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율법의 실천(질문, 대답, 설명) 08/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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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8-22 23:19 조회1,978회 댓글0건본문
제9과 율법의 실천
(8월 30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4분)
연구 범위: 출 21:1-32, 출 22:16-23:33, 왕하 19:35, 마 5:38-48, 롬 12:19, 마 16:27
기억절: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출 20:22-2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주변 국가들과 다르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당신의 지도와 권위 아래 살아가는 신실한 믿음의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바라셨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 아래에 있으며, 재판관은 율법의 집행자로, 제사장들은 율법을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했다. 부모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어떤 문화권에서든 법은 입법자의 이상, 목표, 의도, 성격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바로가 모든 히브리 남자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했을 때, 이 법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즉 그의 악함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어떤 왕이 왕국의 모든 18세 남녀에게 고등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는 법을 만들었다면, 많은 사람은 이를 왕의 관대함과 나라가 번영하기를 바라는 열망의 증거로 여길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그분의 어떠하심, 곧 그분의 선하심, 사랑, 가치, 의, 또 악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를 보여준다. 율법이 거룩하고 공정한 것처럼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율법은 풍요로운 삶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동시에 위험과 재난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도록 돕는다. 하나님과 서로를 향한, 그리고 생명에 대한 존중은 하나님의 입법 제도의 기초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하게 당신의 법을 실천하길 원하신다.
느끼기: 인간은 불순종과 범죄로 잘못된 길로 가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통치하시며 바른 길로 이끄신다.
행하기: 하나님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삶 속에서 사랑과 평화의 원칙을 실천하려고 해야 한다.
TMI 위로
2. 십계명을 주신 주님께서 추가적인 법규를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출 21:1)
*답: 십계명을 잘 이행할 수 있는 시행세칙으로 주셨다.
3. 안식일과 절기에 관한 내용을 신중하게 규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출 23:10-19)
*답: 그것이 십계명이 생활이 되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4. 가나안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은 어떤 방식이었습니까?(출 23:27)
*답: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정복하시는 것이다.
5. 보복법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마 5:38)
*답: 원수를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보복하시도록 맡기는 것이다.
6.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처럼 온전하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마 5:48)
*답: 아버지께 원수갚는 것을 맡기고 오히려 그들을 생명으로 이끌도록 생활하라는 것이다.
7. 죄로 인한 고통과 슬픔의 때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까?
*답: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를 기억할 것이다.
결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그 지도와 권위 아래 살아가는 신실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 원하셨다. 하나님의 법은 그분의 성품을 나타내며 어떻게 통치하시는지를 보여준다. 그분의 법은 생명을 존중하며 풍요로운 삶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고 어려움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 우리는 올바른 영적인 토대 위에서 실제 직면하는 모든 일을 대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우리는 삶 속에서 사랑과 평화의 원칙을 실천해야 한다.
8월 24일(일) 언약 법전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심으로써 하나님은 당신과의 연결을 통해 당신의 백성이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가르치기 위한 기초를 세우셨다. 그러나 율법의 원칙은 일상생활에 적용되어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약 법전”이라고 불리는 추가적인 율례를 주셨다. 이 법을 감독하고 올바르게 적용하는 것이 재판관의 책임이었다.
"백성들의 마음은 노예 생활과 이방 종교로 어두워지고 저하되어서, 하나님의 십계명의 원대한 원칙을 온전히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십계명의 의무를 더욱 잘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하여 십계명의 원칙을 설명하고 적용하는 부가적인 규례들이 주어졌다. 이 법들이 ‘율례(律例)’라고 불리는데 이는 그것들이 무한한 지혜와 공평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법관들이 그것에 따라 판결을 내리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법은 십계명과는 달리 모세 개인에게 주어졌으며, 그는 이것들을 백성들에게 전달하였다"(부조와 선지자, 310).
