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 전조(前兆)-(요점 Q&A)-(간단히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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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5-06-13 18:51 조회701회 댓글1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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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전조(前兆)
(6월 21일 (안) / 일몰: 오후 7시 56분)
<기억절(記憶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개요(槪要)>
1. 마지막 날 예언(豫言)의 초점(焦點)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미래를 아시고 궁극적(窮極的)으로 책임(責任)지심을 보여줍니다.
2. 성경(聖經) 말씀을 통해 마지막 때의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勇氣)와 평화(平和)를 유지(維持)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며, 특히 두려움 대신 소망(所望)을 갖는 것이 중요(重要)하다.
3.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믿음을 유지(維持)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으며, 이는 마지막 때의 사건(事件)들을 견디는 힘이 된다.
4. 구약(舊約)과 초기 교회의 경험은
- 다니엘의 3 친구(사드락,메삭,아벳느고)가 우상숭배의 명령을 통해 누구를 예배할지를 선택했던 것처럼, 마지막 때의 시험(試驗)과 충성(忠誠)의 대상을 보여주는 전조(前兆)이며, 안식일 준수(安息日遵守)와 같은 논쟁(論爭)이 마지막 때의 핵심쟁점(核心爭點)으로 귀결(歸結)될 것이다.
5. 믿음의 조상(祖上)들처럼 하나님을 신뢰(信賴)하며, 힘든 상황(狀況)에서도 소망(所望)을 품고 충성(忠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6월 15일 (일)
<(다니엘 2장)과 예언에 대한 역사주의적(歷史主義的) 접근(接近)>
(Q) (다니엘 2:31~45절)에서
느부갓네살의 꿈은 무엇이었으며 그리고 다니엘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解釋)했는가?
1.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꾼 꿈이 매우 신비(神祕)롭고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2. 그 꿈은 큰 신상(神像-人像)) 의 꿈을 꾸었는데, 꿈 자체를 잊어버리고 바벨론의 술객(術客)과 박수(남자 무당) 들에서 잊어버린 그 꿈을 해석하라고 하였으나 아무도 해석(解釋)을 못 하였다.
3. 다니엘은 꿈속의 신상(神像)은 머리는(정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음(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 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한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꿈에 본 큰 신상이다부서져서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4. 이 꿈은 바벨론 시대 이후 앞으로 연속하여 일어날 제국(帝國)들의 상징(象徵)이며,
5. 마지막에는 철(鐵)과 진흙이 섞인 발이 무너지면서 하나님의 영원(永遠)한 왕국(王國)이 세워질 그것 임을 예언(豫言)한 것이다.
<요점(要點)>:
1. 느부갓네살이 꾼 큰 신상의 꿈은 앞으로 일어날 세계역사(世界歷史) 속의 여러 제국(諸國)들을 상징(象徵) 하는 신상(神像)의 모습이었다.
2. 다니엘은 이 꿈을 해석(解釋)하며, 앞으로 여러 제국(諸國)들이 차례로 등장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영원(永遠)한 나라가 세워질 것임을 예언했다.
(Q) (다니엘 2장)은 하나님께서 미래(未來)를 아실 뿐만 아니라 궁극적(窮極的)으로 미래(未來)를 주관(主管)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證明)해 줍니까?
1. 느부갓네살이 꾼 꿈과 그 해석(解釋)은 당시에는 알 수 없던 내용을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해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2. 다니엘의 해몽처럼 꿈속에 등장했던 여러 제국(諸國)들이 역사 속에서 멸망(滅亡)하는 과정(過程)이 정확히 성취(成就)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미래를 아시고, 그 일들을 주관(主管)하신다는 사실이 분명(分明)히 드러났다.
☞. <요점(要點)>
(다니엘 2장)은 하나님께서 미래(未來)를 아시고, 그 미래(未來)를 주관(主管)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언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성취됨은 하나님께서는 세상 역사(歷史)를 통제(統制)하신다는 강력한 증거(證據)이다.
(6월 16일) (월) <우상숭배(偶像崇拜)>
(Q)- (다니엘 3:1~12절)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金 神像)을 세우고 신상 숭배를 요구한 의미(意味)는 무엇인가요?
1. 느부갓네살 왕(王)이 금 신상(金神像)을 세운 것은 자신의 권위(權威)와 야심(野心)과 자만심(自慢心)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메시지에 대한 반항(反抗)을 상징(象徵)한다.
2. 이는 바빌론이 절대로 함락(陷落)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確信)과 자신이 영원한 왕권(王權) 을 가질 것이라는 오만(傲慢)한 생각을 보여준다.
