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은혜의 기념비(질문, 대답, 설명) 10/18/25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10-09 21:08 조회2,022회 댓글0건본문
제3과 은혜의 기념비
(10월 18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51분)
연구 범위: 수 3, 민 14:44, 눅 18:18–27, 수 4, 요 14:26, 히 4:8–11
기억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수 4:23, 24).
경찰관의 신호에 존은 차를 세워야 했다. 운전면허증을 요구하자 그 순간 면허증이 든 지갑을 사무실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그는 상황을 설명했고, 경찰관은 그에게 직업을 물었다. 존은 자신이 교수라고 대답했다. 경찰관은 존에게 범칙금을 부과하며, 이것을 벌금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수업료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배울 때 수업료를 내지요. 이것도 운전할 때 운전면허증을 잊지 말라고 가르쳐 주는 당신의 수업료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교수님!”
인간으로서 우리는 눈앞에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쉽게 잊는다. 전화 회신을 잊고, 이메일 답장을 깜빡하고, 식물에 물주는 것, 생일 축하 인사를 보내는 것 등을 놓친다. 이런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인 필요를 잊는 것은 단순히 벌금을 내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말 그대로 우리의 영원한 운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인들이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경험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살펴보자.
학습 목표
깨닫기: 주님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는 경험을 기억하고 산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셨다.
느끼기: 요단을 건너는 것은 삶의 변화를 상징하며 믿음을 통해 은혜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예표한다.
행하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사명을 가진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TMI 위로
2.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요구는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까?(수 3:5)
*답: 백성들의 성결을 요구하신 것이다. 앞으로 있을 싸움은 죄와 의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3.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기적은 하나님과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줍니까?(렘 32:17)
*답: 무소불위(無所不爲)하심을 드러낸다.
4. 하나님의 기적을 기억하라고 하신 것은 후세대가 이를 통해 무엇을 얻기 원하기 때문입니까?(수 4:7)
*답: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분 안에서 생명을 얻어 복되게 살도록 하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5. 하나님과의 영적인 기억을 새롭게 할 기회를 만드는 일의 유익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수 4:21)
*답: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경배하게 하는 유익이다.
6.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성경의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어떤 의미로 연결됩니까?(시 66:6)
*답: 침례와 구원의 기쁨과 연결된다.
결론: 자신의 영적인 필요를 기억하는 것은 영원한 운명을 다루는 중요한 문제이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는 것이다. 그분께는 불가능이 없으며 그 방법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당신의 놀라운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산 믿음을 가지도록 표징을 두게 하셨다. 이 역사를 되새길 때 우리는 사명을 가진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삶의 변화를 상징하며 믿음을 통해 은혜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예표한다.
10월 12일(일) 요단강을 건너려면
여호수아 3:1–5, 민수기 14:41–44를 읽어 보라.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곧 시작될 일에 대비해 특별히 준비하라고 명령하셨는가?
[수3:1~5]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2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민14:41~44] 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라 42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의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43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44 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답: 그들이 절재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수기에 기록된 사건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망한 사건이다.
여호수아서에서 언약궤를 처음 언급하는 것은 이 구절이다. 지금까지 언약궤는 성소를 말할 때(출 40:21),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여정을 떠날 때(민 10:33–36), 가나안 정복을 시도하려다가 실패한 때(민 14:44)에 언급되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 성막에서 가장 신성한 성물이었으며, 세 가지 물건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1)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 (2) 대제사장 아론의 지팡이, (3) 만나가 담긴 항아리(출 16:33, 히 9:4)는 각각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냈다.
언약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차지하는 것이 자신의 방법과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정복은 오직 하나님의 방법과 때를 따를 때에 성공할 수 있었다. 언약궤를 덮고 있는 그룹들 위에 좌정하시고(출 25:22, 민 7:89) 언약궤가 가는 곳에 함께 가시는 것으로 묘사되는 하나님께서, 정복을 이끄는 분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앞에 서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셨다.
