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하나님 사랑의 승리(질문, 대답, 설명) 06/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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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06-21 20:47 조회3,048회 댓글1건본문
제13과 하나님 사랑의 승리
(6월 29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57분)
연구 범위: 계 22:11, 12; 렘 30:5~7; 시 91:1~11; 렘 25:33; 계 21:2; 계 20:11~15
기억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 4).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가진다. 어려운 시기가 다가오고, 어떤 고통이든, 견디고 겪어야 할 시련과 슬픔이 무엇이든 간에 더 나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오늘을 기쁘고 의미 있게 살 수 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는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인 1933~1945년의 기간에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는 39세에 하반신이 마비되어 남의 도움 없이는 걸을 수 없었다. 그런 중에도 그는 "우리는 지평선 저 너머에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이 있다는 희망, 믿음, 확신을 항상 간직하여 왔다"라는 글을 남겼다.
아인슈타인은 "어제로부터 배우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희망하라"라고 말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유명한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은 "희망은 오는 해 들머리에서 미소 지으며 ‘더 행복해질’ 거라고 속삭이네"라고 노래했다. 이번 기의 마지막 교과는 우주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시기 가운데 펼쳐지는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사랑과, 대쟁투를 끝내고 완전하게 승리하시는 모습을 살펴볼 것이다.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오늘, 내일 그리고 영원토록 변함없는 소망을 준다.
*학습 목표
깨닫기: 대쟁투가 마칠 때 죄는 사라지고 하나님이 승리하며 공의와 사랑의 나라가 회복될 것이다.
느끼기: 오늘 나의 선택이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임을 느낀다.
행하기: 고난 중에 소망을 가지고 짧은 인생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승리에 동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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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성격의 소망을 가지기를 원하십니까?(계 3:5)
*답: 흰옷 입은 성도로 반드시 생명책이 이름이 기록되는 소망이다.
3. 구원받는 자와 잃어버린 바 된 자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사 25:9, 계 6:16)
*답: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과 재림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4. 예수님의 재림 전 천년기 동안에 지구에는 어떤 일이 있겠습니까?(계 20:1-3)
*답: 사탄이 무저갱에 갇혀 지낸다.
5. 하나님께서 심판 전에 천년기를 두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계 20:4-6)
*답: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을 우주와 의인들에게 공개하여 하나님의 의롭다는 것을 드러내어 우주를 평안하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신 것이다.
6. 하나님이 악인을 영원한 불지옥에 보낸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계 20:9)
*답: 영혼이 불멸한다는 오류를 믿기 때문이다.
결론: 고난이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대쟁투를 끝내시고 완전하게 승리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소망을 주시며 우리는 재림의 때에 그 사랑을 더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짧은 인생을 통해서 영원한 행복에 동참할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이 우리의 앞에 있다. 하나님은 사탄의 반역과 죄로 무너진 세상을 안전한 방법으로 회복하시며 세계는 그분의 공의와 사랑을 이해할 것이다.
6월 23일(일) 환난 중의 소망
요한계시록 22:11, 12, 다니엘서 12:1, 2, 예레미야 30:5~7을 읽어 보라. 재림 직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인가?
[계22:11,12]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단12:1,2]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렘30:5~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무서워 떠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6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어찌하여 모든 남자가 해산하는 여자 같이 손을 자기 허리에 대고 모든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졌는가 7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답: 심판과 환난이 있을 것이다.
인류를 위한 은혜의 시간이 끝나면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의 시기가 이어진다. 요한계시록 16장은 타락한 세상에 부어질 마지막 일곱 재앙을 묘사한다. 그러나 애굽에 재앙이 내렸던 때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은 그 재앙으로부터 보호받을 것이다. 다니엘서의 약속을 기억하라.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단 12:1). 이 책은 "생명책"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빌 4:3; 계 13:8; 계 20:12, 15; 계 22:19 참조). 우리가 예수님께 신실하다면,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계 3:5).
