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선교 -(요점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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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11-22 00:45 조회1,45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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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도움이 필요(必要)한 이들을 위(爲)한 선교(宣敎)
(11월 25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16분)
<기억절(記憶節)>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맥(脈)>
아담의 범죄(犯罪) 이후에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신체적(肉)으로나, 정서적(情緖的)으로나, 재정적(財政的)으로나, 사회적(社會的)으로나 문화적(文化的)으로 어떤 경우(境遇)나 상황(狀況)에서 도움들이 필요하다. 필요한 도움이 무엇이든 우리는 도울 수 있는 준비(準備)가 되어 있어야 하며 이들이 우리의 이웃이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爲)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傳)할 수 있도록 우리를 부르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이나 방법이 아닌 예수님의 방법을 따를 때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순수히 전하는 사역을 실천할 수 있다. 즉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를 이번 교과에서 올바로 잘 배워서 실천하자.
11월 19일(일) 친구(親舊)들의 믿음
(Q)~우리 주위(周圍)에는 가련하고 고통당하고 궁핍(窮乏)한 자들이 있다. 이러한 무력(無力)한 이웃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가? (누가복음 5:17~26, 마태복음 9:1~8, 마가복음 2:3~12절 참조)
(A)~<어떤 상황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이를 예수님께 데려와야 하는 이유>
⑴.예수님은 고통받는 사람이 누구이건 그들을 용서하고 치유하기를 갈망하는 위대한 의사이시다.
⑵.나의 소유(所有)와 생명(生命)은 하나님의 것을 인정(認定)하는 것
⑶.내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축복(祝福)
⑷.배운바 진리(眞理)를 실천(實踐)하는 것
⑸.죄악의 결과로 생기는 증상(症狀)은 예수님 만이 치유(治癒)의 근원
⑹.예수님 만이 구원(救援)과 영생(永生)을 얻는 유일(唯一)한 길
⑺.진정한 행복(幸福)은 사랑의 손길을 베풂에서
⑻.도움이 필요(必要)로 하는 사람의 해결자(解決者)는 오직 예수그리스도
⑼.도움을 베풂으로 나의 이기심(利己心)을 내려놓을 수 있음
⑽.위대한 구속(救贖)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동역자(同役者)
11월 20일(월) 오직 그리스도의 방법(方法)으로
(Q)~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사역(使役)에 대해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요? (요한복음 5:1~9절, 마가복음 1:23~28절 참조)
(A)~<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오직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⑴.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접촉하여 어울리고
⑵.동정심(同情心)이 있어야 하며
⑶.필요를 채워주고
⑷.상대에게 신뢰를 얻어야 하고
⑸.믿음으로 예수님께 인도(引導)한다..
⑹.내가 하는 것으로 생각지 말고 예수님의 종으로 임(恁)하라
⑺.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라
⑻.어떠한 댓가(代價)도 생각지 말고 오직 섬김의 자세로 하라.
⑼.오직 예수님의 말씀과 방법대로 하라
⑽.영혼 구원이 최상의 최고의 사역(使役)임을 기억하라
11월 21일(화) 이민자(移民者)와 난민(難民)
(Q)~성경에서 이민자(移民者)와 난민자(難民者)들에 어떻게 대하라 말씀하십니까? (신명기 10:19, 시편 146:9, 로마서 12:13, 레위기 23:22)
(A)~<이민자(移民者)=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여 사는 사람, 난민(難民)=전쟁이나 재난(災難)으로 곤경에 빠진 사람>
⑴.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신 10:19]
⑵.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도다. [시 146:9]
⑶.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롬 12:13]
⑷.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23:22]
⑸.문화와 언어가 다르고 의식주(衣食住) 및 재정적으로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다.
⑹.도움은 거창한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
⑻.특히 나와 종교적으로 다름으로 도움을 외면(外面)해서도 안 된다.
⑼.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웃으로 보내신 분으로 생각하라
⑽.우리는 다 같은 세상 나그네라는 사실이다.
11월 22일(수) 상처(傷處)받은 사람들을 돕기
(Q)~주님과 동역(同役)하기 위해 무엇이 중요(重要)하며, 어떤 원칙(原則)이 필요합니까? (눅 4:18)
(A)~<세상(世上)살이는 빈부귀천(貧富貴賤)과 남녀노소(男女老少)를 막론하고 상처(傷處)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⑴.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마음으로 도우라
⑵.먼저 진솔(眞率)한 기도를 하고 도우라
⑶.편견(偏見)이나 선입견(先入見)을 버리고 도우라.
