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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선교(질문, 대답, 설명) 11/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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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3-11-17 11:19 조회3,2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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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선교

(11월 25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16분)

 

연구 범위: 눅 5:17~26, 요 5:1~9, 신 10:19, 레 23:22, 마 25:34~40, 요 15:13.

 

기억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누가복음 5:17~26은 하나님께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우시는지에 대한 많은 예를 보여준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사용하시거나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신다. 이 일은 어려울 수 있지만 큰 보상을 가져온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움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따라 하는 것이다. 누가 도움이 필요한지 쉽게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쉽지 않다. 상황이 어떻든, 어떤 사람이던 관계없이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조력자로 부름받았다. 

성경은 우리가 낯선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의 신뢰를 얻을 때에 그들이 예수님을 발견하도록 돕는 더 나은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격려한다. 

이번 주 교과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선교"라는 주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의 필요는 신체적, 정서적, 재정적이거나 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다. 지역사회나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을 도와야 할 경우도 있다. 필요한 도움이 무엇이든 우리는 도울 수 있는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핵심적인 의미이며 선교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일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예수님은 문화나 사회적 장벽 없이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을 도우셨다. 

느끼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가신 예수님의 방법을 따를 때 우리는 그들을 도울 수 있다. 

행하기: 나의 생각과 문화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지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다. 

 

TMI 위로

2. 어떤 상황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이를 예수님께 데려와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눅 5:23~24) 

*답: 협력하여 생명 얻는 구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3.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셨습니까?(요 5:6) 

*답: 찾아가셔서 그의 필요를 물으시고 공급해셨다.

4.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신 10:19)  

*답: 우리는 다 같은 세상 나그네라는 사실이다. 

5. 주님과 동역하기 위해 무엇이 중요합니까? 어떤 원칙이 필요합니까?(눅 4:18) 

*답: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원칙이다. 

6. 차이가 있음에도 주변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요 15:13) 

*답: 친구를 사랑하여 구원으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7. 예수님의 모본은 그 사역의 어떤 성격을 말해주고 있습니까?(마8:28~34)  

*답: 필요를 채워주시는 사랑을 말해주고 있다.

 

결론: 오직 영혼의 유익을 위해 일하신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사람들을 돕고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그 일을 할 수 있다. 그분은 문화와 나라의 차이 없이 모든 이에게 복을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은 때도 순수하게 그들을 도와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나 문화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영원을 나누고 돕는 것이 선교의 핵심이다. 

 

11월 19일(일) 친구들의 믿음

 

복음서에 기록된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오기 위해 그의 친구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때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5:17~26을 읽어 보라(마 9:1~8, 막 2:3~12 참조). 이 이야기에서 선교와 사역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눅5:17~26]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답: 환자를 예수께 데려오기 위하여 친구들이 협력하여 그를 메고 예수께 왔고 사람이 너무 많아 가까이 가기 어렵자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와를 벗기도 지붕을 뚫어서 예수님 앞에 환자를 내려놓았다.

 

이 사람들은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옴으로써 그를 돌보는 책임을 감당했다. 하나님은 이 사람의 친구들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이 일에는 믿음, 행동, 인내, 그리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틀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로 나왔지만 장벽에 부딪혔다.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무력한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올 수 없었다. 친구들은 포기하지 않고 그 남자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가게 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지붕에서 친구를 내려보낸 것이다.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이 한 일을 인정하셨다(눅 5:20).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친구를 당신께 데려오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은 고통받는 사람이 누구이건 그들을 용서하고 치유하기를 갈망하는 위대한 의사이시다. 

엘렌 화잇은 우리에게 무력한 사람들을 돕도록 요구한다. “이러저러한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눈을 뜨고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라. 가련한 자, 고통당하는 자, 궁핍한 자들과 친분을 만들어라. 그들 앞에서 숨지 말고 그들의 필요를 모른 채 말라. 야고보서에 언급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가졌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누가 위대한 구속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애쓸 것인가?"(교회증언 2권, 29).

예수님은 무력한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친히 보여주셨고 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부르신다. 

먼저 우리는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의 필요를 알고, 마침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한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한 것처럼 우리도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렇게 해야 한다.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 예수께로 인도하라. 