요한일서 3:1~3, 요한복음 8:29, 요한복음 14:30을 읽어 보라. 다가올 환난의 때를 통과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준비는 무엇인가?
[요일3:1~3]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14: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답: 주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세상 임금과 관계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의 때에도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그들의 궁극의 소망은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며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같이 순결해지는 것이다. 사탄의 어떤 속임수도 그리스도의 순결한 마음을 훼손할 수 없었다. 우리도 그분의 성품의 이런 면을 모본할 수 있다.
시편 27:5, 시편 91:1~11, 요한계시록 3:10~12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고난의 때에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시는가?
[시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시91:1~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계3:10~12]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답: 하나님의 처소에 비밀히 숨기시고 주께서 친히 피난처가 되셔서 지켜주신다.
고난의 때를 중보자 없이 통과한다는 개념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서 그분의 중보를 중단하시는 것은 모든 사람이 그분을 따르거나 거부한다는 최후의 결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만 믿고 홀로 이때를 이겨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마 28:20). 믿음은 볼 수 없을 때도 신뢰하고, 주변 세상이 무너질 때도 흔들리지 않고 신뢰하는 것이다. 환난의 때에 우리의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영원에 대한 갈망은 깊어져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 될 것이다.
<교훈> 고난의 때에도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수님과의 깊은 인격적 관계를 맺는다. 사탄의 궤계도 이런 순결한 소망을 깨트릴 수 없다.
<부가설명> 환난이 닥친다고 예언했다. 이런 말세 형편을 재림교회처럼 잘 아는 교단이 없다. 남은 자손으로서 재림성도들 중 그날까지 호흡이 있는 사람은 다 이 환난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 받는다는 약속이 있다. 그래서 약속을 믿고 담대해야 한다. 그래도 두려운 환난을 맞을 것이며 과연 약속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의심을 사탄이 일으킬 것이다. 지난날의 허물들을 눈앞에 펼쳐보이면서 신뢰를 꺾으려 할 것이다. 게다가 중보자 없이 자기 의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자신을 살피면 도저히 이 환난을 견딜 수 없을 것처럼 느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진리의 백성이라면 그는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예수님을 떠나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주님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중보가 없다는 말은 성소봉사가 끝났다는 뜻이다. 그때 하나님의 백성은 의롭고 거룩하다는 선고를 받은 상태이다. 중보가 필요없는 때이므로 중보를 마친 것일 뿐이다. 그들은 예수님 안에 확실히 거한다는 확인을 받은 사람들이다. 성도들에게는 이것이 조사심판의 결과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 안에 있다. 성소봉사 중보와 예수님 안에 있는 사실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어느 순간도 예수님을 떠나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확정이 조사심판의 선고로 확증되었으므로 중보자 없이 선다는 말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6월 24일(월)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소망
요한복음 14:1~3과 디도서 2:11~14을 읽어 보라. 미래의 도전과 다가올 환난의 때를 생각할 때 이 구절은 어떤 격려의 기별을 주는가?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딛2:11~14]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답: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대속은 그 자체로 우리를 불법에서 속량하셔서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아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이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본향으로 데려가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다. 더 좋은 날이 다가오고 있다. 신약성경은 반복해서 우리 주님의 재림에 대해 말한다. 교회-국가 권력의 가혹한 법령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어두운 날에 우리의 마음을 소망으로 채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이다. 그것은 모든 세대의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감을 준 '복된 소망'이다.
요한계시록 6:15~17과 이사야 25:8, 9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 드러난 구원받은 자와 잃어버린 자의 태도를 대조해 보라. 이러한 사고방식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계6:15~17]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사25:8,9]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9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답: 예수님을 믿고 그분 안에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다.
의인이 놀라운 은혜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동안 악인은 죄의 끔찍한 결과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반역은 두려움, 죄책감, 정죄, 그리고 결국 영원한 상실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영광스러운 재림의 때에 용서, 평화, 영원한 기쁨으로 이어질 것이다.
