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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갈릴리 호수(湖水)의 이적(異蹟)들-(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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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4-07-29 12:22 조회1,0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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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갈릴리 호수(湖水)의 이적(異蹟)들

                        (08월 3일 (안) / 일몰: 오후 7시 38분)


<기억절(記憶節)>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막 5:19). 


<교과(敎科)의 핵심(核心)과 맥(脈)>

1.(마가복음 5장과 6장)에서 예수께서 귀신(鬼神)을 쫓아내고, 사람들을 고치고, 복음(福音)을 전파(傳播)하는 것과 같은 기적(奇蹟)을 행(行)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주 교과 연구(硏究)는 이러한 범위(範圍)의 주제(主題)를 다루는 두 장(章)에서 선택(選擇)된 사건(事件)을 검토(檢討)하여 맥(脈)을 잡을 것이다.


2. 이번 주 연구(硏究)에서는 예수님의 두 가지 기적(奇蹟)을 유념(有念)해 봅시다. 

(1). 첫 번째 이야기는 이방인(異邦人) 공동체(共同體)의 일원(一員)인 한 남자(男子)가 더러운 귀신(鬼神)에게 사로잡힌 이야기입니다. 

(2). 두 번째 이야기는 유대인 공동체(共同體)의 일원(一員)인 회당장(會堂長) 딸의 이야기와 열두 해 혈루증(血漏症) "더러운" 여자(女子)의 이야기입니다.


3. “마가”는 예수께서 이방인(異邦人) 공동체(共同體)인 “거라사”인(人)의 지방(地方)의 사람들에게로 여행(旅行)하셨고, "곧 무덤에서 나온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를 만났다"(마가복음 5:2)라고 전(傳)합니다. 이 만남의 결과(結果)로, 예수님께서 그 남자(男子)를 고치셨습니다. (마가복음 5:1~20)


4. 또한 “마가”는 예수님께서 두 여자(女子)의 치유(治癒) 사건(事件)을 기록(記錄)하고 있다.

 ①.회당장(會堂)의 “야이로”의 딸로 인하여 그분을 만나러 와서 "간절히 간청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나이다' 하니라" (마가복음 5:23).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고치셨습니다. 

 ②.열두 해를 혈루증(血漏症)이 있는 여자(女子)를 고치셨습니다. (마가복음 5:21~34)


<요약(要約)>

“마가”는 이번 주에 예수님에 관(觀)한 소개(紹介)로

①.모든 인간은 삶의 풍랑(風浪)가운데 즉 (천재지변(天災地變)의 재난(災難) 가운데에 사는 존재(存在)들이다.

②.모든 인간은 사단의 지배(支配) 아래 귀신(鬼神) 들고 질병(疾病)과 고질병(痼疾病)에 매여 살고 있으며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存在)들이다.

③.이방인(異邦人)도 유대인도 남자(男子)도 여자(女子)도 어린이도 어른도 난치병(難治病)과 죽음 앞에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사는 존재들이다.


☞.이와 같은 모든 악마(惡魔)의 세력(勢力)들이, 예수님께서 해결자(解決者) 되시는 분이심을 명심(銘心)하라.

☞.예수님의 능력은 이방인(異邦人)들 사이에서 선교(宣敎)를 시작(始作)하고 이방인(異邦人) 영토(領土)에서 미래(未來)의 사역(使役)을 예고(豫告)한다.

☞.마가복음 4장의 마지막 부분(마가 4:35~41)과 마가복음 5장의 시작은 유대인 환경에서 이방인 지역(異邦人地域)으로의 예수의 사역(使役) 전환(轉換)을 보여준다.

☞.구원(救援)의 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발견(發見)할 수 있다.


