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내가 일어나는 때에 (질문, 대답, 설명) 0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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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02-01 22:33 조회3,101회 댓글0건본문
제6과 내가 일어나는 때에
(2월 10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4분)
연구 범위: 시 18:3~18, 41:1~3, 신 15:7~11, 시 82편, 96:6~10, 99:1~4, 롬 8:34
기억절: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시편 12:5).
우리만 악과 불의와 억압이 만연한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니다. 시편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어떤 차이가 있든 간에 시편은 이 세상과 우리의 시대, 그리고 시편 기자들의 세계의 폭력과 압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기도 하다.
주님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여 그 길을 돌이키기를 바라시며 오래 고통 받으시면서도 큰 인내로 진노를 참으신다(벧후 3:9~15).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적절한 때가 항상 인간의 기대와 일치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다가오고 있다(시 96:13, 시 98:9). 우리가 할 일은 그날이 올 때까지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다.
의와 공의를 보좌(시 89:14, 시 97:2)로 삼으시는 창조주만이 당신의 주권적인 심판으로 세상에 안정과 번영을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억압받는 자의 구원과 악인의 멸망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포함한다(시 7:6~17).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이며 언젠가 실제로 이루어질 일이지만 시편 기자는 우리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질 일이라고 강조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은 우리를 압제하는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느끼기: 하나님은 어려운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의 선한 계획을 따라 응답하신다.
행하기: 나의 어려운 문제도 하나님의 때와 방식대로 응답하실 것을 신뢰하여 하나님께 맡긴다.
TMI 위로
2. 하나님은 왜 자신을 권능의 전사로 표현하십니까?(시 18:13~15)
*답: 악과 죄를 정복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3.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을 “가난하고 궁핍한”자라고 표현한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시 40:17)
*답: 세상의 보편적인 사람의 상태를 표상하는 표현이다.
4. 하나님께서 왜 인간 지도자들을 심판하시며 그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시 72:2)
*답: 인간 지도자에게 공의를 시행하도록 맡겼기 때문이다.
5. 원수들을 향한 시편 기자의 분노와 그들을 위한 기도는 어떻게 조화를 이룹니까?(렘 29:7)
*답: 분노는 의분인데 하나님의 공의를 간구하는 말이고 기도는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하는 기도다.
6. 하나님의 심판은 왜 성소에서 이루어집니까? 성소는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시 96:13)
*답: 성소는 죄를 사하고 의를 이루게 하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다. 그러므로 심판이 거기서 이루어지는 것은 합당하다.
7. 주께서 일어서시겠다는 말은 시편 기자들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있습니까?(시 58:11)
*답: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이루신다는 약속이다.
결론: 시편은 불의와 억압이 만연한 시대의 어려움과 그 모습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기록하고 있다. 인간이 기대하는 때, 방법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시간에 주권을 보이실 것이다. 억압받는 자를 구원해 주시고 악인은 심판받게 되는 하나님께서 일어서실 때에 시편 기자의 간절한 기도는 선하게 응답될 것이다.
2월 4일(일) 권능의 전사
시편 18:3~18, 76:3~9, 12, 144:5~7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주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이 모습들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하나님을 어떻게 나타내는가?
[시18:3~18]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4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5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7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들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 8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9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도다 10 그룹을 타고 다니심이여 바람 날개를 타고 높이 솟아오르셨도다 11 그가 흑암을 그의 숨는 곳으로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 12 그 앞에 광채로 말미암아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고 지존하신 이가 음성을 내시며 우박과 숯불을 내리시도다 14 그의 화살을 날려 그들을 흩으심이여 많은 번개로 그들을 깨뜨리셨도다 15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 16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17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로다 18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시76:3~9,12] 거기에서 그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없이하셨도다 (셀라) 4 주는 약탈한 산에서 영화로우시며 존귀하시도다 5 마음이 강한 자도 가진 것을 빼앗기고 잠에 빠질 것이며 장사들도 모두 그들에게 도움을 줄 손을 만날 수 없도다 6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들었나이다 7 주께서는 경외 받을 이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8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9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 12 그가 고관들의 기를 꺾으시리니 그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
[시144:5~7] 여호와여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며 산들에 접촉하사 연기를 내게 하소서 6 번개를 번쩍이사 원수들을 흩으시며 주의 화살을 쏘아 그들을 무찌르소서 7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 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
*답: 대적할 자가 없는 전사(戰士)로 나타낸다.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항상 예비하고 있는 상태로 묘사한다.