요한계시록 15:3, 4과 요한계시록 19:7을 읽어보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저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구원에 대해 구속받은 자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계15:3,4]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계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답: 주님께 경배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영원토록 구속받은 자들의 연구와 찬양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들은 영광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볼 것이다. …온 우주의 창조자시며 모든 운명의 결정자께서 인류를 위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영광을 버리시고 스스로를 낮추셨다는 것은 영원히 우주의 경이와 존경을 자아낼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51).
<교훈> 가혹한 법령이 생명을 위협하는 어두운 날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은 우리의 마음을 소망으로 채울 것이다. 성경은 더 좋은 날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부가설명> 성경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즐거움과 기쁨은 소망에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12:12), 예수님의 재림과 영원한 생명의 현실화를 소망으로 살아가는 성도든 환난에서 인내하며 항상 기도하며 소망으로 즐거워한다. 예수님의 재림은 소망의 성취이다. 그때 생명의 부활로 일어날 것이다. 하룻밤 잠잘자고 일어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성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맞는 날은 자기가 밀실에서 잠을 자는 바로 그 다음날이다. 그가 깨었을 때 주님의 영광의 재림을 볼 것이다. 이렇게 속히 오셨느냐고 놀랄 것이다. 그는 하룻밤만 잤기 때문이다. 재림성도들이 예수님의 역사적 재림의 때를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므로 우리가 알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행1:7). 그것을 알려고 연구하는 것은 작은 뿔의 정신이다. 작은 뿔은 때를 변경하려는 존재이다. 진정을 예수님은 우리가 잠든 그 이튿날 오신다. 하룻밤만 자고나면 주님 오시는 새아침을 맞을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확실하다. 그래서 우리가 그를 기다렸다고 외치며 아침을 맞을 것이다. 할렐루야!
요한계시록 12:17, 요한계시록 17:13, 14, 19:11~16을 읽어 보십시오. 이 구절은 지구의 마지막 전쟁과 그리스도의 궁극적 승리에 대해 무엇을 말해줍니까?
[계12:17]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17:13,14]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계19:11~16]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답: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을 보증했다.
<교훈> 가혹한 법령이 생명을 위협하는 어두운 날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은 우리의 마음을 소망으로 채울 것이다. 성경은 더 좋은 날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부가설명> 예수님의 재림 진리는 사람이 교묘히 꾸민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이미 재림의 실상을 목도한 사람들의 확실한 증언이다. 사람들이 재림 교리가 한낱 꾸민 이야기라는 말이 나올 것을 보시고 이런 말을 할 수 없도록 재림광경을 목도하도록 그의 제자들에게 확인해 주셔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벧후1:16~18). 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올바르게 고백한 후에 예수께서 십자가 지실 것을 말씀할 때 베드로가 말리는 사건이 있은 후에 세 제자를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용모를 변형하시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사실이 예수님 재림의 광경이었다고 베드로가 설명한 내용이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라고 당당히 말했다. 우리는 역사적 사건으로 이루어질 재림을 맞을 것이다. 이것이 소망이다. 확실한 소망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죽음의 잠이 드는 바로 다음날 아침에 그분을 만날 것이다. 아멘.
6월 25일(화) 천년기 동안의 지구
요한계시록 19장은 예수님의 재림과 악인들의 멸망을 극적으로 묘사하며 마친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은 1,000년 동안 있을 "천년기"를 알려준다.
요한계시록 20:1~3을 읽어 보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사탄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가?
[계20:1~3]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답: 천년 동안 무저갱에 갇힌다.
요한계시록 20:1~3의 묘사는 상징이다. 문자 그대로 사탄이 쇠사슬에 결박되어 무저갱에 갇히는 것이 아니다. 1,000년 동안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환경에 묶여 황폐하고 아무도 없는 그 땅에 갇혀 지낸다. 베드로후서 2:4에서 우리는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어두운 구덩이"에 묶여 심판 때까지 갇혀 있을 것을 본다. 사탄은 더 유혹할 사람이 없는 상태로 지상에 갇혀 지낸다. 그는 1,000년 동안 자신의 반역이 초래한 황폐와 파괴, 재앙을 보게 될 것이다.