(07월 28일) (일) <폭풍(暴風)을 잠잠하게 하심>


(Q)~호수에 몰아치던 폭풍을 잠잠하게 하신 모습은 예수님에 대해 무엇이라고 증거하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마가복음 4:35~41, 시편 104:1~9)


(A)~<모든 인간은 두려운 삶의 풍랑(風浪)가운에 즉 (천재지변(天災地變)의 재난(災難) 가운데에 사는 존재(存在)들이다. 그러나 이에 해결자(解決者)는 예수님이시다 그분에게로 가지고 나가야 해결(解決)된다.>


⑴.바다에 광풍(狂風)이 불어 배가 침몰(沈沒)할 것 같은 위험(危險)이 닥쳤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웠을 때 예수님은 깨어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자 조용해졌다.

⑵.예수께서 바람과 파도(波濤)가 그치도록 명(命)하신다.

⑶.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 생각(生覺)하게 하였다.

⑷.예수께서 창조주(創造主)시며 천연계(天然界)를 주장(主張)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셨다.

⑸.장엄(莊嚴)한 정적(靜寂)이 호수(湖水) 위에 내릴 때 제자들이 그분이 행하신 신성(神性)한 능력에 두려워하며 경외(敬畏)하여야 할 것을 느꼈다. 

⑹.창조주(創造主) 하나님과 예수님은 같은 분이심을 드러내신다. 

⑺.성경에서 하나님 또는 그분의 천사(天使)가 나타나는 모습(模襲)을 묘사(描寫)하는 유형(類型)과 일치(一致)한다..

⑻.신성(神性)한 능력이 나타나며, 이것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진리(眞理)가 나타난다..

⑼.폭풍(暴風)을 잠잠하게 하신 것은 신성(神性)한 능력(能力)의 나타남이고, 제자들의 두려움은 인간의 두려움이다. 이러한 두려움의 본질의 해결자는 예수님이심을 교훈하고 있다.

⑽.폭풍(暴風)을 잠잠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제자(弟子)들의 질문(質問)을 통해 독자(讀者)가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스스로 찾게 한다.


(07월 29일) (월) <거친 울부짖음에 숨겨진 간구(懇求)를 들으시는가>


(Q)~ 거라사의 광인(狂人)을 회복(回復)하신 이야기는 어떤 특징(特徵)을 가지고 있습니까?. (마가복음 5:1~20)


(A)~<아무도 도무지 거친 그를 부드럽게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파괴적이고 무진장한 힘을 제어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광인(狂人)은 이러한 결박을 떨쳐버릴 정도로 괴력(怪力)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나”(우데이스) 그를 제어(制御)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자연계(自然界)를 지배(支配)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마가 4:35~41) 하나님의 권위(權威)로 영계(靈界)도 능히 지배하시는 초월자(超越者)이심을 드러내 보이셨다.>


⑴.그리스도께서 그 강(强)한 악마(惡魔)보다 더욱 강(强)하심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⑵.불쌍한 사람을 사탄의 손에서 구원(救援)해 주는 일이었다.

⑶.그리스도께서는 악마(惡魔)의 수중(手中)에서 인류를 구원(救援)하시기 위해서, 저 건너편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 오셔서 많은 광풍(狂風)과 풍랑(風浪)을 당하신 후에 구속(救贖)의 임무를 수행(遂行)하시고 저편으로 돌아가시었다. 

⑷.광인(狂人)을 대하기 전에 이미 귀신(鬼神)에게 나가라고 명령(命令)하셨다

⑸.마귀(魔鬼) 사탄은 침울(沈鬱)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섭게 발악(發惡)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광란(狂亂)하였다.

⑹.무덤을 만지면 부정(不淨)하게 된다고 (민수기 19:16) 절에 언급(言及)되어 있기도 하다. "더러운 귀신"은 사람들을 더러운 집단에 보내어 그 더러운 세력에 계속 포로(捕虜)가 되게 한다. 

⑺.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영혼(靈魂)을 사탄의 세력(勢力)에서 건져내어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구원(救援)하시는 것이다.

