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5. 갈릴리 호수의 이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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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4-07-28 15:49 조회909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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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안교소그룹의 TMI나눔 : 1. 안으로-안교소그룹이 서로를 돌보고 연합하기 위한 나눔(인사, 환영, 출석, 공부 확인, 결석자 확인, 방문 계획)
2. 위로-교과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함)
3. 밖으로-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한 나눔(실천한 TMI, 실천할 TMI, 기도)
*시간에 제약을 받는다면, 한 주에는 이 주제를, 다른 주에는 다른 주제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해보자.
▣연구 범위 ∥ 막 4:35~41, 시 104:1~9, 막 5:1~43, 민 27:17
▣기억절 ∥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막 5:19).
▣핵심 ∥ 갈릴리에서의 이적들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분은 육적, 혹은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아시다.
*핵심어 : 누구이기에
▣도입 질문 : 당신이 경험한 가장 놀라운 일은?
⇒
▣요일별 고찰
일. 막 4:35~41의 사건에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광풍을 잠잠케 하심
예수님은 종일 봉사로 지쳐 제자들과 함께 탄 배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그 때 광풍으로 인하여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자 제자들은 두려워하며 예수님을 깨워 도움을 요청했다. 예수님이 명하시니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졌다. 제자들은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가”라며 놀랐다.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셨으나 제자들은 그분에게서 신성의 능력을 분명히 보았다.
월. 막 5:1~20에서 대쟁투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예수님은 귀신들을 제어하심
무덤 사이에 거하며 괴성과 자해를 일삼는 통제불가한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을 했다. 예수님께 도와달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나를 떠나달라,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귀신들의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다. 예수님은 그 귀신들의 부르짖음 속에서도 그 사람 내면의 간구하는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귀신들은 예수님께 자기들을 멸하지 말아달라, 돼지 떼 속으로 들여보내달라고 구했다. 귀신들도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한 것이다.
예수님이 허락하시자 귀신들은 2천마리나 되는 돼지 떼를 바다로 내몰아 몰살시켰다. 이는 한 사람 속에 얼마나 많은 귀신이 들렸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귀신들렸던 사람은 온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남의 재산에 손실을 입혔는가? 물론 예수님이 직접적으로 돼지 떼를 몰살시킨 것이 아니고 귀신들의 간청으로 그 일을 허락하셨으나 그렇다고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이 만물의 주인이심을 보여준다. 돼지 떼도 누구의 소유이기 전에 예수님이 원주인이시기에 필요하면 자기 뜻대로 처분하실 수가 있다. 또한 예수님은 그 것을 잃은 사람에게 그 보다 더 많은 것으로 갚아주실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은 세상의 어떤 보물 보다 한 영혼을 더 귀하게 여기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 마을 사람들에게 비난과 거절당할 것을 아셨음에도 대쟁투의 중심에 있는 그 영혼을 자유케 해주셨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첫째, 이 이야기에는 구약 율법이 말하는 부정하거나 의식적으로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다. 무덤과 죽은 자는 부정했다(민 19:11, 16). 피를 흘리는 것은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었고(레 15:) 돼지도 부정했다(레 11:7). 둘째, 더러운 것이 가득한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선과 악의 세력 사이에 오고 가는 싸움이다.
... 예수님은 고침받은 사람을 하나님의 증인으로 보내신다. 여러 면에서 이 사람은 전혀 선교사가 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는 전하고 싶은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
화. 막 5:21~43에서 두 사건에 관계된 예수님은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는가?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주심
본문은 야이로의 딸을 살린 사건의 중간에 혈루증 여인을 치유한 사건이 들어있는 샌드위치 구조의 이야기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회당장이었던 야이로가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간구했다는 것은 그의 딸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있었는지를 반증해준다. 그런데,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에 가시는 동안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절망에 빠져있던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치유를 받게 되었다. 예수님은 주변 사람들을 둘러 보시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다. 고침받은 여인의 감정은 주님이 야단치실까봐 격렬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여인의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치유하기를 원하셔서 물으신 것이었다.
분초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이렇게 지체하는 모습에 야이로의 감정도 격렬하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그 동안에 야이로의 딸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여자만 아니었다면 딸을 살릴 수 있었을텐데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야이로는 예수님께 먼저 민원을 접수했고 혈루증 여인은 나중에 나타나 민원을 접수하지도 않았다. 접수 순으로 민원을 해결해주는 게 정의가 아닌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선착순이 아니라 그분의 선한 뜻에 따라 일의 순서를 정하시고 행하신다. 주님은 노중에 혈루증 여인을 위해 지체하셨고, 야이로의 딸은 죽게 되었으나 그에게 치유 보다 더 큰 부활이라는 선물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셨으나 그분의 정체성은 점점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분은 소녀의 손을 잡고 ‘탈리타쿰’ 하고 말씀하신다. 마가는 이 말을 “소녀야 일어나라”라고 번역했지만 탈리타는 사실 “어린 양”이라는 뜻으로 가정에서 어린아이를 부르는 애칭이었을 것이다. 마가복음을 관통하는 계시/비밀 주제인 “이것을 알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은 도리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궁극적으로 그분은 숨겨질 수 없음을 알리고 있다.」
수. 1.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왜 그분을 배척했는가?(막 6:1~6)
⇒편견에 갇혀있었음
예수님의 이적과 능력, 자비하심에 대한 소문은 그분의 고향 나사렛에도 분명하게 들렸다. 보통 작은 마을의 사람이 유명해지면 고향 사람들도 그 영예를 함께 나누고 환대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을 당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지 목수의 아들로 알고 있었기에 그분을 그들의 지도자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기적을 가버나눔에서 행하신 것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불신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아무런 능력도 행하실 수가 없었다.
2. 막 6:7~30의 샌드위치 구조 이야기에서 제자들의 사명과 침례 요한의 참수는 어떻게 대조되는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침례 요한을 대신함
제자들이 예수 복음을 세상에 전하도록 보냄을 받았을 때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침례 요한은 죽임을 당한다.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다니라는 자시를 받았다. 이는 사람들과 유대감을 형성함으로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헤롯의 이중성과 그의 욕망을 이용한 헤로디아의 끔찍한 요구로 말미암아 희생되는 등 그들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표한다.
목. 막 6:34~52에서 예수님은 대중의 필요를 어떻게 채워주시는가?
⇒기도로써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킴
중요한 것은 기도하기 전에 오병이어를 제자들에게 드린 어린 아이의 희생과 그것을 다시 예수님께 드린 제자들의 헌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루 종일 굶주린 백성들을 보시며 목자없는 양처럼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배를 채워주셨다.
이로 인하여 백성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자칫 로마를 대항하여 군사반란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기세였다. 그러나 주님은 무리들을 해산시키심으로 그들이 기대하는 정치적 메시야가 아님을 분명하게 하셨다. 주님은 사람들이 그들을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로 받아들이길 원하셨다.
▣적용 : 예수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 나타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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