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제2과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질문, 대답, 설명) 01/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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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01-05 02:08 조회3,827회 댓글0건본문
1제2과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1월 13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34분)
연구 범위: 시 105:5, 골 3:16, 약 5:13, 시 44:, 시 22:, 시 13:, 시 60:1~5
기억절: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눅 11:1).
학습되지 않은 자발적인 기도만이 진정한 기도라는 믿음이 일부 기독교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그들은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서인 시편을 성경의 중심에 두셨다. 그것은 그저 고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기도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어떻게 기도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기 위해서이다.
시편은 초기부터 예수님의 기도를 포함하여 하나님 백성의 기도를 형성해 왔다(대상 16:7, 9, 느 12:8, 마 27:46, 엡 5:19). 이번 주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인생의 여정을 통과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데 시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시편은 기도문이기 때문에 신학적 유익뿐만 아니라 개인 기도와 공동체의 기도를 풍요롭게 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하다.
시편의 기도는 많은 신자들이 규칙적이고 충만한 기도 생활을 세우고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어 왔다.
이번 주에는 특별히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 관한 시편을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시편은 기도와 찬양을 가르쳐 주며 우리의 기도와 찬양을 새롭게 해준다.
느끼기: 기도와 찬양이 나오지 않는 현실에서도 기도하고 찬양하는 은혜를 경험한다.
행하기: 나의 고난만이 아니라 모두가 겪는 어려움을 살피면서 예수님처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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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편을 어떤 방법으로 묵상하며 개인적으로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까?(골 3:16)
*답: 기도생활과 예배에 활용하면 좋다. 묵상은 시편을 읽고 그 내용을 영적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3. 시편의 기도에서 발견하는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까? 그것은 어떤 유익을 줍니까?(시 44:)
*답: 우리를 돌보지 않는 하나님인 것처럼 표현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은혜를 베푸시는 다른 방법임을 깨닫게 한다.
4. 시편에 나타난 고난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시 22:22)
*답: 형제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5. 고난 중에 기도할 때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어떤 것입니까?(시 13:1)
*답: 고난을 솔직하게 펴현하지 않고 하나님을 우려워하는 실수가 아닐까?
6. 고난 중이 아니라도 애가의 시편을 기도하는 것이 유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시 60:5)
*답: 세상 자체가 고난의 현장이다.
7. 유혹과 두려움 중에 예수님이 시편을 활용한 것은 시편이 어떤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까?
*답: 용기와 위로와 약속을 믿는 믿음의 유익이 있다.
결론: 우리는 매우 필수적이고 유익한 기도를 시편에서 배울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더 솔직하게 하나님과 동행 하도록 도와준다. 시편 기자는 고난 가운데서도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기다린다.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경험이며 성령께서 이 일을 이루어 주신다. 시편은 우리의 눈을 크게 뜨고 더 넓게 보게 하며 예수님의 모습을 따르게 한다.
1월 7일(일) 우리의 기도에 시편 활용하기
시편 105:5, 골로새서 3:16, 야고보서 5:13을 읽어 보라. 시편은 예배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시105:5,6]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6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약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답: 성경 역사를 기억하고 시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고난과 즐거움에 시편의 찬송을 사용하였다.
시편을 일상에 활용하는 간단한 방법은 매일 시간을 내어 시편 1편부터 시작하여 순서에 따라 한 편씩 읽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애가, 감사의 시, 찬송, 참회의 시,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를 구하는 지혜의 시, 역사 시, 분함과 노여움을 담고 있는 시, 순례의 시 중에서 현재 자신의 상황에 맞는 시편을 읽는 것이다. 이번 기 동안 우리는 이런 여러 가지 시편들을 살펴보고 각 시편이 기록된 맥락에 대해 공부할 것이다.
그렇다면 시편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먼저 시편을 읽고 간단한 묵상을 한 후 기도해 보라. 시편을 묵상한다는 것은 기자가 하나님께 말하는 방식과 기도의 이유 등 시편의 다양한 측면을 묵상하는 것을 포함한다. 자신의 상황이 시편 기자의 경험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그리고 시편이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라. 당신은 어느새 시편의 내용과 경험에 공감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놀라게 될 것이다.
시편의 어떤 내용이 당신의 삶과 상충된다면, 그 시편이 현재 당신이 바라는 무언가 잘못된 희망을 바르게 권면하고 있는지 깊이 묵상해 보자. 그리스도의 인격과 구원 사역, 그리고 그 사역이 우리에게 주는 궁극적인 소망에 비추어 시편의 기별을 묵상해 보라. 성경의 모든 부분을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의 빛에서 살펴보는 것은 항상 도움이 된다.
