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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들(질문, 대답, 설명) 08/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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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7-31 08:01 조회1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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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들

(8월 8일 안식일/일몰 오후 7시 33분)

 

기억절: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

 

● 연구 범위 - 고전 12장; 엡 4:11-13; 고전 13장; 벧전 4:8-11; 고전 14:27; 암 3:7

 

 인간의 몸처럼 교회는 하나이면서도 각각의 역할, 기능, 은사를 지닌 여러 구성원으로 이루어진다. 이 영적 은사들을 사랑으로 활용하면 일체감이 생기고 삼위 하나님의 품성이 드러난다.

 이번 주에는 고린도전서 12-14장의 영적 은사에 관한 가르침을 살펴본다. 이 내용은 교회 내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행동을 다루는 더 큰 단락(11-14장)의 일부이다. 바울이 무엇보다 염려하는 문제는 무질서한 모임이다. 이 문제에 대해 그는 교회란 하나의 몸이며 몸의 지체는 저마다의 역할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기여한다고 설명한다(엡 4:12). 요컨대 하나님께서는 다양성을 통한 일치를 촉진하고자 교회에 영적 은사들을 주셨다는 것이다. 분명히 바울은 고린도전서 첫 네 장에서 언급된 분파 문제를 여전히 염두에 두고 있다. 교인들 간의 분열에 대한 해답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이다. 이제 그는 영적 은사의 역할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제시하면서 이 개념을 발전시킨다. 바울에 따르면 분열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의 연합이다.

 

말씀 속으로

“4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12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21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고전 12:4-12, 21-23)

 

토의 질문

1. 즐거운 마음으로 남다르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답: 각각 대답하자.

2. 하나님께서는 왜 저마다 다른 은사를 주셨을까요?

*답: 한 몸에 지체가 똑같다면 몸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3. 바울은 왜 여러 은사 중에서 무엇보다 사랑을 강조했나요?

*답: 그것이 다른 모든 은사들이 진정한 은사가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교회와 이웃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답: 성경 말씀의 지시를 따라 그대로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핵심 교훈: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시지만 그 목적은 경쟁이나 우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 되는 연합이다. 다양한 은사가 사랑 안에서 조화를 이룰 때 교회는 삼위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내게 된다.

 

8월 2일(일) 은사의 다양성

 

 고린도전서 12장 1절에서 바울은 ‘…에 대하여는’이라는 말로 새로운 화제를 꺼낸다. 그가 언급한 “신령한 것(spiritual gifts)”이 ‘영적인 은사’인지 ‘영적인 사람’인지를 놓고 학자들은 의견이 갈린다. 여기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톤 프뉴마티콘’은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하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성령의 은사를 언급한 12장 4절에 비추어 보면 ‘영적인 은사’ 쪽이 우세하다. 고린도전서 12장 2, 3절에서 바울은 예수를 주님이시라고 담대히 고백하는 것이 성령의 첫 번째 은사라고 지적한다. 신약 시대에 ‘예수가 주님이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카이사르는 주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행 17:7, 요 19:12, 15). 이것은 황제의 권력에 반하는 선동으로 여겨져 처형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박해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성령의 은사라고 예수와 바울은 힘주어 말한다. 사실 믿음은 가장 기본적인 은사이다. 당연히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의 목록에서는 믿음이 맨 처음을 차지한다. 믿음이 영적 은사라는 사실은 바울이 진술한 고린도전서 12장 9절에서도 분명해진다. 그러나 다른 은사도 많다. 갖가지 은사를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고전 12:11) 나누어 주신다는 사실에서 그 은사들이 모두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12장 1-6절을 읽어 보라. 여기서 강조점은 무엇인가?