"무저갱"으로 번역된 단어(헬라어)는 영어 단어 "abyss"(심연)의 원어이다. 이는 구약성경의 헬라어 역본인 70인역에서 창조 당시의 지구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 단어와 같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창 1:2). 70인역에서 "깊음"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아비소스(abyssos), 즉 "심연"이다. 이 "무저갱"은 지하 동굴이나 우주 어딘가에 있는 커다란 틈새가 아니다. 그것은 황폐한 땅을 말한다. 사탄의 죄와 파괴의 역사는 재림 이전의 엄청난 혼란과 함께 지구를 창조 초기의 상태와 같은 어둡고 무질서한 덩어리로 되돌려 놓는다.
예레미야 4:23~26과 예레미야 25:33을 읽어 보라. 선지자는 이 장면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렘4:23~26]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4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25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26 보라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의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렘25:33] 그 날에 여호와에게 죽임을 당한 자가 땅 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고 시신을 거두어 주는 자도 없고 매장하여 주는 자도 없으리니 그들은 지면에서 분토가 되리로다.
*답: 땅이 혼돈 공허하고 하늘에는 빛이 없고 죽은 시체가 땅에 가득해도 애곡할 사람이나 매장할 사람이 없고 다 거름처럼 된다.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끔찍한 멸망과 이 천년기 동안 지구상에 산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탄과 그의 악한 천사들은 그의 반역이 만든 황폐한 현실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온 우주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죄 문제를 해결하실 때 이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처리하신다(나 1:9). 하나님께서 세 가지 중요한 방법을 통해 이것을 이루신다. 첫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열망, 끊임없는 노력을 보여주신다. 둘째, 당신의 공의와 공정, 의로우심을 나타내신다. 셋째, 온 우주가 죄와 반역의 궁극적인 결과를 볼 수 있도록 하신다.
<교훈> 사탄은 자신이 만든 어둡고 황폐한 환경에 갇혀 1,000년을 지낸다. 죄와 반역은 땅을 황폐하게 했지만 하나님은 안전한 방법으로 이 땅을 다시 회복하신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조사심판은 의인들의 원한을 풀어주시는 은혜의 조치이다(눅18:1~8). 이것은 악한 존재에게는 정죄의 심판이 되고(단7:10), 성도들에게는 신원(伸冤)이 된다(단7:22). 심판과 신원이라고 번역한 말은 똑같은 아람어 ‘딘’이다. 악을 정죄하는 것이 의인을 신원하는 것이 된다. 천년기에 성도들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아서 하늘에 올라가 예수님과 함께 왕과 제사장이 되어 심판하는 권세를 이행한다(계20:4~6). 이것을 보면 의인과 악인이 같은 시간대에 심판대 앞에 서는 심판 정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8,1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롬14:10에 우리가 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말씀과 고후5:10에 우리가 반드시 심판대 앞에 드러난다는 말씀에 ‘심판대’라는 말은 헬라어 ‘베마’이다. 이것은 운동경기할 때 경기하는 선수들이 규칙을 잘 지키는지를 판단하는 심판이 서 있는 자리(심판석)이다. 이것은 즉시 판결을 내린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매일 이 심판대 앞에서 생활하고 매일 심판 된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시7:11).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시101:8). 매일 심판하시고 악인은 회개하지 않으면 아침마다 하나님의 성에서 끊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 저녁으로 항상 회개하여 주님의 피뿌림을 입어야 한다(벧전1:2). 이 심판대를 야고보는 이렇게 기록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약5:9). 하나님께서 문밖에서 심판하신다. 예수님은 문밖에 서서 두드리신다. 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예수님이 들어오신다(계3:20). 이렇게 심판이 이루어지는데 조사심판에서는 성도로 산 사람들이 사탄의 공격받아 억울한 일 당한 것을 신원해주신다. 그 성도들은 천년 동안 왕노릇하며 심판하는데 악인들과 악한 천사들을 조사심판해서 형량을 정한다. 그동안 악인은 따에 분토가 되어 흙이 되고 악한 천사들은 미호갈 대상이 없어 마치 감옥에 갇혀 활동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상태에 있게 된다. 우리는 심판하는 자리에 있을 것인가? 부토가 될 것인가? 밤낮 부르짖는 성도로 살아야 한다(눅18:7).