⑷.하나님께서 주시는 개혁적(改革的)인 감화력(感化力)이 필요함
⑸.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이타적(利他的) 사랑으로 순수하게 도와주라.
⑹.내 자기 생각으로 하지 말고 주님의 심부름꾼으로 사랑의 전달자가 돼라
⑺.상대에게 부담이 없도록 사랑과 물질의 전달자로 처신하라.
⑻.하나님은 인간 대리자(代理者)들을 필요로 하신다.
⑼.연민(憐愍)의 정(情)으로 빛이 일어나게 하라.
⑽.진리(眞理)를 위해서 고난(苦難)당하는 사람들을 도우라.
11월 23일(목) 더 큰 사랑
(Q)~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한다면 수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즉 선교(宣敎)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기회이다. 그렇다면 “더 큰 사랑”이란 말씀의 의미(意味)는 무엇인가? (요 15:13)
(A)~<더 큰 사랑이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롬 5:6~8).>
⑴."예수님"은 자신을 버리시고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⑵.친구를 사랑하여 구원(救援)으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⑶.예수님의 모본(模本)은 그 사역(使役)의 어떤 성격(性格)을 말해주고 있다
⑷.우리가 아직 연약(軟弱)하고 경건(敬虔)치 아니한 자(者)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죽으셨다.
⑸.필요를 채워주시는 사랑을 말해주고 있다.
⑹.더 큰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영원(永遠)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⑺.남을 돕는 자는 하나님의 대리자(代理者)이다.
⑻."예수님"의 죽음은 인종, 국적, 빈부(貧富), 배경과 관계없이 모든 인류를 위함 것임을 기억하라
⑼.우리는 그 사람의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습니까?
⑽.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말미부록(末尾附錄)>***********
⑴.
“그대가 굶주린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색하게 빵 조각을 나누어 주었을 때, 그들로 하여금 몸에 스며드는 냉기를 피하도록 보잘것없는 의복을 주었을 때 그대는 영광의 주님께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는가? 그대의 온 생애 동안 나는 이 고통당하는 사람 가운데서 그대와 가까이 있었으나 그대는 나를 찾지 않았다. 그대는 나와 친근하게 교제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를 알지 못한다.”(소망, 640)
⑵.
“그분께서는 선에 대하여 악으로, 당신의 사랑에 대하여 미움으로 보답을 받으셨지마는 당신의 자비 사명을 꿋꿋이 행하셨다(시 109:5 참조). 그분께 은혜를 구한 사람 중에 거절을 당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분께서는 집 없는 방랑자로서 비난을 받고 날마다 궁핍하게 살면서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사람들의 재난을 덜어 주고 그들로 하여금 생명의 선물을 받아들이게 하시고자 탄원하는 생애를 사셨다. 완고한 자의 마음의 벽에 부딪혀 은혜의 물결이 되돌아올지라도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사랑은 다시 긍휼의 조수가 되어 더 힘있게 몰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장 좋은 벗이요, 자기들을 도와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을 버렸다. 그분의 사랑의 간청은 멸시당하고, 그분의 권고는 배척당하고, 그분의 경고는 조소를 받았다.”(쟁투, 20)
⑶.
“사도들은 신자들의 집회를 소집하여 성령의 지도에 따라 교회의 모든 일꾼에 대한 보다 나은 조직을 위해서 계획을 수립하였다. 사도들은 교회를 감독하는 영적 지도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 물을 나누어 주는 일과 그와 유사한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복음 전파 사업을 추진시켜 나가야 할 때가 왔다고 진술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과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혀 없으리라.” 이 권고를 따라 선택된 일곱 사람을 집사로서의 직무를 행하도록 기도와 안수로써 엄숙하게 구별하였다.”(행적, 89)
⑷.
“넓은 법정에는 열심 있고, 침착하지 못한 군중들이 운집하여 일어날 모든 것을 보고 듣고자 앞으로 몰려들었다. 높은 사람들과 낮은 사람들이 거의 다 있었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학식 있는 사람과 무식한 사람, 거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이 모두 다 같이 생명과 구원의 길에 대한 참지식이 부족하였다.”(행적, 494)
⑸.
그리스도께서는 이해를 넓게 하고 힘있게 할 이 거룩한 진리에 저희 심령을 열도록 그들을 초청하셨다. 그들의 유한한 지력으로써는 하나님의 신비들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무수한 사람들이 무신론자가 된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거룩한 능력의 경이로운 현시를 설명할 수 없으므로 그들은 이와 같은 능력의 증거를 거절하며 이것을 그들이 아직도 조금밖에 이해할 수 없는 자연 작용에 돌린다. 우리 주위에 있는 신비를 여는 유일의 열쇠는 그 속에 하나님의 완전하신 임재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물을 명하시고 집행하시는 우주의 창조주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넓은 견해와 그분의 섭리의 신비를 그들이 알 필요가 있다.”(소망, 605)
⑹.
