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참고 - 일곱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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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명훈 작성일19-01-31 10:49 조회2,537회 댓글0건본문
일곱 인 (계6장)
영적전쟁
첫 네개의 인을 떼자 등장한 것은 네 가지 색을 가진 말들과 그 탄자들(일명 ‘마병’)이었다. 말(horse)과 마병이 상징하는 바는 ‘전쟁’을 말하는 것 같다. 계시록 9장 7,9절에 “. . .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 . .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 . .” 등 이에외도 신구약 성경에 많은 구절들이 전쟁과 싸움에 등장하는 말을 언급한다. 본문(계6장)에는 또 다른 전쟁을 암시하는 단어들이 더 있다. ‘활’(2), ‘큰 칼’(4), ‘검’(8)이나 ‘이기고 또 이기려고’(2)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따라서, 네 개의 인과 네 말들을 출현이 상징하는 것은 전쟁 즉 ‘영적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인, 흰 말과 그 탄 자
첫째 인을 떼자 등장한 ‘흰 말과 그 탄 자’(2)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그리고 누구?)인가? 그 흰말을 탄 자는 ‘이기고 도 이기려고 하더라’ 한다는 짧으면서도 강렬한 모습으로 나온다. 첫번째는 ‘이기고’는 헬라어 현재시제(진행)로서 지금도 이기고 있음을, 두번째 ‘이기려고 하더라’는 헬라어 가정법으로서 종국에도 승리할 것을 가리킨다.
흥미로운 것은 계시록 19장 11-21절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백마와 그것을 탄 자’와의 유사성이다. 먼저, 다음의 본문을 읽어보자.
계 19:11-2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계 6:2의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와 계19:11의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를 원문으로 보면 아래와 같이 한글번역과는 달리 헬라어 한 글자의 차이도 없이 일치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6:2)
ἰδοὺ ἵππος λευκός καὶ ὁ καθήμενος ἐπ᾽ αὐτὸν (6:2)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 (19:11)
ἰδοὺ ἵππος λευκὸς καὶ ὁ καθήμενος ἐπ᾽ αὐτὸν (19:11)
‘흰 말’은 순 우리말로, ‘백마’는 한자어로 표현한 것이다. 한글번역자들이 왜 굳이 이렇게 달리 표현했는지 의아할 뿐이다. 원문을 직역하면, “보라! 백마(흰 말)와 그 위에 탄 자”이다. 아무튼, 첫째 인의 이미지인 흰 말과 그 탄 자는 계19장에 다시 등장하는 ‘백마와 그것을 탄 자’ 즉 예수 그리스도이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본문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계6장과 계19장의 시기는 차이가 있다. 첫째인의 흰 말과 그 탄 자가 ‘이기고 또 이기려고’ 했다고 했는데, 아마도 첫번째 승리는 본교회가 이해하고 있듯이 오순절부터 시작된 사도요한 당시 ‘복음의 승리’를 가리키는 것이며, 두번째 ‘이기려고 하더라’가 아마도 계19장의 궁극적(종말론적) 승리를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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