이 찬송들은 주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악한 세력을 물리치시는 놀라운 능력을 찬양한다. 이 찬송들은 전사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위엄을 묘사한다. 시편에 자주 등장하는 전사로 묘사된 하나님의 모습은 당신의 백성의 부르짖음과 고통에 대한 응답의 엄중함과 긴급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고 지존하신 이가 음성을 내시며 우박과 숯불을 내리시도다 그의 화살을 날려 그들을 흩으심이여 많은 번개로 그들을 깨뜨리셨도다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시 18:13~15).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라는 분명한 결단과 그 강도는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큰 관심과 동정심, 또 악을 물리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행동하실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하나님의 종 다윗이 전쟁에 휘말렸을 때에도 구원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다윗 왕은 적들과의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그 모든 승리를 이루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찬양했다. 많은 성공과 승리의 공을 자신에게 돌리기 쉬웠겠지만 다윗의 마음가짐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있었다.
주님께서 전쟁을 위해 내 손을 가르치신다고 말하지만(시 18:34) 시편 어디에서도 다윗은 자신의 전투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신 주님께서 다윗을 위해 싸우시고 그를 구원하신다(시 18:47, 48).
뛰어난 전사로 알려진 것과 달리 다윗 왕은 시편에서 오히려 자신을 능숙한 음악가로 말하며 주님만이 그 백성의 유일한 구원자이자 보호자이심을 찬양한다(시 144:10~15). 주님께 드리는 찬양과 기도는 다윗의 힘의 원천이며, 그 어떤 전쟁 무기보다 강력한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신뢰와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교훈> 전사로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은 종들의 울분과 고통에 대한 긴급하고 엄중한 응답을 뜻한다. 우리의 전쟁도 주님께서 대신 싸우시고 구원하심을 신뢰할 수 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 삼위일명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자녀들, 곧 그분의 백성이 승리하도록 일하신다. 사실은 이미 예수님 안에서 승리가 확정되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 거하면 승리자이다. 계시록 2,3장의 교회마다 있는 ‘이기는 자는’이라는 말씀은 모든 시대 교회에 승리자가 있다는 것을 나타낼 뿐아니라. 그 이기는 것이 자기가 아니고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 안에서 이기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제가 열심히 싸우겠습니다.’가 아니다. 예수님의 승리 안에서 내가 이긴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라고 하셨다. 이겼는데도 환난을 당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도 이 세상에서 환난을 두려워하고 원망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낙담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승리한 자이다. 첫째부활로 승리가 증명된다. 이 승리를 확정 판결하는 심판이 조사심판이다. 성경은 이렇게 계시한다.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단7:21).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계13:7)라고 했다. 성도들이 작은 뿔 세력에게 이긴다고 한 곳이 없다. 작은 뿔 세력이 성도들을 이긴다. 그래서 인내하고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눅18:1). 승리자이신 예수님께서 그 원한을 반드시 풀어주신다(눅18:7,8). 그러나 재림하실 때까지 낙심하지 않고 견디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고 근심하셨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결코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도록 기도하고 성령님의 붙드심에 굴복하자.
2월 5일(월) 압제당하는 자를 위한 공의
시편 9:18, 12:5, 40:17, 113:7, 146:6~10, 41:1~3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기별은 무엇인가?
[시9: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시12: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시40: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시113:7]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시146:6~10]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시41:1~3]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3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답: 하나님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공의를 행하셔서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 궁핍한 사람, 억압당하는 사람, 고아, 과부, 홀아비, 나그네와 같이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을 향한 공의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신다. 시편은 구약 성경이 그러한 것처럼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출 22:21~27, 사 3:13~15).
많은 시편에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민족이나 종교의 범주로 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돌보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표현은 물질적 빈곤만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취약성과 무력함까지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에 호소하는 표현이며, 고통받는 사람을 도우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나타낸다.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표현은 또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고백하고 자기 의지와 자기 주장의 어떤 흔적도 포기하는 성실성, 진실성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연결된다.
또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시 41:1~3)은 하나님을 향한 그분의 백성들의 신실함을 보여준다. 약자에 대한 악행은 성경 시대에 특히 가증스러운 죄악이었다(신 15:7~11). 시편은 신실한 사람들이 모든 압제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도록 권면한다.
시편은 또한 유한한 사람의 방법을 지혜와 안전의 궁극적인 원천으로서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강조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인간 지도자와 제도가 궁극적인 구원을 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유혹을 물리쳐야 하며 그들의 방법이 하나님의 길과 다를 때에 더욱 그러하다.
주님은 가난한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스스로 가난해지셨으며 그분의 가난하게 되심을 통해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게 하셨다(고후 8:9).
그리스도의 부요함에는 죄로 인한 모든 압제로부터의 구원이 포함되며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을 약속하신다(계 2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재판관으로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모든 학대와 의무 태만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시편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마 25:31~46).