“성결하게 하다”(수 3:5) 또는 “거룩하게 하다”로 번역된 용어는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봉사를 시작하기 전에 가졌던 정결 의식(출 28:41, 출 29:1)과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 전에 행했던 의식(출 19:10, 14)과 유사한 정결의식을 가리킨다. 이 정결 의식은 죄를 버리고 모든 의식상의 부정을 제거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민수기 11:18에서도 임박한 하나님의 기적과 관련하여 동일한 명령이 사용된다. 전쟁에서 전투에 나가기 전에도 이와 같은 동일한 준비가 요구되었다(신 23:1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기 전에, 그들은 그분께 충성을 보이고 그분을 지휘관으로 신뢰해야 했다.
요단강을 건너는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에서 그곳 사람들을 몰아내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음을 증명해 줄 것이었다.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만드시고 건너게 하신 분은 그들에게 그 땅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교훈> 강을 건너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자신의 방법과 원하는 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방법과 때를 따를 때에 성공할 수 있음을 알려주셨다.
<부가설명> 나는 성경을 연구하며 명상하고 사색(思索)할 때 깊이 깨닫는 것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죽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 성경은 분명히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었다고 단언했기 때문이다(고전15:22). 그런데 성경 연구 책들을 읽을 때나. 심지어 교과 공부를 할 때도 느끼는 것은 사람은 살아있는데 율법을 범했으므로 죄인이라는 것을 전제로 설명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시각으로 성경을 연구하면 죄는 인간의 행위 중심으로 해석된다. 그러면 의도 인간 행위 중심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런데 성경은 의는 하나님의 의라고 했다(롬3:21,22). 그처럼 죄도 인간 행위 전에 이미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어 있다고 성경이 계시한다(롬5:12,18).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그들의 노력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런데 인간의 노력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으로 더 자주 나타난다. 민수기 14장 사건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승리해놓으셨다. 그것을 가지면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하면 되고 하지말라고 하신 것은 안 하면 된다. 사람에게 전략을 짜고 전술을 발휘해서 이기라고 하시지 않는다. 이것은 중요한 것이다.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10월 13일(월) 기적을 행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수아 3:6-17을 읽어 보라.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너는 사건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수3:6~17]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답: 성경의 하나님은 무소불위(無所不爲)하신 분이다. 즉 하고자 하는 것을 못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모든 과정이 이것을 증명해서 그들이 보고 느끼고 생활하도록 하셨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여호수아 3:5에서 히브리어 ‘니플라오트’(niphla'ot, 기적)로 묘사된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하심을 보여주는 그분의 위대하고 초자연적인 행위를 의미한다(시 72:18, 시 86:10).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역사들을 묵상했고, 주님을 향한 찬양이 뒤따랐으며(시 9:1) 열방 가운데 그분을 선포했다(시 96:3). 애굽의 재앙(출 3:20, 미 7:15), 홍해를 건너게 하심, 그리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시 78:12–16) 등이 이러한 기적으로 묘사되었다.
성경 기자들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결코 당신의 창조물에 의해 제한되거나 제약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고 증언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렘 32:17, 너무 놀라운[히]) 일이 없다. 하나님의 이름과 본성은 경이로우며(삿 13:18), 그분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분이시다.
그들을 구원할 수 없는 다른 민족의 신들과 달리(시 96:5, 사 44:8), 성경의 하나님은 그분을 따르는 이들이 우리를 위해 개입하실 것을 기대하며 그분을 신뢰할 수 있는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선지자 스가랴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의 미래를 예언할 때 니플라오트와 동일한 어근에서 유래한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재건되어 노인들이 거리에 앉아 있고 소년, 소녀들이 그곳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았다. 파괴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여전히 믿기 어려워하는 예루살렘의 주민들에게 스가랴는 이렇게 선포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야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내 백성을 해가 뜨는 땅과 해가 지는 땅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인도 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리”라(슥 8:6–8).
<교훈> 요단강을 건너가게 하신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하나님의 이름과 본성은 경이로우며(삿 13:18), 그분은 우리의 이해 너머에 계신 분이시다.
<부가설명> “18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4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25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6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많이 하셨다. 성경은 그것을 권능이라고도 하고 표적이라고도 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도록 사랑을 베푸신 것이다.