[고전12:1~6]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답: 그리스도인의 모든 것을 친히 주장하시는 분은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성령께서 친히 이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이끄신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라는 표현의 반복은 은사의 다양성을 강조한다. 고린도전서 12장 1절에서 바울이 언급한 “신령한 것”은 4-6절에서 “은사(카리스마)”, “직분(디아코니아)”, “사역(에네르게마)”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전개된다. 이 용어들은 서로 다른 뜻을 지니지만 대구법으로 나열되었으므로 의미 차이를 세밀하게 구분할 필요는 없다. 또 영적인 은사들은 삼위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한 연합을 이루고자 계획된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엡 4:8-11). 신자들에게 은사를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지만 신자들이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고전 12:5, 6). 각 사람은 개별적으로 은사를 받지만(고전 12:11) 그 은사들은 모두 신자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교회에서 연합은 왜 중요한가요? 각자 은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부가설명> 교회 연합은 왜 중요한가를 물을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몸의 모든 지체가 몸에 붙어 있는 것이 왜 중요한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지체들이 몸에 붙어서 머리(뇌)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몸도 아니고 지체도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잃은 버려야 할 냄새나는 쓰레기일 뿐이다. 교인들이 이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으면 얼마나 좋을까? 통일된 교회 공동체에 상처 입히고 지체를 밀어내고 그렇게 하면 몸이 해체(解體)되고 몸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그러면 더는 완전한 몸도 아니고 해체된 지체들은 더는 지체도 아니다. 교회와 교인이 이 이치를 진정으로 깨달아서 지체로서의 직능을 묵묵히 충실하게 감당해야 건강한 몸이 된다. 지체가 아픈 것이 몸이 아픈 것이다. 지체들이 건강한 것이 몸이 건강한 것이다. 남은 자손으러서 우리교회가 정말 건강한 몸으로 몸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도록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무릎 꿇고 기도하자. 그리고 각각 지체로서 건강하게 직무를 수행하자. 

 

8월 3일(월) 다양성을 통한 연합

 

 고린도전서 12장 4-6절(같은 성령, 같은 주님, 같은 하나님)에 소개된 ‘하나 됨’의 표현은 12장 나머지 부분에서 확장된다. 바울이 “같은 한 성령”(11절), “한 몸”(12절), “한 성령”(13절), “서로 같이 돌보게”(25절)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연합의 개념과 함께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의 다양성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많은 지체”(12, 20절), “우리가…다…침례를 받아”(13절),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14절), “온몸”(17절), “각각”(18절), “몸의 지체”(22, 23절), “모든 지체”(26절) 등이다. 연합과 다양성을 모두 강조한다는 점에서 영적 은사의 목표는 다양성을 통한 연합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다양성 속의 연합은 하나님의 품성을 반영한다. 아버지는 한 위격이고 아들은 또 다른 위격이며 성령도 또 다른 위격이다. 삼위는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함께 사역하여 교회를 세우고 선교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신다(고전 12:4-6; 엡 4:11-13).

 

고린도전서 12장 12-31절을 읽어 보라. 많은 지체를 지닌 몸의 비유가 교회와 그 구성원을 상징하기에 적합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전12:12~31]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답: 몸은 많은 지체가 있고 지체는 각각 제 기능과 직무가 있고 가장 완벽한 유기체다. 교회도 예수님을 머리로 한 몸으로 유기체라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지시로 통일된 목적을 협력해서 이루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2장의 중심 사상은 몸의 지체가 제각각 사뭇 다르지만(15-20절) 서로를 의지한다는 것이다(21-26절). 발은 눈을 의지해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지를 안다. 반면에 눈은 아무것도 만지지 못한다. 만지는 것은 손만 할 수 있다. 어떤 지체는 다른 지체보다 더 약하거나(22절) 덜 귀하다는(23절) 생각은 잘못된 인식이다. 모두 다 필요하기 때문이다(22절).

 안타깝게도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는 어떤 은사는 중시하고 어떤 은사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잘못을 바로잡고자 바울은 사랑에 주목하라고 그들에게 권면한다. 사랑이야말로 “가장 좋은 길”(31절)이기 때문이다. 어떤 은사를 받았든 사랑으로 지혜롭게 활용할 때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

 

나의 삶 속으로: 고린도전서 12장 8-10, 28절, 로마서 12장 6-8절, 에베소서 4장 11절에 열거된 은사들을 살펴보십시오.