 

<교훈>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친구들이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간 것처럼 우리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부가설명> 복음 진리를 중심으로 말한다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신 것이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고 도리어 섬기려하고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셨다(마20:28). 이 말씀은 단순한 말씀이 아니다. 예수께서 섬기려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눈에는 모두 생명이 없는 자들이다(요일5:11,12). 생명이 없는 자는 죽은 자들이다. 죽은 자들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그들을 처리하는 방법은 둘이다. 장례식을 해서 흙으로 돌아가게 하든지, 생명을 주어 살아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죽은 자들을 살릴 수 있다(요5:21,25). 예수님은 이 봉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는 섬김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셨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에게 생명을 받은 사람들도 예수님과 같은 섬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생명을 얻은 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 생명이 없는 사람이다. 전도는 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위에 있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교회에 나와도 참 생명을 얻는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 도움의 대상들이다. 생명을 얻은 사람들은 이들을 살리기 위하여 언제나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전도다. 고아, 가난한 자, 병든 자, 외로운 자들만이 아니다. 세상 사람 외롭지 않은 사람이 누구며 고아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 사람이 성장하면 다 부모님이 죽고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 사람들은 다 고아들이다. 하나님께서 고아의 아버지라고 하신 것은(68:5) 참 감사한 말씀이다. 살리는 일에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은 얼마나 명예로운 일인가!

 

11월 20일(월) 오직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다음 구절들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사역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요한복음5:1~9]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마가복음1:23~28]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답: 예수께서 필요한 사람과 접촉하신 것을 보여주고 그들이 필요를 아시고 그 필요를 채워주셨다.

 

엘렌 화잇은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기는 예수님의 방법 5단계를 보여준다. "오직 그리스도의 방법을 사용함으로써만 사람들을 접촉할 때 참 성공을 거둘 것이다. 구주께서는 사람들의 유익을 소원하는 분으로서 그들과 섞이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에 대한 당신의 동정심을 보여 주시고, 그들의 필요를 따라 봉사하시고, 그들의 신임을 얻으셨다. 그후에 그분께서는 “나를 따라오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셨다"(치료봉사, 143).

첫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알아가는데 시간을 투자하며, 선을 행하기 위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예수님께서 못에서 중풍병자를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보라. 예수님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요 5:3) 가운데, 바로 그곳에 계셨다.

둘째, 동정심을 나타낸다. 때로 친절을 가장하여 악행을 저지르는 이에 대한 불신 때문에 동정심을 보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동정심을 나타내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셋째, 그들의 필요를 채운다. 이것은 단순한 말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친구나 낯선 사람의 필요를 돌보려면 행동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원하는 것을 물으신 다음 그를 위해 기적을 행하셨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무력한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하심으로 그 상황을 온전하게 다스리셨다. 

넷째, 그들의 신뢰를 얻는다. 우리가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을 도울 때, 그들은 우리를 신뢰하고 우리가 그들에게 하는 말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들은 더 열린 마음으로 듣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육체적인 치유만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분 안에서 영생을 얻기를 원하신다(요 10:10 참조).

마지막으로,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한다. 여기에는 여러분 자신과 도움을 받는 사람 모두의 믿음이 필요하다.

 

<교훈> 예수님이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다가가셨던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때 그들을 구주에게로 인도할 수 있다. 

 

<부가설명> 우리는 때때로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수가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나 신변잡담을 하다가 복음을 전할 기회가 지나가버리는 경우다 많다는 말이다. 성경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은사이다. 그 어울리는 대상이 반드시 환자들이어야 할 이유는 없고 세상에서 소외되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으면 좋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일 때는 예수님을 확실히 만나도록 할 것이고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을 주도록 기도하고 노력하면서 내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보여주도록 하면 될 서이다. 첫째는 말로 진리와 복음을 소개하고 그렇게 하면서 삶으로 예수님이 드러나도록 보여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참 어려운 주문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그런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 기도와 말씀으로 나가면 열매 맺을 것이다. 자기 일을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마쳐야 한다. 결실은 성령님의 몫인 것을 알자.