시편이 말해 주는 기도의 새로운 동기를 찾고, 그것이 당신과 교회, 그리고 세상에 미치는 중요성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 당신의 말씀을 그대의 마음과 생각에 새겨 달라고 간구하라.
시편 말씀이 당신이 아는 누군가의 상황과 일치한다면, 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 하라. 시편은 삶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고 있다. 그것이 그대에게 말하는 것을 읽고 마음에 받아들일 때 그대의 삶이 풍요롭게 될 것을 잊지 말라.
<교훈> 시편의 말씀은 우리의 일상의 경험과 일치하기도 하고 상충되기도 한다. 그 말씀을 마음과 생각에 새기고 활용하며 기도할 때 우리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있다는 것은 기록된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생활을 주장하는 것으 뜻하는 말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사람이다. 중생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다. 물은 침례라고 벧전 3:21에 설명했다. 성령으로 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벧전 1:23에는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났다고 기록했다.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63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영, 곧 성령으로 나는 것도 예수님의 말씀으로 나는 것이라고 이 말씀에 의하여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말씀으로 난 사람들이다. 눅8:11에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설명했고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씨가 있다고 요일3:9에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사랑이다. 당연히 사상과 언어와 감성과 생활태도가 기록한 말씀대로 하게 된다. 이유는 그가 말씀으로 난 말씀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한다고 한 것이다. 재림 성도는 진정으로 말씀의 사랑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것이 그런 모든 경험을 위한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일 수밖에 없다. 성령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완전히 주장하시도록 기도하자.
1월 8일(월) 환난 때의 도움
많은 그리스도인이 절망과 고통 속에서 지금 주님은 과연 어디에 계신지,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두시는지 묻곤 한다. 시편 기자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기록했다.
시편 44편을 읽어 보라. 이 시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것이 모든 시대의 신자들에게 의미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44:1~26] [고라 자손의 마스길(교훈),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2 주께서 주의 손으로 뭇 백성을 내쫓으시고 우리 조상들을 이 땅에 뿌리 박게 하시며 주께서 다른 민족들은 고달프게 하시고 우리 조상들은 번성하게 하셨나이다 3 그들이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그들을 기뻐하신 까닭이니이다 4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5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6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 7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8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셀라) 9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0 주께서 우리를 대적들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 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흩으셨나이다 12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 그들을 판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13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14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15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16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 17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18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19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2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21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23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24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답: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언하셨으나 또 그들에게 고난도 허락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여 구원을 호소하는 말씀이다. 처한 현실을 솔직하에 하나님께 토로하였다.
교회 예배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공중 기도에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와 단어를 사용하는 시편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제한은 우리가 삶의 어두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고 불안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고통이 닥쳤을 때 때때로 하나님이 우리를 불공평하게 대하신다고 느낄 수 있지만, 공적 예배나 개인 기도에서 그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생각한다.
이런 주저함은 예배의 본질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감정과 견해를 솔직하게 드러내 놓고 표현하지 못하면 종종 우리는 감정의 속박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고 우리를 그분과 멀어지게 만든다. 시편의 기도는 기도하고 예배할 때 우리의 경험을 비난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 준다. 예를 들어, 시편 44편은 예배자들이 무고한 고통의 경험을 자유롭고 적절하게 표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시편을 기도하는 것은 기도할 때 자유롭게 마음을 표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시편은 우리가 찾을 수도 없고 감히 말할 수도 없는 표현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시 44:18, 19).
그러나 시편 44편이 어떻게 시작하는지 주목해 보라.
기자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행하셨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기자는 "내 활을 의지하지"(시 44:6) 않고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여전히 고난이 닥쳐온다. 슬픔과 애통의 목록은 길고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이 모든 가운데서도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시 44:26)여 달라고 간구한다. 고난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실재와 그분의 사랑을 알고 있다.
<교훈> 시편의 슬픔과 애통의 목록은 길고도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그런 때 기자들처럼 솔직하게 기도함으로 주님과 여전히 동행하며 신뢰하는 것을 나타낼 수 있다.