3. 또한, 왕(王)은 자신과 신상(神像)에 대한 숭배(崇拜)를 강요(强要)함으로써 인간의 자기 결정 욕망(慾望)이 하나님의 권위(權威)에 도전(挑戰)하는 위험성(危險性)을 경고(警告)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Q)~(다니엘 3장 17~18절)에서
세 히브리 소년이 보여준 믿음은 무엇을 가르쳐 주며, 믿음이 때때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나요?
(답) 이 구절(句節)은 믿음이 어떤 위험(危險)과 희생(犧牲)을 감수(甘受)하더라도 하나님께 충성(忠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것을 가르쳐준다. 세 소년(少年)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충성하며, 타협(妥協)하지 않는 신앙의 용기(勇氣)를 보여준다. 믿음은 때로 우리에게 자신을 희생(犧牲)하거나 어려운 선택을 요구(要求)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진정한 충성(忠誠)과 신뢰(信賴)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敎訓)을 준다. 또한, 믿음에 대한 유혹(誘惑)이나 타협(妥協)의 유혹(誘惑)을 피하려면 작은 일부터 충성하는 습관(習慣)이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알려 준다.
[결론]
1. 다니엘의 3 친구(하나냐(사드락). 미사엘(메삭). 아사랴(아벳느고)와 같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변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하며
2. 또한, 믿음은 지극히 작은 일에서부터의 충성(忠誠)하며, 불의와 유혹에 타협(妥協)하지 않는 신앙과 용기를 가질 때 하나님의 반석 위에 굳게 설 것이다.
♣사탄은 자존심(自尊心)이 강(强)하며 하나님을 노골적(露骨的)으로 거역(拒逆)한 느부갓네살 을 통해 믿음을 시험했지만, 세 친구는 생명을 걸고서라도 믿음에 굳게 설 것을 보여주었다.
(6월 17일) (화) <우상숭배(偶像崇拜)의 재현(再現)>
(Q)-(요한계시록 13:11~17절; 요한계시록 14:9, 11~12절; 요한계시록 16:2; 요한계시록 19:20; 요 한 계시록 20:4절) 등에서 하나님의 계명(誡命)과 사람의 계명(誡命)을 대조(對照)시키는 어떤 대조(對照)가 있습니까? (요한계시록의 여러 구절(句節)과 하나님의 계명(誡命)과 사람의 계명을 대조(對照)하는 내용)
1. 요한계시록 내용의 핵심(核心)은 "우상숭배(偶像崇拜)와 충성(忠誠)의 문제"입니다.
2. 성경은 마지막 날에 사람들에게 어떤 우상(偶像)에게 경배(敬拜)하라는 명령(命令)이 내려질지라도, 하나님께 창조주(創造主)와 구속주(救贖主)로 경배(敬拜)하는 그것이 진정(眞正)한 예배(禮拜)임을 강조한다.
3. 또한, 인간이 누구에게 충성(忠誠)을 바치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누구를 최우선(最于先)으로 섬기고 따르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直結)되어 있으며, 이것이 우상숭배와 깊은 관련(關聯)이 있다는 점이다.
(A)-<요점(要點)>
1. 우상숭배(偶像崇拜)는 단순히 물리적(物理的)인 우상(偶像)에 절하는 것뿐만 아니라, 궁극적(窮極的)으로 누구에게 충성(忠誠)을 바치는가? 하는 문제이다.
2. 우리가 하나님을 최우선(最于先)으로 섬기고 그분께 충성(忠誠)하는 그것이 진정한 예배(禮拜)이며, 그 외(外)의 모든 것은 우상숭배에 해당(該當)한다.
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마12:30)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는 자”라는 말씀을 생각하며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예수안에 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통해 우리의 구속주 되심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만이 우리의 경배와 충성을 받으셔야 한다.
♣. 다니엘의 세 친구의 경험(經驗)이 마지막 때에도 반복(反復)될 것이다.
창조주(創造主)시며 구속주(救贖主)인 예수님 외(外)에 무엇이든 궁극적(窮極的)인 충성(忠誠)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우상(偶像)이다.
(6월 18일) (수) <초기 교회(初期敎會)가 당한 박해(迫害)>
(Q)-(사도행전 12장 1~17절) 이 이야기의 어떤 요소(要素)들이 마지막 날의 사건(事件)들을 예고(豫告)하는 것일까요?
(A)-(답(答)
1. 이 이야기에서 초기교회에 신자(信者)들이 박해(迫害)와 죽음의 위협(威脅) 속에서도 기도(祈禱)하며 하나님께 의지(依支)하는 모습은 마지막 때에 우리들에게도 닥쳐올 사건의 전조로 기록된 것이다.
2. 또한, 일부 신자(信者)들이 죽임을 당하는 현실(現實)은, 마지막 때에도 믿음 때문에 고난(苦難)과 희생(犧牲)이 따를 수 있음을 예고(豫告)한다.