 

11월 21일(화) 이민자와 난민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주제는 특히 오늘날 그 수가 매우 많기 때문에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쟁, 재해,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인해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은 채 절실히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마태복음 2:13, 14에 따르면 예수님도 난민의 신세였다. 그분의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헤롯의 살해 위협을 피해 밤에 베들레헴을 떠나 애굽으로 밤길을 떠나야 했다. 성경은 애굽에서 그들의 경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아마도 오늘날 난민들이 겪는 것과 같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예수의 가족이 이국땅으로 피란처를 찾아 떠났던 것과 비슷하게 많은 무슬림, 불교도, 힌두교도, 기독교인, 무종교인들이 오늘날 새로운 땅으로 망명을 시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같은 문화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는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가 더 쉽다. 하지만 생김새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같은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다른 음식을 먹는 이민자 및 난민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복음은 우리에게 민족적, 국가적, 문화적 안주지대에서 벗어나 아무리 우리와 다르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라고 우리를 부른다.

 

신명기 10:19, 시편 146:9, 로마서 12:13, 레위기 23:22을 읽어 보라.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주제는 무엇인가?

[신10: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시146: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롬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레23: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답: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것이다. 

 

이민자와 난민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일부 국가에서는 이들과 어울리거나 돕는 것이 정치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매우 힘든 시기를 겪었고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섬기기 위해 우리는 가능한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며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라. 이들을 돌보는 단체 중 어딘가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교회 안식일학교에서 이민자나 난민을 위한 사역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훈> 비록 우리와 다른 문화와 삶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라도 복음은 우리가 안주지대를 벗어나 그들에게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제공할 것을 권면한다. 

 

<부가설명> 성경은 인류의 모든 족속이 한 혈통으로 지어졌다고 계시하였다(행17:26,27). 그러나 창조주를 떠나고 사탄의 지배에 들어가면서 사망이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다. 전 인류가 연합하여 창조주를 대적하자 언어가 달라지고 흩어져 거주하는 지역이 달라지면서 소위 인종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다. 결과로 분열과 전쟁과 기후 관계 등 여러 가지 사실에 의하여 피부색도 달라지고 통일과 연합이 어렵게 되었다. 빈부귀천이 생기고 죽을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고 편하게 살려고 욕심을 부리면서 세상은 쑥대밭이 되었다. 창조주께서는 이런 세상을 불쌍히 여기신다. 아담의 모든 후손은 아담 안에서 다 죽은 자가 되었다. 그들은 삶은 썩어져가는 구습일 뿐이었다. 사람은 죽음을 향하여 시간여행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삶은 고달프고 방랑하는 나그네와 구걸하는 사람들과 난민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성도들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주님의 이름으로 이들을 도우는 손길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습3:12)라고 하였다.

 

11월 22일(수) 상처받은 사람들을 돕기

 

세상살이의 고달픔과 상처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부와 물질주의 가운데서 살든, 가난과 물질적 궁핍 가운데 있든 그것은 예외가 없다. 

사람들은 상처받고, 고통받으며 이에서 헤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예를 들어 서구 세계에서 매년 엄청난 금액이 항우울제에 지출된다는 사실은 물질적 부만으로는 행복이나 평화를 보장할 수 없으며 모두가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눅 4:18).

 

이 구절은 예수님이 하신 일과 자신의 영역에서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답: 자기가 살고 있는 주위에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이 진실한 것을 필요를 채워주는 삶으로 드러나게 하라는 사상을 가르친다.

 

하나님은 비록 그들이 언제 예수님을 받아들일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선교적 사명이지만,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손길을 내밀어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였고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도록 우리를 부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 

예수님이 도우신 모든 사람이 그분을 영접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우시려고 노력하신 예수님의 모범은 우리가 따라야 할 성경의 원리이다.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그들의 필요를 알아야 한다. 모든 문화마다 친구를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인도에서는 방문객을 대접할 때 음식이나 음료를 제공하는 것이 관례이다. 

낯선 사람에게 적은 돈을 주는 것은 쉬운 일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친구를 위로하는 것은 어렵다.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나 물질적인 것 이상일 것이다. 큰 상실을 겪을 때는 공감해 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수님과 동역하는 중요한 원칙은 도움을 주기 전에 우선 이타적인 사랑을 보이고 그 다음에 상대의 필요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상대가 예수님을 따를 준비가 되었는지 알 수 없더라도 그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라. 

 

<교훈>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지만 그렇지 않을지라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이타적 사랑으로 순수하게 도와주라. 

 

<부가설명> 마태복음 25:34~40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이 구절이 우리에게 주는 기별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영생하는 생명을 받은 사람은 그 생명이 작용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자라야 사람을 돌볼 수 있다. 여기 오른 편에 있는 의인들은 예수께서 인정하시는 일을 했으나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생명이 나타나는 생활자체였기에 의식에 없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일을 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은 기억할는지 모르나 본인은 의식하지 않았으므로 언제 그렇게 했느냐고 반문하였다. 이것이 돌보는 성도들의 당연한 모습이다. 이렇게 되면 알마나 좋을까?