⑻.이 세상의 모든 비참(悲慘)한 사람 중에 그들이 가장 동정(同情)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마귀(魔鬼)의 세력이 너무나 강(强)하기 때문에 쇠사슬로도 묶어 놓을 수 없는 그의 경우는 모든 비참(悲慘)한 사람 중에도 최악(最惡)의 것이다.

⑼.이 사실은 또한 마귀(魔鬼)가 지배(支配)하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靈魂)에 대한 비참(悲慘)한 상태(常態)를 보여주는 것이다

⑽.예수님은 귀신(鬼神)들의 거친 소리에 숨겨진 광인(狂人)의 간청(懇請)을 들을 수 있었다. 아무도 도울 수 없었던 그를 예수님이 도우셨고 하나님의 증인(證人)으로 변화(變化)시키셨다.


(07월 30일) (화) <예수님과 함께 탄 롤러코스터>


(Q)~회당장(會堂長) 야이로의 딸과 열두 해 혈루증(血漏症) 여인의 사건의 특징(特徵)과 영적(靈的)인 교훈(敎訓)은? (마가복음 5:21~24, 마가복음 5:25~34)


(A)~여기서 꼭 내적(內的)인 고뇌(苦惱)로부터의 해방(解放)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關係)를 맺음으로써 얻게 되는 생명(生命)의 완전(完全)함을 의미(意味)한다.”라고 했다.


⑴.회당장(會堂長) “야이로”의 신분(身分)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존경(尊敬)받는 사회적 지위(地位)를 가졌다면 이 장면은 ① 예수를 최고의 지위로 높이는 절대 겸손(謙遜)의 모습이다.

⑵.회당장(會堂長) 야이로는 예수께서 그 손을 딸의 몸 위에 얹으면 곧 회복(回復)될 것이라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실로 회당장의 간청은 확신적이고 매우 구체적이다.

⑶.구원(救援)에 이르는 믿음은 진리(眞理)를 단순히 지식적(知識的)으로 인정(認定)하는 것이 아니다.

⑷.혈루증(血漏症) 여자(女子)는 모든 재산(財産)을 의사(醫師)에게 치료비(治療費)와 약(藥)값으로 다 바쳤으나 불치(不治)의 병(病)이라는 선언(宣言)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병자(病者)를 고치신 사실들을 알게 되자 그 여자(女子)의 소망(所望)은 다시 소생(蘇生)되었다.

⑸.그 여자가 거의 절망(絶望)하게 되었을 때 예수께서는 무리 사이로 가시면서 그 여자가 있는 곳에 가까이 오셨다.

⑹.(믿음으로 만짐) 병(病)이 완쾌(完快)된 것은 예수와의 표면적(表面的)인 접촉(接觸)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예수의 거룩하신 능력(能力)을 붙잡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⑺.고통(苦痛)당하는 그 여인(女人)은 고침을 받으리라고 믿고 손을 내밀어 예수를 만졌을 때 치유(治癒)하는 능력을 체험(體驗)하였다. 

⑻.신앙(信仰)에 관하여 경박(輕薄)하게 말한다든지 주린 심령(心靈)과 산 믿음 없이 기도(祈禱)한다든지 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⑼.그리스도를 다만 세상(世上)의 구주(救主)로 받아들이는 명목(名目)상의 믿음은 결코 심령(心靈)의 치유(治癒)를 받을 수 없다.

⑽.야이로와 한 여인(女人)은 대조적(對照的)인 인물(人物)이지만 믿음으로 놀라운 이적(異蹟)을 경험했다. 이 일은 그분이 누구신지를 말해주며 그 사실은 숨겨질 수 없음을 가리킨다. 


