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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시편에 나타난 계시 -2(질문, 대답, 설명) 05/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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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5-23 09:17 조회2,0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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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시편에 나타난 계시 -2

(5월 31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46분)

 

연구 범위: 시 46:, 렘 4:23-26, 시 47:1-4, 살전 1:1-4, 살전 4:13-17, 시 75:, 계 14:6-12

 

기억절: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시 67:3, 4).

 

마지막 사건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짐승과 권세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들은 크고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것들을 성경에 넣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계 1:3 참조).

그러나 예언은 그 외에 죄와 고통, 심판, 선과 악의 싸움, 정의와 불의의 본질, 핍박 등에 관한 문제들도 다루고 있다. 

시편도 깊은 낙담부터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을 탐구하며 이러한 문제들을 매우 심도 있게 다룬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어둠의 세력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을 본다. 왜 하나님은 악을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다루지 않으시는지 질문하며 씨름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 모두가 제기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답을 얻기 위해 성소로 들어가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지위를 들어 계속해서 호소한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도 씨름하는 문제와 질문이 아닌가? 

이것이 우리가 이러한 중요한 진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시편을 계속 풀어보려는 이유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세상에서 악의 문제를 경험하지만, 이 땅은 하나님께 속했고 그가 이 문제를 다스리실 것이다. 

느끼기: 이 땅의 혼돈 너머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으며 주께서 세상 나라를 심판하실 것이다. 

행하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께 받은 진리를 세상에 전한다. 

 

TMI 위로

2. 현재의 어려움에도 믿음을 지키며 예언의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시 46:10)

*답: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당신의 보좌를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겔 1:26)

*답: 우주와 세상을 친히 주장하시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사랑이다.

4.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에 서겠다는 스가랴의 예언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슥 14:4)

*답: 예수께서 지상으로 재림하셔서 이 지구가 예수님의 것으로 확증된다는 확실한 보증이다.

5.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문제를 바로 잡으시고 힘과 권세를 심판하십니까?(시 75:7)

*답: 세상의 오만과 권력을 처들고 휘두르는 것과 교만과 모든 부조리들을 드러내고 처리하시려는 것이다.

6. 하나님께서 어둠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시 67편)

*답: 주님의 구원을 온 세상에 빛으로 전하라는 것이다.

 

결론: 시편은 인간의 경험을 통해 악의 문제를 질문한다. 황폐함과 고통 중에도 시편은 우리에게 하늘 시민권이 있고 혼돈 너머에 흔들리지 않는 보좌가 있음을 말한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지만 이 땅은 하나님께 속했고, 주의 발이 감람산에 설 때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며, 새 예루살렘이 내려올 것이다. 주님은 빛을 비추어 주시며 그 빛을 세상에 비추기 원하신다. 이 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기에 고민하지 말고 명령을 따라 순종할 때, 성령을 보내 주시고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다. 

 

5월 25일(일)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

 

시편 46편을 읽어 보라. 지금의 삶의 혼란 가운데, 그리고 대쟁투가 진행되면서 마지막 때에 이 땅에 닥칠 일을 아는 우리는 이 구절에서 어떤 소망의 기별을 발견할 수 있는가?

[시46:1~1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5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6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9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답: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환난을 견디고 이기게 하실 것을 믿을 수 있다.

시편 46편은 히브리서에서 발견하는 주제, 곧 “더 좋은 것”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이 땅의 대제사장보다 우월하고, 그분의 희생은 모든 짐승 제사보다 온전하며, 하늘 성소는 이 땅에 지어진 표상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시편은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다. 저자는 좋은 것들을 더 좋은 것들과 비교하는 대신, 반역의 세상과 그것이 가져온 끔찍한 결과를 보여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더 좋은 것에 대한 약속과 대조한다. 

실제로 이 시편은 우리가 직면하는 황폐함과 시련과 고통과 전쟁 속에서도 결국에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시 46:10)것이며, 언젠가 이 모든 일이 끝나고 하나님이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시 46:10)라는 확신 속에서 안식할 수 있다는 소망과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시 46:2)질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록된 내용은 또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계 6:14)겠다는 재림 때 일어날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은 또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벧후 3:12)겠다고 말한다. 

현재의 우리의 세상과 그에 따르는 모든 악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이후에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되어 있다. 그렇기에 지금은 믿음을 지키며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계시를 붙잡아야 하고,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 

 

<교훈> 시편 46편은 우리가 직면하는 황폐함과 고통의 현실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계획하셨다는 약속을 대조하며 우리에게 소망을 제시한다. 

