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성공의 비결(질문, 대답, 설명)1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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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9-28 05:20 조회1,515회 댓글0건본문
제1과 성공의 비결
(10월 4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11분)
연구 범위: 신 18:15–22; 수 1; 히 6:17, 18; 엡 6:10–18; 시 1:1–3; 롬 3:31
기억절: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 1:7).
보스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인 벤자민 잰더(Benjamin Zander)는 자신의 “음악 해석” 수업에서 평가를 앞두고 학생들이 불안해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는 학생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서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 강의 첫날 모든 학생이 “A”학점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A”학점은 그들이 달성해야 할 기준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단 하나의 조건은 학생들이 학기 첫 2주 안에, 수업의 마지막 날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편지에는 왜 자신이 높은 성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기록해야 했다.
여호수아서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책이다. 40년간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득 채웠던 모세는 이제 과거에 불과했다. 비극적인 반역과 완고함으로 점철된 출애굽 과정과 광야의 방랑은 끝났다.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하고자 하는 새 세대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이는 그들이 달성해야 할 기준으로서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삶에 새로운 장을 열어주셨던 방식을 연구하면서 그분이 우리 삶 속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수 있음을 함께 살펴보자.
학습 목표
깨닫기: 성공은 그분을 경외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느끼기: 우리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함께하심으로 우리를 성공으로 이끄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행하기: 하나님을 더 잘 알고 의심과 불안을 물리치며 그분이 하시는 일을 믿고 순종한다.
TMI 위로
2.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겠다는 약속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신 18:15)
*답: 모세가 하던 일을 계속해서 이루어나가도록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를 나타내는데 1차로는 여호수아다. 예언적으로 그것은 예수님을 뜻한다.
3. 하나님의 백성에게 순종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계 14:12)
*답: 성도의 본질이다.
4.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출 33:14)
*답: 하나님이 친히 동행하시며 일하시는 것이다.
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마지막 약속은 무엇이며 그것은 왜 중요합니까?(마 28:20)
*답: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6. 주께서 주시는 성공과 형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어떻게 다릅니까?(시 1:1-3)
*답: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묵상하며 따르는 것이 성공이다.
7. 하나님 안에서 성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답: 말씀에 굴복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결론: 광야에서 실패했던 이스라엘이 다시 성공하게 된 것은 그들의 준비 때문이 아니라 주께서 새로운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 성공은 주님을 경외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되기에 경험이 없던 여호수아를 세우시고 이끄신 분은 주님이시다. 주님을 더 잘 알게 될 때 우리의 의심과 불안은 사라질 것이며, 그분이 함께하실 때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의 일은 그분이 하시는 일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주님은 성공하게 하신다.
9월 28일(일) 새로운 모세
신명기 18:15–22와 여호수아 1:1–9을 읽어 보라. 여호수아서가 모세의 죽음 이후에 일어날 일과 관련된 약속을 다시 말하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신18:15~2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16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20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21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22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수1:1~9]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답: 모세를 통하여 하신 하나님의 일을 연속해서 실행하도록 여호수아에게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다. 여호수아는 당시에 또 다른 모세가 된 것이다.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은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임명했지만,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님은 두 사람 모두에게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백성들을 이끌라는 말씀을 주셨다.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라”(수 1:3)라고 말씀 하신 것같이 여호수아는 원래 모세에게 맡겨졌던 일을 완수하게 될 것이었다. 그는 참으로 새로운 모세였다.
출애굽기 33:11; 민수기 14:6, 30, 38; 민수기 27:18; 민수기 32:12; 신명기 1:38; 신명기 31:23; 신명기 34:9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여호수아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출33: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민14:6,30,38]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8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민32:12]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신1:38] 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리라.
[신31:23]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신34: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답: 여호수아의 확고부동한 신앙과 충성심에 관하여 계시하였다.
이 시점에서 하나님이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겠다는 약속(신 18:15)은 성취된 현실이 아닌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성에 불과했다. 여호수아서의 첫 구절은 이 약속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그 약속이 성취될 것을 기대하게 한다.