(07월 31일) (수) <배척(排斥)과 영접(迎接)>  


(Q)~ 예수님의 고향(故鄕)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배척(排斥)했는가? (마가복음 6:1~6)


(A)~①.예수의 고향(故鄕)은 나사렛이다(1:9, 24, 요 1:46). 이곳은 가버나움의 남서쪽에 있는 한적(閑寂)한 지방이다(마 2:23). 한편 “고향(故鄕)”으로 번역(飜譯)된 헬라어 “파트리스”는 원래 “조상(祖上)으로부터 살아온 곳”, “자기의 원(原) 출생지” 등으로 이해(理解)된다. 하지만 이 나사렛이란 장소가 예수의 출생지(베들레헴)는 아니라 해도 이곳 나사렛에서 30여 년간 자라났으며 또 가족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점에서 예수의 고향(故鄕)이라 할 수 있다. 

    ②.예수님을 인간의 육신(肉身)으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미천(微賤)한 집안 출신(出身)이었다. 랍비 교육(敎育)도 세상적인 가문(家門)도 초라했고 비천(卑賤)했다. 그러니 볼만한 것이 없었다. 


⑴.정치(政治), 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이 자기들의 기존질서(旣存秩序)나 이권(利權), 형식적(形式的) 율법주의(律法主義)가 침해(侵害)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배척(排斥)하였다. (마가 2:1~3:12)

⑵.실로 그들은 예수를 현상적(現象的), 육신적(肉身的), 신적(神的) 존재(存在)의 실상(實狀)을 파악(把握)하지 못함으로써(불신앙(不信仰) 함으로써) 결국 그분을 통해 실족(失足)하고 또한 그분을 배척(排斥)하게 된 것이다.

⑶.그들이 그리스도를 비난(非難)한 또 한 가지는 예수 친족(親族)들의 천(賤)한 신분(身分)에 대한 것이었다. 

⑷.예수의 신분(身分)에 대해서 오해(誤解)하고 걸림이 된 것이다(3절).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좋지 않은 선입관(先入觀)을 가진 것이며, 그리스도를 경멸(輕蔑)하는 태도(態度)를 보이게 된 것이다. 

⑸.마태는 나사렛에서의 두 번째 거절(拒絶)을 침례자(浸禮者) 요한의 죽음과 밀접(密接)하게 연관(聯關) 시킨다(마 13:53~14:12).….

⑹.마가는 이것을 세 번째 갈릴리 여행(旅行)의 사건들과 침례자(浸禮者) 요한의 죽음과 관련지어 제시(提示)한다(마가 6:1~30; 소망, 360)..

⑺.나사렛사람 사람들도 당시 사회적 명망(名望)과 출중(出衆)한 지혜(智慧)를 갖춘 예수의 인간적(人間的) 측면(側面)에 대한 시기심(猜忌心)과 평소의 예수에 대한 선입관(先入觀)에 빠져는 서 예수의 복음(福音)과 신성(神性)을 깨닫는 데 실패(失敗)하였다. 

⑻.고향(故鄕) 사람들의 예수 배척(排斥)은 결국 유대인들의 예수 배척(排斥)과 맥(脈)을 같이하며, 이는 이방인(異邦人)의 복음화(福音化)로 연결(連結)된다. (눅 4:16-30)

⑼.예수님 자신의 능력(能力) 결핍(缺乏)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믿음 결핍(缺乏) 때문에 방해(妨害)와 배척(排斥)을 받았다. (마 13:58).

⑽.진정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의 실존(實存)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예수 자신의 가족(家族)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예수의 평범(平凡)한 모습, 곧 자신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너무 집착(執着)했기 때문이었다


◎.침례 요한의 광야(廣野)의 소리와 같은 열두 사도(使徒)가 회개(悔改)하라는 선포(宣布)가 울려 퍼질 때, 요한의 맑고 우렁찬 목소리는 사라지고 그는 참수(斬首)당한다. 그러나 제자(弟子)들은 여전히 그의 외침을 계속했다.