6월 26일(수) 천년기 동안의 심판
요한계시록 20:4~6을 읽어 보라. 의인들은 천년동안 무엇을 하게 되는가? 이것이 왜 중요한 일인가?
[계20:4~6]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답: 예수님과 함께 제사장과 왕이 되어 심판하는 권세를 행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확인하도록 한것이므로 중요하다.
천년동안 의인들은 하나님이 죄의 문제를 처리하시는 중에 보여주시는 그분의 공의와 사랑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구속받은 사람들은 천년기동안 그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까운 친구가 하늘나라에 없는 경우에 구속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결정을 더 온전히 이해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구속받은 자들은 이제까지 살았던 모든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끊임 없는 노력과 수고를 어느 때보다 더 분명하고, 새롭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잃어버린 바 된 모든 사람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거부했기 때문에 천국을 상실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에야 하나님은 잃어버린 바 된 자들에게 최후의 심판, 즉 영원한 멸망인 둘째 사망을 내리신다.
요한계시록 20:7~9을 읽어 보라. 천년기는 어떻게 마무리되는가?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가?
[계20:7~9]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답: 악인이 부활하고 사탄은 놓여 하나님의 성을 공격하지만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내려 악한 무리들을 다 태워버린다.
천년기동안 사탄이 유혹하거나 속일 사람은 없었다.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죄의 치명적인 결과를 생각하며 외로이 남아 있었다. 천년기가 끝날 때 죽었던 악한 자들은 심판과 최종 형벌을 받기 위해 부활한다(계 20:5).
사탄은 수많은 추종자의 무리와 재회한다. 그는 대쟁투에서 연이어 패배를 겪었지만, 악한 자들의 거대한 무리를 보며 용기를 얻는다. 이 반란을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사탄은 이 "백성"을 속이기 위해 크게 일어선다. 사탄은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복하고 자신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마지막 큰 노력을 기울이도록 부추긴다. "곡과 마곡"이라는 단어는 사탄과 모든 시대의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상징하는 데 사용된다.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이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계 20:9)을 둘러싼다.
천년기가 끝나는 때에, 악인들이 살아나는 것만 아니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도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온다(계 21:2). 성도들은 천년기동안 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통치해 왔다. 그리고 천년기가 끝날 때, 이 도성은 하나님, 예수님, 천사들 그리고 모든 구속받은 자들과 함께 이 땅에 내려온다. 그들 모두는 대쟁투의 마지막 전투의 자리에 함께한다. 죄는 이제 완전히 근절될 것이다.
<교훈> 천년기 동안 의혹은 모두 사라지고 하나님이 품성과 그분의 하신 일이 의로우심을 이해하게 된다. 악인은 천년기의 끝에 마지막 심판을 위해 부활한다.