모세는 죽었지만, 여호수아 1장에서 그는 여전히 중심인물이다. 모세의 이름이 열 번 언급되지만 여호수아의 이름은 네 차례 언급될 뿐이다. 모세는 “여호와의 종”이라고 불리지만,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로 언급된다(수 1:1).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종”이라는 칭호를 받기 위해서는 평생의 충성스러운 섬김과 순종이 필요했다(수 24:29). 여호수아서의 첫째 장이 이스라엘의 두 위대한 지도자 사이의 전환을 기록하고 있을지라도,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주님이시며 그분의 말씀이 이 책을 시작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이 이 책을 가득 채운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지도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교훈> 모세의 길을 따라가야 할 여호수아는 아직 그와 같은 경험이 없었고 서론의 중심인물은 모세 같지만 이스라엘을 이끄시는 진정한 지도자는 주님이시다.
<부가설명> 여호수아는 본래 이름이 호세아(민13:16)였다. ‘호세아’는 ‘구원’이라는 뜻이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여’가 여호와의 약자로 쓰였다. 구원은 모세나 여호수아가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주께서 친히 이루시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뜻의 이름을 ‘여호와는 구원’이라고 고쳐주었다. 여호수아 1장에 모세가 주인공처럼 기록되었으나 모세와 여호수아를 인도하시고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이끄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광야의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분도 예수님이시고 여호수아를 이끌어 가나안을 정복하신 분도 예수님이시다. 여호수아를 줄인 이름이 ‘예수아’다. 이 이름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가진 이름 ‘예수’의 히브리씩 이름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예수’는 헬라어로 기록한 신약에서 나온 이름이다. 히브리어 ‘예수아’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이 ‘예수’다. 히브리서 4:8에는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는 구절에 여호수아는 ‘Ἰησοῦς=예수’로서 예수님의 이름과 똑같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늘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모형 인물이다.
9월 29일(월) 건너가서! 차지하고! 분배하고! 경배하라!
여호수아 1장을 읽어 보라. 이 첫 장에서 여호수아서의 구조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답: 요단을 건너가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지파를 따라 분배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1장은 여호수아서 전체의 서론 역할을 한다. 이 장은 네 편의 연설로 구성되어 책의 네 개의 주요 부분인 건너기(수 1:2–9); 정복 전쟁(수 1:10, 11); 땅의 분배(수 1:12–15); 율법에 순종하며 경배하기(수 1:16–18)와 연결된다.
여호수아서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일련의 장면으로 나타난다. 각 장면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에 관련된 구체적인 임무를 주시며, 각 임무가 성공적으로 완수된 이후에 책은 그것을 인정한다.
결국, 땅을 차지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될 것이었다. 그 후로 땅을 지키는 책임은 이스라엘 백성들 손에 달려 있으며, 이것은 참된 믿음과 그 믿음에 수반되는 순종으로만 성취될 수 있었다.
“건너라,” “취하라,” “배분하라”의 세 개의 동사로 표현된 하나님의 계획은 백성의 순종을 통해 온전하게 성취되는데, 이 순종은 마지막 요소인 '경배'에서 비롯된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여호수아서에는 네 개의 주요 부분이 있으며, 각각은 그 부분을 아우르는 핵심 단어를 통해 표현되는 특정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다.
1. 건너가서(수 1:1–5:12)
2. 차지하고(수 5:13–12:24)
3. 분배하고(수 13:1–21:45)
4. 경배하라(수 22:1–24:33)
이렇게 이루어진 구조 자체가 이 책의 핵심 기별을 전달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분의 백성의 신실한 응답이 요구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 특히 우리가 스스로는 할 수 없는 것을 우리를 위해 하신 일까지 포함하며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감당하도록 부름 받았다. 그것은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 원리는 성경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컨대, 요한계시록 14:12에 묘사된 마지막 때의 하나님 백성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한 믿음, 곧 순종으로 이어지는 믿음이라는 같은 개념을 말하고 있다.