 

<부가설명> 내 기억이 맞다면 언젠가 톨스토이 인생론을 읽을 때 그는 앞으로 50년 후에는 세상이 아주 평화롭고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말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는 1910년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지금 2025년이다. 그가 죽은지 115년이 되었다. 그가 전망했던 좋은 세상은 헛된 꿈이었을 뿐이다. 그때보다 훨씬 나빠진 인성들이 아닌가? 그런데 성경은 딤후3:1~5에 예언된 사회상과 인간상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망의 세상은 노아 때와 롯의 때와 같아지고 있다. 아니 벌써 그렇게 되었고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도는 피난처 되시는 예수님 안에 안식을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옛 성도들처럼 사형의 핍박이 닥쳐도 소망을 굳게 붙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피할 곳은 예수님 뿐이니 성도들은 성경의 약속을 굳게 잡자. 서로 격려하고 믿음을 북돋이며 공동체가 연합하여 위기를 확신의 기회로 전환하는 믿음과 지혜를 구하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7,18).

 

5월 26일(월) 혼란 가운데 희망

 

시편에도 상징적 언어가 많이 사용되었지만, 지구의 궁극적인 재창조를 말하는 표현에 대해 그것이 상징에 불과하다고 볼 이유는 거의 없다. 시편 46편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구에 실질적인 큰 영향을 미칠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바위와 바다만 영향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 역사의 위대한 절정은 세상의 왕국 즉, 수천 년 동안 많은 고통을 초래한 비참한 인간 정부의 완전한 붕괴를 의미한다. 결국, 이 모든 권세와 그들이 인류에게 가져온 모든 악과 고통은 완전히 끝날 것이다. 

 

예레미야 4:23-26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새 하늘과 새 땅”(계 21:1)이 오기 전까지의, 지금 이 세상의 결국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렘4:23~26]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4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25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26 보라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의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답: 땅이 황무하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다 죽고 없어질 것이다.

 

성경의 예언은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려준다. 예를 들어 다니엘 7장의 환상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세상 나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분쟁과 전쟁의 바람이 이방인의 바다(지구) 곳곳에서 불면서 세상 왕국이 하나씩 세워지지만, 그 중 어느 하나도 인류가 겪고 있는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신뢰한다고 하는 세상의 지도자들은 십중팔구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죄 많고 이기적인 존재임이 드러난다. 

다니엘에게 보여진 왕국 중 일부가 다른 왕국보다 나은 경우가 있었지만 어떤 왕국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안전한 거처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며(빌 3:20), 이 땅의 혼돈 너머에 흔들리지 않는 보좌가 있음을 알고 있다(겔 1:26 참조).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세상은 더 깊은 무질서 가운데 들어갈 것이라고 가르치셨지만(마 24장),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다스리고 계시며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을 알기에 이 땅의 상태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굳게 설 수 있다.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46:6, 7). 단기간에 상황이 크게 좋아지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 감사하자. 지구의 장기적인 전망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교훈> 좀 더 나은 왕국이 있었지만 결코 우리의 안전한 거처는 아니었다. 우리는 하늘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며 혼돈 너머에 흔들리지 않는 보좌가 있음을 안다.

 

<부가설명> 세상 나라들은 아무리 좋은 출발을 해도 그것은 도덕적 통치를 내세우는 것일 뿐이다. 성경의 나라는 영생하는 생명을 주는 나라다. 사망이 도덕을 주장하는 것과 생명이 사랑으로 생활을 이끄는 나라는 비교할 수 없다. 중국의 예도 그렇다. 동양에서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이 최고로 이루어진 나라를 요순시대라고 한다. 그랬어도 영생의 나라는 아니다. 그들도 다 사망에 삼켜진 존재들일 뿐이다. 순임금이 죽은 다음에 우왕이 일어났으나 결국은 걸같은 악한 왕이 나라와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고 그것을 못 견디어 혁명을 일으킨 나라가 탕왕이 세운 상나라다. 그나라도 세월이 가자 주왕 같은 악한 왕이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다. 주나라가 일어나고 한나라가 일어났으나 다 그런 상태로 퇴폐하며 망했다. 이런 것이 세상 나라의 성질이다. 다니엘 2장에는 성경이 계시하는 역사철학이 있다. 그것은 금캍이 시작해서 진흙처럼 저질화하는 것이 인간 역사의 진행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철나라가 될 때까지 나라의 질은 떨어지고 성향은 악하게 강해진다는 것이다. 7장에 와서는 세상 나라가 맹수로 표상되었다. 그러나 영원한 나라는 인자의 나라다.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은 이 나라 국민이다. 작은 뿔에게 지고 고난을 겪는 나라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성도들이 얻는다는 보증을 하셨다. 