<부가설명> 몸의 지체들은 절대로 서로 다투지 않는다. 몸의 지체들은 계급이 없다. 각기 맡은 기능이 있을 뿐이다. 머리의 지시를 무의식적으로 수행한다.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몸의 지체가 고장이 나면 온 몸이 아프다. 지체를 치료해서 회복하려고 온 몸이 함께 일한다. 몸의 지체는 드러난 지체뿐만 아니다. 내장도 다 지체다. 내장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면 허물어진다. 그것들은 지탱해야 하는 뼈대와 살과 피부가 필요하다. 내장이 이것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서로 보호한다. 성령께서 교회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해서 설명하게 하신 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갈빗대가 ‘내가 없으면 폐도 심장도 위장도 제 기능을 못한다. 그러니까 내장을 지키는데는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교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 사람이 그것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교회 내에서 특권을 누리려고 한다면 그것을 도려내고 치료해야할 질병이다. 나는 지체로서 어떤 기능을 가졌는지 깊이 생각하고 묵묵히 건강하게 지체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면 그것이 곧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8월 4일(화) 더 좋은 길

 

“사랑은 여러 은사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은사를 궁극적인 목적에 이르게 하는 수단이다”(칼 P. 코사트, 고린도전서, 『앤드루스 성경 주석: 신약』, 1643.).

 

고린도전서 13장 1-7절, 베드로전서 4장 8-11절을 읽어 보라. 영적 은사와 관련해 사랑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고전13:1~7]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벧전4:8~11]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답: 모든 은사는 사랑을 실천하고 실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 은사가 참 은사가 되려면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동사들을 보면 사랑이란 감정이라기보다 실천임을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영적 은사는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바르게 활용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 언급된 은사들을 암시하면서 고린도전서 13장을 시작하는 이유는 사랑 없는 은사의 무가치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지식(고전 12:8)과 믿음(9절) 심지어 “산을 옮길 만한” 믿음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고전 13:2). 사랑이 없으면 방언하는 능력(고전 12:10, 28, 30)도 그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고전 13:1)일 뿐이다. 예언하는 중요한 은사 역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2절).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서 바울은 사랑이란 무엇이며 무엇이 아닌지, 더 구체적으로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동사들을 보면 사랑이란 감정이라기보다 실천임을 알 수 있다. 즉 바울은 사랑이란 ① 오래 참고 ② 친절하고 ③ 진리 안에서 기뻐하고 ④ 모든 것을 참고 ⑤ 모든 것을 믿고 ⑥ 모든 것을 바라며 ⑦ 모든 것을 견뎌 낸다고 말한다. 역으로 사랑은 ① 시기하지 않고 ② 자랑하지 않고 ③ 우쭐대지 않고 ④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고 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⑥ 쉽게 성내지 않고 ⑦ 앙심을 품지 않고 ⑧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는다.

 이 15가지 동사는 은사를 바르게 활용하는 확실한 지침이 되어 준다. 사랑의 참된 속성에 관한 이 진술은 정확히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 즉 바울이 영적 은사에 대한 갈등을 다루는 장들 사이에 놓여 있다. 사랑은 영적 은사를 지혜롭게 사용하는 열쇠이다. 또 사랑은 믿음과 소망과 나란히 자리하는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고전 13:13)이다.

 

 

나의 삶 속으로: 사랑은 왜 이처럼 신앙의 중심이 되나요?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자 무엇에 힘쓰겠습니까?

<부가설명> 성경이 계사히는 사랑은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낸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났는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사람이 죄인이 되어 사망의 존재가 되었을 때 그 사망을 예수께서 대신 당하시고 사람들이 사망하지 않고 영생의 생명을 얻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대하는 사람들에게 이 생명을 얻도록 하는 마음이나 태도가 없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이 사랑이 아니면 비록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고 해도 아무 유익이 없다. 우리는 사람을 대하면서 얼마나 자주 상대방의 생명력을 약화시키는가? 속상하게 하든지, 화나게 하든지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진정한 생명력을 풍성하게 하려는 삶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8월 5일(수) 방언의 은사

 방언의 은사란 무엇인가? 고린도전서의 이 은사는 성경 다른 곳에도 등장하는데(막 16:17; 행 2:1-13; 10:44-48; 행19:6) 성령께서 주신 외국어 구사 능력임이 분명하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8-10절의 은사 목록에서 방언의 은사를 언급한다(고전 12:28, 30; 13:1, 8 참조). 그리고 14장에서도 이 은사를 다시 거론한다. 방언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글로사’는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20여 차례 등장하는데 14장에만 15번 나온다.

 14장 21절에는 ‘헤테로글로소스(다른 방언)’라는 표현도 사용된다. 방언의 은사를 언급한 빈도가 높다는 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바울의 관심이 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이 은사를 오용하고 남용하는 바람에 공중 예배에 무질서와 혼란이 일어났다(고전 14:23, 27, 33, 40).