<교훈> 하나님은 가난하고 압제당하는 자들을 위한 공의를 보이신다. 이는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돌보심과 신자들의 그들을 향한 의무를 포함한다.
<부가설명> 가난한 자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가난하고 압제당하고 궁핍하고 또 고아와 과부는 이 세상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표상하는 상징적인 표현도 된다. 세상은 죄가 다스리는 나라다(롬5:17,21). 죄와 사망이 왕노릇하기 때문에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은 다 썩어짐의 종노릇한다(롬8:21). 가난, 궁핍, 고아, 과부 이런 표현은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 모든 사람들을 포괄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원래 창조한 세상과 같이 회복하실 것이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공의를 나타내시는 것은 세상을 심판하셔서 죄와 사망을 처리하시고 예수님 안에서 생명과 의를 완전히 세우실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이렇게 회복하는 것이 구원이다. 그 종결점이 예수님의 재림과 새 하늘 새 땅이다. 재난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나1:9). 성경은 모든 초점이 예수님이다. 성도가 진정으로 예수님 안에 있으면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지만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 할렐루야.
2월 6일(화) 너희는 언제까지 불의하게 판단하려 하느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정의를 유지할 수 있는 권위를 주셨다(시 72:1~7, 12~14). 이스라엘 왕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들의 권위를 행사해야 했다. 지도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그 땅의 평화와 정의를 보장하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이어야 했다. 그래야만 그 땅과 온 백성이 번영할 수 있었다. 왕의 보좌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으로 견고해지는 것이다.
시편 82편을 읽어 보라. 지도자들이 정의를 왜곡하고, 보호해야 할 백성들을 도리어 압제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시82:1~8]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2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셀라) 3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4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5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7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답: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시편 82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패한 지도자들에게 심판을 선포한다. 여기 "신들"(시 82:1, 6)은 이교의 신이나 천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공의를 집행하는 임무를 받은 적이 없기에 그것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심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편 82:2~4에 나열된 혐의들은 토라의 율법의 내용이며 "신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의미한다(신 1:16~18, 16:18~20, 요 10:33~35). 하나님은 "사람의 아들들"에게 공의롭게 판단하는지 물으셨고, 그들이 불의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형벌을 선포하셨다.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법, 즉 빛을 버렸기 때문에(시 119:105) 지식 없이 흑암 중에 비틀거린다(시 82:5).
성경은 주님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견해를 확고하게 지지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대표자로 임명된 인간 지도자들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신다(롬 13:1). 그러나 역사 이래로 오늘까지 이런 인간 대표자들은 얼마나 자주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잘못 행사해 왔는가?
시편 82편은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존귀한 "신들"이라고 여겼던 많은 지도자의 잘못을 비난하며 공개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도자를 "지존자의 아들들"로 부르시며 그분을 대표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지만, 이제는 그 악한 지도자들을 버리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모든 사람과 동일한 도덕법의 적용을 받는 유한한 존재임을 상기시키신다. 하나님의 법 위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시 82:6~8). 하나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며, 당신의 백성에게도 동일한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지도자와 백성 모두 거룩한 재판관의 모본이신 예수님을 본받으며 궁극적인 희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교훈> 땅을 다스리는 지도자도 주님의 다스림 아래 있다. 권세는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께 신실함으로 견고해지며 그들은 거룩한 재판관인 주님을 본받아야 한다.
<부가설명> 하나님이 세우신 인간 지도자들은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집행해야 한다. 로마서에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1,2)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냥 읽으면 납득하기 어렵다. 역사상 악한 통치자들을 생각할 때 그렇다. 현재도 국제적으로 또는 통치하는 스타일 등,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통치자와 지도자들이 있다. 그런 통치자 지도자도 하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창1:26~28에 의하여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악하게 하든지 선하게 하든지 그 권세는 창조 때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주신 것을 뜻하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권세를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분명히 2절에 말했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 또는 권위는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이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죄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속담에 사람에게 권력을 줘보면 그 사람됨을 안다는 말이 있다. 정말 허접한 권세라도 그것을 나타내는 모습에서 그의 인격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위와 직분을 바르게 수행해야 할 것이다.
2월 7일(수) 주의 분노를 부으시며
시편 58:6~8, 69:22~28, 83:9~17, 94:1, 2, 137:7~9을 읽어 보라. 이 시편들은 어떤 감정을 나타내는가? 이 시편에서 심판의 주체는 누구인가?