10월 14일(화) 기억하라
여호수아 4장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념비를 세우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수4:1~24]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3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8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의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자기들이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에 두었더라 9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10 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사 백성에게 말하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 서 있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11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 12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 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13 무장한 사만 명 가량이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14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가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그를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 15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 증거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요단에서 올라오게 하라 하신지라 17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18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서 전과 같이 언덕에 넘쳤더라 19 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치매 20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2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22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2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답: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24절)
이 돌들은 '표징'으로 삼기 위해 세웠다. 히브리어 오트('ot)는 종종 '기적'으로 번역되며 애굽에 내린 재앙(출 7:3, 신 4:34)처럼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을 가리킬 수 있다. 또 더 깊거나 초월적인 사실을 외적으로 나타내는 '상징'이나 '증거'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무지개는 언약의 '증거'이며(창 9:12, 13), 이스라엘 집의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진 피도 “표적”이라고 부른다(출 12:13). 가장 중요한 예인 안식일도 창조와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시는 임재의 “표징”이다(출 31:13, 17; 겔 20:12).
여기에서 표징은 기념물로 기능하며, 후대에게 강을 건넌 기적을 상기시켜 준다. 4장에서 “기념비”(zikkaron)라는 단어는 “기억하다”를 뜻하는 자카르(zakar)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단순히 무언가를 떠올리는 수동적인 행위를 넘어 기억함에 따르는 적절한 행동까지 포함하는 것이다(신 5:15, 신 8:2). 돌 기념비(창 28:18–22)를 세우고 그 의미를 질문하게 하는 의식(출 12:26, 27; 신 6:20–25)은 구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기적을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대신, 하나님은 당신의 위대한 행사를 기억하게 하고 의미 있는 답을 끌어내는 기념비를 세우셨다. 따라서 이 표징이 “대대로” 거기에 있도록 한 것은 이 기적을 당신의 백성이 집단적 기억 속에 영원히 간직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후손이 던질 잠재적인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본문은 “이 돌들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KJV)라는 개인적인 질문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후의 각 세대는 이 돌들의 의미를 개인적으로 내면화하고 이해해야 한다.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각 세대가 여호와의 위대한 행위의 의미를 스스로 되새길 때에만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다.
우리가 성경에 기초한 전통을 따라 신실히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원래의 가치와 열정을 상실한 산 세대의 죽은 종교인 전통주의가 되고 말 것인지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이러한 믿음에 달려 있다. 결국 우리는 성경에 기반한 믿음을 각자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누구도, 특히 우리 부모와 조상일지라도 우리를 대신해 믿어줄 수 없다.
<교훈> 이 표징을 기억하고 “대대로” 거기 두게 한 것은 당신의 백성이 집단적 기억 속에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생생하게 간직하는 산 믿음을 주기 위해서다.
<부가설명> 기념은 기억하게 하는 무엇을 뜻한다. 기억이 없어지면 그 사람의 일생이 없어진다. 역사는 시간적으로 나라에 일어난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역사책이다. 기록된 기억이 없으면 뿌리가 없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념비들을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일하신 사실을 기억하게 하신다. 이 기억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크시고 무소불위하신 그분을 올바르게 알도록 도우신다. 돌을 쌓든지 비석을 세우든지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신 일을 후세대에 기억하도록 돕는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념물로 세우게 하신 것뿐만 아니라 책에 기록하에 하셔서 오늘까지 전해주셨다. 곧 성경책이다. 후대의 이스라엘은 기념비들을 통하여 선조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일들과 그런 하나님이 현재도 존재하시고 돌보신다는 것을 알도록 하셨는데, 성경책은 모든 인류가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도록 하는 기억의 샘이다. 이 책으로 우리는 삼위일명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 안에서 과거와 형재와 미래가 분명히 알게 되고 소망 중에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 할렐루야.
10월 15일(수) 잊어버린다면
여호수아 4:20–24을 사사기 3:7; 사사기 8:34; 시편 78:11; 신명기 8:2, 18; 시편 45:17을 참고하여 읽어 보라. 주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을 기억하는 것은 왜 그토록 중요한가?
[수4:20~24]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2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22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2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삿3: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삿8:34]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시78:11]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과 그들에게 보이신 그의 기이한 일을 잊었도다.