출애굽기 21:1-32를 읽어 보라. 히브리 종, 살인, 신체 상해에 관해 어떤 구체적인 율례가 주어졌는가?
[출21:1~32] 여기 내용은 1~4 남종에 관한 법, 5,6 종의 귀를 뚫는 것에 관한 법, 7~11 여종에 관한 법, 12~15 살인에 관한 법, 16 유괴범에 관한 법, 17 부모에 관한 법, 18~21 폭행에 관한 법, 22~27 과실 상해에 관한 법, 28~32 사람을 받은 소에 관한 법, 32 남에게 손해 입힌 자에 관한 법으로 구성되었다. 종은 6년간 종살이 한 후에 7년째는 자유롭게 보내야 했다. 당시 사회에서는 파격적 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이 오면 모든 사람들을 죄의 종에서 해방하실 것을 암시하는 법이다.
언약 법전은 여러 장에 걸쳐 설명되어 있다(출 21:1-23:19). 이 모든 율례와 법은 죄악이 세상을 덮는 것을 막고 질서 있는 사회를 세우기 위해 제정되었다.
히브리의 노예 법은 독특한 것으로, 근대 또는 중세의 잔혹하고 사악한 노예제도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히브리 종들은 실제로 보호받고 소중히 여겨졌다. 근대와 중세 사회에서 종과 노예는 주인이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었던 주인의 소유물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성경의 법은 이것을 전혀 다르게 규정했다. 종살이는 6년으로 제한되었고(출 21:1, 2; 렘 34:8-22), 종이 자원해서 주인과 함께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 한 7년째 되는 해에 모든 종은 해방되어야 했다. 또 주인은 종들에게 안식일의 쉼을 주어야 했고(출 20:9, 10), 그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 주어야 했다.
<교훈> 율법이 일상에 적용되어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추가적인 율례를 주셨다. 이것은 죄악이 세상을 덮는 것을 막고 질서 있는 사회를 세우기 위해 제정되었다.
<부가설명> 출애굽기 21~23장은 체결한 언약을 어떻게 생활에 실천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법전이다. 20장의 십계명을 실천하는 시행세칙이다. 우리가 십계명이라고 하는 언약서라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다. 언약을 어기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 설명한 것이 21~23이다. 언약은 법규보다 그 시행해야 하는 의무가 강하다. 그것은 언약을 체결하는 당사자의 동의로 맺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약은 언약을 맺은 쌍방의 동의 없이는 폐할 수도 변경할 수도 없다. 우리가 십계명이라고 하는 열 말씀들은 언약의 조문이다. 그것을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행하는지 자세하게 말씀하신 것이 21~23의 내용이다. 그것은 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사랑의 바탕에 기초한 것이다. 형벌 조항이 냉정해 보이는 것은 상대에게 행하는 대로 자신에게 그것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대접을 받고저하는 대로 상대를 대접하라는 의미의 역행을 말한 것일 뿐이다. 그것은 실천할 사람들이 상태에 알맞게 표현할 것일 뿐이다. 그렇게 하지말라고만 하면 실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실천하도록 강하게 표현한 것이다. 자신이 해를 당하는 것은 원하지 않으면서 남을 해하는 것은 그래도 쉽게 하지 않는가? 그러면 결과로 자기도 그렇게 해를 당할 것이기 때문에 동형 형벌 형식으로 명하신 것일 뿐이다. 사랑의 실행을 역으로 표현한 것이다.
8월 25일(월) 더 많은 법도
자비하신 하나님은 재판관들에게 재산권과 관련한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를 가르쳐 주셨다. 여러 사례가 열거되었다. 소가 이웃이나 그들의 소를 공격했을 때, 다른 사람의 가축을 훔쳐서 잡거나 팔았을 때, 가축들이 남의 밭이나 포도원에서 뜯어 먹을 때, 빌린 물건을 도난당했을 때, 또는 빌려온 가축이 다치거나 죽는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기록되었다(출 21:33-22:15).