[시58:6~8] 하나님이여 그들의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 7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화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8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삭 되지 못하여 출생한 아이가 햇빛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시69:22~28]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23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24 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25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26 무릇 그들이 주께서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27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시83:9~17]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 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소서 10 그들은 엔돌에서 패망하여 땅에 거름이 되었나이다 11 그들의 귀인들이 오렙과 스엡 같게 하시며 그들의 모든 고관들은 세바와 살문나와 같게 하소서 12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 우리의 소유로 취하자 하였나이다 13 나의 하나님이여 그들이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 같게 하소서 14 삼림을 사르는 불과 산에 붙는 불길 같이 15 주의 광풍으로 그들을 쫓으시며 주의 폭풍으로 그들을 두렵게 하소서 16 여호와여 그들의 얼굴에 수치가 가득하게 하사 그들이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 17 그들로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놀라게 하시며 낭패와 멸망을 당하게 하사,
[시94:1,2]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2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시137:7~9]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답: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사 그들이 받아야 할 응당한 보응을 하시도록 간구한다. 심판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어떤 시편은 기자 자신이나 백성을 위협하고 해를 끼친 개인과 국가에 복수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한다. 이런 시편들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원칙(마 5:44)과의 명백한 불일치, 또 거기 사용된 거친 언어 때문에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압제 가운데 시편 기자의 분노는 합당한 것이다. 이는 시편 기자가 다른 사람들보다 옳고 그름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자행되는 악에 더욱 분노하며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어디에서도 자신이 복수의 주체가 될 것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보복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 시편은 하나님의 언약의 저주(신 27:9~16)를 상기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행동해 주실 것을 간청한다.
시편은 시편 기자의 단순한 기도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예언하며 선포한다. 시편 137편은 선지서와 마찬가지로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다른 나라를 황폐하게 한 바벨론의 행위가 그들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시편은 악이 결국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전한다.
보응은 공의와 은혜 가운데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나아가 그들의 회심을 바라도록 부름받았다(시 83:18, 렘 29:7).
이 시편들을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원칙에 맞게 해석하려 시도할 때에도 그 안에 표현된 고통스러운 경험을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고통을 아시며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 116:15, 개역)라는 말씀으로 그들을 위로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분의 백성에게 목소리 높여 모든 악에 대항하고 주님의 나라가 충만히 임하기를 구하도록 요구한다. 시편은 또한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변해 주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을 알고 계시고 머지않아 정의가 이루어질 것임을 알려준다.
<교훈> 시편의 거친 표현과 복수를 위한 기도는 의구심을 갖게 하지만 이는 정의에 대한 호소와 표현이며 그는 복수를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손에 맡긴다.
<부가설명> 분명히 잘못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정의를 무시하는 것이다. 시인은 이런 죄악에 의분(義憤)을 느낀다. 너무나 명백한 잘못을 보고도 의분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의 도덕적 양심은 마비된 것이다. 신앙 양심도 그렇다. 죄인과 악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도해야 하겠지만, 악이 자행(恣行)될 때는 그들의 악을 그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바른 일이다. 그들을 심판하사 응분의 보응을 받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은 신앙이다. 그들이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복수가 이루어져야 한다. 최후의 심판은 이런 모든 악과 죄를 완전히 처리하는 하나님의 정의가 시행되는 것이다. 오래 참으셨으나 끝내 회개하지 않으면 결과는 형벌과 사망으로 처리된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자비는 의롭고 또 가난하고 궁핍하고 힘없는 자들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인내하며 기다리라고 하신다.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은 신앙생활이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고 하셨을 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심판의 확실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2월 8일(목) 주님의 심판과 성소
시편 96:6~10, 99:1~4, 132:7~9, 13~18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심판의 장소는 어디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악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이해하는 데 성소는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시96:6~10]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7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8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10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
[시99:1~4]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2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 3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4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시132:7~9, 13~18]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8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9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옷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4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15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떡으로 그 빈민을 만족하게 하리로다 16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을 옷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이 외치리로다 17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도다 18 내가 그의 원수에게는 수치를 옷 입히고 그에게는 왕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
*답: 심판하시는 곳은 성소, 성소는 속죄를 위한 장소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베푸신 속죄를 거절할 때 정죄와 사망의 판결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성소가 심판의 장소가 되는 것은 합당하다.
주님의 심판은 성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소는 악의 문제에 대한 시편 기자의 이해가 변화된 곳이다(시 73:17~20). “우림의 판결”(민 27:21)과 대제사장의 심판의 흉패(출 28:15, 28~30)에서 알 수 있듯이 성소는 하나님의 심판의 장소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시편은 이제 곧 세상의 죄와 악을 심판하실 성소의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자주 묘사한다.