<부가설명>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다. 관계가 원만하고 좋은 부자 관계에서는 불편한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런 불편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감추는 것은 서로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상태다. 나는 요나 선지자의 불평과 그에게 대응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읽을 때 참 감명을 받는다.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는 우리 아버지시다. 사랑의 아버지시고 자비의 아버지시다. 그렇다면 마음놓고 불평도 할 수 있고 내 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 있지 않겠는가? 시편 시인들은 자기 심경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원수를 갚아달라고 호소하고 그 원수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강하게 아뢴다. 우리가 그런 시편을 복수(復讐) 시편이라고 말한다. 그런 시편을 읽을 때 그 표현이 마음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해서 독자가 불편을 느낄 때도 있다. 그렇게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는다. 이런 표현들은 시인이 그가 믿는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하는지 그 믿는 마음을 전달한다. 우리도 하나님께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그분이 참으로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이심을 드러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두 사이에 아무 막힌 것이 없는 친교를 나타내는 표현들이라고 깨달을 수 있다. 감사합니다.
1월 9일(화) 절망 중의 노래
시편으로 기도하는 것은 예배자들이 기도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의 경험을 살펴보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그것을 견딜 수 있게 한다.
시편 22편을 읽어 보라. 이 시편에서 큰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인용하는 시편 전편을 다 읽어보라고 하니, 공부하는 분들이 찾아 읽기 바란다. 성구를 여기 저기서 인용한 것이 아니므로 찾아 읽는데 번거롭지 않을 것이다.
*답: 시인이 하나님이 자기를 버린 것처럼 느낀 것을 고백한 시이다. 그러나 결론은 그런 중에도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나타내고 회복을 경험한다.
시편 22:1의 탄식하는 말은 고통받는 사람들이 슬픔과 외로움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직접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시편이 그리스도의 경험에서 얼마나 중심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으로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마 27:46).
그러나 고통과 시험 속에서도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시 22:22)겠다고 기자는 말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감정이 기자가 현재 경험하는 진퇴양난의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을 수 있지만, 기자는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고 있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시편은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말씀을 제공하면서 현재 상황 너머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삶이 회복될 때를 바라도록 가르친다.
시편을 기도할 때 예배자들은 새로운 영적 지평으로 나간다. 시편은 예배자들이 자신의 감정과 이해를 표현할 수 있게 해주지만, 그들은 처한 상황에 그대로 내어둔 바 되지 않았다. 예배자들은 고통, 실망, 분노, 절망의 짐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을 신뢰한다.
많은 시편에서 볼 수 있는 탄식에서 찬양으로의 변화는 신자들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받을 때 경험하는 영적 변화를 의미한다.
<교훈> 시편 기자들은 큰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중에 기도와 찬양으로 변화를 경험하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삶이 회복될 때를 바라보게 한다.
<부가설명> 22편은 메시아 예언 시편으로 알려졌다. 이 시편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이 1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를 쓴 시인 다윗의 개인적 경험이 없는 예언이 아니다. 시인이 당한 경험이 바탕이 된 내용인데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그 내용이 또한 구주의 고난과 당하신 경험을 예언한 시가 되었다. 우리가 이 죄의 세상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당하는 이런저런 문제들은 다른 사람도 경험하는 상황일 수 있다. 그런 내용을 기도 시로 적어보면 비슷한 경험에 있는 사람들이 읽을 때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편의 시인들처럼 재림성도들도 이런 마음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아뢰는 시들을 써보는 것도 은혜가 될 것이다.
어제를 기억 않는다
김명호
주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어제를 기억하지 않는다
너의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늘 너의 오늘이 내 앞에
있을뿐이다
너의 오늘, 오늘 중에도
지금을 보고 있다
지금 너의 생각을 읽고
지금 너의 언어를 듣는다
지금 너의 감정을 느끼며
지금 너의 태도를 본다
너는
오늘을 산다
오늘 중에도
지금 살고 있다
영원함이란
항상 오늘일뿐이다
나는 오늘
지금 너와 함께 하고 있다
오늘 내 앞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깨끗하여라
보혈로 씻으며 살아라
나는 영원히 함께 한다
주님
감사합니다
내 눈물을 씻어주시고
내 손을 꼭 잡아주소서
아멘, 아멘
2022년 12월 8일(목) 5:34am
1월 10일(수) 절망에서 소망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아주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을 것이다. 때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시편 기자들도 분명 비슷한 일을 겪었다. 물론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시련이 불가피한 것 같은 경우도 있지만,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시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때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누가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았겠는가?
시편 13편을 읽어 보라. 이 시편에서 어떤 두 가지 중요한 분위기를 분별할 수 있는가? 시편 기자의 전반적인 견해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결정은 무엇인가?