출애굽기 22:16-23:9를 읽어 보라. 이 법도는 어떤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출22:16~23:9] 사람이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납폐금을 주고 아내로 삼을 것이요 17 만일 처녀의 아버지가 딸을 그에게 주기를 거절하면 그는 처녀에게 납폐금으로 돈을 낼지니라 18 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 19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20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 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27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28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 29 너는 네가 추수한 것과 네가 짜낸 즙을 바치기를 더디하지 말지며 네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 30 네 소와 양도 그와 같이 하되 이레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여드레 만에 내게 줄지니라 31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동물의 고기를 먹지 말고 그것을 개에게 던질지니라/ 23:1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4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5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6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7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답: 성폭행한 남자가 여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규정으로부터 짐승과 음행하는 것과 나그네 고아 과부를 대하는 것, 이자와 전당잡힌 것에 대한 것, 관리에 대한 존경심, 처음 난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규정, 자신을 거룩하게 유지하라는 규정이 있고 23장에는 헛소문 퍼뜨리지 말 것과, 공평한 재판, 4~6절은 자선행위로 생활하라는 권고가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법이 다루는 다양한 문제 중에는 사람을 짓밟거나 모욕하는 문제를 다루는 구체적인 규정도 있었다. 하나님은 어떤 종류의 착취도 허용하지 않으신다. 자비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의 죄악된 경향을 바로잡고 사람들의 타고난 성향을 제어하신다. 사회는 안전하게 유지되어야 하며, 악은 제거되고, 좋은 상호 관계가 배양되어야 했다. 사랑과 공의가 모든 행동을 다스려야 했다.
출애굽기 23:10-19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어떤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가?
[출23:10~19]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11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12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13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 14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7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18 너는 네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제물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지니라 19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답: 하나님께 예배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안식년, 안식일, 무교절(유월절과 함께 표현된 것), 맥추절(오순절), 수장절(초막절)을 지키고 하나님께 드릴 것을 올바르게 드리라고 규정했다.
안식일과 절기는 예배에 관한 것이며 구원사에 나타난 중요한 사건들을 되새기게 했다. 예배는 다른 모든 행사의 신학적 근거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규정되었다.
안식일은 창조 때 제정되었고(창 2:2, 3; 출 20:8-11), 이스라엘의 구원과 구속과 연결되었으며(신 5:12-15), 강력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창조주, 구속주, 주님으로 경배해야 할 것을 가리킨다(막 2:27, 28).
한편, 이스라엘은 매년 세 가지 중요한 절기를 지켜야 했다. (1) 봄의 유월절 또는 무교절(보통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 사이), (2) 오순절 또는 초실절(칠칠절, 유월절로부터 7주 후, 즉 50일 후에 시작), (3) 가을의 초막절 또는 수장절(보통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 사이, 출 34:18-26, 레 23:4-44, 민 28:16-29:40, 신 16:1-16 참조)이 그 절기들이다.
<교훈> 하나님의 법은 사람의 마음의 악을 바로잡고 좋은 상호 관계를 배양하며 공의와 사랑이 행동을 다스리게 하며 구원과 구속을 되새기게 했다.
<부가설명> 성폭행 문제나 고아 과부 가난한 자에 관한 규례는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의 핵심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인 것을 구체적으로 생활에 실천하도록 주신 규례들인데, 그 바탕은 십계명의 본질적인 정신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고 짐승을 대한다면 그들에게 자비롭게 할 것이다. 사랑은 이웃을 해롭게 하지 않는다. 사랑을 실천하는 첫 걸음이 상태를 해롭게 하거니 성가시게 하지 않는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라고 정리한 것이다. 소극적 표현이지만 가장 실제적인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성가시게 하지 않고 해롭게 하지 않는데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첫 걸음을 디딘다. 쉽지 않는가? 이웃을 위하여 네가 손해를 봐라, 네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어라 이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라고 했다면 얼마나 어려운가? 소극적으로 사랑 실천을 설명한 것은 그것 차제로도 연약한 우리를 배려하신 하나님의 자비가 아닐 수 없다.