(08월 1일) (목) <대중(大衆)의 기대(期待)와 다른 메시아> 


(Q)~예수님 당시(當時)의 메시아에 대한 대중(大衆)의 생각(生覺)과 대중(大衆)의 기대(期待)와 메시아의 사명(使命). (마가복음 6:34~52)


(A)~<①.그들은 방금 목격한 이적(異蹟)에 주의(注意)를 기울이지 않고, 예수가 자신을 왕위(王位)에 오르도록 허락(許諾)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失望)하는 데 주의(注意)가 쏠려있었다.

     ②.또 한 가지 주목(注目)해야 할 점은 무리들과 굶주려 있는 무리를 향(向)한 예수의 인간애(人間愛)는 애절(哀切)한 것이었다.

     ③.예수님의 감정(感情)은 무리의 영적(靈的)인 굶주림만 아니라 육체적(肉體的) 굶주림까지 걱정하며 애통(哀痛)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인간 사랑은 인간의 영(靈). 육(肉) 구원(救援), 즉 전인(全人) 구원(救援)을 원(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④.이 이적(異蹟)은 단지 “떡”이나 “오천 명”이라는 현상적(現象的) 사실에만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생명(生命)의 떡”으로 오신 예수의 “인류 구원(人類救援)”이라는 궁극적(窮極的) 목적(目的)으로 모든 독자의 눈길을 이끈다.


⑴.그들이 예수님을 왕(王)으로 추대하려는 마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⑵.그들은 그 자리에서 예수를 왕위에 앉히려 시도했다. (요 6:15). 

⑶.죽은 자를 일으키고 병든 자를 고치며 무리를 위하여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이는 확실히 이스라엘을 로마의 속박에서 해방할 능력이 있었다. 고 그들은 생각했다.

⑷.그의 지도(指導)하에선 이스라엘의 군대(軍隊)가 정복(征服)될 수 없을 것이고 정치적(政治的)인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희망(希望)이 현실화(現實化)될 것이었다. (마 3:2; 4:17; 5:2; 눅 4:19).

⑸.5,000명을 먹인 것은 방대한 군중(群衆)이 목격(目擊)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시대(時代)나 우리 시대(時代)의 회의론자(懷疑論者)들은 설명(說明)할 수 없는, 갈릴리 사역(使役)의 최고의 이적(異蹟)이었다. 

⑹.음식(飮食)을 분배(分配)하는 일에 제자들이 참여한 것은 전능자(全能者)와 협력(協力)하기를 원(願)하는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하늘의 복(福)을 사람들이 받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증거(證據)하였다.

⑺.제자들은 단순히 축복(祝福)의 통로(通路)였으며, 그들이 줄 수 있으려면 먼저 받아야 했다.

⑻.예수는 그에게로 나온 사람들의 영적(靈的)인 필요에 깊은 주의(注意)를 기울이는 것처럼 육체적(肉體的)인 필요에도 자상(仔詳)하다.

⑼.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奇蹟)의 영적(靈的) 교훈(敎訓)은 곧 풍성(豊盛)함은 하나님의 끝없는 자원(資源)과 “우리의 온갖 구(求)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엡 3:20) 공급(供給)하시는 그의 능력(能力)을 증거(證據)하였다.

⑽.예수님께서는 육체적(肉體的)인 필요를 충족(充足)시키기 위해 이처럼 마련된 식량공급(食糧供給)은 그들을 한(限)없이 더 중요한 영적(靈的)인 필요(必要)와 이 필요를 만족(滿足)시키는 수단(手段)인 생명(生命)의 떡으로 향(向)하게 하려고 의도(意圖)된 것이었다. (요 6:26~51).


◎.예수님은 로마에게서 해방(解放)시키시는 왕(王)이 아닌 죄(罪)의 속박(束縛)에서 건지시는 분이시다. 이적(異蹟)하며 자연(自然)을 다스리시는 그분은 자신을 십자가(十字架)에 주시기 위해 오셨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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