 

5월 27일(화) 그의 발아래

 

시편 47:1-4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우리의 궁극적인 위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시47:1~4]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2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3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며 4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답: 나라와 만민이 성도들의 발 아래 두신다.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의 미래는 밝다. 그러나 그때가 오기까지 인류가 가진 지구의 통치권은 루시퍼에게 넘겨져 있다. 욥기에서 하늘의 회의에 나타난 사탄은 이 땅이 자신의 것이라고 으스댔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라고 하나님께서 물으시자 사탄은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라고 대답했다(욥 1:7). 

이것은 사탄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표현이다. 고대에 발은 소유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 13:17)고 말씀하셨다.

 

데살로니가전서 4:13-17과 스가랴 14:4을 비교하고 구절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발을 주목해 보라. 이 구절에서 어떤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이 두 구절은 서로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차이가 있는, 그리스도의 이 세상에 대한 궁극적인 주권의 두 측면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살전4:13~17]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슥14:4]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답: 살전 4장은 예수께서 공중에 오셔서 성도들을 하늘로 데려가는 말씀이고 슥14장은 예수께서 천년기 후에 이 지구로 내려오시는 데 대한 말씀이다.

 

천년기가 마쳐질 때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엘렌 화잇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신 곳이며, 천사들이 재림의 약속을 되풀이한 장소, 곧 감람산 위에 내려오신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슥 14:5, 4, 9)라. 화려 찬란한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그 성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되고 정결하게 된 곳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과 천사들과 함께 그 거룩한 성으로 들어가신다”(각 시대의 대쟁투, 662). 

 

<교훈> 사탄은 이 땅을 여기저기 다니며 소유권을 주장하지만 이 모든 땅은 주님의 것이다. 주님의 발이 감람산에 설 때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올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헛되게 창조하지 않으시고 사람이 살도록 창조하셨다(사45:8). 그러므로 이 지구에 사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면 하나님의 창조는 헛되게 된다. 사탄은 이렇게 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한다. 천년기 동안 따은 황폐하고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탄은 이런 황량한 지구에 그의 부하들과 갇혀서 하나님의 창조를 헛되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착각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도들은 발아래 둔 나라들과 사람들을 심판하는 권세를 행한다(계20:1~4). 천년이 차면 둘째 부활이 있다. 악인들이 부활한다. 심판받기 위하여 부활하기보다는 부활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 왜냐하면, 악이들의 부활도 예수님의 부활로 예약되었기 때문이다(고전15:22~24). 그러나 악인들은 부활로 주신 그 생명을 끝까지 거절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부활하지만, 그 생명을 반납해야 한다. 그들이 거절해서 그 생명을 가질 자격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의와 자비에 모순되도록 죄인을 죄 있는 그대로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에 죄인이 죄를 범함으로 스스로 간직할 자격이 없음을 입증한 그 생명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서 취하신다. 한 영감의 기자는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시 37:10) 고 말한다. 또한 사람은 “본래 없던 것같이 되리라” (오바댜 16). 그들은 오명 (汚名) 으로 덮인 채 소망 없는 영원한 멸망으로 빠져들어 간다.  (GC 544.2)”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산 자들만 산 자의 나라에서 영생할 것이다(시27:13, 막12:27).

 

5월 28일(수) 포도즙과 언약의 피

 

시편 75편, 마태복음 26:26-29, 요한계시록 14:9-12을 읽어 보라. 이 시편은 심판에서 쟁점이 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며, 다른 구절은 이러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시75:1~10]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2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3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4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5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6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9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10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마26:26~29]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계14:9~12]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오만과 뿔을 쳐드는 것과 교만한 것을 다 심판하여 정죄하신다. 이런 것들은 다 세상 권력을 하나님보다 더 낫게 여기는 것들이다. 그것은 짐승에게 경배하면 표를 받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언약의 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진노의 포도주에서 면제된다. 새 포도즙은 하늘에 주님과 함께 마실 것이다.