8월 26일(화) 하나님의 원래 계획
출애굽기 23:20-33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고자 하셨는가?
[출23:20~33]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21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22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23 내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 24 너는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깨뜨리며 그들의 주상을 부수고 25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26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27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물리치고 네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하게 할 것이며 28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29 그러나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30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31 내가 네 경계를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주민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32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 33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하게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답: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보내셔서 그들을 쫓아내게 하실 것인데, 조금씩 쫓아내실 것이다. 이유는 이스라엘이 번성할 때까지 그 땅을 다 소유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무력으로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었다. 땅은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었다. 그것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약속된 것이었으므로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 주어졌을 것이다.
약속의 땅을 어떻게 정복할 것인지는 홍해를 건너는 과정을 통해 이미 보여졌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싸우셨고 그들을 죽이려는 자들을 물리치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하셨다(출 14:13, 14). 애굽인들이 패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개입하셨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앗수르 왕 산헤립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셀 수 없이 많은 중무장하고 잘 훈련된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싸울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 것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히스기야 왕이 믿었기 때문이었다(왕하 19:35, 사 37:36).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이 그의 후손에게 바로 주어지지 않고 400년 후에야 주어질 것이라고 알려주신 이유는 무엇인가?(창 15:13-16) 그 이유는 가나안 땅 거민들의 악과 관련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도 자비롭게 대하시며 그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은혜의 기간을 주셨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지속적으로 거역했다. 그 나라의 죄악이 가득 찼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땅을 히브리인들에게 새로운 영토로 주셨다.
또한 하나님은 (1) 악한 나라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보내어, (2) 왕벌로 백성들을 쫓아내는 두 가지 특이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보다 앞서 그 나라들을 몰아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새 영토에 도착하기도 전에 적들은 그곳을 버리고 “등을 돌려 도망”갈 것이었다(출 23:27, 28).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하나님의 천사였다. 이 사자는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영토를 정복하고 그들을 보호하신 그리스도이셨다. 그분은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권위를(출 23:21) 가지고 계신 그분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따라야 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그분의 지도력을 믿지 않는다면 그들의 전진은 어려워 질 것이었다.
<교훈> 이스라엘이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무력으로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분의 지도력과 뜻을 따랐다면 그것은 특별한 선물로 주어졌을 것이다.
<부가설명> 구원받은 사람이 할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그 구원을 잃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주신 구원을 지키라고 하셨다. 이것을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스스로 구원을 쟁취하는 것보다는 쉬운 것이 아닌가? 왜 지켜야 하는가? 사탄이 그것을 포기하도록 온갖 핍박과 환란을 가하지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유월절 양을 잡오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를 구워 먹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것이다. 광야 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냥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되었다. 구름 기둥 불기둥이 그들 눈에 보이는 상태로 그들을 인도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하라는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생활하면 주신 구원과 믿음을 지키는 것이 된다. 그것을 못한다. 육신이 약하고 공격하는 사탄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기셨기에 두려워하지 말고 전진하며 선한 싸움을 싸워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다 하셨으나 우리가 한 것처럼 면류관을 주신다. 할렐루야.
8월 27일(수) 눈에는 눈으로
마태복음 5:38-48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보복법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시는가?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는가?
[마5:38~4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답: 예수님은 보복법의 의도와 목적을 설명하셨다. 곧 상대를 해치면 같은 해를 자기도 당하게 됨으로 내가 상하지 않으려면 상대를 상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산상수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구약성경의 본문을 인용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당시 랍비들의 해석을 반대하셨다. 그들의 해석은 수세기에 걸쳐 이 법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있었다. 인간의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의 목적을 가리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그 의도와 의미를 왜곡했다. 예컨대, 안식일 규정과 안식일 계명에 대해 그들이 한 일을 생각해 보라.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통해 이러한 법의 원래 의미를 회복시키셨다.