예수에게 도움을 구한 자 중에 한 사람도 그냥 돌아간 자는 없었다. 이 불행한 사람은 구주를 찾기로 결심하였다. 동네에서 격리는 되었지만, 혹시 산길들 가운데 있는 어떤 샛길에서 그와 마주치거나 마을 밖에서 가르치실 때 그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난관은 많았지만, 이것이 그의 유일한 소망이었다.”(소망, 262)
⑺.
“중풍 병자를 멘 사람들은 몇 번이고 군중을 헤치고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헛수고였다. 이 병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자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갈망하던 도움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어떻게 소망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의 요청으로 친구들은 지붕으로 그를 운반하여 지붕을 뚫고 예수의 발아래에 그를 내려놓았다. 설교는 중단되었다. 구주께서는 신음하는 얼굴을 바라보시고 자기를 주목한 탄원하는 눈을 보셨다. 예수께서는 사정을 이해하셨다. 그는 이 당황하고 의심하는 심령을 자신에게로 가까이 이끄셨었다. 중풍 환자가 아직 집에 있을 때 구주께서는 이 사람의 양심에 죄를 깨닫도록 하셨다. 그가 죄를 회개하고 자기를 온전케 하실 수 있는 예수의 능력을 믿었을 때 구주의 생명을 주시는 자비하심이 먼저 그 갈망하는 심령에게 복을 주셨었다. 예수께서는 최초의 희미한 믿음의 빛이 예수가 죄인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믿음으로 자라나는 것을 주시하셨으며, 그 믿음이 예수 앞에 나오고자 노력할 때마다 더욱 강하게 자라나는 것을 보셨었다.”(소망, 268)
⑻.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그 비난에 답변하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친히 대답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영적으로 건강하므로 의사가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반면 세리들과 이방인들은 영혼의 질병으로 말미암아 죽어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의사로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가시는 것은 그가 하실 일이 아니었던가?”(소망, 275)
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34).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내일을 위한 도움을 주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인생행로에 대한 모든 지시를 한꺼번에 주지 않으신다. 그 까닭은 그들이 혼란하게 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기억하고 실행할 수 있을 만큼만 말씀해주신다. 주어진 능력과 지혜는 현재의 위기를 위한 것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오늘을 위한-“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약 1:5).”(소망, 313)
⑽.
“예수께서 믿음으로 아버지의 보호 안에서 쉬신 것처럼 우리도 구주의 보호 안에서 쉬어야 한다. 제자들이 예수를 의뢰하였다면 저들은 평안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위기를 당했을 때 저희의 두려움은 그들의 불신을 드러내 주었다. 그들은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예수를 잊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었던 것은 저희가 자기 의뢰의 절망에서 예수께로 돌아갔을 때뿐이었다.”(소망, 336)
⑾.
“우리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하나님을 의뢰해야 한다. 우리는 무분별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시험을 자초하지 않도록 생애의 모든 행동에 있어서 지혜와 판단을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물질을 무시하고 그가 주신 재능을 오용하면서 어려움 속으로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그의 교훈을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사업이니 우리가 남을 축복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야 한다. 자아를 중심으로 삼을 수는 없다. 자신은 하등의 명예를 받을 수 없다. 우리가 만일 우리 자기 생각대로 계획한다면 주께서는 우리가 실수하도록 버려두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부를 좇은 후에 우리가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우리는 낙담하여 물러설 것이 아니라 위기를 당할 때마다 무한한 자원을 자유로 쓰실 수 있는 분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자주 곤경에 둘러싸일 것이다. 이때 우리는 온전한 확신하고 하나님을 의뢰해야 한다. 주께서는 당신의 법도를 지키기 위하여 당하는 시련 때문에 곤란에 빠진 각 영혼을 보호해 주실 것이다.”(소망, 368)
⑿.
“예수께서는 그들을 잊지 않으셨다. 감찰하시는 자 예수께서는 해안에서 겁에 질려 태풍과 싸우고 있는 그들을 보셨다. 예수께서는 일순간도 당신의 제자들을 잊지 않으셨다. 예수의 눈은 깊은 우수를 띄시고 폭풍에 시달리는 귀한 짐을 실은 배를 좇으셨으니 이는 이 사람들이 세상의 빛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부드러운 사랑으로 그의 자녀를 보살피는 것처럼 긍휼히 많으신 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지켜보셨다. 그들의 마음이 진정되고 거룩하지 못한 야심이 가라앉고 겸손히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렸을 때 그들은 구조를 받았다.”(소망, 381)
⒀.