<부가설명>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천년기 동안 미혹할 대상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황폐한 지구에 우두커니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만든 지구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아마도 눈물을 흘릴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천년이 되자 가인부터 세상 맨 마지막에 죽은 악인까지 다 부활한다. 그들이 바다의 모래와 같다고 했다(계20:8). 그들이 에스겔 38장에 예언된 곡과 마곡이라고 해석했다(겔38:1~3). 그들의 부활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 때문이다.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부활한다고 말씀하셨다(고전15:22). 의인이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부활하는 것러첨 악인도 예수님의 부활로 부활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고전15:23,24). 그들은 성도들이 천년동안 조사심판해서 정해진 형량을 따라 형이 집행된다. 책에 기록된 대로 집행된다(계20:11,12). 알고도 잘못한 사람들은 오래 고통할 것이고 몰라서 잘못한 사람은 고통의 기간이 짧을 것이다(눅12:17,18). 그래서 그들은 다 재가 된다(벧후2:6, 말4:1,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불로 정결하게 된 땅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 아멘.
6월 27일(목) 두 가지 영원
고린도후서 5:10, 로마서 14:10, 11, 요한계시록 20:11~15을 읽어 보라. 성경은 악인이 다시 부활하는 이유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롬14:10,11]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계20:11~15]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답: 각각 선악간에 행한 것을 따라 받기 위한 것이다.
죄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는 악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하나님이 그 모든 면에서 공정하고 의로우시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대쟁투에서 모든 무릎이 그분 앞에 굴복하고 사탄과 그의 악한 천사들까지도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을 반역할 어떤 정당성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엘렌 화잇은 이 장면을 펼쳐 보인다. "기록책들이 펼쳐지자마자 예수님의 눈은 악인들을 주목하신다. 그때 그들은 그들이 지금껏 범한 모든 죄를 깨닫는다. 그들은 그들의 발이 어디에서부터 순결과 성결의 길에서 벗어났는지, 그들의 교만과 반역이 그들을 얼마나 심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하였는지 깨닫게 된다. 그들을 죄에 빠지게 한 유혹을 받은 것, 축복을 무시한 것, 하나님의 사자들을 모욕한 것, 경고를 거절한 것, 완고하고 회개하지 않은 마음으로 자비의 물결을 물리쳐 버린 것,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불로 기록된 문자와 같이 나타난다. …모든 악인들은 하늘 정부에 대한 대역죄라는 죄목으로 하나님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는다. 그들은 그들의 소송에 대하여 탄원할 것이 전혀 없고, 핑계할 것도 없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사망의 선고가 내려진다"(각 시대의 대쟁투, 666, 668).
요한계시록 20:9, 시편 37:20, 말라기 4:1, 2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죄와 죄인의 궁극적인 멸망과 의인의 상급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계20: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시37:20]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말4: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답: 죄와 죄인은 다 소명하여 재가 되어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이 된다. 의인은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생한다.
마침내 사탄과 그의 악한 천사들이 불못에서 멸망할 것이다. 죄인들과 죄는 영원히 소멸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20:9에 따르면, 불이 그들을 태워버리고 멸망시키기에 영원히 고통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20:10은 "세세토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영원"이라는 단어는 항상 "끝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문맥에 따라 해당 사건이 완전히 성취될 때까지를 뜻한다(출 21:6, 삼상 1:22, 28, 유 7, 벧후 2:4~6). 잃어버린 바 된 자에 관한 이 표현은 멸망시키는 일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멸망의 결과가 영원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고문하시는 분이 아니다.
<교훈> 형벌이 영원하다는 것은 끝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일이 완전히 성취될 때까지를 뜻한다. 영원히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영원하다는 것이다.
<부가설명> 영벌이라는 표현을 바르게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표현을 영혼불멸설을 주장하는데 사용한다. 그러므로 재림성도들은 이 표현을 성경적으로 올바르게 깨닫고 인식하고 확인해야 한다. 너무나 유명한 구절인 요3:16을 바르게 알아도 이 표현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한다. 그런데 ‘영생을 얻게’라는 구절 앞에 ‘멸망하지 않고’라는 말씀을 하셨다. 굳이 이 말을 안 해도 되는 문장이다. 그냥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해도 아무 잘못이 없다. 그런데 굳이 ‘멸망하지 않고’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것은 영생의 반대가 멸망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해서 오해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멸망은 영생하지 않는 것이다. 영혼불멸설은 악인이나 의인이나 영생하는 것을 똑같은데 영생하는 장소가 다르다고 가르치는 주장이다. 악인도 영생하는데 다만 지옥 불속에서 영생하고 의인은 천국에서 영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영생의 반대는 멸망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 외에는 영생하는 생명이 없다. 성경은 그들을 생명이 없는 자라고 분명히 계시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1,12). 생명이 없는데 어떻게 영생한다는 말인가? 영벌(마25:46)은 생명이 없어지는 것을 뜻한다. 요3:16에서는 멸망이라고 하셨다. ‘생명 없는 자도 영생한다.’ 이런 터무니없는 엉터리 교리가 성경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성경을 확실히 할고 확신하고 증거 하자.