[신8:2,1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시45:17]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답: 잊어버리면 우상숭배에 빠지고 멸망으로 치닫게 된다. 기억할 때 여호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게 되고 그분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복을 누리게 된다.
여호수아 4:23에서 인칭의 변화를 주의해서 보라. 요단강의 물은 “너희” 즉, 요단을 건너온 현재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마르게 하신 것이다. 이와 달리 홍해는 “우리” 곧 출애굽을 경험한 첫 세대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 앞에서 마르게 하셨다고 기록한다. 두 세대가 겪은 두 사건은 의미가 유사했다. 이는 출애굽 이후 두 번째 세대가 부모 세대의 증언을 통해 자신들의 요단강 경험을 구원의 사건으로 다시 인식하게 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망각을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정상적인 특성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영적 의미에서의 망각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특별한 소명과 사명을 가진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지의 초점을 잃지 않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또 공동체로서 영적인 기억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고린도전서 11:24, 25과 요한복음 14:26을 읽어 보라. 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항상 기억해야 하는가? 그것 없이 다른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고전11:24,25]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답: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받은 사람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엘렌 화잇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일과 계시의 빛 가운데로 우리 자신을 계속해서 이끌지 않는다면, 미래를 위한 우리의 사명을 수행할 동기를 잃게 될 것임을 분명하게 이해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오신 길과 우리의 과거 역사를 통하여 주신 그분의 가르침을 잊어버리는 것 외에는 미래를 위하여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자서전, 196).
<교훈> 우리가 영적인 기억을 새롭게 할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지 초점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부가설명> 오늘 나는 과거없이 존재할 수 없다. 과거를 다 잊어버리면 오늘 나의 정체를 알 수 없게 된다. 사람의 현재는 과거의 결과요 집대성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고 예배하고 감사하는 것은 예수께서 역사적 과거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실에 근거한다. 과거를 잊어버리면 현재의 나는 존재 의미와 근거를 잃어버린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근거인 십자가와 부활은 시간적으로 과거의 사건이다. 이 사건 위에 우리의 믿음이 굳게 선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미래의 소망으로 즐거워할 수 있다. 과거가 십자가에서 처리되고 부활의 생명을 얻게 하셨으니 미래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다. 이 믿음과 소망 사이에서 혀재 나의 삶은 사랑으로 실현될 수 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역사적 과거에 이루신 일을 기억하지 않으면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근거를 잃게 된다.
10월 16일(목) 요단강 너머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걸어서 강을 건너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였도다”(시 66:6).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성경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며, 둘 다 상징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시 66:6, 시 114:1–7, 왕하 2:6–15 참조). 구약에는 두 개의 사건을 연결하고 원래의 맥락을 넘어서는 의미를 나타내는 구절들이 있다. 시편 66편에서 시인은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는 역사적 사례를 언급하며 자신의 삶 속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찬양한다(시 66:16–19).
시편 114편 역시 두 사건을 연결하는 것은 저자가 두 사건 사이의 시간적 간격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두 번의 건너는 사건이 공유하는 신학적 의미 때문이다. 두 사건은 모두 이스라엘의 신분 변화를 상징한다. 첫 번째는 노예상태에서 자유로, 두 번째는 정처없이 유랑하는 상태에서 국가로 전환되는 것을 상징한다. 이 시편들에서 두 개의 건넘의 이야기는 저자의 상태가 억압, 빈곤, 무력감, 굴욕에서 안전, 행복, 구원, 존엄으로 변하는 것을 보여준다.
엘리야의 승천도 요단강가에서 여호수아서의 기록된 기적과 유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엘리야에게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상태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하늘로 올라갔다. 이 중요한 변화는 엘리사에게도 일어났다. 선지자의 수종드는 자(왕상 19:21)였던 그가 강을 건너며 이스라엘의 선지자(왕하 2:22)가 된다.
마태복음 3:16, 17과 마가복음 1:9을 읽어 보라. 신약의 기자들은 요단강의 상징적, 영적 의미를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가?