“이렇게 하여 “누가 내 이웃이니까”라는 질문은 영원한 답을 얻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이웃이 단순히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나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보이셨다. 그것은 인종이나 피부색이나 계급의 구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우리의 이웃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다. 대적에게 상처받아 죽게 된 영혼은 누구나 우리의 이웃이다. 하나님의 소유인 모든 사람은 다 우리의 이웃이다.”(소망, 503)
⒁.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이 세상은 거대한 나환자 수용소와 같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를 고치시고 사단의 포로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건강하였고 능력을 갖추고 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병자와 고통당하는 자와 귀신들린 자들에게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셨다. 그분은 당신의 치유 능력을 받기 위해 찾아온 자들을 한 사람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셨다. 그분은 자기에게 도움을 간청하는 자들이 그러한 질병을 스스로 끌어들인 것을 아셨으나 그들의 병을 고쳐 주기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로부터 흘러나온 치유의 능력이 이러한 불쌍한 영혼들에게 들어갔을 때 그들은 자기의 죄를 깨달았으며 많은 사람이 저희 육체적 질병과 함께 영적인 질병도 고침을 받았다. 복음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똑같은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왜 우리는 오늘날 그와 똑같은 결과를 보지 못하는가?”(소망, 823)
⒂.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갈 6:1) 믿음과 기도로써 원수의 세력을 물리치라. 상처받은 사람에게 치료하는 향유가 될 수 있는 믿음과 용기의 말을 하라.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인생의 큰 투쟁에서 용기를 잃고 낙담해 왔다. 그러나 이때 한마디의 친절한 격려의 말을 들었더라면 그들은 승리할 힘을 얻었을 것이다. 우리는 고통받는 영혼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그 위로를 나누어 주려고 노력함 없이 결코 그대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소망, 504)
(16)
“몹시 가난한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헌금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들은 자기들보다 더욱 곤궁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을 부정함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의 선물, 곧 극기의 열매는 향기로운 향처럼 하나님 앞에 올라간다. 그리고 자기희생의 모든 행위는 주는 자의 마음에 자비의 정신을 굳게 하고, 본래 부유하셨으나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셔서 우리로 당신의 빈곤을 통하여 부유하게 하신 분과 더욱 가까이 연합하게 한다.”(행적, 341)
(17)
“이 말씀은 분투하는 모든 영혼을 돕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바울은 완전의 표준을 세우고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바울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한다.”(행적, 482)
(18)
누구든지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특별히 의인으로 간주하였고, 따라서 구제라는 말은 의와 동의어가 되었다(참조 행 10:2~4 주석). 그러나 흔히 구제는 가난한 자를 돕는 일에 진정한 관심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의를 얻기 위한 바람에서 실행된다(마 6:1~4; 요 12:5 주석). 우리 동료 인간들의 감정과 필요에 대한 진실하고 동정 어린 관심은 “정결한 경건”(참조 약 1:27), 진실한 회심(요일 3:10, 14), 하나님을 향한 사랑(참조 요일 3:17~19; 4:21)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최상의 증거들 가운데 하나이다. (본교성경주석 눅 4:18).
(19)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마 7:29; 22:29; 막 12:37)>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에 손을 뻗쳐서 그들을 얻으려고 노력하셨다. 그는 그들의 이해력에 맞는 단순하고 명백한 진리를 제시하셨다. 그의 말은 참으로 단순하였다. 매우 가난한 사람들과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 그리고 무식한 사람들이라도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아무 사람도 이 세상이 알고 있는 교사 중 가장 위대한 그 교사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어마어마한 제목들이나 단어들의 뜻을 알아보기 위하여 사전을 찾아볼 필요가 없다. 제사장들과 율법사들 그리고 율법의 해석자들이 자기네들만 백성들의 교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분은 학문이 많은 이들 랍비를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셨다. (리뷰 1887.7. 19).
(20)
<하나님은 인간 대리자들을 필요로 하심(슥 4:12 주해 참조)>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실천함으로써 우리 앞에 행하는 의를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신 은혜에 보답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의 빛은 우리 앞에 호위가 되고, 우리의 보답은 주께 영광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보장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수 있는 자리에 그대로 계속 서 있도록 하자. 하나님과 연결되는 일, 곧 그분의 도우시는 손길이 되는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자.
(사 58:3~11, 화잇주석)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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