성소에서 구원의 계획이 계시되었다. 이교에서 죄는 주로 주술 의식을 통해 제거해야 할 육체적 오점으로 여겨졌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성경은 죄를 하나님의 도덕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은 그분이 공의와 의를 사랑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도 공의와 의를 추구해야 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
성소는 하나님의 보좌의 속죄소와 "의로운 제사"(신 33:19, 시 4:5)가 가리키는 대로 죄를 용서받고 의를 회복하는 장소이다.
하지만 "용서하시는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의 악한 행위를 갚아 주시는 분이시다(시 99:8). 성소가 하나님의 심판의 장소라는 사실을 실제로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끊임없이 자각하는 데서 나타나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고 의로운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
주님의 심판이 성소에서 시작될 때 의인은 평안하겠지만 악인은 멸망할 것이다(시 132:13~18).
성소는 특히 대속죄일에 주님께서 심판자로 오실 것에 대한 환희에 찬 기대로 가득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시편은 거룩한 심판자, 즉 하늘 성소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계 11:15~19)가 속히 오실 것이라는 확신을 강화한다(시 96:13, 시 98:9).
<교훈> 시편 기자는 성소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죄의 문제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졌다. 그곳은 그분의 법을 따라 은혜를 베풀고 또 심판을 베푸는 곳이다.
<부가설명> 성경은 하나님의 도덕법을 범하는 것을 죄라고 가르친다는 설명은 이해가 필요하다. 이 말을 요일3:4을 생각하게 한다. 죄는 불법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도록 결정하고 불법할 때 죄를 짓는 것이고 죄인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율법이 없으면 죄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은 죄가 율법이 없을 때도 있었다고 말한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5:13). 율법이 없으면 사람들이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이지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한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죄의 결과를 맏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롬5:14).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왕 노릇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율법이 없을 때 지은 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한다. 이 말은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는 말씀과 같은 뜻이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었을 때는 성문화한 율법이 없었다. 비록 그것이 하나님 보좌의 기초였지만, 아담 부부에게 성문화하여 주시지 않았다. 그들과는 두 나무로 제시된 언약을 맺었다(호6:7). 언약에는 약속과 조건이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2:25). 창조주께서는 창조한 사람에게 영생의 생명을 약속하셨다. 이 약속이 실현되려면 아담 부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는 것이 조건이었다. 그래서 생명 나무는 하나님의 약속을, 선악과 나무는 아담 부부의 조건을 나타낸다. 아담 부부는 이 조건을 어겼다. 그래서 그들은 생명에서 사망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 모든 아담 후손들이 사망이 되었다(고전15:22). 이것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고 말하였다. 모든 사람이 사망하는 것은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되었기 때문이다(롬5:12). 그래서 아담의 후손이 스스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지 않아도 이미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되어 있다. 이것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에 관한 성경의 대답이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월 9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산상보훈의 "팔복"(6~13, 29~35)을 읽어 보라.
시편은 불의에 관한 인간의 무관심에 대한 항의이며 악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거부이다. 그 마음은 복수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려는 열심에서 비롯된다. 악에 대한 하나님의 갚아주심을 보게 될 때 의인이 기뻐하는 것은 합당하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과 당신의 공의가 세상에 회복되기 때문이다(시 58:10, 11). 시편은 사람들에게 악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높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게 임하기를 구하라고 요구한다. 시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확신한다. 주님께서 일어서실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할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분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증거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야고보서 5장 10절)으로 우리에게 주셨다. 아담의 자손 중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었던 아벨은 순교자가 되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 노아는 광신자요 민심을 소란케 하는 자라는 조롱을 받았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히 11:35, 36절)다"(산상보훈, 팔복, 33).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세상에 편만한 악을 경험하는 고통은 주님이 세상을 실제로 통치하시는지 의심하게 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시험 앞에서도 굳게 서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키울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과 능력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성품에 대해 무엇을 발견해야 하겠는가?
*답: 이 세상이 죄와 사망의 세상이고 사람들은 다 사망의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면 이런 문제는 해답을 얻는다. 이런 의문에 대한 대답이 예수님과 그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2. 세상의 정의를 위한 궁극적인 지혜와 해결책으로 인간의 수단(지도자, 제도, 사회 운동)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인간은 치우침이 없는 공평이 불가능하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정으로 공평하시다.
3. 성소가 하나님의 심판의 장소라는 진리의 실제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답: 그곳이 속죄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4. 일부 시편의 거친 표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런 표현은 시를 쓴 사람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오늘의 우리를 어떻게 연결시켜 주는가?
*답: 의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의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의분에도 인간의 감정이 실린다. 아마도 피할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우리도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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