손하고 온유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루스 벨이 완전한 세계에서 타락한 것은 교만 때문이었으므로, 불완전한 우리는 교만(驕慢)을 전염병처럼 피해야 한다.

◉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 >
“사단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주관하는 데 성공하였으므로 기뻐한다. 그는 그들을 속였고, 감각을 무디게 하였고 그들 가운데 지옥의 깃발을 세웠으며, 그들은 철저히 속아서 그것이 바로 사단이라는 것도 모른다. 백성들은 새긴 우상을 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덜하지 않다. 그들은 돈을 섬긴다. 그들은 세속적 이익을 사랑한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목표를 이루려고 양심을 희생시키는 일도 불사한다. 하나님의 공언하는 백성이 이기적이며 자기만 돌본다. 그들은 이 세상의 사물을 사랑하며 흑암의 일과 친교 한다. 그들은 불의 가운데서 낙을 누린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우상 숭배자다. 그들은 하나님의 눈앞에서 이교도, 더 나은 길을 몰라 새긴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보다 훨씬 더 못하다.”(교회증언, 2권, 440)

◉ 이생의 자랑(the pride of life)이란 우리의 생명을 창조(創造)하시고 유지(維持)하시는 하나님의 존재(存在)를 잊어버린 채 스스로 교만(驕慢)하여 자랑하는 태도(態度)를 말한다.

◉ 요한이 경고(警告)한 대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란 육신(肉身)의 정욕(情慾)과 안목(眼目)의 정욕(情慾)과 이생의 자랑이다. 이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목(木) (7월 30일)
<세상(世上)의 일시적(一時的) 속성(屬性)(요일 2:17)>

◉ 삶에 질(質)이 높아갈수록 행복이란 말보다 사건(事件)과 사고(事故)가 많아지며 사람마다 스트레스가 더 많이 쌓여 가다보니 창조주 하나님을 망각(忘却)한 사람들은 쾌락(快樂)과 향락(享樂)을 찾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마약류(痲藥類)를 많이 찾고 있는 실정이 이를 증명(證明)한다. 그 향락(享樂)은 일시적(一時的)인 속성(屬性)의 대표적이 실례(實例)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속성(屬性)은 한문으로 표현 한다면 속성(俗性)(속(俗)되고 천(賤)한 성질(性質))이다.

◉ 빛과 어두움이 공존(共存)하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공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영구적(永久的)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① 현재의 삶에 미혹(迷惑)되고
② 물질의 세계에 현혹(眩惑)되며
③ 가시적(可視的)인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4:18)

◉ “그들은 그들의 행위로 어느 세상을 그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들은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영적 향상을 위해 긴요한 종교적 특권을 희생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품성을 이루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달아 보시기에 부족하게 된다. 그들은 일시적인 세상의 이익을 제일로 삼고 하나님의 봉사 사업에 바쳐야 할 시간을 하나님께로부터 도둑질한다.”(2증언, 654)
◉ “나는 이 세상의 일시적인 사물(事物)들로부터 우리를 향상시키는 그리스도와의 친밀(親密)하고 신비(神秘)로운 관계를 얼마나 사모(思慕)하는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며 내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임을 끊임없이 증거하는 성령을 가지는 것이 나의 염원(念願)이다. 서신 8, 1876.”(3기별, 105)
◉ “위대한 교사께서는 미래의 세계에 대한 광경을 사람에게 보게 하신다. 그분은 그것을 그 매력적인 영역 그대로 사람의 시계(視界)에 들어오게 하신다. … 만일 그분께서 사람의 마음을 미래의 생애와 그 행복에 고정시켜 주실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일시적인 관심과 비교하여 현저한 대조가 정신에 깊이 새겨져 마음과 영혼과 온 몸이 흡수당하게 된다. ― OHC, 285, 286(영문)(1890).”(사건, 284)
◉ “하늘에 있는 아름다운 도성의 문들이 번쩍이는 돌쩌귀를 따라 활짝 열리고 진리를 지킨 인류가 들어갈 때 영광의 면류관이 그들의 머리에 씌워지고 그들은 존귀와 영광과 위엄을 하나님께 돌릴 것이다. 미래의 영원한 생애에서 성실한 자들을 기다리는 무한(無限)한 상급(賞給)과 비교해 보면 이 세상의 일시적(一時的)인 생애(生涯)에서의 인간의 칭찬(稱讚)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 자급 교역자들에 대한 격려의 말 16(1909).”(사건, 294)

◉ 인간은 현재의 삶에 미혹되고, 물질세계에 현혹되며, 가시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므로 바울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 3:1~3).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永遠)함이니라”(고후 4:18)고 하였다.
◉ <일시적(一時的)인 세상과 영원한 천국(天國)>
“거룩함, 존귀, 명예, 하나님 앞에 있는 지극한 행복 등등은 믿음의 눈이 아니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들 곧 세상의 명예, 세상의 쾌락, 세상의 부와 영광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들의 탁월한 영광과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아 가리워진다. 이 세상 것들은 일시적이요, 잠시 잠깐 있을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고 무궁토록 있을 것이다. 이 무한한 보화를 얻는 것이 모든 것을 얻는 것이요,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재림교 (영) 성경주석, 6권, 1100)
▶ 다니엘이 말한 대로 이 세상의 역사는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간 곳이 없”이 사라질 것이다(단 2:35). 우리는 형적도 없이 지나갈 세상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 세상의 일시적인 것들을 택하기보다 하늘의 영원한 사물을 택하는 것이 참된 지혜이다.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은 잠시 후면 지나가고 말 것이다.
◉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막대한 자금을 쓸데없고 해로운 일들에 낭비하고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말씀을 얻지 못하여 멸망하여 가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와 헌금을 도둑질하는 한편,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거나 복음사업을 유지하는 일보다 더욱 많은 것을 그들을 멸망시키는 정욕의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버린다. … 세상은 자아 방종에 빠져 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고상한 부르심을 받고 있다.”(각 시대의 대쟁투, 475)

▶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사랑의 순종을 나타내며, 악을 정복할 힘을 얻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속에 거하며, 그들의 죄는 용서를 받았다. 그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그분과 그분의 영광을 가로막는 일을 허용하지 않는다.


<초점(焦點)>

구원(救援)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르러 오며,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 말씀대로 세상에 살 때에 마귀(魔鬼)를 이길 수 있으며, 이 세상에 속한 삶은 육신(肉身)의 정욕(情慾)과 안목(眼目)의 정욕(情慾)과 이생의 자랑이지만, 이런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일시적인 것을 택(擇)하지 말고 하늘의 영원한 사물(事物)을 택하는 것이 참된 지혜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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