6월 28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넓은 평원이 아름다운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하나님의 산들은 높은 봉우리들을 뻗고 있다. 이 평화로운 평원에서, 이 생명 강가에서, 오랫동안 순례자요 방랑자로 살아온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은 그들이 거할 집을 발견한다. …거기서 죽지 않을 특권을 얻은 사람들은 창조력의 경이, 속죄애(贖罪愛)의 오묘를 결코 사라지지 않을 기쁨으로 명상한다. 하나님을 등한히 하도록 유혹하던 잔인하고 기만적인 원수는 더 이상 없다. 모든 능력과 재능은 증가되고 발달된다. 지식을 얻는데 두뇌가 피로해지거나 활력이 소모되는 일이 없다. 가장 큰 기도(企圖)도 실행되고, 가장 고상한 포부도 성취되며, 가장 높은 희망도 실현될 것이다. 그럴지라도 여전히 정복해야 할 새로운 높은 봉우리, 경탄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경이, 이해해야 할 새로운 진리, 마음과 몸과 영의 능력을 다 기울이게 하는 새로운 연구 대상들이 있을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75).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자녀들은 타락하지 않은 세계의 주민들의 지혜와 기쁨을 같이 나눈다. 그들은 여러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솜씨를 명상함으로 얻은 지식과 지혜의 보화를 같이 나눈다. 그들은 흐려지지 않은 시력으로 창조의 영광, 곧 별들과 태양계들이 모두 그들에게 정해진 일정한 궤도를 따라 하나님의 보좌를 돌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큰 것에 이르기까지 만물에 창조주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만물 안에 창조주의 능력이 표현되어 있다"(각 시대의 대쟁투, 677).
"대쟁투는 끝났다. 죄와 죄인들은 없어졌다. 온 우주는 깨끗해졌다. 오직 조화와 기쁨의 맥박만이 만물을 통하여 고동(鼓動)친다. 생명과 빛과 환희가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서 끝없는 넓은 우주로 퍼져나간다. 가장 작은 원자(原子)로부터 가장 큰 세계까지, 만물은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기쁨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678).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죄를 허용하시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자신이 사는 날 보다 더 오랫동안 고통당하는 인간은 없다. 그렇게 보면 수천 년의 죄 문제에 비해 인생은 얼마나 짧은 것인가? 이 관점은 악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답: 온 우주가 죄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기간을 주셨고 땅에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은혜의 기간을 허락하신 사랑이다(창1:28, 고후6:1,2).
2. 천년기라고 알려진 시간은 구원의 계획과 어떻게 조화되는가? 구속받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과 사랑을 확인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죄인에게 최종 심판이 내려진다면 하나님 성품에 대해 어떤 오해가 생길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답: 우주에 한점 의문도 없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기간이다.댓글목록
김종문님의 댓글
김종문 작성일
[성경절 오타] 알립니다.
수요일 <부가설명> 부분에서,
"알고도 잘못한 사람들은 오래 고통할 것이고 몰라서 잘못한 사람은 고통의 기간이 짧을 것이다(눅12:17,18)."
--- ( )안의 성경절을 [눅12:47,48]로 수정해주세요.
*글을 올리신 목사님의 부탁으로 대신 댓글을 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