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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 - (이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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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5-10-27 08:01 조회55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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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

      (11월 1일 (안) / 일몰: 오후 5시 34분)

   

<서론(緖論) 및 개요(槪要)>

1. 서론(緖論)

 여호수아서의 전쟁을 단순한 정복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대쟁투 속에서 의(義)와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싸우신 사건으로 이해하도록 인도한다. 

 하나님은 전쟁의 승리보다 정의(定義)와 구속(救贖)의 완성을 목표로 하신다.

 

2. 영적의미(靈的意味)

1. 대쟁투(大爭鬪)의 관점(觀點) 

- 구약의 전쟁은 선과 악의 우주적 대쟁투의 일부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시며 악(惡)이 스스로 멸망하도록 허락하신다.

 

2.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 가나안 족속은 400년 넘게 회개의 기회를 받았지만 끝내 거절함으로 심판을 받았다.

 

3. 전쟁의 목적은 회복(回復) 

- 하나님의 싸움은 복수나 정복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의 회복을 위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한다.

 

3 교훈(敎訓)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며 대쟁투 속에서 의의 편에 서서 싸우신다.

 하나님은 악인에게 자비의 기회를 주시지만, 선택의 결과에는 책임이 따른다.

 평화를 추구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의 통로가 된다.

 

4 결론(結論)

하나님이 싸우신다는 것은 단순한 무력행사가 아니라 죄와 악을 제거하고 정의와 평화를 세우기 위한 거룩한 싸움이다. 그분은 우리 삶 속에서도 여전히 싸우시며, 결국 의와 평화가 승리하게 하신다.

 

◆ 질문(質問)

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신다."라는 말이 내 삶 속에서는 어떤 의미(意味)입니까?

2. 나는 평화(平和)를 세우는 도구(道具)로써 어떤 싸움을 감당해야 합니까?

3. 오늘날 하나님의 정의(定義)로운 싸움'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까요?

 

(10월 26일) (일) <가나안 사람들의 죄악(罪惡)>

 

1. 의도(意圖)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신 근본 이유가 단순히 이스라엘을 위한 땅 정복이 아니라, 가나안 사람들의 죄악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한계를 넘었기 때문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즉, “가나안의 멸망”은 하나님의 심판이며 동시에 도덕적 타락에 대한 경고의 본보기로 제시된 것이다.

2 영적의미(靈的意味)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그러나 죄악이 극(極)에 달하면, 그분의 보호와 은혜가 거두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신다.

이스라엘의 선택은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덕적 공의에 근거한 사명임.

죄의 결과는 개인이나 민족 모두에게 동일하게 심판으로 이어진다는 영적 원리를 가르쳐주신다..

 

4. 하나님의 계획과 교훈

하나님은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고 – 400년의 유예기간(창 15:16)을 주심.

그 기간 동안 족장들의 증거를 통해 하나님을 알 기회를 주셨으나, 그들은 거절함.

결국, 죄가 한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을 시행하심.

이스라엘의 승리는 하나님의 심판 도구의 역할이었지, 단순한 정복이 아님.

 

5. 오늘날의 교훈 (소그룹 적용 포인트)

하나님은 지금도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오래 참으심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벧후 3:9)

도덕적 타락과 영적 무감각은 심판의 전조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풍조에 동화되지 말고, 거룩함과 구별의 삶으로 부름을 받았다.

 

○. 요약(要約)

가나안의 멸망(滅亡)은 하나님의 공의(公義)로운 심판이며, 이스라엘에게 유업(遺業)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다. 족장들을 통한 증거, 유예된 기간을 주셨지만, 그들은 기회를 저버렸다. 특히 죄에 대한 경고(警告)와 동시에 회개(悔改)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교훈(敎訓)을 우리에게 준다.

 

(10월 27일) (월) <최고 심판자(最高審判者)>

 

주제는 <“최고의 심판자 하나님”>.

 1. 하나님의 성품이 거룩하다는 의미

*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절대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 하나님의 <거룩함은 공의(正義)와 사랑(慈愛)>이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는 성품입니다.

*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되, 죄인을 구원(救援)하시기 위해 오래 참으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

* 그러나 끝내 회개(悔改)하지 않는 죄는 <그 결과인 사망(롬 6:23)>을 맞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전쟁 개념

* 하나님의 전쟁은 <인간의 영토 확장(領土擴張)이나 권력 추구(權力追求)>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正義)와 평화(平和)를 회복>하기 위한 <영적심판행위(靈的審判行爲)>이시다.

* 하나님은 <심판자로서 전사(戰士)>로 나타나시며, <불의(不義)와 반역에 맞서 싸우십니다.>

*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정복전쟁(征服戰爭)도 단순한 정복이 아닌, <하나님의 통치와 법의 회복을 위한 신적심판(神的審判)의 도구(道具)>였다.