[마3:16,17]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막1: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답: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 받으셔서 저자의 아래 설명대로 민족적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건을 예수께서 이루시는 구원사업의 예표로 드러내셨다.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일어났던 일을 따른다.
예수께서도 “홍해”와 “요단”의 경험을 겪으셨다. 그에게 죽음이 선고된 이후 애굽에서 부름을 받으셨고(마 2:14–16), 고대 이스라엘의 40년 광야생활처럼 40일을 광야에서 보내셨다(마 4:2), 사적인 삶에서 공적 사역으로 당신의 삶을 전환하실 때 그분은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셨다(마 3:16, 17; 막 1:9).
나중에 히브리서 3–4장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의 상징적 의미를 인식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통해 들어가는 은혜의 “안식”의 예표로 제시한다.
<교훈>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가는 것은 삶의 변화를 포함한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믿음을 통해 은혜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예표한다.
<부가설명> 옛날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은 영적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의 경험으로 해석된다. 애굽은 죄의 세상을 표상한다(계11:8). 홍해를 건너는 것은 침례를 표상한다(고전10:1~3). 광야는 교회를 표상한다(행7:38).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심판과 부활을 표상한다. 바울은 로마서 6:3~7에서 침례의 영적 의미에 대하여 잘 설명했다. 그것은 죄에 대하여 죽고 장사되고 의에 대하여 부활한 생명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홍해에서 죽고 건나 광야에 나온 것은 거듭난 생명으로 죄에서 해방되고 거듭난 생명으로 살게 된 것을 표상한다. 교회 여행 끝에 우리는 언약궤 앞을 통과하며 계명이 삶으로 이루어진 여부를 확인한다. 조사심판을 표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그것은 새 하늘 새 땅을 표상한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옛 이스라엘이 걸어온 역사적 사건을 개인적으로 다 체험하여 그분 안에서 믿는 모든 사람도 그 체험이 이루어지게 하셨다. 헤롯이 죽이려고 한 것과 애굽으로 피난 간 사실, 그리고 요단강에서 침례 받으시고 40일 광야 생활하신 것은 옛 이스라엘의 역사가 예수님의 구원사업의 표상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영적으로 애굽에서 나와서 교회 생활하는 의가를 깊이 이해하게 하셨다.
10월 1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부조와 선지자 44장 “요단강을 건너감” 483-484을 읽어 보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의 경험들을 주의깊게 연구하라. 특히 여호수아 3, 4장은 요단을 건너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의 준비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이 장들을 연구해 보아야 한다. 주께서 그의 백성들을 가르치신 교훈들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계속 연단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면 그분의 말씀의 교훈은 언제나 흥미있고 인상적이 될 것이다”(화잇주석, 수 3, 4).
“현대 이스라엘은 고대의 백성들보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질 위험이 더 크다. 심지어, 안식일을 지킨다고 공언하는 자들조차 많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고대의 당신의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경계하라고 명령하셨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떠나가면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에게 이를 것이지만, 만약 마음을 다하고 심령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면 그분께서는 그들의 광주리와 곳간에 복을 풍성하게 주실 것이며, 그들에게서 질병을 제거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교회증언, 1권, 609).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요단강을 건너는 기적에 대해 함께 토의해 보라. 당신은 기적이란 어떤 것이라고 정의하겠는가? 왜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그와 유사한 기적을 행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가?
*답: 최고의 기적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성도들의 정착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2. 개인적으로, 또 교회가 영적인 망각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어떤 실제적인 방법이 있겠는가? 하나님과 끊임없이 역동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우리의 모든 그리스도인 경험이 과거의 놀라운 경험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과거의 경험을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방편으로 사용할 수 있겠는가?
*답: 제칠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핵심이다. 안식일의 기념적 의미를 깊이 깨닫고 매일을 안식일을 준비하는 삶을 살 때 창조와 섭리를 경함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다.
3. 안식일은 어떻게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개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분의 왕국에서 약속된 안식을 미리 맛볼 수 있게 하는가?
*답: 제칠일 안식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피조물을 섭리하신다는 것을 생활에거 기억하게 하는 표다. 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는 것은 영원한 안식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표가 되기 때문에 약속된 안식을 미리 맛보는 경험이 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