축복의 산에서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법의 원래 의도와 의미를 되짚어 줌으로써 이러한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고자 하셨다.
출애굽기 21:24의 “눈은 눈으로, 이는 이”라는 구절은 마태복음 5:38(“이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에 인용되었으며 이른바 보복법(lex talionis)을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사용된다(레 24:20, 신 19:21).
이 법이 제정된 원래 의도는 개인적인 복수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 법은 유혈 분쟁이나 조사 없이 행하는 보복을 막기 위해 제정되었다. 부상을 입은 경우는 판관이 평가한 후 적절한 금전적 보상이 결정되고 지급되어야 했다. 이러한 관행은 사람들이 “자기 손으로 법을 집행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정의는 실현되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했다. 이러한 사회법을 모세에게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기에 그분은 율법의 목적을 알고 계셨고 이를 원래 의도에 따라 객관적으로 적용하실 수 있었다. 이 법의 동기는 정의와 화해를 가져오고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정의란 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복수가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법의 적절한 적용은 정의와 복수라는 개념 사이에서 바른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교훈> 정의는 실현되어야 하지만, 자기 손이 아닌 하나님 법에 따라야 했다. 예수님은 정의와 화해를 가져오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셨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진정한 의도를 모른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합당하게 해결하실 것을 믿고 그날까지 기다리라고 하신 것이다. 보복은 또 보복을 낳는다. 일본의 명치유신 이전 시대가 그랬다. 부모가 해를 받으면 자식은 그것을 복수하기 전에는 사회 진출을 못했다. 복수하면 그 자식은 또 복수해야 했다. 얼마나 악한 풍습인가. 명치천황이 이것을 없애버렸다. 복수하지 않아도 사회 진출에 지장이 없도록 한 것이다. 복수 풍습이 없어졌다. 구약에 동형 보복법은 그렇게 자기도 당할 것이니 사람을 해치지 말라는 역설적 규정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더 확실하게 설명하셨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복수인 것이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원수를 이기셨다. 사랑의 마음이 넘치게 해주소서.
8월 28일(목) 복수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 12:19; 신 32:35 참조). 이 구절에는 어떤 약속과 명령이 있으며 이들은 어떻게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가?
[신32:35]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답: 원수는 하나님이 갚으실 것이라고 약속했고, 원수 갚은 것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명령하셨다.
주께서 혼란하고 어려운 이 땅에 정의를 이루실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은 그 때가 오기 전까지, 상해를 입거나 부상을 당할 때 법을 집행하고 공정한 처벌을 결정하는 것이 의무였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했다. 문제는 예수님 때의 율법 선생들이 법을 개인적인 복수를 허용하는 것처럼 적용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원칙이 법의 맥락에서 벗어나고 본래의 의도를 상실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실제로 율법이 금지한 것을 옹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태복음 6:4, 6, 마태복음 16:27, 누가복음 6:23, 디모데후서 4:8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예수님이 보상과 처벌의 원칙을 어떻게 보셨는지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마6:4,6]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눅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답: 마지막 심판 날에 그 약속이 확실히 성취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보상과 처벌의 원칙에 반대하지 않으셨다. 정의는 원칙의 문제이며 삶의 중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어떤 개인도 스스로 재판관, 배심원, '집행자'가 될 수 없다. 사람은 손쉽게 정의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를 갚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악에 대한 판단은 객관적인 법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은 재판관이 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처럼 온전해질 수 있는가? 이타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가장 두드러진 성품이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는 법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치신다. 진정한 완전은 사랑하고,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는 것(눅 6:36)이며, 심지어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과 그에 따라 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낸다는 의미이다.