 

11월 23일(목) 더 큰 사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한다면 수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가까운 친구든, 멀리 있는 난민이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며 우리는 돕기 위해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예수님은 지상 사역 내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우셨다.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나서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셨고, 어떤 경우에는 중풍병자를 지붕에서 예수님께 내려보낸 친구들처럼 주변 사람들이 앞장서서 데려왔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때 이 원리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답: 예수께서 그렇게 하셨으니 우리도 주위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생명을 얻도록 주신 은사를 따라 최선의 봉사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도록 생명력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한 선교사 가정이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6년 동안 사역했다. 처음 3년은 힌두교와 무슬림이 주를 이루는 공동체에서 살았다. 힌두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이 매년 자신들의 추수감사제 초대를 거절한다고 불평했다. 어느 날 이 그리스도인 가정이 새로 사귄 힌두교 친구의 추수감사제에 참석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사람들의 특별한 축하 행사 초대에 응하셨던 모범을 따라 그렇게 했다. 사실 힌두교에서는 방문객이나 친구가 초대한 사람의 집에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이번 주에는 누군가에게 축복이 되는 친구 사귀기를 시작해 보자. 먼저 자신이 속한 상황, 공동체, 마을 또는 도시를 살펴 보라. 그곳에 살고 있는 이민자나 난민을 알고 있는가? 당신과 한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가?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알고 있는가? 당신의 상황과 관계없이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자. 그분은 모든 사람을 알고 계시며 당신이 친구가 될 수 있는 낯선 사람을 알고 계신다. 

우리의 목표는 그들의 친구가 되어 진정한 도움이신 하나님께 인도하도록 돕는 것임을 기억하라. 

 

<교훈> 예수께서 자신을 버리시고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나의 생각이나 문화보다 더 큰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영원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부가설명> 성경은 예수님의 생명을 얻어서 그 생명 작용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게 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만일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는 사망에 거하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지적하였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3:14).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면 형제 사랑은 자연적으로 무의식 중에 생활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사랑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우리는 더욱 굴복하고 성령께서 온전히 자기를 주장하셔서 예수님의 어떠하심을 생활로 드러내도록 역사해주시기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더욱 기도하고 더욱 굴복하고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라고 고백한 그런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롬8:13), 곧 날마다 자아가 죽는 경험을 해야 한다. 성령님 부디 우리를 도우셔서 주님이 살고 자아는 죽게 복을 주소서.

 

11월 24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께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을 만나신 사례를 기록했다(마 8:28~34, 막 5:1~20). 마찬가지로 우리도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친구로 사귀고 그들을 섬기라는 부름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종, 국적, 빈부, 배경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남녀들이 그저 그들의 가정에 속한 사람들과 부한 친척들과 친구들에게는 사랑을 나타내면서 정작 필요를 채워줌으로 위로하고 축복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사랑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시키지 않고 있다 … 주님께서 가정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우리의 동정심의 범위를 넓히느라 가정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감소시키거나 우리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그보다 적게 사랑하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보다 우리가 우리의 애정과 동정을 집 안에만 가두어 두거나,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봉해 놓음으로써 그 축복을 다른 사람들이 함께 누리는 유익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엘렌 G. 화잇, 리뷰 앤 헤럴드, 1895. 10. 15.).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든 우리의 안주지대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이 되어야 할 책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친히 주신 타협할 수 없는 명령이다(행 1:8, 막 11:17).

 

가능하다면 영문으로 기록된 자료를 참고해 보라(A Few Days at Long Point. Ellen G. White: The Australian Years: 1891–1900, vol. 4, 100–104).

 

토의를 위한 질문

1. 당신의 안주지대는 어떤 것인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 밖으로 나가기로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스스로 답을 해보자. 

2. 예수님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 11:19)라고 조롱을 당한 사건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기에 그런 비난을 받았으며 그것은 선교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답: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달리 예수님은 그들이 무시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접촉의 범위를 넓히신 것을 비난한 것이다.

3.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들의 명절이나 축제에 어느 정도까지 참여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원칙을 타협하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답: 고전 9장에 있는 바울의 태도를 깊이 생각해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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