 

 3. 용사(勇士)로서, 심판자(審判者)로서의 하나님

* 하나님은 <왕(王)이자 재판장(裁判長)이며, 동시에 전사(勇士)>이십니다.

* 그분이 싸우시는 목적은 <전쟁의 승리(勝利)가 아니라 정의와 평화의 회복>입니다.

* 하나님께서 전사(戰士)로 나타나신다는 것은, 그분의 <거룩한 질서에 대한 반역을 결코 영원히 용납하지 않으심>을 보여주십니다.

* 따라서 하나님의 전쟁은 <공의(公義)로운 심판행위(審判行爲)이자, 사랑의 보호행위(保護行爲)>이십니다.

 

 5. 적용과 교훈 요약 

1.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죄(罪)를 절대 묵인(默認)하지 않으신다.

2. <하나님의 전쟁(戰爭)>은 인간의 싸움이 아닌 <정의(定義)와 평화를 세우기 위한 심판적(審判的) 싸움>이다.

3. <하나님은 전사(戰士)이자 심판자(審判者)>로서 그분의 법과 질서를 지키시고 회복하신다.

4. 우리는 그분의 <공의(公義)와 사랑의 통치에 순종하며>, 거룩함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핵심 한 줄 요약>

 “하나님의 전쟁은 죄를 심판하고 정의와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거룩한 심판 행위이며, 하나님은 최고의 심판자(審判者)요 의(義)의 전사(戰士)이시다.”

 

(10월 28일) (화) <축출(逐出)인가 멸절(滅絶)인가>

 

① <축출(逐出)>

* <뜻> : 쫓아내거나 내쫓음.

* <정의(定義)> :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일정한 장소나 공동체에서 강제로 내보내는 행위.

* <예(例)> : “불순한 자를 공동체에서 <축출(逐出)>하였다.”

 

② <멸절(滅絶)>

* <뜻> : 완전히 없어짐.

* <정의(定義)>: 존재하던 것이 완전히 사라져 다시는 남지 않게 되는 상태.

* <예(例)> : “그 민족이 전쟁으로 <멸절(滅絶)>되었다.”

 

○. 간단히 구분(區分)하면,

* <축출(逐出)>은 ‘쫓아내는 행위’,

* <멸절(滅絶)>은 ‘완전히 없애는 결과’이다.

 

 주제: <축출(逐出)인가 멸절(滅絶)인가>

 

1. <정복의 목적과 멸망의 성격>

 <비교 성구(聖句)>

<출 23:28–30 / 33:2 / 34:11, 민 33:52, 신 7:20> ⇔ <출 34:13, 신 7:5 / 9:3 / 12:2~3 / 31:3~4>

 

 <요점(要點)>

*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거민(居民)을 몰아내라(축출)> 명(命)하셨지, <모두 죽이라(멸절(滅絶))> 명(命)하신 것이 아니었다.

* “몰아내심”(drive out, thrust out, scatter)이라는 표현은 <점진적(漸進的) 축출(逐出)>을 의미한다. (출 23:30).

* 파괴명령(破壞命令)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이교제단(異敎祭壇)· 우상(偶像)· 제사장소(祭祀場所)> 등 <부패(腐敗)한 종교와 문화의 중심>이었다. (출 34:13, 신 12:2~3). 즉, <전쟁의 본질은 문화와 신앙의 정화(淨化)>에 있었다.

 

 2. 하나님의 원래 의도(意圖) : 멸절(滅絶)이 아닌 축출(逐出)

  <핵심 개념>

* 하나님의 목적은 가나안 민족을 “없애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부패한 문화적 영향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 그러나 대부분의 가나안인들은 바로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절(拒絶)했다. (여호수아 11:19~20).

* 결과적으로 <부패한 문화와 자신을 동일시한 그들>은 <문화의 멸망과 함께 스스로 멸망>하게 되었다.

* 반면 <라합(수 2:9~14)>이나 <벧엘 사람(삿 1:24~26)>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자들>은 구원(救援)을 얻고 피(避)할 수 있었다.

 

 3. 하나님의 목적: 이스라엘을 통한 거룩한 나라 세움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을 세워 당신의 나라를 세상에 드러내고, 참된 종교의 원칙을 온 세상에 전파하기 원하셨다.” (부조와 선지자 492)

 

 ○.<요점(要點)>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의 표본>, <거룩한 백성>으로서 세워짐.

* 그러나 <가나안의 타락한 문화>는 그 사명을 <가로막는 장애물(障碍物)>이었다.

* 따라서 <정복의 참된 목적은 사람의 전멸(全滅)이 아니라, 죄악의 근절(根絶)>이었다.