 

고린도전서 14장 5, 13, 26, 27절, 12장 10, 30절을 읽어 보라. 바울은 방언의 은사와 관련해 어떤 특별한 지시를 내리는가?

[고전14:5,13,26,27]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고전12:10,3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답: 방언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통역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방언의 은사에 통역의 은사가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 방언을 청중이 알아들어야 하기 때문이다(고전 14:9). 알아듣지 못하면 이 은사는 아무 유익이 없다(고전 14:6). 바울이 통역과 이해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분명 그는 방언의 은사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이 은사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다가 예언의 은사를 소홀히 한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 모두 외국어를 말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고전 14:5) 그렇게 되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고전 12:10). 따라서 “모든 사람이 성령의 침례를 받기 전에 방언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은 “고린도전서 12, 14장에 나오는 바울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이다(라울 데드랑,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교리·신학 핸드북』[서울: 한국연합회 성경연구소, 2019.], 712).

 

나의 삶 속으로: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거나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소통이 안 되었던 적이 있습니까? 외국어 구사 능력을 선교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또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부가설명> 성경이 말하는 방언은 사람들의 말이다. 그래서 사람의 방언이라고 했다(고전13:1) 이것은 하늘 언어도 아니고 천사의 말도 아니다. 바울은 이것을 ‘각종 방언’(고전12:10)이라고 했다. ‘각종’ 원어는 ‘게노스’다 이것은 ‘자손, 가족, 종족’이라는 말이다. 여러 종족의 말을 방언이라고 했다. 다른 종족의 말을 하는 것을 외국어로 말한다고 표현한다. 방언은 생명 복음을 듣지 못한 종족들에게 전할 때 전도자가 그 종족의 말을 하지 못해서 복음 전파의 길이 막히지 않도록 주신 은사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고전14:22)라고 분명히 계시했다. 사람들은 흔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14:2)는 구절을 인용해서 방언은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고 하나님과만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참으로 성경과 상관없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통역하는 은사를 왜 주시겠는가? 통역하는 사람은 그 방언을 알아듣고 사람들에게 알아듣는 그들의 말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방언하지 말고 혼자 하나님과만 말하라고 자세한 지시를 주셨다(고전14:28). 우리가 14:2을 들이대며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고 주장할 때 당황해서는 안 된다. 14:28을 잘 기억하고 대처해야 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서로 하면 피차에게 다 야만이 된다(고전14:11). 방언에 관한 바른 지식과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자.

 

8월 6일(목) 예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는 영적 은사에 관한 바울의 논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흥미롭게도 예언의 은사는 방언의 은사보다 먼저 언급될 때가 많다(고전 12:10, 28; 13:8). 방언의 은사가 먼저 언급되는 경우는 그 중요성이 예언의 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점을 강조할 때뿐이다(고전 14:4, 5, 6, 22).

 

에베소서 4장 11-13절과 고린도전서 14장 3, 4절을 읽어 보라. 영적 은사의 일반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또 예언의 은사는 특별히 무슨 목적으로 주어지는가?

[엡4:11~13]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고전14:3,4]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답: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며,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이다. 

 

 예언의 은사는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고전 14:3; 행 15:32). 이 구절에서는 예언이 미래의 예측보다는 현재의 삶에 관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스어 동사 ‘프로페튜오’는 ‘무언가를 미리 말하다.’ 혹은 ‘다른 이를 위하여 말하다.’라는 두 가지 뜻을 다 지닌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의미는 사도행전 2장 29-31절에서 사용됐는데(비교, 암 3:7) 여기서 다윗이 선지자라는 말은 ‘예견’에 해당한다. 두 번째 의미는 사도행전 15장 32절에서 사용됐다. 여기서는 유다와 실라를 선지자(예언자)라고 칭하지만 그들의 ‘예언’이란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고 굳게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11-13절에서 우리는 영적 은사가 사도 시대로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영적 은사는 마지막 때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행 2:39). 어쨌든 누군가 자신을 선지자로 내세운다면 그는 성경을 근거로 평가받아야 한다. 대체로 네 가지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무조건적인 예언인 경우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신 18:22; 렘 28:8, 9). 둘째, 그 메시지가 이전의 선지자들과 일치해야 한다(신 13:1-3; 사 8:20). 셋째,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이 일상생활에서 드러나야 한다(요일 4:1-3). 넷째, 거짓 선지자는 그의 열매로 알 수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듯(마 7:15-20) 참선지자 역시 열매로 판별된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언의 은사가 남은 교회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지적한다(계 12:17; 19:10).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예언의 은사가 엘렌 G. 화잇에게 주어졌고 그의 저술에서 나타난다고 믿는다.