<교훈> 사람은 정의를 왜곡할 수 있기에 하늘 원칙을 따라야 한다. 이 맥락에서 우리에게 하늘 아버지처럼 온전하라고 말씀하시며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라 하신다.
<부가설명> 사람은 사는 날이 짧기 때문에 조급하다. 자기의 의식이 었고 아직도 생명이 있어 활동하는 동안 원수의 보복을 보기를 원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 성취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사람의 소원대로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상을 주든지 형벌을 내리든지 모든 것은 마지막 날에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신다. 이유는 해를 받은 사람이든지 해롭게 한 사람이든지 결국은 다 죽음에 삼켜지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한 보복은 영생에 들어가는 것과 영원한 사망에 들어가는 것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사실이 밝혀지지 않고 죽을지라도 악을 행하고도 영화를 누리다가 죽을지라도 죽는 것은 똑 같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인이 백 번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내가 정녕히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앞에서 경외하는 자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 앞에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전8:11~13). 이것이 보상과 보복에 관한 성경의 결론이다.
8월 29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부조와 선지자 27장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 310-314를 읽어 보라.
우리는 원수의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의 교묘하고 기만적인 계략으로 인해 실제 생활에서 상처를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죄가 들어오고 세상이 타락한 이후로 우리 중에 슬픔과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불행히도 그것은 이 세상 삶에서 떼어 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귀하신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한 바로 그 때에 도와주실 것이다. 하늘로 가는 길은 그분의 발자국으로 거룩해진다. 우리의 발을 상하게 하는 모든 가시는 이미 그분의 발을 상하게 했다. 우리가 지게 될 모든 십자가는 우리보다 그분께서 먼저 지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마음의 평안을 주시고자 투쟁을 허락하신다. 환난의 때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무서운 시련이다. 그러나 모든 참된 신자는 이런 때에 위를 쳐다보고 믿음으로 자기를 둘러 있는 약속의 무지개를 볼 수 있을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33).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사람들은 주께서 이방 민족들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내고 때로는 전멸시키셨다는 사실 때문에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공의를 나타내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이러한 사건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만이 아니라 사랑도 나타났음을 믿는데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
*답: 이 문제는 도덕성에 근거해서 이해하려면 결코 시원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과 관련해서 이해할 때 비로소 바르게 깨닫는다. 죄은 인간의 도덕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생명에 근거했다. 아담이 사망의 존재가 된 후에 아담 자손으로서의 인간은 예외없이 아담 앙네서 다 죽었다(고전15:2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이것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생명을 받지 못하도록 강하게 방해한다. 그래서 생명 얻을 은혜의 기회가 지난 사람들과 민족들이 본질적인 사망에 내버려두신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의 호흡이 공급되지 않는다. 그것이 진멸이다. 이것을 깨닫는 자는 복음을 바르게 알게 될 것이다.
2. 다른 사람, 심지어 원수들도, 게다가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마저 사랑하라는 말씀 바로 뒤에 예수께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말씀하신 것을 더 깊이 생각해 보라. 예수님은 왜 그러한 명령 뒤에 이런 명령을 하셨는가? 여기서 예수님은 “완전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답: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원수도 생명을 얻도록 모든 기회를 주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같은 생명을 얻으면 원수가 형제가 된다.
3.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율법과 그 기능에 대해 긍정적이고 그것을 높이는 자세를 취했지만, 율법의 오용에는 반대했다.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 6:14)라는 그의 선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율법을 오용하는 경우는 어떤 것들인가?
*답: 법 아래 있는 것은 법조문 때문에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사는 것이고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었으므로 그 생명의 작용으로 나도 예수님처럼 생활하게 된다는 뜻이다.
4. 정의와 복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인가, 아니면 같은 생각의 다른 표현일 뿐인가? 정의에 대한 우리의 열망이 실제로 복수의 열망이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답: 스데반은 사울이 바울이 되었을 때 가장 확실히 복수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정의(공의)는 같은 사실의 양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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