 

 ○. <결론(結論)>

하나님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사람을 멸(滅)하라”가 아니라, “죄와 부패를 축출(逐出)하라” 하신다.

<멸절(滅絶)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죄악 그 자체>이며, <정복의 목적은 정화(淨化)>, <거룩의 회복>이다.

 

 <핵심 요약(核心要約)> 

1. <정복(征服)의 목적> 멸절이 아닌 축출(逐出) — 죄악과 부패한 문화의 제거(除去).

2. <하나님의 의도> 구원(救援)과 회복(回復) —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함.

3. <영적교훈(靈的敎訓)> 우리도 마음속의 ‘가나안 문화’를 몰아내야 함.

4. <실천(實踐) : <세속적 가치(世俗的價値), 우상(偶像), 죄의 습관(習慣)을 축출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

 

(10월 29일) (수) <자유(自由)로운 선택(選擇)>

 

<자유로운 선택의 영적교훈(靈的敎訓) 요약>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자유 의지(自由意志)를 선물로 주셨다.>

그분의 보호와 구원(救援)은 강요(强要)가 아니라 <순종(順從)과 관계(關係) 속에서>이루어진다.

 

가나안의 멸망(滅亡) 명령(命令)조차도 자의적(恣意的)인 심판이 아니라, <회개와 순종의 기회를 끝까지 주신 하나님의 공의(公義)로운 결정>이었다.

”라합“과 ”기브온“ 사람들처럼 하나님께 순종한 자(者)는 살았고, 이스라엘이라도 반역(叛逆)하면 멸망(滅亡)을 피(避)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편에 설지, 대적(對敵)할지의 선택은 각자의 몫>이며, 그 선택이 <생명과 멸망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要因)>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결코 중립이 없다.”>

 

 ○. <핵심 교훈(核心敎訓)>

  자유 의지(自由意志)는 하나님의 선물(膳物)이며, 그 자유로 하나님께 순종할 때 생명(生命)이, 반역(叛逆)할 때 멸망(滅亡)이 따른다.

 

(10월 30일) (목) <평화(平和)의 왕(王)>

 

<영적교훈요약(靈的敎訓要約)> – “평화의 왕, 하나님의 구원(救援) 목적”

 

 1. “전쟁의 한계와 하나님의 의도(意圖) (신 20:10, 15~18; 13:12~18; 수 10:40)>

* 하나님께서 명(命)하신 전쟁조차 무제한적(無制限的)인 파괴(破壞)가 아니었다.

* 우상숭배(偶像崇拜)와 죄악을 제거(除去)하기 위한 <정의(定義)로운 제한적 조치>였다.

* 그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정결(淨潔)과 회복(回復)>, 곧 <평화를 위한 질서 회복>이었다.

○.<하나님은 전쟁 속에서도 자비(慈悲)의 한계를 두시며, 심판(審判)보다 회복(回復)을 원하신다.

 

 2. <엘리사와 아람 군대 이야기 (왕하 6:16~23)>

* 엘리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군대를 신뢰했고, 적(敵)을 죽이지 않고 <먹이고 돌보았다.>

* 이 행동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폭력보다 평화, 복수보다 사랑>—을 보여준다.

* 결과적으로 “아람 군대가 다시는 이스라엘에 들어오지 않았다”(왕하 6:23).

 교훈(敎訓) : <진정한 승리는 칼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화와 선(善)으로 이루어진다.>

 

 3. <평화의 왕, 메시아의 나라 (사 9:6; 11:1~9; 60:17; 66:12)>

*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으로 오셔서 <영원한 평화의 왕국>을 세우신다.

* 그분의 나라는 해나 상함이 없고,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사는 <조화(調和)의 세상>이다.

* 복음은 갈등이 아닌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평>을 이루는 소식이다(눅 2:14).

 ○. 구속(救贖)의 목표는 전쟁이 아닌 <영원한 평화>이며, 그 평화는 지금 우리의 마음에서도 시작된다.

 

 ○. <핵심 메시지>

 하나님은 평화의 왕이시다.

 그분의 구원 목적은 <끝없는 전쟁이 아니라 완전하고 영원한 평화>이다.

 엘리사가 보여준 자비의 행동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미리 보여준다.

 <폭력(暴力)은 폭력을 낳지만, 평화는 평화를 낳는다.>

 

 <나눔 질문(質問)>

1. 하나님께서 전쟁(戰爭)에도 한계를 두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 엘리사의 평화적 대응은 오늘 우리의 삶에 어떤 도전(挑戰)을 줍니까?

3. “평화의 왕”을 기다리는 우리는 지금 어떤 평화를 실천해야 할까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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