3 특히 베드로의 기적적(奇蹟的) 구출(救出)은, 마지막 때에도 믿음과 기도가 하나님의 강(强)한 개입(介入)과 구원(救援)을 이끌어 낼 것임을 보여준다.
4. 이 모든 요소(要素)들은 마지막 날에 일어날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救援)과 믿음의 승리(勝利)를 기대(期待)하게 만든다.
<요약(要約)>
1. 초기교회(初期敎會) 박해(迫害)와 마지막 날의 사건들에 대한 예고(豫告)가 담겨 있다.
2. 특히 (사도행전 12장) 이야기는 마지막 때의 사건(事件)들을 미리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데요,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핵심(核心)은 다음과 같다:
①. 신자(信者)들이 박해(迫害)와 죽음의 위협(威脅)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
②. 하나님께서 기도(祈禱)하는 자들을 구원(救援)하시고, 믿음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진다는 것.
③. 마지막 때에는 믿음 때문에 고난(苦難)과 죽음이 따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중요(重要)하다는 메시지 임.
(Q)-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말씀하신 후에도 여전히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신 점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또한 이 말씀은 죽음의 위협(威脅)조차도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그것을 막지 못하는 이유(理由)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1. 이 말씀은, 죽음과 같은 극심(極甚)한 위협(威脅)이 있더라도, 주님을 따르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주님은 시련을 당할 때 그들과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으로 그들을 격려하셨다.
심지어(甚至於) 죽음의 위협(威脅)이 다가와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실 때, 그 길이 어려움과 희생(犧牲)을 포함하더라도, 믿음과 순종(順從)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傳達)한다.
3. 이는 마지막 때에도 우리가 어떤 고난(苦難)이 있더라도 주님을 포기(抛棄)하지 않고 “나를 따르라”라는 음성을 마음에 새기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 최우선(最于先)임을 의미(意味)한다.
♣. 초기교회(初期敎會)에 박해(迫害)가 닥쳤을 때 많은 이들이 결국(結局)에는 신앙(信仰)을 이유로 죽음을 맞이했다. 신약성경의 이러한 기록들은 마지막 때 사건(事件)의 전조(前兆)로 기록된 것이다.
(6월 19일) (목) <짐승의 표(表)>
(Q)-(마태복음 12:9~14절)과 (요한복음 5:1~16절)에서. 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던 이유(理由)는 무엇인가요?
(A)-1. 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예수님이 안식일(安息日)에 병(病)을 고치거나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行爲)를 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전통적(傳統的)으로 지켜온 안식일 규정(安息日規定)을 어기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이유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 규정(安息日規定)을 위반(違反)했다고 보고, 그로 인(因)해 그를 위협(威脅)으로 간주(看做)하여 죽이려 한 것이다.
<요약(要約)>
1. 성경의 안식일(安息日)과 인간들의 전통(傳統)이나 유전(遺傳)에 의한 일요일(日曜日) 준수에 관한 논쟁(論爭)과 최후의 사건들에 대한 해석(解釋)이 제기(提起)되고 있습니다.
2. 특히, (요한계시록)에서는 창조주(創造主)를 경배(敬拜)하는 것과 짐승과 그의 우상(偶像)에게 경배(敬拜)하는 것이 중요한 대조(對照)로 나타나며, 초점(焦點)은 성경의 안식일(安息日)이다.
3. 안식일(安息日)이 창조주(創造主)를 상징(象徵)하는 표징(標徵)임이 강조(强調)한다.
또한, 안식일 계명(安息日誡命)을 인간의 전통(傳統)이나 인간의 법(法)으로 대체(代替)하려는 이교 로마의 세력(勢力)과의 갈등(葛藤)이 성경에 나타나 있으며, 이와 관련된 논쟁(論爭)인 안식일이 최후의 사건(事件)들과 연결(連結)된다는 관점(觀點)이다.
(Q)- 하나님의 계명(안식일)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어떻게 쉽게 합리화(合理化)할 수 있나요?
1. 이 문제를 쉽게 합리화(合理化)하는 방법은, 당시 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이 인간의 전통(傳統)과 법(法)을 하나님의 계명(誡命)보다 우선시(于先時)했기 때문이다.
2. 즉, 하나님의 계명(誡命)인 안식일(安息日)을 지키는 것보다 인간이 만든 규범(規範)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예수님이 안식일에 행(行)한 치유(治癒)를 문제 삼아 그를 죽이려 한 것이다.
3. 이는 하나님의 법(法)보다 인간의 전통(傳統)이나 인간의 법(法)이 우선시(于先時)될 때 발생하는 갈등(葛藤)을 보여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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