<교훈> 하나님 계획은 순종을 통해 성취되는데, 이 순종은 마지막 요소인 '경배'에서 비롯된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부가설명> 성경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15:4)라고 계시한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말세를 만난 우리의 교훈을 위한 것이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10:11). 이런 사건들은 다 구원의 도리를 깨닫게 하는 예언적 사건들이 된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1. 건너가서(수 1:1–5:12) 2. 차지하고(수 5:13–12:24) 3. 분배하고(수 13:1–21:45) 4. 경배하라(수 22:1–24:33)라고 요약된 사건은 죄와 사망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생명과 의의 세상에 나온 사람들이 얻은 생명과 의를 어떻게 잘 지키고 유지하며 하늘까지 갈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건너와서 생명과 의를 차지했고 하늘 나라를 받았으며 삶은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들리라고 권고하며 이것이 영적 예배라고 가르쳤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존재와 삶이 예배 자체가 되어야 한다.
9월 30일(화) 약속의 상속자들
여호수아 1:2, 3에서 주님은 여호수아에게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또 그분은 이미 그 땅을 주셨다고도 말씀하신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그 땅은 참된 소유주이신 여호와께서 주시는 선물이었다. 여호수아 1:2, 3에서 “주다”라는 동사는 두 가지 다른 형태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땅을 상속하는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나타낸다. 첫 번째 형태는 땅을 주실 과정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은 요단강 동편 지역만 점령했을 뿐, 약속의 땅 대부분은 아직 차지하지 못했다.
여호수아 1:3에서는 이 동사가 완료형으로 사용되어, 그 땅이 이미 그들에게 주어졌다는 인상을 준다. 이처럼 하나님이 그러한 행동의 주체이실 때 사용되는 시제를 '예언적 완료형'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약속하시는 것은 현재의 현실로 믿을 수 있을만큼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3절의 대명사 “너희”와 “너희의”는 복수형이므로, 이 약속은 여호수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주어진 것이다. 모세에게 주어진 약속을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이 계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모든’을 의미하는 ‘kol'(콜, 히브리어)이라는 단어가 1장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사용된다. 이 명사가 여러 곳에서 사용되는 것은 여호수아 앞에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전체성과 온전함이 필수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앞으로 다가올 약속의 땅 정복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여호수아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완전한 일치가 있어야 한다.
여호수아 1:4–6과 히브리서 6:17, 18을 읽어 보라. 약속의 땅은 아직 약속이었을 뿐이나 하나님은 ‘유업’이라고 부르신다. 약속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1:4~6]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히6:17,18]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답:
하나님의 약속에 마법 같은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약속 그 자체에는 성취를 보장하는 능력이 없다. 그 약속의 성취를 보장하는 것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있다.
실제로 주님의 임재는 이스라엘 백성의 생존에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주님의 임재가 없었다면 그들은 수많은 민족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며 특별한 부르심이나 정체성, 또는 사명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출 33:12–16). 오직 주님의 임재만이 여호수아가 성공하는 데 필요한 전부였다.
오늘날도 변한 것은 없다. 우리에게 마태복음 28:20에 기록된 예수님의 약속이 주어진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교훈> 약속 그 자체에는 성취를 보장하는 능력이 없다. 그 약속의 성취를 보장하는 것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있다.
<부가설명>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는 우주와 세계의 모든 것이다. 그분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욥에게 한 질문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이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욥38:4).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은 다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 존재하게 했기 때문에 존재하게 된 피조물이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범죄한 지구를 구원하시기로 하시고 그 직무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맡기신 것이다. 그들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모든 사람이 알도록 하시려 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서 가나안 땅을 얻게 하는 것은 아담 후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에 이르는 과정을 표상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이 약속으로 제시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출애굽이나 광야 통과나 가나안 정복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것이고 모세나 여호수아나 이스라엘 백성은 다 하나님께서 구원 섭리를 이루시는 과정의 심부름꾼이었을 뿐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심부름꾼 노릇을 올바르게 잘 해야 할 것이다.