[시13:1~6]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답: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느끼는 분위기와 그러나 시인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실 리가 없다는 믿음과 구원하시는 은혜를 기억하고 기뻐하는 분위기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시 13:1). 비록 그 표현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누군들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았겠는가? 하나님, 정말 나를 잊으신 것입니까?
그러므로 시편 13편은 기도할 때 저지르는 또 다른 흔한 실수인 자신과 나의 문제에만 집중하는 실수를 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시편은 당신의 백성을 신실하고 변함없이 대하시는 하나님의 본성을 다시 확인해 우리의 기도를 바꾸게 한다.
애통과 불평으로 시작했지만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다.
시편은 의도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신뢰하도록 이끌어(시 13:5), 두려움과 불안(시 13:1~4)이 점차 하나님의 구원으로 변하고 애통에서 찬양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의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시 13:5, 6).
그러나 시편 말씀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시편을 활용함으로 얻을 수 있는 본래 의도된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시편을 기도할 때 우리는 시편이 의도한 방법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한다.
시편은 단순히 어떤 사실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자들의 인격과 행동을 변화시킨다.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시편의 약속은 신자들의 삶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형성하게 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보이시고 시편의 기도를 하셨던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의미이다.
<교훈> 애통으로 시작했다가 주님의 신실하심과 은혜를 경험하며 신뢰하고 변화되는 시편의 기록은 우리의 삶에서도 성령을 통해 경험하고 나타나야 할 일이다.
<부가설명> 루시퍼가 아담을 생명에서 사망으로 떨어지게 한 후에 아담 때에 생명이 회복되지 않았다. 다만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심으로 생명이 회복될 소망을 주셨을 뿐이다. 사망은 혼자 온 것이 아니다. 많은 부속물을 거느리고 왔다. 그것이 고생과 고통과 질병과 전쟁과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불행이다. 우리가 사망이 되어서 사망의 조상이 된 아담의 씨로 출생했으므로 다 사망과 그것의 부속물들의 영향 아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것들은 아담의 자손이 겪을 수밖에 없는 장애물들이다. 그리스도인도 일차적으로 아담 자손들이다. 아담으로부터 받은 몸을 가지고 있다. 그래소 본질상 진노의 자녀의(엡2:3)의 유산을 몸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사망의 몸’(롬7:24) ‘죄의 몸’(롬6:6)이라고 말했다. 이 몸은 낮은 몸이다(빌3:21). 이 몸을 입고 있는 동안 피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러나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를 입을(빌3:21) 소망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소망 중에 즐거워할 수 있다. 성도는 시인과 같이 고통을 호소할 대상이 있어서 감사하고 그 고통이 예수님 재림하실 때 완전히 없어질 소망으로 즐거워한다. 이 즐거움이 바로 영생의 즐거움이다. 시인은 고통을 호소했으나 이 즐거움을 인하여 감사함으로 찬양할 수 있다. 아멘.
1월 11일(목) 지금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소서
시편 60:1~5을 읽어 보라. 이 시편은 어떤 경우에 합당한 기도인가? 인생의 기쁜 시간에도 우리는 이 애가를 통해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겠는가?
[시60:1~5] [다윗이 교훈하기 위하여 지은 믹담, 인도자를 따라 수산에둣에 맞춘 노래,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우는 중에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소금 골짜기에서 쳐서 만 이천 명을 죽인 때에]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2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 3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4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5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답: 나라나 개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드린 기도다. 그 위기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는 인식으로 드리는 기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위에게서 구원하실 것이 확실한 것이다.
애가의 시편은 일반적으로 육체적이거나 심리적 혹은 영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기도라고 이해된다. 물론 세 가지 모두에 해당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거나 내가 인생의 아주 좋은 형편에 있을 때라고 해도 내가 이 시편과 관계없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때때로 시편의 말씀이 예배자의 현재의 삶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오히려 그런 면 때문에 애가의 시편은 오히려 고난과 관계없는 사람에게도 유익을 줄 수 있다.
첫째, 시편은 고난이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이며 의인과 악인 모두에게 일어난다는 것을 더 잘 인식하게 해준다. 애가의 시편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환난의 때에 힘과 해결책을 주신다는 것을 확신시켜 준다. "주께서 땅을 떨게 하셨나이다"(시 60:2)라고 말하는 시편 60편에서 기자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궁극적인 소망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 시편은 고난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 우리의 행복과 감사를 표현할 때, 특별히 대중 앞에서라면 더욱 우리는 불우한 사람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금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수 있지만, 멀지 않은 곳에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애가의 시편을 기도하는 것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잊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시편은 우리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예수님처럼 고통받는 이들을 섬기려는 열망을 주어야 한다.