 

나의 삶 속으로: 재림교회에서 엘렌 G. 화잇의 예언 은사를 믿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부가설명> 교과 이 질문 바로 앞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네 가지 기준으로 평가해서 합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성경을 살펴보면 예언자가 나타날 때에 관한 계시가 있다. 계시록 10:11이다.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이 말씀은 다시 예언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계시한 말씀이다. 그때가 언제인가? 그것은 계10:2에 작은 두루마리가 펴질 때다. 펴놓여다는 말은 그 두루마리를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구약 성경에 봉함 된 작은 두루마리는 다니엘서 뿐이다. 단12:4에 이 말을 봉인하라고 했다. 1,260일 후에 열릴 것이라고 암시했다. 단12:6,7과 계10:2~6을 읽으면 같은 사실의 다른 시대 장면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계10장은 다니엘 12장에 봉인한 두루마리가 펴지는 것을 보여주고 그것을 올바르게 깨달을 때가 이르면 다시 예언하는 일이 있을 것을 알게 하신 것이다. 또 계11장을 읽으면 성전을 측량하라는 지시가 있는데, 이것은 성소 진리를 연구하고 깨달으라는 계시다. 이런 일을 위하여 다니엘서의 봉인이 풀릴 그때 다시 예언할 종이 일어날 것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는 이 두 사실 예언과 역사의 성취에 의하여 엘렌 화잇을 바로 예언된 그 역사적 시점에서 일으킨 주님의 선지자로 믿는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신 반생들은 꼭 이해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8월 7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영적 선물(Spiritual Gifts) 1권』에서 로즈웰 F. 코트렐의 ‘영적 은사’(5-16)를 읽어 보라.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일터로 간다면 그분께서 함께하시어 영혼을 일깨우고 회심시키실 것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글을 잘 쓰는 이가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진실하고 열렬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은사를 지녔고 어떤 이는 노래를 잘 부른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료하게 설명하는 특별한 재능을 지닌 이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일꾼들과 협력하시므로 각 은사는 하나님을 위한 능력이 된다.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는 지혜의 말, 저 사람에게는 지식 또 다른 이에게는 믿음을 주신다. 그러나 모두 똑같은 머리 아래에서 활동해야 한다. 은사가 다양한 만큼 사역도 다양하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같은 하나님’(고전 12:6, 새번역)이시다.

 아무도 자신의 은사가 하찮아 보인다고 경멸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힘써 일해야 한다. 큰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불신하며 손을 놓고 있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자기를 쳐다보지 말고 지도자이신 주님을 바라보라. 온유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애정을 쏟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리뷰 앤드 헤럴드, 1906. 4. 12.).

 “우리 각자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생각 속에서도 일하신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다양한 은사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는 목적 아래 서로 어우러진다. …우리는…손에 손을 잡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한다”(하늘을 향하여, 141).

 

함께 나누기

1. 예언의 은사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라. 왜 통역되지 않는 방언보다 예언이 더 중요한가? 필요하다면 고린도전서 14장을 다시 읽고 바울의 논지를 되짚어 보라.

*답: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피차 야만이 되게 할 뿐이다. 예언은 분명한 자기들 말로 전하여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2. 교과 시간에 엘렌 G. 화잇의 생애와 사역에 관해 이야기해 보라. 왜 우리 교회는 그녀에게 예언의 은사가 나타났다고 믿는가? 이 은사로 교회는 어떤 유익을 얻는가? 이 은사를 바르게 활용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답: 목요일 부가설명을 읽어보라. 그의 글은 바른 믿음으로 이끄는 경건의 권고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3.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 주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그 사랑의 진실성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런 사실은 바울이 영적 은사와 관련해 사랑을 강조한 이유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가?

*답: 영원한 생명력을 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 사랑이 아무리 중요해도 왜 그것만으로는 누군가의 말이 진실한지 또 들을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할 수 없는 것일까?

*답: 사랑을 나타나는 동정이나 베푸는 모습으로만 생각할 때 속을 수 있다. 그들이 베풂이 성경과 일치하는지 물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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