10월 1일(수) 마음을 강하게 하라
여호수아 1:7-9을 읽어 보라.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두 번이나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수1:7~9]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답: 당시 역사적 상황과 이스라엘의 현실을 인간적인 생각과 안목으로는 정복 가능성이 제로 상태였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확고하게 하고 굳게 서도록 격려하는 차원에서 두 번이나 강조하셨다.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임무는 엄청난 도전으로 보였다. 가나안 성들의 성벽은 난공불락처럼 보였고, 그 땅의 거민들은 전쟁에 익숙한 훈련된 사람들이었다. 반면 이스라엘 백성은 유목민에 불과했으며, 요새화된 성벽을 공략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공성 도구조차 없었다. 역사는 당대의 초강대국이었던 이집트도 가나안에서 확고한 거점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강하고 담대하라'는 부르심은 단지 전투 사기나 전쟁 전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언약을 규정하는 율법과 그 구체적인 요구사항에 충실하기 위해서 힘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에베소서 6:10–18을 읽어 보라. 오늘날 우리에게 전쟁터에 나가라는 요청은 없겠지만,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격려의 말씀을 어떻게 매일의 영적 투쟁에 적용할 수 있겠는가?
[엡6:10~18]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답: 이 무장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기도와 간구로 강하게 하고 담대히 악의 영들과 맞서야 할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사명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인들도 여호수아와 비슷한 도전에 직면한다. 우리는 자신의 죄된 본성과 싸워야 하며, 이 어둠의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도 여호수아처럼 그리스도의 함께하심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가지고 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주님의 도우심이 여호수아의 두려움을 몰아내기에 충분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의심과 불안감을 몰아내기에도 충분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우리를 향한 주님과 그분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도록 그분을 깊이 아는 것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이다.
<교훈> 주님의 도우심이 여호수아의 두려움을 몰아냈던 것처럼 우리가 그분을 잘 알고 신뢰할 때에 그 관계는 우리의 의심과 불안감을 몰아내기에도 충분할 것이다.
<부가설명> 우리는 인간의 연약한 것을 우리의 죄된 본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죄된 본성이 무엇인가? 성경에는 본성이라는 말이 몇 번 나온다. 그것은 본질이라는 말이고 원래라는 뜻이다. 헬라어로 ‘퓌시스’라고 하는데, 영어로 nature라고 번역했다. 자연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생긴 그대로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엡2:3에는 본질이라고 번역했다. 벧후1:4에는 성품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죄된 본성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가장 쉬운 풀이로 ‘생긴 그대로’라고 이해한다면 현재 아담의 후손들의 생긴 그대로의 상태는 사망이다.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다. 이것은 썩는 것이다(엡4:22, 벧전1:23, 롬1:23 등). 썩는 것은 썩지 않을 방법이 없다. 썩는 이유는 죽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안 썩으려고 노력하면 안 썩을 수 있을까? 본질상 썩는 존재다. 이것을 도덕적 시각으로 말하면서 죄된 본성이라고 표현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썩는 존재인 옛사람이라는 성경이 제시한 본질을 잊어버릴 수 있는 표현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썩지 않을 씨로 거듭나지 않으면(벧전1:23) 아무리 싸워도 썩는다. 그것은 육신이 약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죽어야 한다. 날마다 부활해야 한다. 바울이 이 경험을 고백했다(고전15:31). 우리가 밤에 잠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날마다 죽는 것과 아침마다 부활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배려가 아닐까?
10월 2일(목) 형통하고 성공하리라
여호수아 1:7–9을 창세기 24:40, 이사야 53:10, 시편 1:1–3과 함께 읽어 보라. 이 구절들을 바탕으로 생각할 때 형통하고 성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1:7~9]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창24:40] 주인이 내게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 너는 내 족속 중 내 아버지 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것이니라.
[사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시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답: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이 삶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형통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찰라흐(tsalakh, 수 1:8)는 계획된 것이 만족스럽게 성취되었거나 유리한 환경 가운데 있는 것을 의미한다.
성공에 사용된 사칼(sakal, 수 1:8)은 “번영” 또는 “성공”으로 번역될 수 있다. 하지만 “신중히 행함”이나 “지혜롭게 행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단어는 욥기, 잠언, 시편에 자주 등장하며, 성공이라는 개념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성공이란 물질적 번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성공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근본에 자리하며 그분의 율법을 통해 나타나는 영적 가치와 원칙과 조화를 이루는 상태로 보아야 한다.