"이 세상은 하나의 광대한 환자 수용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를 고치시고 사탄의 포로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려고 오셨다... 그는 당신의 치유의 능력을 받으러 온 자들을 한 사람도 돌려보내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도움을 간청하는 자들이 저희들 스스로가 그 질병을 초래하였음을 아셨으나 저들의 병을 고쳐 주시기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치유의 능력이 불쌍한 영혼들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들은 자신의 죄를 깨달았으며 많은 사람이 저희 육체적 질병과 함께 영적인 질병도 고침을 받았다. 복음의 능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왜 우리는 이와 꼭 같은 결과를 보지 못하는가"(구호봉사, 24, 25)?
<교훈> 애가는 보편적인 인류의 고난과 기쁨 중에서도 고난 중에 있는 이를 잊지 않게 함으로 예수님처럼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섬겨야 함을 알려주는 시편이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생활이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걸음마다 호흡마다 기도를 생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겠는가? 인류에게 보편적인 고난이 왔는지는 수요일 부가설명에 자세히 말했다. 그러므로 성도는 생활 자체가 기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귀는 성도들의 기도를 듣기 위하여 항상 열려있다. 기도는 내가 간구하는 대로 응답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기도를 성령께서 들으시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작성해서 하나님께 올리신다. “모든 신실한 기도는 성령에 의해 작성되며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 가납받을 수 있다”(소망 189). 우리는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해서(롬8:26,27) 내 생각을 기도롤 올리지만 성령께서 들으시고 하나님 뜻에 맞도록 작성해서 올리신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그러므로 내 기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인지 스스로 검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성경이 계시한 사상과 일치한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 것이 될 것이다. 우리가 잘못 구했을지라도 신실하게 기도드렸다면 성령께서 하나님 뜻대로 작성하셔서 올릴 것이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1월 1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시편 42:8과 "시와 노래"(교육, 159~168)를 읽어 보라. 영감받은 이 본문들에 따르면 기도와 노래는 어떻게 관련이 있는가?
엘렌 화잇은 다윗의 참회 시편(예: 시편 51편)을 죄에 대한 참된 애통함의 본질을 보여주는 그의 영혼의 언어이자 기도라고 기록했다(정로의 계단, 24, 25). 그녀는 신자들이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체험하고 느끼는 수단으로 시편 본문을 암송하라고 권면하고 유혹과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시편을 활용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신 예수님의 방법을 강조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거룩한 노래로 말미암아 우리 심령에 참회와 믿음, 희망과 사랑과 기쁨의 샘물이 얼마나 자주 터져 나왔는가!… 사실 많은 경우, 노래는 기도이다"(교육, 162, 168).
시편을 기도하고 노래할 때 우리는 시편 기자들의 끈기, 담대함, 용기, 희망을 함께 경험한다. 시편은 우리가 영적인 여정을 지속하도록 격려하고 그대만 홀로 있지 않다는 위로를 제공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도 암울한 시기를 겪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했다. 동시에 시편은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히 7:25)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열렬히 중보기도 하시는 것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기도와 예배에 시편을 사용하는 것은 신앙 공동체가 인간 경험의 전반을 이해하도록 돕고, 예배에서 그 다양한 측면에 참여하게 한다. 시편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의 기도이자 노래이다. 이런 이유로, 예배에 시편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신앙 공동체를 하나님의 뜻과 치유하시는 강력한 은혜 가까이로 이끌어 준다.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학습하지 않은 자발적인 기도만이 유일한 기도가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기도 생활이 성경의 기도서인 시편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답: 기도를 기록하여 여러 번 읽어보면 그 자체로 은혜가 된다. 성경에는 기록된 기도가 여러편 있다. 기도하며 기도문을 쓰고 기도하며 기도시간에 읽으면 은혜가 배가한다.
2. 시편은 어떻게 우리의 공동체 기도 생활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가? 여러분의 교회가 예배에서 시편을 사용하는 것을 촉진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에 대해 토의해 보라.
*답: 시편 자체가 다양한 경험과 환경에서 나온 기도이기 때문이다. 교독에 시편을 활용하는 것은 유익이 된다.
3. 시편은 인간 믿음의 여정의 우여곡절과 하나님의 치유하시는 은혜의 능력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답: 기탄없이 하나님께 아뢰며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은 그런 대화에 기꺼이 응답 하시고 소통하시는 분이시라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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