  

어떤 이는 시편 75편이 산헤립의 군대가 기적적으로 멸망한 사건(대하 32:, 왕하 19:)에 대해 노래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는 계시록 20장에 기록된 악인의 최종 멸망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악의 군대가 올라와 그들을 포위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의로우신 왕과 함께 거룩한 도성 안에 있으며, 결국 악인들은 하나님께 멸망 당한다. 

하나님께서 심판에서 바로잡으시는 것 중 하나는 타락한 세상에서 행한 권력 남용이다. 타락한 인간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자신을 위해 산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면에서 우리의 우주에 의미나 객관적인 도덕 기준이 없다고 믿기로 선택한 결과 가운데 산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만약에 의미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만들어내야 하고, 마치 온 우주가 우리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각 사람이 마치 자신이 신인 것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누군가 이 철학이 니체 자신에게는 얼마나 잘 적용되었는지 묻는다면 실제 결말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이탈리아의 길거리에서 한 남자가 말을 때리는 것을 막으려다 실성하여 쓰러졌다. 이후 1900년에 사망하기까지 그는 11년 동안 부분적으로 혼미한 상태로 지냈다. 

아무리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 현재의 사건으로 미래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없다거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다른 관점을 주장함으로 문명의 기둥이 점점 무너져 가는 것을 보면서 절망하기 쉽다. 

우리는 현재 많은 지역에서 남성과 여성과 같은 인간의 성별을 비롯한 기본적인 도덕적 가치마저 공격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말하기 부끄러워했던 유형의 부도덕이 지금은 공개적으로 칭찬받고 박수를 받고 있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소망이 필요하다. 

 

<교훈> 자신을 위해 사는 세상 흐름에 휩쓸리지 말고 신앙인으로서 소망을 가져야 한다. 악인들에 포위되어 위기인 것 같지만 주님이 계시며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부가설명> 이 세상은 물이 바다를 덮은 것처럼 사망이 넘치고 넘실거린다. 그래서 이런 바다를 없애고 새로운 바다를 창조하셔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심판은 필수적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없으면 구원도 성취 될 수 없다.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는 세력이 세상을 지배한다. 온 땅을 두루돌아다니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고 사람들은 그 포도주를 먹으려고 본산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성경은 세상 나라가 다 이 포도주를 마시고 취할 것으로 암시했다. 그러므로 누가 이 포도주를 마시게 했는데 심판으로 분명히 드러낼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불과 유황 못에 떨어지게 되고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꺼지지 않는 맹렬한 불에 타서 재가 될(말4:1,3, 벧후2:6) 것이다. 불로 정결하게 된 땅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고 거기는 하나님의 생명을 회복한 산자들, 곧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만 살게 될 것이다. 거기서 모두 만나면 얼마나 반갑겠는가! 

 

5월 29일(목) 주의 구원을 알게 하소서

 

시편 67편을 읽어 보라. 이 찬송은 요한계시록 14:6-12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의 역할에 대한 당신의 이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시67:1~7]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2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3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4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5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6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7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답: 심판을 포함한 구원의 복음이 온 땅에 전파 될 것인데 그러기 위하여 성도들은 주님의 얼굴빛에 비침을 확실히 경험하고 빛이 되어야 한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기술자들은 물체를 거의 보이지 않게 만드는 새로운 검은색 코팅을 개발했다. 나노튜브로 만든 이 코팅은 이전에 만들어진 어떤 검은색 물질보다 몇 배나 더 검다. 이 새로운 소재는 모든 가시광선의 99.995%를 흡수할 수 있으며 아무리 밝은 빛도 이 코팅으로 덮인 물체를 보이게 할 수 없다. 

시편 67편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주의 도를 땅 위에”(시 67:1, 2) 알게 해 달라는 하나님을 향한 호소로 시작된다. 구원의 계획 가운데 하나님은 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의해 파멸되지 않고 그분의 직접적이고 영광스러운 임재에 다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다.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를 향하여 비취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다가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그분의 빛을 비추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임무였으며 성전은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이 되어야 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7).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시 67:2)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비극적이게도 하나님의 백성은 이 일에 자주 실패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기록에는 그런 어두운 장면이 있으며, 지난 이천 년간 기독교 교회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마음을 특수 검정 코팅으로 칠하여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지 않고 흡수하는 데 만족하는 것과 같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운동을 마치 자주 이용하는 영적인 고객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특별한 출항 라운지처럼 여긴다. 그리고 거기 편히 앉아서 나머지 세상은 시끄럽고 불편한 출국장에서 서성이며 심지어 다가올 여행을 준비하지 못한다 해도 크게 문제를 못 느끼는 것과 같다. 요한계시록 14장의 남은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시온에 서서 그분의 임재 가운데 머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온 땅을 누비며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거룩한 산으로 함께 가자고 촉구한다. 