실제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 특히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약속과 그분의 율법에 대한 순종은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그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로마서 3:31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율법과 믿음의 관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답: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세우게 된다.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속죄와 대속적 죽으심에 대한 믿음을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과 대립되는 것으로 보는 것은 거짓되고 위험한 이분법이다. 율법의 역할을 피상적으로 이해할 때에 “율법”과 “은혜”를 반대되는 개념으로 오해하게 된다. 하지만 율법과 은혜는 항상 함께하는 것이다.
구약의 저자들은 율법을 매우 귀중하게 생각했고, 그것을 기쁨의 원천으로 여겼다(시 1:2; 시 119:70, 77, 174). 율법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사용한다면 율법은 인간의 죄악(롬 7:7)과 그리스도의 의가 필요함(갈 3:24)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할 것이다.
<교훈> 성공과 형통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순종함으로 지혜롭게 행동하여 창조세계와 율법에 나타난 영적가치와 원칙과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의미한다.
<부가설명> 성경에 율법이라는 말은 그 적용이 다양함으로 십계명에 국한해서 설명하려면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 율법이라고 할 때 십계명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넓게는 모세오경을 율법(토라)이라고 부르고, 십계명 외의 성경에 기록된 규례, 법도, 율례 등도 다 율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제사제도 성소 봉사 규칙들도 다 율법이라고 한다. 우리는 십계명 외의 율법 특히 제사제도와 성소 봉사 규칙들을 의문의 율법이라고 구분한다. 의문은 한자로 儀文이라고 쓰는데 의식을 규정한 법문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하나님의 명령을 통털어 하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주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존속할 수 없다. 만물을 말씀으로 붙들고 운행하신다. 그것을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시119:91). 사람은 사람 사는 도리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행하라고 하신 말씀들이다. 요약한 것이 십계명이다. 성경은 이 계명을 생명이라고 했다. “나는 그 분의 계명이 영생임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이르는 것이라.”고 하시더라.”(요12:50, 한글킹). 계명이 영생하는 생명의 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계명이 삶의 방법이 되는 것이다. 아멘.
10월 3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부조와 선지자 481, 482, 살아남는 이들 175쪽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약속과 경고는 나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내가 저를 믿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경험이 나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 기도와 약속, 교훈과 경고는 나의 것이다. …진리의 원칙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화시킬 때에 그 원칙은 자신의 일부가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된다. 심령에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은 사상을 형성하고 품성을 계발하게 한다”(시대의 소망, 390).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가장 훌륭한 선행으로도 아무런 공로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열렬히, 더 자주 반복해서, 더 확고하게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겨야 할 주제는 없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믿음과 행함, 19).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여호수아의 삶과 경험이 우리와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어떤 영적 원리들을 배울 수 있는가? 그러나 그와 같은 적용에 있어서 항상 문맥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지는 것을 뜻한다. 여호수아는 그 시대의 특정 환경이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
2.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에 대한 우리의 순종 사이의 관계에 대해 논의해 보라. 약속과 순종은 서로를 어떻게 보완하는가? 한쪽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다른 쪽의 어떤 것을 희생할 위험이 있는가? 율법을 강조하기 위해 은혜를 희생하는 것은 어떤 위험이 있는가? 혹은 은혜를 강조하기 위해 율법을 희생하는 데 따르는 위험은 무엇인가?
*답: 은혜와 율법을 서로 다른 위치에 두고 생각할 일어나는 위험이다.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영원한 생명이 핵심이고 율법(하나님의 말씀)은 이 은혜가 일상에서 드러내는 삶의 방식이다. 은혜가 없으면 이런 삶이 될 수 없다.
3. 이번 주 교과를 바탕으로 성경적 관점에서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겠는가? 그리스도인의 성공을 정의할 때 번영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답: 성공은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번영이 될 수도 있고 환난이 될 수도 있다.
4.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해 보라. 그런 막중한 책임 가운데 하나님은 그를 지탱해 준 어떤 약속을 주셨는가?(수 1:5 참조)
*답: 항상 함께 하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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