 

<교훈>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시며, 마지막 때에 부름 받은 우리가 죄인을 구원하는 이 놀라운 진리의 빛을 온 세상에 비추기를 원하신다. 

 

<부가설명> 루시퍼의 배반으로 우주에 사망이 발생했고 그것에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곳이 지구다. 사탄이 땅으로 쫓겨왔기 때문이다. 우리 시조는 사탄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에 현혹되어 언약을 어겨서 반드시 죽게 되었다. 아담의 씨로 출생하는 지구의 모든 사람은 다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린 육체의 생명만으로 종신할 때까지 수명을 유지하는 육체가 되었다(창6:3, 시78:39). 육체로 사는 사람은 성령이 없는 자이다(유1:19). 생명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지 않으니 그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자들이다(계3:1). 그들에게 행위가 있지만 ‘썩어져가는 구습이다(엡4:22). 이런 세상에 먼저 하나님의 생명의 빛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그 빛을 육체뿐인 사람들에게 비추어서 그들도 성령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 생명의 존재가 되도록 하는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그 여자의 씨(후손)의 남은 자이다(계12:17, 원문). 우리 번역에는 씨(후손)이라는 말이 없다. 암쪼록 이 빛도 삼켜버리려는 흑암의 세력은 흑암이 삼킬 수 없는 빛으로 생명을 나누는 기별을 잘 전하는 존재들이 되도록 생명의 주님께 온 몸과 마음을 바치자. 

 

5월 30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시편 133편, 사도행전 1:4-9, 요한계시록 5:4-7을 읽어 보라. 

“부조들의 시대에도 종종 성령의 역사가 특별한 방법으로 나타나기는 했으나 결코 충만하게 임하지는 않았다. 이제 구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들은 이 선물을 위해 탄원하였고, 이에 더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간구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에게 부어 줄 성령의 선물을 간구하셨다"(사도행적, 37).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고하도록(마 24:14) “땅 끝까지”(행 1:8) 그리스도를 증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우리는 제자들로부터 시작된 일을 이어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세상에 전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그 일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지 우리가 홀로 고민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셨다. 그 일은 하늘 성소에서 주어진 명령이다. 우리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보호하심 아래 있으며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신다. 이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그분의 일이므로 우리는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 이스라엘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지시를 따르라고 하신다. 우리는 그분이 불가능한 일을 이루게 하시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성령은 이미 우리 이웃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다. 우리는 단지 결정의 순간이 올 때 그들에게 가서 시온에서 어린 양과 함께 서 있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함께하도록 초대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다. 새로운 수단과 방법을 찾기 위해 지나치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 일이 우리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1. 세 천사의 기별이 곳곳에 전파되었지만 아직 이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다. 교회가 어떻게 주께서 우리를 통해서 이루실 일을 더 잘 성취할 수 있을지 토의해 보라. 어떻게 하면 마지막 때를 위한 진리를 듣지 못한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면서도 그 앞에 낙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답: 기도하고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실천하도록 성령님의 지혜를 구하자. 일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롬9:28).

2. 요한계시록 5장에서 요한은 그분이 합당하시기 때문에 인봉된 두루마리가 어린 양에게 주어지는 것을 증언했다. 요한계시록 6장에서 두루마리의 인봉이 열렸을 때 우리는 신약 교회의 역사가 종말까지 분명하게 예언된 것을 본다. 이 묘사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완성하시는 방식에 대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답: 백마를 타고 전하지만 핍박으로 순교도 있다. 사탄은 교회를 흑암으로 채우고 이상한 교리를 만들어 청황색 말 노릇을 하게 했다. 그러나 순교자들의 피로 복음은 전파되어 우리까지 왔다. 우리도 이런 길을 걸어야 할 것을 암시한다.

3. 지금 세상의 일 중에서 요한계시록 13장, 14장을 통해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아는 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어떤 일이 있는가? 무엇 때문에 이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답: 바람을 잡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을 주님의 종들의 이마 치기까지 이 일이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속히 인을 치도록 성령님 능력을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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